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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트' 이정재 감독, '능력자' 발견 [인터뷰]

    범상치 않다. '잘 빠진' 첫 연출작에 담아낸, 이토록 깊이 있는 함의가 놀랍다. 30년차 배우 타이틀과 더불어 준비된 연출가의 자질을 드러낸 이정재, 알고 보니 대단한 '능력자'였다. "눈물로 지새운 밤이었다." 너스레 섞인 말이지만, 지난 4년간 첩보 액션 영화 '헌트'의 각본, 연출, 연기, 제작까지 모든 것을 감내했던 이정재의 치열했던 순간이 담긴 소회다. '헌트'는 80년대 군부독재를 배경으로 '대한민국 1호 암살 작전'이라는 거대한 사건과 직면한 스토리를 풀어가는 첩보 액션이다. 암울했던 시대적 상황부터, 조직 내 숨어든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해 서로를 의심하는 안기부 요원 박평호(이정재), 김정도(정우성) 세력의 치열한 심리전과 거듭되는 반전, 그리고 미국 일본 태국 등을 무대로 펼쳐지는 압도적 총격 액션과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감각적인 미장센. 이처럼 방대한 스토리와 스케일을 아우르며 궁극적으로 담아낸 영화적 메시지까지. 여느 감독의 첫 연출작이라 해도 놀라운데 무려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이라니 여러모로 허를 찌르고 감탄을 부른다. '헌트'는 개봉 이전부터 칸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고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그제야 한시름 놨을 이정재 감독이지만, 그동안의 마음고생과 부담은 이루 말할 수 없을 터였다. "제가 잘못 시도했다가 꽤 많은 비난을 받게 되면, 제 연기 커리어에도 크나큰 지장이 있지 않을까 그런 불안감이 많았다." '헌트'는 본래 배우로 출연 제의를 받은 작품이다. 대의를 위한 두 남자의 각기 다른 선택이 현시점에도 많은 공감대를 형성했기에 제작을 결심했다. 감독을 찾아나섰지만 모두 연출을 고사했다. 여러가지 이유에서였다. '남산'이란 이름의 초고를 구입할 당시만 해도 액션은 없었고 철저히 스파이 장르물에 집중된 시나리오였다. 액션도 등장해야 하고, 동시에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도 살려야 함은 물론 새로운 주제도 찾아야 했다. 그러다 결국 자신이 맡게 됐단 이정재다.   "연기자 출신의 연출이라는 리스크가 있기에 시나리오로 입증해야만 했다"는 그는 "스파이 장르물이 볼땐 좋았는데 막상 쓰다 보니 너무 지루했다. 이 템포론 안 되겠다 싶어 다양한 아이디어와 상황을 넣고 액션을 계속 배치했다. 서스펜스와 스릴러가 같이 혼용되는 스토리 안에서 뜬금없이 액션이 나오면 안 되니 그럴싸하게 짜 맞추는 과정이 매우 어려웠다. 원래는 원톱 시나리오에서 투톱 구조의 이야기와 캐릭터를 만든다는 것도 어려웠다. 발란스를 맞추는 과정이었다"고 했다. 꿈에선 풀릴까, 맨 정신에 안 풀린 땐 술도 마시면서 써보고, 봉준호 감독은 카페에서 시나리오를 쓴다던데, 그래서 카페도 가봤다. 이같은 창작의 고통에 빠져 보낸 중에도 이정재 감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였다. 상업영화로서 장르적 재미도 충실해야 하지만, 관객이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를 같이 호흡하며 공감할 수 있도록 많은 고민을 했다. 이정재 감독이 궁극적으로 담고 싶은 주제는 대립과 갈등, 믿음과 신념이란 딜레마였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80년대는 물론이고 현재도 우리는 끊임없이 대립하고 갈등한다. 우리를 대립하게 만드는 개인의 신념이 어디에서 왔을지, 그것은 옳은 것인지 질문하고 싶었다." 이정재 감독의 주제 의식이 이토록 깊고 진지하다. "너무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불편했다. 영화 제작 당시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기였다. 온 국민이 예능보다 정치 사회 뉴스에 더 관심이 높을 때였다. 