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 유해진, 백설기의 맛! [인터뷰] >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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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 유해진, 백설기의 맛!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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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4-03-01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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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유해진은 언제나 자연스럽다. 그의 연기도, 유머도, 사람 됨됨이도 억지로 꾸미거나 애쓰지 않고도 어색함 없이 저절로 받아들이게 된다. 유해진이란 이름만으로도 늘 자연스러운 호감과 매력을 이끌어내는 이유다. 


어느 누가 어떤 장르를 하고 싶느냐고 물을 때마다 했던 얘기가 "장르를 구별하지 않는다"였던 유해진은 그만큼 좋은 이야기 속에서 연기하고 싶었다. 오컬트 장르는 사실 스스로 무서워서, 궁금은 해도 직접 하게 될 거란 생각은 안 해봤단 그가 이 장르에선 독보적인 장재현 감독의 신작 '파묘'에 응한 것은 결국 이야기의 힘이 컸다. 거액의 제안을 받은 무속인, 풍수사, 장의사가 악지에 묻힌 묘를 파헤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파묘'는 그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요즘은 익숙한 것만 하지, 이렇게 신선한 소재의 시나리오가 많지 않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이 땅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이 장르와 접목시켜서 풀어내는지, 또 어떻게 구현해낼지 직접 체험하고 경험하고 싶은 욕심"이 들더란다. 이전까지 장재현 감독의 전작을 보며 든 생각은 '낯섦'이었으나, '파묘'를 통해 "낯선데 희한한, 그리고 재밌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구나" 싶었다고. 


극 중 유해진은 그만의 유쾌함과 세심한 관찰력이 투영된 장의사 영근 역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연기한다. 풍수사, 무당 등 범상치 않고 기쎈 캐릭터들 사이에서도 그만의 디테일과 캐릭터성이 절로 살아난다. 이를테면 불길한 기운을 감싸고 결국 시작된 첫 파묘에서 대살굿이 요란하게 펼쳐져 시선을 홀리는 와중에도 영근의 걱정 어린 긴장감이 찰나에 드러나는 거다. 마침내 이를 끝내고 풍수사 상덕(최민식)에 '긴장 풀라'고 가볍게 다독이는 말투에서는 영근의 다정한 인간미와 두 사람의 깊고 오랜 관계성을 포착하게 한다. 참 묘하다, 별거 아닌 표정과 제스처에도 유해진은 그 인물의 깊이와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다른 인물들이 화려하고 분명한 색을 지닌 무지개떡, 시루떡 같았다면 본인은 백설기 같았다고 맛깔나게 비유한 그는 "백설기가 맛은 없는데 담백한 맛이 있지 않느냐"며 웃었다. 이어 "사실 영근은 색깔이 분명하지 않은 역할이다. 민식 형이나 고은 씨 캐릭터는 색이 확실한데 저는 그렇게 선명하지 않다. 객관적으로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는 인물, 두 사람이 맥을 끌고 가면 슬쩍 밀어주고, 객석이 궁금해할 것들을 대신 물어봐주는 진행자 같은 역할로 여겨서 큰 차질 없이 흘러가도록 하는 인물"이었다는 설명이다. "색이 분명한 역할도 좋아하지만, 어떨 땐 이런 역이 더 정이 가고 좋을 때가 많다"고. 


