'파묘' 김재철, 빈틈없는 내공 [인터뷰] >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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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 김재철, 빈틈없는 내공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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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4-03-09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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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느낌이다. 빈틈없는 연기다. 무려 24년을 탄탄히 다져온 내공이 고요하게 소용돌이치는 모양새다. 영화 '파묘'로 드디어 진가를 발휘한 배우 김재철이다. 


국내 오컬트 미스터리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장재현 감독의 신작 '파묘'는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작품이다. 김재철은 이들에게 수상한 묘의 이장을 의뢰하는 박지용 역으로 등장한다. 난생부터 막대한 부를 지닌 집안의 차남으로서 현재 LA에서 경제적으로 탄탄한 사업을 여러 개 운영 중인, 젠틀하고 고급스러운 남자. 그러나 대를 이어오는 기이한 병으로 형은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했고, 이제는 자신과 힘겹게 얻은 아들마저 원인 모를 병세를 앓자 이를 떨쳐내기 위해 도움을 청한다. 미심쩍고 수상한 집안의 미스터리를 조용히 숨긴 채, 어딘지 모를 불길한 기운을 자아내는 남자. 김재철은 묵직하게 시선을 사로잡고, 조상의 '파묘' 이후 벌어지는 사건에서 압도적인 몰입감을 이끌어낸다. 빈틈없고 탄탄한 연기다. 


김재철은 처음 장재현 감독의 캐스팅 제안을 받고 어리둥절했단다. "나를, 왜?"란 의문이었다. 그는 이전부터 감독을 향한 오랜 팬심이 있었다. '검은 사제들'은 새로운 작품의 탄생이라 여겼고, '사바하'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먹먹함 때문에 극장에서 홀로 한참을 앉아있을 만큼. '굉장한 사람'이란 감상이 들었다. '파묘' 기획 단계부터 관심을 기울이며 "제목부터 끝내준다"고 생각했었고, 최민식이 캐스팅됐다니 감탄까지 했었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하게 제게 연락이 왔다고. "너무 긴장된 마음으로 감독님을 만나러 가면서, 혹시 연기도 시켜보시지 않을까 싶어 준비도 했다. 그런데 절 보자마자 '재철 씨가 잘할 거라고 믿고, 캐스팅하기로 했습니다' 하시는 거다. 두 손을 꽉 잡고 '제 은인이십니다'라고 말했다"며 당시의 감격을 떠올린다. 


이전부터 궁금했던 장재현 감독은 알면 알수록 따뜻한 사람이었다. "실제 눈물도 많고 소년처럼 여리고 정도 많으시다. 특히 제 캐릭터에 애정을 많이 쏟아주셨고, 본인이 캐스팅한 캐릭터라는 점에서 누구보다 잘 해내길 바라셨다. 최근에 감독님께서 '김재철 배우라는 원석을 사람들에 보여줄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는 메시지를 보내셨는데 너무 울컥했다"는 그다. 


2000년 영화 '번지점프'로 데뷔해 수많은 영화의 단역으로 출연했지만, 이처럼 강렬하고 확실하게 각인된 것은 처음이다. 응축된 에너지를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던 그를 발견해 내 비로소 발산케 한 감독의 선구안이 새삼 놀랍다. 김재철은 감독의 디테일한 디렉팅에도 여러 번 감탄했단다. "배우가 뭔가를 찾아나갈 때까지 밀어붙이지 않으신다. 제가 빙의돼서 선언문을 읊는 신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 중이었는데 감독님께서 연락이 와서 그 신을 연습 중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봐주신다며 새벽까지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주셨다"고. 차 안에서 목이 쉴 정도로 50여 개의 버전으로 녹음해서 감독에게 보낸 배우의 열정도, 이를 세심하게 살핀 감독의 태도도 훈훈하다. 


