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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묘' 김재철, 빈틈없는 내공 [인터뷰]

    단단한 느낌이다. 빈틈없는 연기다. 무려 24년을 탄탄히 다져온 내공이 고요하게 소용돌이치는 모양새다. 영화 '파묘'로 드디어 진가를 발휘한 배우 김재철이다.  국내 오컬트 미스터리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장재현 감독의 신작 '파묘'는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작품이다. 김재철은 이들에게 수상한 묘의 이장을 의뢰하는 박지용 역으로 등장한다. 난생부터 막대한 부를 지닌 집안의 차남으로서 현재 LA에서 경제적으로 탄탄한 사업을 여러 개 운영 중인, 젠틀하고 고급스러운 남자. 그러나 대를 이어오는 기이한 병으로 형은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했고, 이제는 자신과 힘겹게 얻은 아들마저 원인 모를 병세를 앓자 이를 떨쳐내기 위해 도움을 청한다. 미심쩍고 수상한 집안의 미스터리를 조용히 숨긴 채, 어딘지 모를 불길한 기운을 자아내는 남자. 김재철은 묵직하게 시선을 사로잡고, 조상의 '파묘' 이후 벌어지는 사건에서 압도적인 몰입감을 이끌어낸다. 빈틈없고 탄탄한 연기다.  김재철은 처음 장재현 감독의 캐스팅 제안을 받고 어리둥절했단다. "나를, 왜?"란 의문이었다. 그는 이전부터 감독을 향한 오랜 팬심이 있었다. '검은 사제들'은 새로운 작품의 탄생이라 여겼고, '사바하'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먹먹함 때문에 극장에서 홀로 한참을 앉아있을 만큼. '굉장한 사람'이란 감상이 들었다. '파묘' 기획 단계부터 관심을 기울이며 "제목부터 끝내준다"고 생각했었고, 최민식이 캐스팅됐다니 감탄까지 했었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하게 제게 연락이 왔다고. "너무 긴장된 마음으로 감독님을 만나러 가면서, 혹시 연기도 시켜보시지 않을까 싶어 준비도 했다. 그런데 절 보자마자 '재철 씨가 잘할 거라고 믿고, 캐스팅하기로 했습니다' 하시는 거다. 두 손을 꽉 잡고 '제 은인이십니다'라고 말했다"며 당시의 감격을 떠올린다.  이전부터 궁금했던 장재현 감독은 알면 알수록 따뜻한 사람이었다. "실제 눈물도 많고 소년처럼 여리고 정도 많으시다. 특히 제 캐릭터에 애정을 많이 쏟아주셨고, 본인이 캐스팅한 캐릭터라는 점에서 누구보다 잘 해내길 바라셨다. 최근에 감독님께서 '김재철 배우라는 원석을 사람들에 보여줄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는 메시지를 보내셨는데 너무 울컥했다"는 그다.  2000년 영화 '번지점프'로 데뷔해 수많은 영화의 단역으로 출연했지만, 이처럼 강렬하고 확실하게 각인된 것은 처음이다. 응축된 에너지를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던 그를 발견해 내 비로소 발산케 한 감독의 선구안이 새삼 놀랍다. 김재철은 감독의 디테일한 디렉팅에도 여러 번 감탄했단다. "배우가 뭔가를 찾아나갈 때까지 밀어붙이지 않으신다. 제가 빙의돼서 선언문을 읊는 신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 중이었는데 감독님께서 연락이 와서 그 신을 연습 중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봐주신다며 새벽까지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주셨다"고. 차 안에서 목이 쉴 정도로 50여 개의 버전으로 녹음해서 감독에게 보낸 배우의 열정도, 이를 세심하게 살핀 감독의 태도도 훈훈하다.  이밖에도 "박지용의 평소 말투도 어떤 톤으로 잡을지 감독님과 얘기를 많이 나눴다. 이 사람이 갖고 있는 불안함의 정서를 어느 정도로 보여야 할지, 계속 만나 이야기하고 연습했다"며 "감독님께서 정말 애정이 많고 나를 책임지려고 노력하시는구나 싶었다"고 다시금 감독에 대한 고마움을 전한다. 그가 처음에 느끼길 박지용은 부유하고 강인한 캐릭터라 여겼기에 힘을 많이 넣었다고. 하지만 그가 지닌 가문의 비밀 때문에 의문스러운 느낌을 줘야 한단 감독의 팁에 기본적인 톤을 낮추고, 처음 잡은 설정보다 더 유약한 모습을 주려 했다는 설명이다. 