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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맨' 조진웅의 이름값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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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4-02-08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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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조진웅. '이름값'의 무게를 여실히 아는 그가 선택한 '이름값'의 가치에 대한 영화 '데드맨'. 운명적인 만남이 아니었을까.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공동 집필한 하준원 감독의 입봉작 '데드맨'은 '바지 사장'이란 명의 거래 범죄를 소재로 이름값의 가치를 묻는 영화다. 조진웅이 맡은 이만재는 IMF 이후 파산해서 장기라도 떼어 팔아야 하나 고민하다 그보다 쉬운 이름 석자를 팔아 바지사장 세계에 발을 들인 인물이다. 탁월한 계산 능력으로 7년째 이 업계에 살아남아 '불사조'로 불리지만, 아내에게 '범죄자'라고 책망받고 곧 태어날 딸에게도 부끄러운 아빠가 되고 싶지 않아 마지막으로 업계에서 손을 떼려던 찰나 1천억 원 거액을 횡령했다는 누명을 쓰고 순식간에 이름도, 인생도 빼앗긴 채 죽은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는 인물이다. 


아버지 존함을 배우 예명으로 쓰며, 아버지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는 배우가 되고자 한다는 조진웅의 배우적, 인간적 신념은 익히 알려진 것이다. 그런 그가 이런 소재의 영화를 택했다니 흥미로운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조진웅은 이름값에 대한 영화적 주제와 메시지를 느끼기 앞서 "이런 이야기가 실제로 존재하나"란 호기심을 먼저 느꼈다. 명의 거래로 실제 끔찍한 범죄가 저질러진다는 것이 섬찟했다고. "일단 시나리오가 굉장히 재밌었고 이야기 구조들이 어려웠는데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 남자의 감정선만 잘 따라가면 충분히 목적지까지 갈 수 있겠구나 싶었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같은 호기심과 끌림 때문에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감독과의 만남을 요청했다. 당시엔 감독이 유명한 영화계 집안사람이고, '괴물'의 공동 집필자인 줄도 몰랐다. 그저 범상치 않은 신인 감독이란 생각이었다. "치밀함도 있었지만 집요함도 있었다. 연출로서 꼭 지녀야 할 덕목이라 생각한다. 말이 신인 감독이었지, 그동안의 내공이나 작품을 해온 공력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집필 과정 속에 그게 녹여져 있다는 게 느껴지는 감독"이었다는 평가다. 


감독과 만나 대본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여러가지 것들을 서로 납득하고 상충하는 부분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조진웅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건 만재에 대한 감상이었다. "대본 보자마자 '이거 나쁜 놈이네'했다. 올바른 삶을 살지 않고, 떳떳하게 노동의 대가를 받는 것이 아니다. 누가 이런 사람을 응원하겠나. 만재로서 읽기에 어순에 안 맞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래서 범죄라는 부분을 명확히 하기 위해 극 중 아내가 치를 떠는 것처럼 '이건 범죄다'라고 무조건 지적을 해줘야 했다. 만재의 행동이 정상적인 게 아니다. 결국 관객이 이 캐릭터를 응원하며 볼 수 없으니, 이 친구가 가져가야 할 정체성과 본질적인 과정에서의 성장을 보여 주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다." 제가 연기한 캐릭터에 대한 연민과 공감보다 객관적인 옳고 그름을 먼저 따져 묻는 그 올곧음이 역시 조진웅답다. 


이에 그는 "본업에 충실한거다. 그게 이름값 하는 거 아닌가. 배우란 직업을 하게 됐으니 제 이름을 갖고 선한 영향력을 펼칠 수 있는 거다. 이름값이란 본인이 살아가는 삶의 값이다. 이 이야기가 우리를 거치고 나면 이제 관객에게 가게 된다. 관객들에게 잘못된 이야기를 하면 이에 대한 영향을 받을 수도 있으니 상당히 많이 고민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바지사장으로 이용 당하다가 철저히 버려지고, 살아 돌아올 수 없는 중국 사설 감옥에 갇혀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박탈당한 죽은 사람이 된 이만재. 가정도 처참하게 파괴됐고 삶은 붕괴됐다. 한낱 이름값의 대가가 이리도 지독하고 무서울 줄은 몰랐을 테다. 조진웅은 이를 두고 "명의 거래 범죄를 저지를 때 자기 치욕인 걸 알면서도 그렇게 사는 사람이다. 감옥에 갔다고 나락이 아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르는 것 자체가 나락이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 정말 비참하고 더 지옥 같은 삶이 아니었을까"라며 "아무 생각 없이 살면 편하다. 하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이 아니"라고 확고한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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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가. 이를 묻는 영화의 철학적 질문이 그를 깊은 상념에 빠지게 했다. "사실 '너 누구야, 너 잘 살고 있어?' 이런 질문은 평소엔 잘 안한다. 술에 만취했을 때나 하는 거지"라며 웃긴 그는 "한 번쯤은 이런 고민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작품이었다'고 했다. 


다만 조진웅은 "이 주제를 위해 선택한 소재가 어려웠다. 맞닥뜨리고 인식하기까지가 쉽지 않다. 이런 질문을 할 때 충분히 많은 소재가 있었을텐데 이런 어려운 이야기를 해서 되겠나"라고 핀잔(?)도 해본다. 하지만 주제와 메시지에 대한 가치가 명확하기에 진심을 다해 연기와 작품에 임했다. "우리가 의도했던 대로 시퀀스가 흘러가나 매 순간 자문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좋은 시너지로 정확한 의도를 전달할까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죽을 고비를 넘기고 갖은 고생 끝에 되찾은 이름. 조진웅은 극 중 만재가 이름을 다시 찾게 된 마지막 법정 신에 대한 여운이 꽤 셌다고 했다.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마냥 기뻐할 수도 없었고, 복잡 미묘했다. 단편적인 연기 표현으로 지금까지의 만재 인생을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정말 다채로운 감정을 표정과 호흡으로 나타내려 했다"는 그는 "영화는 여기까지 달려오기 위한 만재의 과정이었다. 만재가 대단한 걸 성취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악의 무리를 소탕한 것도 아니다. 자신의 순위에도 없었던,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름을 다시 되찾는 순간의 감정이 참 의미심장하더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런 복잡미묘한 감정 속에서 또다른 한줄기 희망을 봤다는 그다. "다시 찾은 아이디로 인해서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고 생각할 것 같다. 정정당당하게 내 이름을 꺼낼 수 있고, 삶의 정체성을 찾았다는 것이 희망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만재를 연기하며 자신과 이입되는 지점이 있는지를 돌아보게 되는 작품이었단 소회다. "저도 아버지 존함을 쓰고 있긴 한데 그 이유는 제가 그리 능동적인 사람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저를 가둬두기 위함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쓴 건데 이 영화를 찍으며 좀 더 가치 있게 생각하게 됐다"는 그는 "이름은 내가 존재한다는 완벽한 증거인데, 살면서 일순위는 이름이 아니지 않나. 이름은 세상에 존재하는 나의 아이디임에도 인생의 가치 순위에도 없고, 가치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며 산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고 상념에 젖어본다. 살면서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 그 삶의 가치를 누구보다 깊이 알고 이름값에 걸맞은 삶을 사는 배우 조진웅이다. 


사진=콘텐츠 웨이브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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