너무나 양극화로 갈라져 서로 대립하고 분쟁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왜 싸우고 있을까. 우리의 가치관이나 이념이 과연 옳은 것인가' 많은 생각이 들더라. 이런 주제로 캐릭터를 잡아나갔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박평호와 김정도다. 각각 처해진 상황과 수단은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자신이 가진 이념이 정의롭지 않다는 걸 깨닫고 다시 올바른 신념을 찾아 행동하는 이들이다. "인물이 가진 목적이 중요했고, 그 목적은 주제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는 감독은 이런 인물을 부각한다면, 주제가 전면에 드러나지 않고도 잘 드러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렇게 탄생한 두 인물의 팽팽한 대립과 치밀한 심리전은 정밀하고 사실적인 당시 시대상과 더해져 더욱 강한 몰입과 감상을 전한다. 실제 미얀마 아웅산 폭탄 테러, 이웅평 대위 귀순 사건 등, 80년대 전반의 시대적 분위기와 사건이 내포한 의미를 영화적으로 절묘하게 녹여낸 지점은 특히 놀랍다. 시대와 의미를 꿰뚫고 있는 감독의 시선과 영리한 장르적 활용까지 담긴 탓이다. 정작 감독은 "실제 사건이 연상되어질 수 있는 장면들을 어디까지 영화적 표현과 상상력으로 작업해야 하는지도 고민이 많았던 지점"이라고 했다. 칸 상영 당시 80년대 정치 상황과 군부정권의 악행을 모르는 외국인들이 어려워하는 반응을 보며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급히 수정과 편집에 돌입하기도 했다. 우리는 단어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대사나 표현과 장면들을 좀 더 상세히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찍어놓은 컷들의 이유와 목적이 다 있는데 이를 다시 편집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다. 그럼에도 관객이 더 이해하기 쉬운, 재밌는 영화를 선사하는 것이 각본가이자 연출자이자, 제작자로서의 책임이라고 여겼기에 물리적인 제약에도 집념을 발휘했던 그다. "삶에 책임감을 갖고 사는 것이 당연히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연기자로서만 살았을 때는 현장 안에서만 교류했지만, 연출을 하다보니 숨은 스태프들을 모두 만나게 된다. 그들은 영화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많고 단 한 컷의 변화로 인해 많은 노력이 들어도 작품이 좋아질 수 있다면 끝까지 해낸다. 그들이야말로 아티스트다." 영화판에서 흔히들 하는 얘기는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는 것이다. 이정재는 배우로서 현장을 겪을 때도 결코 동의하지 못했던 말이다. 그는 "제가 각본도 쓰고 연출도 하고 출연도 하고 제작도 참여했지만, 영화는 감독의 것이 아니다. 그건 결코 아니다. 이번에도 가장 많이 깨달은 것은 공동의 작업이기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더욱 설득력을 가져야 된단 생각으로 임했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다가가려 했던 부분이 담긴 작품"이라고 했다. 4년동안 끝없는 고민 속에 드디어 세상 밖에 나온 '헌트'다. 제법 후련한 마음도 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내내 곁을 지켜준 정우성의 존재는 그에게 더없이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우성 씨와 제가 생각이 같다. '태양은 없다'처럼 유쾌한 영화는 당시 우리 나이와 어울리는 역할이고 이야기였다. 지금은 반백년을 살았는데, 영화 홍보차 예능에서 재롱은 피울지언정 '왜 이런 영화 만들었어요? 왜 이런 캐릭터 연기했어요?'라는 질문은 의미가 다르다. 죽을때까지 남는 영화에서 지금 우리 나이와 의미에 걸맞은 작품을 하고 싶었다"고 속 깊은 얘기를 털어놓는다. '헌트'가 갖는 의미는 이처럼 진중하고 깊다. 이정재는 대한민국 대표 아티스트로서 대중에 끼치는 영향력을 어떻게 발휘해야 옳은지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다. "다시는 연출 안 맡겠다"며 손사래를 치지만, 벌써부터 차기작이 기다려지는 이정재 감독이다. 사진=메가박스 중앙 플러스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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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트' 정우성, 그답다 [인터뷰]

