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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 최민식, 풍수사 김상덕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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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4-03-01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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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의 냄새를 맡고 맛을 보는 행동만으로도 풍수사 그 자체가 돼있다. 한평생 토지를 분석하고 땅의 오행을 판단해 온 한 인물의 지난한 인생까지도 묻어난다. 배우 최민식은 익숙한 듯 어딘가 새롭고 낯선, 인물의 질감을 이렇듯 절묘하게 살려낸다. 

데뷔 35년 만에 첫 오컬트 장르에 도전한 최민식이 주저없이 영화 '파묘'를 택한 이유는 장재현 감독의 가치관에 감복한 탓이다. "대본을 받고 술을 마시며 같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우리 땅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싶다. 상처를 뽑아내고 약을 발라주고 싶다'고 하더라. 이런 표현은 처음 들어봤다. '땅의 트라우마'라니. 그 정서가 매우 맘에 들었고 멋있었다"는 것이다. 우리 땅을 생각하는 따뜻한 시선도 느꼈다. 

이전부터 그가 느끼길 감독의 전작들을 통해서도 보여졌듯 늘 장재현 감독은 자연과 종교 등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들을 소신 있게 그려왔다. 무신론자들도 신의 존재를 믿든 안 믿든, 인간이 나약해지고 코너에 몰릴 때 그런 존재에 매달리게 되지 않느냐고. 항간엔 불편하고 굉장히 편협된 사고에 갇혀버릴 수 있는 이야기들을 뚝심 있게 소신껏 밀고 가는 감독이란 감상이었다. "그런 영역 확장에 굉장히 열려있는 친구였고, 그 만듦새가 좋았다. 이렇게 관념적인 이야기를 어떻게 이토록 영화적으로 만드나. 이건 굉장한 실력"이라며 아낌없는 칭찬을 한 최민식은 이내 "너무 띄워주나"라고 웃었다. 

그렇게 눈여겨보고 짐작했던 감독이었기에 '파묘'를 접했을 때도 낯섦보단 친근함을 느꼈단다. "무섭다, 안 무섭다. 오컬트다, 아니다를 떠나 무속이나 풍수는 제가 어릴 때부터도 늘 있었던 것"이라며 일례로 어린 시절 기억을 꺼냈다. 열 살 때 폐결핵으로 죽을뻔한 적이 있고, 이 세상 사람의 사주가 아니라며 의사도 포기했던 그때 어머님은 끝까지 자식을 포기하지 않았다. 산으로, 절로 데리고 다니며 온 마음을 다해 기도했다. "희한하게 나았다. 그런 신비로운 경험을 몸으로 겪어봤다. 신의 존재보다 어머님의 정성 덕분이라고 느끼지만, 이렇게 살면서 논리적,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분명 있다. 이를 미신이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다 흥미롭고 재밌었다"는 그는 "우리 할머니께서 제가 군대에 갔을 때 매일 장독대에 물 떠놓고 손주 제대하는 날까지 다치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어디에 빌든, 우리 할머니의 그 마음이, 어머니의 그 마음이 종교였다"고 했다. 사리에 맞는 훌륭한 표현이다. 이처럼 최민식은 소재와 장르에 대한 편견이 없었을뿐더러, 오히려 무속인, 풍수사, 장의사 등이 어우러진 이야기를 보며 하나의 공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고. 

