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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드맨' 조진웅의 이름값 [인터뷰]

    배우 조진웅. '이름값'의 무게를 여실히 아는 그가 선택한 '이름값'의 가치에 대한 영화 '데드맨'. 운명적인 만남이 아니었을까.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공동 집필한 하준원 감독의 입봉작 '데드맨'은 '바지 사장'이란 명의 거래 범죄를 소재로 이름값의 가치를 묻는 영화다. 조진웅이 맡은 이만재는 IMF 이후 파산해서 장기라도 떼어 팔아야 하나 고민하다 그보다 쉬운 이름 석자를 팔아 바지사장 세계에 발을 들인 인물이다. 탁월한 계산 능력으로 7년째 이 업계에 살아남아 '불사조'로 불리지만, 아내에게 '범죄자'라고 책망받고 곧 태어날 딸에게도 부끄러운 아빠가 되고 싶지 않아 마지막으로 업계에서 손을 떼려던 찰나 1천억 원 거액을 횡령했다는 누명을 쓰고 순식간에 이름도, 인생도 빼앗긴 채 죽은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는 인물이다.  아버지 존함을 배우 예명으로 쓰며, 아버지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는 배우가 되고자 한다는 조진웅의 배우적, 인간적 신념은 익히 알려진 것이다. 그런 그가 이런 소재의 영화를 택했다니 흥미로운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조진웅은 이름값에 대한 영화적 주제와 메시지를 느끼기 앞서 "이런 이야기가 실제로 존재하나"란 호기심을 먼저 느꼈다. 명의 거래로 실제 끔찍한 범죄가 저질러진다는 것이 섬찟했다고. "일단 시나리오가 굉장히 재밌었고 이야기 구조들이 어려웠는데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 남자의 감정선만 잘 따라가면 충분히 목적지까지 갈 수 있겠구나 싶었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같은 호기심과 끌림 때문에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감독과의 만남을 요청했다. 당시엔 감독이 유명한 영화계 집안사람이고, '괴물'의 공동 집필자인 줄도 몰랐다. 그저 범상치 않은 신인 감독이란 생각이었다. "치밀함도 있었지만 집요함도 있었다. 연출로서 꼭 지녀야 할 덕목이라 생각한다. 말이 신인 감독이었지, 그동안의 내공이나 작품을 해온 공력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집필 과정 속에 그게 녹여져 있다는 게 느껴지는 감독"이었다는 평가다.  감독과 만나 대본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여러가지 것들을 서로 납득하고 상충하는 부분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조진웅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건 만재에 대한 감상이었다. "대본 보자마자 '이거 나쁜 놈이네'했다. 올바른 삶을 살지 않고, 떳떳하게 노동의 대가를 받는 것이 아니다. 누가 이런 사람을 응원하겠나. 만재로서 읽기에 어순에 안 맞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래서 범죄라는 부분을 명확히 하기 위해 극 중 아내가 치를 떠는 것처럼 '이건 범죄다'라고 무조건 지적을 해줘야 했다. 만재의 행동이 정상적인 게 아니다. 결국 관객이 이 캐릭터를 응원하며 볼 수 없으니, 이 친구가 가져가야 할 정체성과 본질적인 과정에서의 성장을 보여 주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다." 제가 연기한 캐릭터에 대한 연민과 공감보다 객관적인 옳고 그름을 먼저 따져 묻는 그 올곧음이 역시 조진웅답다.  이에 그는 "본업에 충실한거다. 그게 이름값 하는 거 아닌가. 배우란 직업을 하게 됐으니 제 이름을 갖고 선한 영향력을 펼칠 수 있는 거다. 이름값이란 본인이 살아가는 삶의 값이다. 이 이야기가 우리를 거치고 나면 이제 관객에게 가게 된다. 관객들에게 잘못된 이야기를 하면 이에 대한 영향을 받을 수도 있으니 상당히 많이 고민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바지사장으로 이용 당하다가 철저히 버려지고, 살아 돌아올 수 없는 중국 사설 감옥에 갇혀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박탈당한 죽은 사람이 된 이만재. 가정도 처참하게 파괴됐고 삶은 붕괴됐다. 한낱 이름값의 대가가 이리도 지독하고 무서울 줄은 몰랐을 테다. 조진웅은 이를 두고 "명의 거래 범죄를 저지를 때 자기 치욕인 걸 알면서도 그렇게 사는 사람이다. 감옥에 갔다고 나락이 아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르는 것 자체가 나락이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 정말 비참하고 더 지옥 같은 삶이 아니었을까"라며 "아무 생각 없이 살면 편하다. 하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이 아니"라고 확고한 견해를 밝혔다.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가. 이를 묻는 영화의 철학적 질문이 그를 깊은 상념에 빠지게 했다. "사실 '너 누구야, 너 잘 살고 있어?' 이런 질문은 평소엔 잘 안한다. 술에 만취했을 때나 하는 거지"라며 웃긴 그는 "한 번쯤은 이런 고민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작품이었다'고 했다.  다만 조진웅은 "이 주제를 위해 선택한 소재가 어려웠다. 맞닥뜨리고 인식하기까지가 쉽지 않다. 이런 질문을 할 때 충분히 많은 소재가 있었을텐데 이런 어려운 이야기를 해서 되겠나"라고 핀잔(?)도 해본다. 하지만 주제와 메시지에 대한 가치가 명확하기에 진심을 다해 연기와 작품에 임했다. "우리가 의도했던 대로 시퀀스가 흘러가나 매 순간 자문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좋은 시너지로 정확한 의도를 전달할까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죽을 고비를 넘기고 갖은 고생 끝에 되찾은 이름. 조진웅은 극 중 만재가 이름을 다시 찾게 된 마지막 법정 신에 대한 여운이 꽤 셌다고 했다.