    정우성은 참 한결같다. 성실하고 바람직한 삶의 태도, 여기에 굳건한 신의를 지킬 줄 아는 이다. 시종일관되게 걸어온 삶의 방식과 품격에 감화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청담 부부'라는 팬들의 애칭이 붙을 만큼 두텁고 오랜 우정을 자랑하는 정우성, 이정재는 23년 만에 한 작품에서 조우했다. 무려 이정재가 연출한 첩보 영화 ‘헌트’다. 대중이 반가운 기대감을 갖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정우성은 이정재의 캐스팅 제안을 무려 3년간 거절했다. '삼고초려' 끝에 성사된 만남이었다니, 다소 의아하지만 속내를 들으니 충분히 그답다. 정우성이 전한 이정재 감독의 연출 계기는 이렇다. 4년 전, 이정재가 '남산' 시나리오 초고를 두고 제게 제작 의지를 밝혔다. 정우성 또한 둘이 같이 연기하면 좋겠단 생각은 내심 있었다. 작가와 감독을 구하는 동안 파트너이자 동료로서 조력하고 응원했다. 하지만 이 과정 속에 이정재는 부침을 겪었고, 계속해서 정우성과 의견을 주고받고 스스로 시나리오 수정 작업을 했다. 그러다 주변에서 '직접 하는 게 어떠냐'는 얘길 들었다. 이전까지 한 번도 연출에 뜻을 둔 적 없었고 당시 정우성이 연출작 '보호자'를 준비할 때인데, 이를 보면서도 '죽어가는 거 아니냐'라고 걱정했던 이정재다. '나한테 감독 연출 직접 해보라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이정재가 물을 때 정우성은 그냥 웃었다. "이 양반도 진짜 고생길로 접어들려 하는구나" 속으로 그리 생각했단다. 결국 결단을 내린 이정재는 제작, 각본, 연출은 물론 연기까지 직접 하고 심지어 제게 배역을 권유했다. 정우성이 이를 계속 거절한 이유는 친우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염려, 그리고 관객에 대한 예의와 진심 때문이었다. "그저 우리만의 의미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작은 사이즈의 영화도 아니고 연출 도전만 잘해내기도 힘든데, 여기에 우리 둘이 출연한다면 '저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얼마나 잘하나 볼까'하는 시선까지 견디기 힘들지 않겠나. 더 날카로운 평가의 기준이 있을 거다. 그러니 연출만 해서 그나마 가벼운 발걸음으로 도전을 이겨냈으면 한 것"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러나 이정재는 확고했다. 이에 "진짜 고난의 길을 가려고 하는구나. 오케이, 그렇게 마음 억었다면 바구니에 든 계란이 다 깨진다 해도 부딪혀보자. 치열하게 만들어보자" 결심한 정우성이다.       공동 제작이란 타이틀, 이정재의 연출 도전, 오랜만의 조우까지. 부담이 큰만큼 정우성은 더 치열하게 연기했다. 촬영장도 매순간 교감하며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작은 감정은 다 던져버리고 서로의 감정에 여유를 두지 않고 견제했다. 우리가 맛봐야 할 감정은 이게 아니라고 되새겼다." 그러면서도 이정재가 지치지 않길 바라고 지켜볼 뿐이었다. 정우성 또한 연출하며 빠져드는 외로움을 익히 알기에, 이정재의 그런 모습이 포착되는 때가 있었고 그때마다 짠하기도 했다고. 이 모든 것을 감내하고 작품을 완성한 친구가 자랑스럽고 뿌듯했단 정우성이다. "우린 서로에게 바라는 게 없다.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응원한다. 단 한 번도 서로에게 '왜'라고 물은 적 없다. 어떤 선택을 하든, 결과가 어떻든 바라보고 응원하고 본인이 가져야 할 의미를 함께 공유한다."  