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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 장재현 감독의 인생 모티브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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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4-03-01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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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무속 신앙, 민족적 풍습을 녹인 오컬트 미스터리에, 가엾은 이 땅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자 하는 명확하면서도 사려 깊은 가치관까지. 미시적, 거시적 관점을 모두 통틀어 아우른 세 번째 영화 '파묘'로 독보적인 진가를 발휘하는 장재현 감독이다. 


국내에서 불모지나 다름없던 오컬트 장르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장재현 감독의 세 번째 오컬트 미스터리 영화 '파묘'는 거액의 제안을 받은 무속인, 풍수사, 장의사가 악지에서 묘를 파헤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작품이다. 어릴 적 100년이 넘은 무덤의 이장을 지켜보던 감독의 기억에서 시작된 영화다. 당시 오래된 나무관에서 느꼈던 두려움, 궁금함, 호기심 등의 복합적인 감정을 간직했던 감독은 기어코 '파묘'라는 작품을 완성해 냈다. 앞서 "패스트푸드점 창가 너머, 어두운 곳에서 신부님 한 분이 초조하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며 순간 이상한 감정이 들었고, 그 신부님의 모습에서 시작된 이야기"라는 '검은 사제들'의 처음과도 같다. 어김없이 늘 평범한 일상 속에서 기발하고 창의적인 이야기를 이끌어낸 감독이다. 


감독은 이를 두고 "한예종 때 이창동 감독님의 수업 시간에 배웠던 것"이라며 "항상 말씀하신 것이 '이야기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나는 것'이라고 하셨다. 집에서 가만히 있으면 만날 수가 없다. 늘 어딜 다닐때 레이더를 많이 키고 다닌다"고 웃었다. 


소재에 접근할 때 표피보다 그 안의 코어에 무엇이 있을까를 생각한단 감독. 이번에도 '파묘'를 준비하며 이장 현장을 수십차례 쫓아다녔다. 장의사 지도 공부까지 했을 정도다. 그러다 어느 날 근처 수로 공사가 잘못돼 실제 물이 찬 관을 파묘한 현장을 마주했다. 그때 장의사는 그 자리에서 급히 토치로 화장을 했다. 이를 보며 떠올렸다. "파묘란 것이 과거를 들추고 잘못된 걸 꺼내서 없애는 것이란 정서로 다가왔다. 그래서 우리나라 땅을 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돌이켜보면 엄청난 상처와 트라우마가 있지 않나. 이걸 들어내 '파묘'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매우 장르적이고 영화적인 아이템들을 활용해 본질적인 메시지에 도달하게끔 설계한 '파묘'는 감독의 전작을 통틀어 가장 강렬하고 효과적이다. 이에 쑥스러워하는 감독은 "제가 멜로 감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현장에 가서도 잘생긴 장의사와 같이 이장하다 썸 타는 게 눈에 들어오겠지만, 워낙 그로테스크한 걸 좋아해서 그렇다"며 재치 있는 입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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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자신이 "공포물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며 "밝은 사람이 어두운 곳에 들어가는 걸 좋아하고, 그로테스크하고 신비한 걸 좋아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계속 오컬트 장르를 고집하는 이유도 확실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성인이 돼 사회에 나오면서부터 사랑, 의리, 정, 믿음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교회밖에 없더라. 사회에선 절대 그런 걸 얘기하지 않고, 톱니바퀴 돌아가듯 살아간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이런 감정등을 얘기하는 것이 점점 사라지는 것에 대한 일종의 반발심이 작용했다고. "신이 교회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도 새벽기도를 가시던 어머니의 마음에 있다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대한 관심이 많을 뿐"이라는 감독이다. 이어 "희한하게 전작들을 공포 영화라고 하시는데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무섭다고 느끼지 않았다"고 영문 모른 표정이다. 이에 대해 "'검은 사제들'은 인간의 희생이 결국 모든 걸 이길 수 있다는 희망적인 이야기였고, '사바하'는 그냥 슬픈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신은 존재하는 것 같긴 한데 왜 사람들은 고통받고 죽어나갈까. 그렇다면 신은 어디 있을까를 떠올리며 만든 영화"라는 부연 설명이다. 


'파묘'는 개운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예고편이 무섭게 나와서 문제"라며 익살인 감독은 "우리가 지닌 무의식적인 정서, 트라우마와 아픔을 신구 세대가 조화를 이뤄 시원하게 뽑아내는 이야기"라고 정의했다. 풍수사 장의사 콤비와 젊은 무당이 조화를 이룬 것도 알고보면 뜻깊다. "실제 서로 다른 세대들이 의존해서 아이를 구하고, 그다음 세대를 구하고, 그들이 살아갈 터전을 청소하는 의미"다. 


영화는 총 여섯가지 챕터로 나뉘어 있으며, 점층적인 메시지로 도달하기까지 매단계별로 효과적인 몰입과 긴장을 이끌고 유지할 수 있게 했다. 이 또한 탁월한 선택이다. 감독은 이를 두고 "막을 나눌까 없앨까 고민이 많았다. 편집할 때 미리 키워드를 통해 복선을 던져주는 것이 더 친절할 거란 판단이었다"고 설명했다. 크게는 두 갈래로 나뉘는 구조에 대해서도 작가적 욕심이 발휘된 것이라고 했다. "극 중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는 대사도 있듯, 이야기의 허리를 끊어버리고 싶었다. 이야기 구성과 구조도 똑같이 해서 연막탄을 만들고 싶었다. 후반부에 대해 호불호도 나뉘었지만, 저는 그것(쇠말뚝)을 육체화시키고 이들과 처절하게 싸우는 주인공들에 초점을 맞췄다. 의도를 분명히 하고 가야 옳은 영화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음양오행의 기운을 담아내기 위해선 심혈을 기울였다. "빛과 어둠, 나무와 불과 흙 등이 나중에 중요한 키로 나오니까 어떻게든 미장센해 넣으려고 발악했다"는 감독은 "음양오행설은 서로 보완하는 관계도 있고 상극인 관계도 있다. 제 생각에 우리나라는 마치 나무 같다. 많이 고통받아도 부러지지 않고 유연하다"고 떠올렸다. 나무로 쇠말뚝을 처치하는 인상 깊은 신이 탄생하게 된 비화다. 이에 감독은 "저는 모든 걸 고증에 따른다. '험한 것'의 움직임과 걸음걸이도 그 시대의 고증에 맞췄다. 무속인이 칼로 뭘 베고 이런 걸 본 적이 없다. 평범한 동네 아저씨, 무당이 어떻게 칼을 휘두르고 귀신을 잡겠나. 보시는 분들은 비슷하게 보실지 몰라도 저는 이런 것들을 지키고 싶었다"고 했다. 


이는 한결같이 지켜온 감독의 뚝심이다. 결국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담은 오컬트 영화로 다시금 뛰어난 역량을 발휘한 감독이다. "'그로테스크'는 인생의 모티브"라 말하는 감독의 독보적인 세계관과, 이로 인해 펼쳐질 확장성이 기대될 따름이다.  

 

사진=쇼박스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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