그가 말하길, 박지용은 너무 자연스레 보이면 안 될 만큼 가공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부자연스러운 연기를 해서도 안 되는, 1막 사건의 키를 쥔 인물이다. 에너지가 떨어지지 않도록 접점을 찾아나가는 것이 중요했다. 또한 지울 수 없는 출신 성분을 지닌 이다. 그럼에도 악인처럼 보이지 않고, 유약한 피해자처럼 보여서도 안 됐다. 그렇기에 아픈 아이가 인생에 가장 큰 존재이고, 이를 지키기 위한 아빠의 마음으로 접근했다. 단, 유약함을 드러내지 않게 치우쳐지지 않는 연기를 하려 했다고.    이처럼 디테일한 고민과 설정으로 표현한 인물인 만큼, 크게 표현하지 않아도 강렬하고 응축된 기운이 절로 발산되는 것일 테다. 대중에겐 다소 낯설게 여겨질 그 얼굴이 조금도 거리낌 없이 극에 녹아드는 것도, 대배우 최민식과 맞붙어도 팽팽하고 미묘한 기운으로 밀리지 않는 것도, 여간 보통 내공이 아니다. 그는 "처음에 빙의된 신을 먼저 찍었다. 역순으로 찍은 셈이다. 큰일 났다는 마음으로 임했는데, 오히려 큰 산을 넘어버리니까 편해지더라. 최민식 선배님과 연기적으로 붙는 신보다 제가 하는 퍼포먼스를 보시는 입장으로 먼저 접하게 되니, 그때 선배님이 '고생한다. 열심히 하네'란 마음으로 마음을 많이 열어주신 것 같다"며 "이러다 죽는 거 아니냐며 물 한잔 마시라고 챙겨주시고 바나나 우유도 챙겨주셨다. 선배님이 인정해주시는구나 싶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대일로 연기하는 장면은 이렇게 선배님과 친해진 이후 찍은 신이라 생각해 보니 더 다행이란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감정을 폭발하는 신보다, 오히려 잘 보이지 않을 때의 연기가 더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최민식과 함께 하는 신을 찍었다면 긴장과 떨림을 숨기지 못했을 거라고.   빙의된 채 목이 180도 돌아가는 신은 괴기스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김재철은 "돌릴 수 있는 최대한으로 돌리고, 밑에 바퀴에 올라타서 돌려가며 기술적으로 촬영했다. 나중에 합성으로 만드는 것이 어려우셨을 거다. 저는 재밌었다"며 해맑게 웃는다. '파묘'에 앞서 전작인 드라마 '하이에나' 때도 재미교포 역할로 유창하고 여유 있는 영어 실력을 뽐낸 탓에 의심조차 못했는데 자신은 "풍납동 출신"이란다. "아내가 재미교포 출신인데 대사를 녹음해 주면 달달 외운다. 원어민 발음을 구사하는 게 쉽지 않아서 정말 열심히 외우는 것"이라는 반전이다. 덧붙여 "동네 분들께서 응원해주시고 단체관람도 해주신다더라"며 귀여운 동네 부심이다. 장재현 감독도 '하이에나'의 모습을 보고 박지용을 연상했던 것이라고. 그러나 김재철은 "'하이에나'로 매체에 처음 어필이 돼서 이를 계기로 비슷한 역이 들어오는데 나름 다 다른 매력을 지닌 인물들이다. 또 부유한 교포 역할이 아니어도 자신이 있다. 장사하는 사람, 공무원 등 입히는 옷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다"며 자신감을 비췄다. 이어 "제가 사극도 했었다. 제 작품을 보신 분들이 동일인물인지 못 알아보시는 분도 있다. 저는 그럴 때 더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이유 있는 자신감이다. 오랜 무명 생활에도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연기하며 이를 초석 삼아 자신을 다잡은 자의 단단함이다. "저는 독립영화든, 단편 영화든 기회라 여기며 좋은 작품들을 많이 만났다. 작품을 하지 않을 때는 목소리로 청각장애인 분들을 위한 도서 낭독을 오래 했다. 이 또한 연기 활동이라 여겼다. 계속 연기할 수 있다는 자체로 고맙고 영광이었다. 지금도 이렇게 반짝하고 다시 작품에 들어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오디션을 봐야 한다고 해도, 또 하면 되는 거다. 버티는 데는 자신이 있을 만큼 훈련이 됐다. 오랜 무명을 겪어온 것에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다. '나는 왜 안 되지?'가 아니라 '언젠가 될 거야'란 마음뿐이었다는 그의 의지와 긍정의 기운이 건강하다.  