그렇게 탄생한 '헌트'는 80년대 군부독재 시절을 배경으로, 안기부 조직에 숨어든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한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의 밀도높은 심리전부터 '대한민국 1호 암살'이라는 키워드로 이어지는 방대한 스토리와 액션, 사회적 함의와 압도적 미장센까지 퍽 놀라운 결과물로 완성됐다. 개봉 전부터 칸 영화제 공식 초청 등, 범상치 않은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정우성은 "우리가 담은 의미, 물론 이것이 전부가 아닌 영화의 본질적 재미와 캐릭터를 구현하는 연기적 완성도까지 나쁘지 않게 해냈구나" 싶어 비로소 안심했다.  30여 년 전 두 청춘스타들이 세월이 흘러 이처럼 깊이 있는 주제의식을 통찰해 의미 있는 작품을 직접 만들고, 해외에서도 그 작품성을 인정받는 현실을 보니 이들이 차곡차곡 걸어온 길과 그 영향력이 새삼 놀랍고 이토록 멋스러울 수가 없다. 정우성은 "시사회 직후 동료 분들이 '좋은 자극 줘서 고맙다'는 얘기를 하더라. 그 말에 여러 요소가 내포된 것 같았다"는 정우성은 "어쩌다 보니 운이 좋아서 새로운 한국 영화 부흥기라고 일컬어지는 90년대에 우리가 데뷔했고 청춘스타 수식어를 얻으며 외형적으로 좋은 모습만 보였는데, 그 긴 시간 동안 두 친구가 얼마나 영화에 진지하게 임하고 고민했는지 이 작품을 통해 그 의미와 진정성이 잘 전달된 것 같아 뿌듯함을 느꼈다"고 했다.    정우성이 연기한 김정도는 그야말로 배우 본연의 성정이 연상되는 인물이었다. 이정재 감독은 배역을 제안할 때 배우가 지닌 본연의 색깔은 물론 팬의 입장에서 그 배우에게 보고 싶은 연기까지 고려했다고. 강인하고 강직한 성품을 지닌 김정도는 군인 출신으로 군사 쿠테타에 가담했지만 이에 대한 죄책과 부채감을 가진 인물이다. 이런 인물을 연기하는 정우성의 마음가짐 또한 너무도 그다웠다. "실제 5.18 민주항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우리 사회가 합의하는데도 긴 시간이 걸렸다. 사건 자체에 대한 아픔과 상처도 깊은데, 지금까지 상처를 주고 생채기를 내는 긴 시간이 계속됐다. 정우성이란 사람은 그 역사적 사건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아픔을 줬는지 지켜본 사람이잖나. 개인적인 소회도 인물에 함께 얹어질 수밖에 없더라."    그가 말하길 김정도는 군인으로서 의문을 가졌다. 이 같은 폭력이 가해지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고민을 객관화하며 생각했다. 또 잘못을 바로잡아야겠다는 신념과 딜레마에 빠진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이 딜레마를 가져갈 수 있는 원동력은 피해자에 대한 공감과 아픔, 억울함과 한이라고 봤다. 이에 대한 절대적인 공감이 필요했고 김정도라는 사람의 내면에 이런 한을 집어넣고 연기했다고. 덧붙여 "폭력에 대한 바로잡음, 평화에 대한 갈구는 김정도와 박평호 모두 일맥 하지만, 분단된 현실에서 한 방향으로 향해 갈 수 없다. 이런 두 인물이 각자의 신념적인 행동을 하고자 했을 때, 그 뜨거운 열기가 마주할 때 이 두 존재감은 서로 각인이 된다. 박평호와의 대립 관계 안에서 완성될 수밖에 없는 캐릭터 구성이다. 부딪히면 깨질 수밖에 없는, 그러나 서로 닮아있는 모습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설명이다.  "예전부터 주어지는 성공, 찬사 그런 수식어에 머물러지 있지 않으려 했다. 이다음에 할 수 있는 게 뭘까를 선택했다. 그렇게 서로에게 긍정적 자극을 줬고 커다란 위로가 되기도 했다. '헌트'는 우리 만남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우리가 그 긴 시간 동안 시간과 경험을 허투루  쓰고 있진 않았구나 하는, 두 배우가 영화인으로서의 삶을 입증하는 작품이었으면 한다"는 정우성의 진심이다. "그래도 우리가 함께 활동하는 걸 재밌어해 주시고 긍정적으로 봐주시니 용기를 얻게 된다.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다양한 도전과 노력을 해볼 필요는 있겠다고 서로 생각을 나누고 있다"는 그의 말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정우성의 연출작 '보호자'도 시작이 좋다. 엄청난 호평과 함께 토론토영화제에 초청됐다. 정우성은 "미사여구가 너무 좋아 큰일났다"며 기분 좋은 너스레지만, 오랜 연륜을 헛되이 쌓지 않은 이들의 진심이 일으킨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닐까 싶다. 사진=메가박스 중앙 플러스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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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상선언' 임시완, 해사한 얼굴에 광기가 서릴 때 [인터뷰]