조선 팔도 땅을 찾고 땅을 파는 40년 경력의 풍수사 상덕. 최민식은 상덕 그 자체다. 감독 역시 "최민식 배우의 얼굴로 담는 순간 모든 게 진짜가 되는 묘한 마법이 있다"고 했을 만큼, 평생 본 적 없는 인물을 고스란히 믿게 한다. 장례문화와 풍습이 바뀌며 이제는 옛것으로 퇴색되어 가는 풍수사의 어딘가 모를 씁쓸함까지, 별다른 표현 없이도 고스란히 묻어날 정도니 감탄할 따름이다. 그는 "40년 땅 파먹고 산 사람의 세월을 제가 어떻게 따라잡겠나. 아무리 밤새워 책을 읽고 공부해도 이를 따라잡을 수 있을 리 만무하다"며 손사래다. 다만 이 하나는 표현해 봐야겠다고 느낀 것이 있다. "상덕은 평생을 자연을 보며 살았던 이다. 자연을 관찰하고 어디가 흉지이고 길지일지, 인간의 길흉화복을 터의 모양새와 형태, 질감을 보며 평생 연구했을 거였다. 그렇기에 산에 오르더라도 일반 등산객처럼 산을 바라보진 않겠구나. 깊이 바라보겠구나. 흙냄새, 그래서 맛도 보고. 산세를 보든 나무 한그루를 보든 풀 한 포기를 바라보든 깊게 바라보는 태도, 그 느낌이다. 이것이 이 캐릭터의 가장 큰 줄기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고. 풍수사가 느끼는 자연과의 영적인 교감을 담아내려고 집중했다니, 이같은 배우의 사고와 표현력에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하지만 최민식은 "그럴듯하게 사기를 치는 것"이라며 사람 좋은 웃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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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삶, 허구의 인간을 현실에 있을법하게 그리는 것이 제 일이다. 골백번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결국 카메라 앞에 섰을 때 그 인물이 돼야 한다. 이걸 못하면 돈값을 못하는 거다. 가장 외로운 순간이기도 하다. 그 누구도 개입할 수 없고, 무슨 일이 있어도 혼자 감당해야 할 일이다. 마치 절벽에 떠밀려서 서 있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상상하고 생각하며 무형의 인물에 자꾸 다가가야 하고, 밀착이 돼야 한다"며 연기관을 밝힌 그는 "그게 힘들면 연기 접고 장사해야지"라며 눙을 친다. 이어 "상덕의 이런 깊이를 담아내지 못한다면 그냥 배 나온 아저씨에 불과했을 것"이라는 너스레로 친근함을 더한다. 

악지의 묘를 건드리면 사단이 날 것을 알면서도, 결국 이 땅을 파헤치고 '험한 것'의 뿌리를 뽑아내기 위한 상덕의 사투는 장렬한 감동을 더한다. 그는 이를 두고 "내가 속물이었고, 40년 동안 땅파먹으며 부자들, 정치인들의 돈을 받아먹고살았지만, 결국 풍수사의 본능으로 절대 들어설 터가 아닌 곳에 들어선 것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을 거다. 그리고 오랜 세월 이 직업에 몸담고 있던 사람으로서의 양심과 도리, 땅에 대한 예의도 있었다. 내 손주가 밟고 살아갈 이 땅에 이런 흉한 것을 꽂아놓고 방치한다는 건 도저히 양심상 못할 짓이라고 여겼다. 그래, 뽑아보자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민식은 '파묘'가 이처럼 단순히 공포를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감독의 따뜻한 시선이 녹아있는 지점이 좋았다. 현재 사회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오랜 상처에 대한 고찰을 영화적으로 뽑아낸 것이 그 역시도 후련했다. 마냥 어둡고 무겁지만은 않은, 그가 칭하길 '묘벤져스'라는 이들의 활약과 위트도 흡족했다. 특히 최민식은 마지막 내레이션에서 진지하게 사람을 웃기는 상덕의 모습을 두고 "대본으로 봤을 때도 좋았던 지점이다. 상가집에서도 웃음이 있다. 아주 슬픈 감정 속에서도 유머가 있고, 행복함 속에서도 슬픔이 있다. 그게 인생이다. 그 신을 두고 관객도 많이 웃어줬는데 '내가 살렸구나' 흐뭇했다"고 했다. 게다가 유해진과의 검문소 신은 작정하고 "해진아, 이번엔 우리 차례다 가자. 웃겨보자" 했을 정도다. 그는 "이렇게 쉬어가는 지점들이 있고, 전작에 비해 감독이 더 말랑말랑하고 사고가 유연해진 것이 좋더라"고 끝까지 감독에 대한 칭찬과 애정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배우로서 여전히 욕심이 많고, 표현해보고 싶은 것이 많다고 했다. "제가 여태껏 한 건 빙산의 일각도 안 된다. 일단 멜로도 못했다"며 웃긴 그는 "인간과 감정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 수십, 수백만 갈래의 감정을 어떻게 다 표현할까. 정형화된 감정, 정의를 벗어난 형태가 궁금해서 계속 멜로를 해보고 싶다고 얘기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어 "제 삶은 하자 투성이다. 저도 실수하고 후회하고 산다. 하지만 늘 작업을 통해 많이 배운다. 어릴때부터 이 일을 하며 좋은 영향을 주고 귀감이 되신 선배님들이 많았다. 그래서 감사하다"고. "서로 교감하며 원하는 목표를 향해 가는 모습을 통해, 제가 많이 배우고 공부한다"는 그에게도 연기는 늘 어려운 것이지만,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란 운치 있는 표현이다. 그는 지난 연기 인생을 돌아보고 싶지 않다.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싶고, 늘 청춘이고 싶다는 바람이다.   
 
사진=쇼박스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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