드디어, 23년 만에 배우 김재철의 진가가 제대로 발휘됐다. '파묘'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그는 들뜨지 않는다. "너무 조심스러우면서도 감사하고, 이런 사랑에 대한 감사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도 모르겠다"는 그는 "기왕 이렇게 된 것 천만까지 갔으면 좋겠다. 제 사심보다는, 장재현 감독님이 천만 감독님이 되시면 관객은 그다음 작품을 또 기대하게 되고 더 냉정하게 볼 것 아니냐. 그렇게 돼도 감독님이라면 또 해내실 것"이라며 확고한 확신이다. "'파묘'를 찍으며 이렇게 행복하고 즐거워도 되나 싶을 만큼 정말 행복했다. 이렇게 사랑을 받아 감사하고, 이런 사랑을 받은 만큼 또 좋은 작품과 캐릭터로 역할의 크기와 상관없이 열심히 임해 좋은 연기로 보답하고 싶다"는 배우 김재철이다.    사진=키이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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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묘' 최민식, 풍수사 김상덕 [인터뷰]

    흙의 냄새를 맡고 맛을 보는 행동만으로도 풍수사 그 자체가 돼있다. 한평생 토지를 분석하고 땅의 오행을 판단해 온 한 인물의 지난한 인생까지도 묻어난다. 배우 최민식은 익숙한 듯 어딘가 새롭고 낯선, 인물의 질감을 이렇듯 절묘하게 살려낸다.  데뷔 35년 만에 첫 오컬트 장르에 도전한 최민식이 주저없이 영화 '파묘'를 택한 이유는 장재현 감독의 가치관에 감복한 탓이다. "대본을 받고 술을 마시며 같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우리 땅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싶다. 상처를 뽑아내고 약을 발라주고 싶다'고 하더라. 이런 표현은 처음 들어봤다. '땅의 트라우마'라니. 그 정서가 매우 맘에 들었고 멋있었다"는 것이다. 우리 땅을 생각하는 따뜻한 시선도 느꼈다.  이전부터 그가 느끼길 감독의 전작들을 통해서도 보여졌듯 늘 장재현 감독은 자연과 종교 등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들을 소신 있게 그려왔다. 무신론자들도 신의 존재를 믿든 안 믿든, 인간이 나약해지고 코너에 몰릴 때 그런 존재에 매달리게 되지 않느냐고. 항간엔 불편하고 굉장히 편협된 사고에 갇혀버릴 수 있는 이야기들을 뚝심 있게 소신껏 밀고 가는 감독이란 감상이었다. "그런 영역 확장에 굉장히 열려있는 친구였고, 그 만듦새가 좋았다. 이렇게 관념적인 이야기를 어떻게 이토록 영화적으로 만드나. 이건 굉장한 실력"이라며 아낌없는 칭찬을 한 최민식은 이내 "너무 띄워주나"라고 웃었다.  그렇게 눈여겨보고 짐작했던 감독이었기에 '파묘'를 접했을 때도 낯섦보단 친근함을 느꼈단다. "무섭다, 안 무섭다. 오컬트다, 아니다를 떠나 무속이나 풍수는 제가 어릴 때부터도 늘 있었던 것"이라며 일례로 어린 시절 기억을 꺼냈다. 열 살 때 폐결핵으로 죽을뻔한 적이 있고, 이 세상 사람의 사주가 아니라며 의사도 포기했던 그때 어머님은 끝까지 자식을 포기하지 않았다. 산으로, 절로 데리고 다니며 온 마음을 다해 기도했다. "희한하게 나았다. 그런 신비로운 경험을 몸으로 겪어봤다. 신의 존재보다 어머님의 정성 덕분이라고 느끼지만, 이렇게 살면서 논리적,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분명 있다. 이를 미신이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다 흥미롭고 재밌었다"는 그는 "우리 할머니께서 제가 군대에 갔을 때 매일 장독대에 물 떠놓고 손주 제대하는 날까지 다치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어디에 빌든, 우리 할머니의 그 마음이, 어머니의 그 마음이 종교였다"고 했다. 사리에 맞는 훌륭한 표현이다. 이처럼 최민식은 소재와 장르에 대한 편견이 없었을뿐더러, 오히려 무속인, 풍수사, 장의사 등이 어우러진 이야기를 보며 하나의 공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고.  조선 팔도 땅을 찾고 땅을 파는 40년 경력의 풍수사 상덕. 최민식은 상덕 그 자체다. 감독 역시 "최민식 배우의 얼굴로 담는 순간 모든 게 진짜가 되는 묘한 마법이 있다"고 했을 만큼, 평생 본 적 없는 인물을 고스란히 믿게 한다. 