    맑고 해사한 얼굴 이면에 섬찟한 광기가 어릴 때,, 그 충격의 여파는 더욱 거세다. 배우 임시완의 놀라운 '변신'이다. 인천공항을 배회하며 승객이 가장 많은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문의를 하는 남자. 탑승객의 개인 정보 때문에 알려줄 수 없다는 승무원의 말에 싸늘한 눈빛으로 욕설을 내뱉는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비밀스러운 행동을 하던 그는 자신을 지켜본 아이를 발견하고 불쾌감을 표현하고, 결국 아이가 탑승한 비행기의 편명을 알아내 비로소 행선지를 정한다. 천진한 얼굴로 마치 한 판 게임을 즐기듯 이유와 목적 없이, 기내에 생화학 테러를 일으키는 사상 초유의 테러범. 배우 임시완이 항공 재난 영화 '비상선언'(감독 한재림)에서 연기한 진석이다. 대담하고 유연한 연기다. 특히 그 맑고 고운 얼굴이 급발진 분노를 일으키며 순간적으로 돌변하고, 선량한 사람들에게 피해의식이 발동돼 집요하게 시비를 걸면서도 태연한 그 모습은 실로 어디선가 존재할법한 인물처럼 여겨졌기에 더 소름 끼쳤다.. 관객들은 물론이고, 함께 연기한 송강호 이병헌 등 기라성 같은 대배우들도 극찬을 보낼 정도였다. 이에 임시완은 "전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선배님들께 연기에 대해 칭찬을 받는다는 건 정말 저로서는 굉장히 기분 좋고 감사하고 뿌듯한 일이었다. 팬들 반응 중에 '눈이 돌아있다'고 표현해주신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연기를 잘 봐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어딘가에 실존하고 있을 것만 같은 인물이라는 평가는 그만큼 현실감이 있다는 거라서 제게는 너무 큰 칭찬"이라고 해맑은 미소를 짓는다. 진석은 서사가 배제된 '빌런'이다. 엄청난 생화학 테러를 일으키면서도 이유와 목적이 없다. 자신마저 위험할 걸 알면서도 자폭을 감내하고 미친듯이 폭주한다. 임시완은 서사가 없는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반면, 일종의 해방감도 느꼈다. "대본을 보며 처음 접했던 진석의 인상은 절대악이었다. 악역인데 서사가 아예 없었다. 일말의 정서적인 교감의 여지조차 없는 악역이란 점이 기존의 악역과는 달랐다. 연기할 땐 좀 더 다양하고 자유롭게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는 그는 "악역은 비교적 표현 방식과 폭이 넓다. 중점을 둔 건 '어떻게 해서 나쁘게 보일까, 돌은 연기를 할까'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이미 정상적인 범주의 사람이기에 아예 왜곡된 가치관에 의해 만들어진 신념에 따라 행동했다"고 말했다. 임시완이 좋아하는 빌런의 형태는 '어벤져스'의 타노스, '킹스맨'의 발렌타인이다.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가진 신념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임시완 또한 진석만의 명확한 서사와 신념을 스스로 갖추려 했다. 그가 말하길 아마도 시작은 왜곡된 가치관이다. "그럴듯한 헛소리를 한다. 본인의 가치관에선 인과관계가 형성돼 있는데 그 자체에 모순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임시완이 쌓아 내려간 인물의 서사는 꽤 흥미롭고, 세밀하며, 그럴싸했다. "어렸을 때부터. 발랄한 성격도 아니니 혼자 주눅 들어 있을 거다.. 어느 집단을 가나 나쁜 류의 사람은 있다. 이런 사람을 괴롭히려는 유형, 괴롭힘 당하는 걸 보면서도 도와주지 않는 유형. 그런 집단들에 의해 놀림거리가 됐고 폭행도 당했을 거다.. 