뚜렷하고 강렬한 이들 사이에서도 영근은 저만의 존재감을 지킨다. 바로 유해진이기에 가능했단 확신이 든다. 그는 가벼운 신에도 그만의 의미를 부여하지만, 이를 티나게 하지 않는다. 초반 영근이 상덕과 등장해 어느 부잣집 집안의 묘를 이장할 때 관에 담긴 고가의 물건들을 보고 취하는 너스레와, 이어 할머니를 잊고 싶지 않았기에 손주가 벌인 행위를 알고 슬쩍 눈가를 훔치는 행위 등도 섬세하게 살아있다. 그는 "영근이 장의사고 늘 그런 일을 해도, 그렇다고 해서 너무 무뎌져 있진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제가 느끼기엔 아이의 사연이 짠했고 와닿았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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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를 칠때도 그만의 강약 조절과 노하우가 확실히 있다. '험한 것'을 상대하기 위해 비장하게 길을 나섰지만, 얼굴에 갖은 방어막을 펼쳐놓은 신에서 영근은 더 효과적인 웃음을 주기 위해 손으로 가렸다가 민망해하며 슬쩍 손을 내린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칠 이런 디테일마저 완벽하게 행한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웃음은 상황에서 나오는 웃음이다. 대놓고 나 지금 웃기려 한다는 건 이 영화 색깔에 안 맞았다. 흐름에 맞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나오는 무언가가 필요했고, 이번 작품에서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는 그다. 적절한 쉼표를 찾는 것이 그가 해야 할 일이었다고. 특히 촬영장은 아무래도 험한 산속에서 땅을 파고, 영안실에 있는 등 늘 스산한 느낌이 묘하게 있었다. 그랬기에 일상적인 사람들, 일상적인 가벼움이 있어야 더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이런 맥락에서 던진 마지막 병실 신 애드립에 대해서도 "크게 웃기자는 게 아니고, 한번 정화를 하는 느낌이었다. 모든 걸 끝낸 우리의 일상을 보여 주며 관객에 안도감을 주고, 이젠 이런 농담까지 할 수 있을 정도의 분위기랍니다, 하고 알려주는 그런 마무리 같은 느낌이었다"고 했다. 이를 돌이켜보면 제 역할이 마치 '비데같은 존재'였다고 깨닫고는, 스스로 그 비유에 빵 터져 큰 웃음을 터뜨린다. 


장례 문화가 바뀌며 이제는 옛 것으로 퇴색되는 장의사란 직업을 연기해본 것도 그에겐 의미 깊은 성과였다. "예전에 '태백산맥'이란 소설을 읽으며 느낀 것이, 옛 사투리들이 책으로 활자화 돼 남겨졌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이처럼 예전엔 선명했는데 흐려지는 것들, 없어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저희 같은 젊은 세대들은 왜 이장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지 않겠나"라며 은근슬쩍 '젊은 세대'란 익살로 다시금 큰 웃음을 준 그는 "이렇게 영화를 통해 보이고 남겨지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캐릭터들이 실제 독립운동가의 이름에서 따온 설정도 촬영 도중 알게 되며 감탄한 지점이었다. 그는 "이렇게 찾아내는 재미도 있었다. 감독이 참 여러가지로 생각을 많이 했구나 싶었다. 감독은 배우들 덕을 봤다고 하는데, 저는 오히려 감독의 천재성이 놀라웠다. 어떻게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이런 메시지를 영화적인 상상으로 녹여낼까 싶은 거다. 예전에 연극할 때 연출 선생님도 생각났다. 그분은 '연극은 연극적이어야 해. 그냥 할 거면 뭐 하러 연극해'라는 분이셨다. 그분 연출은 정말 특이했다. 무대여야만 볼 수 있는 연출이었다"며 장재현 감독의 '파묘' 역시 "영화적인 영화"라고 감탄했다. 


'파묘'에서 유해진의 진가는 소리도 없이 발휘된다. 강렬하게 시선을 끌지 않아도,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곳에 녹아있다. 그럼에도 유해진은 "지금까지 다행히 좋은 작품을 만났고,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관객 분들이 뭘 하더라도 긍정적으로 봐주시는 덕분"이라고 한결같은 겸손이다. "연기를 오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는 동안 얼마나 관객들에 이 신뢰와 기대감을 보답하느냐도 중요하다. 그래서 더 책임감도 생긴다"는, 참 좋은 배우 유해진이다. 

 

사진=쇼박스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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