장례문화와 풍습이 바뀌며 이제는 옛것으로 퇴색되어 가는 풍수사의 어딘가 모를 씁쓸함까지, 별다른 표현 없이도 고스란히 묻어날 정도니 감탄할 따름이다. 그는 "40년 땅 파먹고 산 사람의 세월을 제가 어떻게 따라잡겠나. 아무리 밤새워 책을 읽고 공부해도 이를 따라잡을 수 있을 리 만무하다"며 손사래다. 다만 이 하나는 표현해 봐야겠다고 느낀 것이 있다. "상덕은 평생을 자연을 보며 살았던 이다. 자연을 관찰하고 어디가 흉지이고 길지일지, 인간의 길흉화복을 터의 모양새와 형태, 질감을 보며 평생 연구했을 거였다. 그렇기에 산에 오르더라도 일반 등산객처럼 산을 바라보진 않겠구나. 깊이 바라보겠구나. 흙냄새, 그래서 맛도 보고. 산세를 보든 나무 한그루를 보든 풀 한 포기를 바라보든 깊게 바라보는 태도, 그 느낌이다. 이것이 이 캐릭터의 가장 큰 줄기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고. 풍수사가 느끼는 자연과의 영적인 교감을 담아내려고 집중했다니, 이같은 배우의 사고와 표현력에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하지만 최민식은 "그럴듯하게 사기를 치는 것"이라며 사람 좋은 웃음이다.    "허구의 삶, 허구의 인간을 현실에 있을법하게 그리는 것이 제 일이다. 골백번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결국 카메라 앞에 섰을 때 그 인물이 돼야 한다. 이걸 못하면 돈값을 못하는 거다. 가장 외로운 순간이기도 하다. 그 누구도 개입할 수 없고, 무슨 일이 있어도 혼자 감당해야 할 일이다. 마치 절벽에 떠밀려서 서 있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상상하고 생각하며 무형의 인물에 자꾸 다가가야 하고, 밀착이 돼야 한다"며 연기관을 밝힌 그는 "그게 힘들면 연기 접고 장사해야지"라며 눙을 친다. 이어 "상덕의 이런 깊이를 담아내지 못한다면 그냥 배 나온 아저씨에 불과했을 것"이라는 너스레로 친근함을 더한다.  악지의 묘를 건드리면 사단이 날 것을 알면서도, 결국 이 땅을 파헤치고 '험한 것'의 뿌리를 뽑아내기 위한 상덕의 사투는 장렬한 감동을 더한다. 그는 이를 두고 "내가 속물이었고, 40년 동안 땅파먹으며 부자들, 정치인들의 돈을 받아먹고살았지만, 결국 풍수사의 본능으로 절대 들어설 터가 아닌 곳에 들어선 것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을 거다. 그리고 오랜 세월 이 직업에 몸담고 있던 사람으로서의 양심과 도리, 땅에 대한 예의도 있었다. 내 손주가 밟고 살아갈 이 땅에 이런 흉한 것을 꽂아놓고 방치한다는 건 도저히 양심상 못할 짓이라고 여겼다. 그래, 뽑아보자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민식은 '파묘'가 이처럼 단순히 공포를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감독의 따뜻한 시선이 녹아있는 지점이 좋았다. 현재 사회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오랜 상처에 대한 고찰을 영화적으로 뽑아낸 것이 그 역시도 후련했다. 마냥 어둡고 무겁지만은 않은, 그가 칭하길 '묘벤져스'라는 이들의 활약과 위트도 흡족했다. 특히 최민식은 마지막 내레이션에서 진지하게 사람을 웃기는 상덕의 모습을 두고 "대본으로 봤을 때도 좋았던 지점이다. 상가집에서도 웃음이 있다. 아주 슬픈 감정 속에서도 유머가 있고, 행복함 속에서도 슬픔이 있다. 그게 인생이다. 그 신을 두고 관객도 많이 웃어줬는데 '내가 살렸구나' 흐뭇했다"고 했다. 게다가 유해진과의 검문소 신은 작정하고 "해진아, 이번엔 우리 차례다 가자. 웃겨보자" 했을 정도다. 그는 "이렇게 쉬어가는 지점들이 있고, 전작에 비해 감독이 더 말랑말랑하고 사고가 유연해진 것이 좋더라"고 끝까지 감독에 대한 칭찬과 애정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배우로서 여전히 욕심이 많고, 표현해보고 싶은 것이 많다고 했다. "제가 여태껏 한 건 빙산의 일각도 안 된다. 일단 멜로도 못했다"며 웃긴 그는 "인간과 감정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 수십, 수백만 갈래의 감정을 어떻게 다 표현할까. 