그런 것들이 계속 쌓이니 점점 사람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이에 대한 생각들이 건강하지 않게 흘러가는 거다. '저들이 나를 왜 괴롭히지', 방관하는 사람들에게 피해의식도 있었을 거다. '왜 내가 당하는데 도움 주지 않지'. 혼자 건강하지 않은 정신으로 고찰을 시작했을 거다.. 그러면서 '저런 것들은 인간적으로 미개해서, 발전하지 못해서, 퇴화된 감정이다' 이런 식으로 귀결됐을 거다. 저들이 미개해서 그런 거라며 본인 스스로 위로하며 버텼을 거고,, 그러는 동안 증오감도 쌓였을 거다.. 그 끝에 '이 미개한 사람들은 존재 자체가 필요 없다'라고 생각하고, 급기야 필요 없는 사람들을 본인이 스스로 신성한 정화작용을 해야겠다고 귀결됐을 거다."   이토록 길고 세세하며 깊이 있는 인물 서사 과정을 단숨에 설명한 그는 "이렇게 좀 서사를 만들어봤습니다"라고 생긋 웃어보인다. 연기에 대한 진지한 열정은 물론, 절로 눈이 빛나는 그를 보면 얼마나 연기를 즐기고 있는지가 고스란히 엿보인다. "일관적인 당위성을 갖고 가야겠단 생각이었다. 서사 없는 악역을 맡는 것이 배우로서는 창의적인 일이었다"며 즐거워한 그는 ""어찌 됐건 저는 연기로서 대화하고 칭찬받고 인정받는 게 세상 제일 큰 기쁨이다. 그걸 위해 집요하게 하고 일부러 더 생각하고 고민하는거다. 잘했다는 칭찬을 들을 때 진심이 느껴진다. 이를 얻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이라며 천진한 미소다. 사실 가장 신경쓴 건 영어 대사였다. "영어는 어떻게 보면 기술적인 거다.. 교포처럼 영어를 해야 하니까 발음 위주로 영어 연습을 많이 했다. 적어도 언어로 인해 연기에 발목 잡히면 안 되겠단 생각 때문에 더 많이 연습했다"고. 임시완은 학구파다. 이병헌도 말하길, 현장에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호기심이 많은 친구라 더 기특했다 한다. 임시완은 "제가 그렇게 질문을 많이 했는지 몰랐다"고 쑥스러워하면서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선배님들이기에 저는 선배님들의 가치관, 평상시 취미 생활 등도 궁금했다. 그런 일련의 가치관과 생각들이 결국은 훌륭한 연기를 할 수 있게끔 만드는 원동력이 아닐까. 내가 찾는 정답과 비슷한 모습일 거라고 생각한 기대감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리고 같이 작업하며 호흡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발전하는 것이었다고 감사를 전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비상선언'이 제게 선물과도 같은 작품이라 말한다. "훌륭한 감독님과 선배님들이 모인 작품이다. 저는 오히려 작품의 메시지와 미덕까지 파고들 겨를이 없었다. 당장 눈앞의 진석이란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 것인가, 제가 적어도 피해가 되면 안 되니까 제 역할만 해내기에도 벅찼다. 감독님과 선배님들 덕분에 제가 연기를 잘한 것처럼 보인 것"이라고 겸손이다. 연기를 한 지 어느덧 10년이 됐다. 임시완은 세세하게 따져보면 짧고 굵은 터닝포인트가 있었다고 했다. "처음 연기 시작한 것이 '해를 품은 달'이었다. 그 작품으로 제가 연기를 계속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고, '변호인'은 연기 정점에 서 계신 선배님들과 같이 작업하며 제가 연기자로서 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미생'은 저에게 있어 굉장히 큰 긍정적인 이미지를 준 작품이다. 여기에 '불한당'은 저만의, 저 스스로의 어떤 이미지 속에 갇힐 수 있다는 위험에서 벗어나게끔 해준 결정적인 작품일 수도 있단 생각이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연기하고 싶다. "연기가 적성에 너무 맞다. 그리고 제가 이 직업을 선택한 이후, 그래도 처음으로 대중에게 인정받은 장르이기도 하다. 계속해서 자연스럽게 평상시에도 생각나는 것이 연기"라고. 연기가 즐겁고, 각별하다. 임시완이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다.     사진=쇼박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