이밖에도 "박지용의 평소 말투도 어떤 톤으로 잡을지 감독님과 얘기를 많이 나눴다. 이 사람이 갖고 있는 불안함의 정서를 어느 정도로 보여야 할지, 계속 만나 이야기하고 연습했다"며 "감독님께서 정말 애정이 많고 나를 책임지려고 노력하시는구나 싶었다"고 다시금 감독에 대한 고마움을 전한다. 그가 처음에 느끼길 박지용은 부유하고 강인한 캐릭터라 여겼기에 힘을 많이 넣었다고. 하지만 그가 지닌 가문의 비밀 때문에 의문스러운 느낌을 줘야 한단 감독의 팁에 기본적인 톤을 낮추고, 처음 잡은 설정보다 더 유약한 모습을 주려 했다는 설명이다. 그가 말하길, 박지용은 너무 자연스레 보이면 안 될 만큼 가공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부자연스러운 연기를 해서도 안 되는, 1막 사건의 키를 쥔 인물이다. 에너지가 떨어지지 않도록 접점을 찾아나가는 것이 중요했다. 또한 지울 수 없는 출신 성분을 지닌 이다. 그럼에도 악인처럼 보이지 않고, 유약한 피해자처럼 보여서도 안 됐다. 그렇기에 아픈 아이가 인생에 가장 큰 존재이고, 이를 지키기 위한 아빠의 마음으로 접근했다. 단, 유약함을 드러내지 않게 치우쳐지지 않는 연기를 하려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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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디테일한 고민과 설정으로 표현한 인물인 만큼, 크게 표현하지 않아도 강렬하고 응축된 기운이 절로 발산되는 것일 테다. 대중에겐 다소 낯설게 여겨질 그 얼굴이 조금도 거리낌 없이 극에 녹아드는 것도, 대배우 최민식과 맞붙어도 팽팽하고 미묘한 기운으로 밀리지 않는 것도, 여간 보통 내공이 아니다. 그는 "처음에 빙의된 신을 먼저 찍었다. 역순으로 찍은 셈이다. 큰일 났다는 마음으로 임했는데, 오히려 큰 산을 넘어버리니까 편해지더라. 최민식 선배님과 연기적으로 붙는 신보다 제가 하는 퍼포먼스를 보시는 입장으로 먼저 접하게 되니, 그때 선배님이 '고생한다. 열심히 하네'란 마음으로 마음을 많이 열어주신 것 같다"며 "이러다 죽는 거 아니냐며 물 한잔 마시라고 챙겨주시고 바나나 우유도 챙겨주셨다. 선배님이 인정해주시는구나 싶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대일로 연기하는 장면은 이렇게 선배님과 친해진 이후 찍은 신이라 생각해 보니 더 다행이란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감정을 폭발하는 신보다, 오히려 잘 보이지 않을 때의 연기가 더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최민식과 함께 하는 신을 찍었다면 긴장과 떨림을 숨기지 못했을 거라고.  


빙의된 채 목이 180도 돌아가는 신은 괴기스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김재철은 "돌릴 수 있는 최대한으로 돌리고, 밑에 바퀴에 올라타서 돌려가며 기술적으로 촬영했다. 나중에 합성으로 만드는 것이 어려우셨을 거다. 저는 재밌었다"며 해맑게 웃는다. '파묘'에 앞서 전작인 드라마 '하이에나' 때도 재미교포 역할로 유창하고 여유 있는 영어 실력을 뽐낸 탓에 의심조차 못했는데 자신은 "풍납동 출신"이란다. "아내가 재미교포 출신인데 대사를 녹음해 주면 달달 외운다. 원어민 발음을 구사하는 게 쉽지 않아서 정말 열심히 외우는 것"이라는 반전이다. 덧붙여 "동네 분들께서 응원해주시고 단체관람도 해주신다더라"며 귀여운 동네 부심이다. 장재현 감독도 '하이에나'의 모습을 보고 박지용을 연상했던 것이라고. 그러나 김재철은 "'하이에나'로 매체에 처음 어필이 돼서 이를 계기로 비슷한 역이 들어오는데 나름 다 다른 매력을 지닌 인물들이다. 또 부유한 교포 역할이 아니어도 자신이 있다. 장사하는 사람, 공무원 등 입히는 옷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다"며 자신감을 비췄다. 이어 "제가 사극도 했었다. 제 작품을 보신 분들이 동일인물인지 못 알아보시는 분도 있다. 저는 그럴 때 더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이유 있는 자신감이다. 오랜 무명 생활에도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연기하며 이를 초석 삼아 자신을 다잡은 자의 단단함이다. "저는 독립영화든, 단편 영화든 기회라 여기며 좋은 작품들을 많이 만났다. 작품을 하지 않을 때는 목소리로 청각장애인 분들을 위한 도서 낭독을 오래 했다. 이 또한 연기 활동이라 여겼다. 계속 연기할 수 있다는 자체로 고맙고 영광이었다. 지금도 이렇게 반짝하고 다시 작품에 들어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오디션을 봐야 한다고 해도, 또 하면 되는 거다. 버티는 데는 자신이 있을 만큼 훈련이 됐다. 오랜 무명을 겪어온 것에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다. '나는 왜 안 되지?'가 아니라 '언젠가 될 거야'란 마음뿐이었다는 그의 의지와 긍정의 기운이 건강하다. 


드디어, 23년 만에 배우 김재철의 진가가 제대로 발휘됐다. '파묘'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그는 들뜨지 않는다. "너무 조심스러우면서도 감사하고, 이런 사랑에 대한 감사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도 모르겠다"는 그는 "기왕 이렇게 된 것 천만까지 갔으면 좋겠다. 제 사심보다는, 장재현 감독님이 천만 감독님이 되시면 관객은 그다음 작품을 또 기대하게 되고 더 냉정하게 볼 것 아니냐. 그렇게 돼도 감독님이라면 또 해내실 것"이라며 확고한 확신이다. "'파묘'를 찍으며 이렇게 행복하고 즐거워도 되나 싶을 만큼 정말 행복했다. 이렇게 사랑을 받아 감사하고, 이런 사랑을 받은 만큼 또 좋은 작품과 캐릭터로 역할의 크기와 상관없이 열심히 임해 좋은 연기로 보답하고 싶다"는 배우 김재철이다. 

 

사진=키이스트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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