정형화된 감정, 정의를 벗어난 형태가 궁금해서 계속 멜로를 해보고 싶다고 얘기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어 "제 삶은 하자 투성이다. 저도 실수하고 후회하고 산다. 하지만 늘 작업을 통해 많이 배운다. 어릴때부터 이 일을 하며 좋은 영향을 주고 귀감이 되신 선배님들이 많았다. 그래서 감사하다"고. "서로 교감하며 원하는 목표를 향해 가는 모습을 통해, 제가 많이 배우고 공부한다"는 그에게도 연기는 늘 어려운 것이지만,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란 운치 있는 표현이다. 그는 지난 연기 인생을 돌아보고 싶지 않다.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싶고, 늘 청춘이고 싶다는 바람이다.      사진=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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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묘' 유해진, 백설기의 맛! [인터뷰]

    배우 유해진은 언제나 자연스럽다. 그의 연기도, 유머도, 사람 됨됨이도 억지로 꾸미거나 애쓰지 않고도 어색함 없이 저절로 받아들이게 된다. 유해진이란 이름만으로도 늘 자연스러운 호감과 매력을 이끌어내는 이유다.  어느 누가 어떤 장르를 하고 싶느냐고 물을 때마다 했던 얘기가 "장르를 구별하지 않는다"였던 유해진은 그만큼 좋은 이야기 속에서 연기하고 싶었다. 오컬트 장르는 사실 스스로 무서워서, 궁금은 해도 직접 하게 될 거란 생각은 안 해봤단 그가 이 장르에선 독보적인 장재현 감독의 신작 '파묘'에 응한 것은 결국 이야기의 힘이 컸다. 거액의 제안을 받은 무속인, 풍수사, 장의사가 악지에 묻힌 묘를 파헤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파묘'는 그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요즘은 익숙한 것만 하지, 이렇게 신선한 소재의 시나리오가 많지 않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이 땅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이 장르와 접목시켜서 풀어내는지, 또 어떻게 구현해낼지 직접 체험하고 경험하고 싶은 욕심"이 들더란다. 이전까지 장재현 감독의 전작을 보며 든 생각은 '낯섦'이었으나, '파묘'를 통해 "낯선데 희한한, 그리고 재밌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구나" 싶었다고.  극 중 유해진은 그만의 유쾌함과 세심한 관찰력이 투영된 장의사 영근 역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연기한다. 풍수사, 무당 등 범상치 않고 기쎈 캐릭터들 사이에서도 그만의 디테일과 캐릭터성이 절로 살아난다. 이를테면 불길한 기운을 감싸고 결국 시작된 첫 파묘에서 대살굿이 요란하게 펼쳐져 시선을 홀리는 와중에도 영근의 걱정 어린 긴장감이 찰나에 드러나는 거다. 마침내 이를 끝내고 풍수사 상덕(최민식)에 '긴장 풀라'고 가볍게 다독이는 말투에서는 영근의 다정한 인간미와 두 사람의 깊고 오랜 관계성을 포착하게 한다. 참 묘하다, 별거 아닌 표정과 제스처에도 유해진은 그 인물의 깊이와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다른 인물들이 화려하고 분명한 색을 지닌 무지개떡, 시루떡 같았다면 본인은 백설기 같았다고 맛깔나게 비유한 그는 "백설기가 맛은 없는데 담백한 맛이 있지 않느냐"며 웃었다. 이어 "사실 영근은 색깔이 분명하지 않은 역할이다. 민식 형이나 고은 씨 캐릭터는 색이 확실한데 저는 그렇게 선명하지 않다. 객관적으로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는 인물, 두 사람이 맥을 끌고 가면 슬쩍 밀어주고, 객석이 궁금해할 것들을 대신 물어봐주는 진행자 같은 역할로 여겨서 큰 차질 없이 흘러가도록 하는 인물"이었다는 설명이다. "색이 분명한 역할도 좋아하지만, 어떨 땐 이런 역이 더 정이 가고 좋을 때가 많다"고.  뚜렷하고 강렬한 이들 사이에서도 영근은 저만의 존재감을 지킨다. 바로 유해진이기에 가능했단 확신이 든다. 그는 가벼운 신에도 그만의 의미를 부여하지만, 이를 티나게 하지 않는다. 초반 영근이 상덕과 등장해 어느 부잣집 집안의 묘를 이장할 때 관에 담긴 고가의 물건들을 보고 취하는 너스레와, 이어 할머니를 잊고 싶지 않았기에 손주가 벌인 행위를 알고 슬쩍 눈가를 훔치는 행위 등도 섬세하게 살아있다. 그는 "영근이 장의사고 늘 그런 일을 해도, 그렇다고 해서 너무 무뎌져 있진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제가 느끼기엔 아이의 사연이 짠했고 와닿았다"는 설명이다.    유머를 칠때도 그만의 강약 조절과 노하우가 확실히 있다. '험한 것'을 상대하기 위해 비장하게 길을 나섰지만, 얼굴에 갖은 방어막을 펼쳐놓은 신에서 영근은 더 효과적인 웃음을 주기 위해 손으로 가렸다가 민망해하며 슬쩍 손을 내린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칠 이런 디테일마저 완벽하게 행한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웃음은 상황에서 나오는 웃음이다. 대놓고 나 지금 웃기려 한다는 건 이 영화 색깔에 안 맞았다. 흐름에 맞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나오는 무언가가 필요했고, 이번 작품에서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는 그다. 적절한 쉼표를 찾는 것이 그가 해야 할 일이었다고. 특히 촬영장은 아무래도 험한 산속에서 땅을 파고, 영안실에 있는 등 늘 스산한 느낌이 묘하게 있었다. 그랬기에 일상적인 사람들, 일상적인 가벼움이 있어야 더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이런 맥락에서 던진 마지막 병실 신 애드립에 대해서도 "크게 웃기자는 게 아니고, 한번 정화를 하는 느낌이었다. 모든 걸 끝낸 우리의 일상을 보여 주며 관객에 안도감을 주고, 이젠 이런 농담까지 할 수 있을 정도의 분위기랍니다, 하고 알려주는 그런 마무리 같은 느낌이었다"고 했다. 이를 돌이켜보면 제 역할이 마치 '비데같은 존재'였다고 깨닫고는, 스스로 그 비유에 빵 터져 큰 웃음을 터뜨린다.  장례 문화가 바뀌며 이제는 옛 것으로 퇴색되는 장의사란 직업을 연기해본 것도 그에겐 의미 깊은 성과였다. "예전에 '태백산맥'이란 소설을 읽으며 느낀 것이, 옛 사투리들이 책으로 활자화 돼 남겨졌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이처럼 예전엔 선명했는데 흐려지는 것들, 없어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저희 같은 젊은 세대들은 왜 이장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지 않겠나"라며 은근슬쩍 '젊은 세대'란 익살로 다시금 큰 웃음을 준 그는 "이렇게 영화를 통해 보이고 남겨지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캐릭터들이 실제 독립운동가의 이름에서 따온 설정도 촬영 도중 알게 되며 감탄한 지점이었다. 그는 "이렇게 찾아내는 재미도 있었다. 감독이 참 여러가지로 생각을 많이 했구나 싶었다. 감독은 배우들 덕을 봤다고 하는데, 저는 오히려 감독의 천재성이 놀라웠다. 어떻게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이런 메시지를 영화적인 상상으로 녹여낼까 싶은 거다. 예전에 연극할 때 연출 선생님도 생각났다. 그분은 '연극은 연극적이어야 해. 그냥 할 거면 뭐 하러 연극해'라는 분이셨다. 그분 연출은 정말 특이했다. 무대여야만 볼 수 있는 연출이었다"며 장재현 감독의 '파묘' 역시 "영화적인 영화"라고 감탄했다.  '파묘'에서 유해진의 진가는 소리도 없이 발휘된다. 강렬하게 시선을 끌지 않아도,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곳에 녹아있다. 그럼에도 유해진은 "지금까지 다행히 좋은 작품을 만났고,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관객 분들이 뭘 하더라도 긍정적으로 봐주시는 덕분"이라고 한결같은 겸손이다. "연기를 오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는 동안 얼마나 관객들에 이 신뢰와 기대감을 보답하느냐도 중요하다. 그래서 더 책임감도 생긴다"는, 참 좋은 배우 유해진이다.    사진=쇼박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