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마냥 기뻐할 수도 없었고, 복잡 미묘했다. 단편적인 연기 표현으로 지금까지의 만재 인생을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정말 다채로운 감정을 표정과 호흡으로 나타내려 했다"는 그는 "영화는 여기까지 달려오기 위한 만재의 과정이었다. 만재가 대단한 걸 성취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악의 무리를 소탕한 것도 아니다. 자신의 순위에도 없었던,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름을 다시 되찾는 순간의 감정이 참 의미심장하더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런 복잡미묘한 감정 속에서 또다른 한줄기 희망을 봤다는 그다. "다시 찾은 아이디로 인해서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고 생각할 것 같다. 정정당당하게 내 이름을 꺼낼 수 있고, 삶의 정체성을 찾았다는 것이 희망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만재를 연기하며 자신과 이입되는 지점이 있는지를 돌아보게 되는 작품이었단 소회다. "저도 아버지 존함을 쓰고 있긴 한데 그 이유는 제가 그리 능동적인 사람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저를 가둬두기 위함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쓴 건데 이 영화를 찍으며 좀 더 가치 있게 생각하게 됐다"는 그는 "이름은 내가 존재한다는 완벽한 증거인데, 살면서 일순위는 이름이 아니지 않나. 이름은 세상에 존재하는 나의 아이디임에도 인생의 가치 순위에도 없고, 가치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며 산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고 상념에 젖어본다. 살면서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 그 삶의 가치를 누구보다 깊이 알고 이름값에 걸맞은 삶을 사는 배우 조진웅이다.  사진=콘텐츠 웨이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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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드맨' 김희애, 김희애를 지우는 법 [인터뷰]

    배우 김희애는 일상과 연기의 분리가 명확하다.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지만, 연기할 땐 자신을 완벽히 지운 강렬한 변신을 갈망한다고. 관성에 젖지 않은 40년 차 배우의 확고한 지론이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 각본을 공동 집필한 이야기꾼 하준원 감독의 첫 입봉작 '데드맨'은 지금껏 본 적 없는 바지사장 세계의 실체를 파헤친 영화다. 하루 아침에 1천억 횡령 누명을 쓰고 죽은 사람이 된 이만재(조진웅)는 중국 사설 감옥에 갇혀 끔찍한 지옥을 맛본다. 이때 그를 구원해 줄 정체 모를 여인이 등장한다. 타고난 지략으로 정치판을 쥐락펴락하는 정치 컨설턴트 심여사. 뛰어난 언변과 독보적인 카리스마를 갖춘 이 여인은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던 이만재를 찾아내 잃어버린 이름과 인생을 되찾게 해 줄 구원의 동아줄을 내린다.  대범하고 범상치 않은 이 여인을 연기한 김희애는 "기존에 보지 못했던 소재에 대한 신선함"을 '데드맨'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았다. "심여사 역할이 굉장히 파워풀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옛날이라면 주로 남배우들이 할 법한 역할인데, 여자가 이렇게 정치판을 쥐락펴락하는 건 정말 매력있고 반가운 일이었다. 배우로서는 이런 변신을 할 기회가 많이 없어 더 좋았다"고. 실제 감독은 인연이 없는 김희애를 캐스팅하기 위해 심여사 역을 김희애 맞춤형으로 바꿔 썼다. 이를 두고 "제가 뭐라고 그렇게 힘들게 바꾸셨을까. 저는 그냥 중년 배우일 뿐인데"라며 겸손인 김희애는 감독에 대해 "감독이 연출만 하는 게 아니라 글도 잘 써서 놀라웠다. 또 흥행이 될까 말까를 재단하지 않고 선한 마음으로 모범생처럼 우직하게 자료조사를 5년 동안 했고, 착한 마음으로 쓴 작품이란 게 느껴졌다"고 전했다.  심여사는 정치판을 꿰뚫어보고 전략과 지략을 내세우는 점에서 앞서 김희애가 연기한 드라마 '퀸 메이커' 속 배역과도 비슷한 양상을 띤다. 다만 전작이 거대 권력에 맞서 좌절과 희열을 반복하는 힘겨운 승부사 느낌이었다면, 심여사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고 스스로 막강한 권력을 갖춘 인물이란 점에서 더 강렬한 기운을 발산한다. 이에 대해 김희애 역시 "결이 다르다"고 확실히 했다. 그는 "'퀸 메이커' 주인공은 대기업 해결사로 뒤치다꺼리를 하다가 나락으로 떨어져 복수의 의미로 문소리를 만나 운명적으로 컨설턴트가 됐다면, 심여사는 대번에 파워풀한 기운을 풍기며 정치판을 쥐락펴락하는 레벨이 다르다. 외모적으로도 노련하고 부력이 오래된 정치판의 고수 느낌"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심여사의 첫 등장 신부터, 관객이 김희애의 기존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길 바랐다. 매번 연기하며 바라고 염두하는 지점이다. "배우라면 누구나 캐릭터와 거리감이 완전히 없어지길 바란다. 시나리오를 볼 때부터 심여사의 화끈한 도입부도 마음에 들었지만, 어떻게 해야 기존의 이미지와 다르게 시작할까, 어떻게 강하게 보여질까가 숙제였다"고. 그렇기에 외적인 변화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컬러 렌즈를 착용하고 화려하고 압도적인 의상도 소화했다. 지옥 같은 중국 사설 감옥에 첫 등장할 때 심여사의 강렬한 화이트 의상 역시 "지옥에서 이만재를 구해준 천사 같은 느낌이 들게끔, 케이퍼를 걸치고 화이트 색을 매치했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사소한 디테일마저 세심하게 살피는 그였지만, 의외로 대본을 받았을 때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충실하게 대본대로 연기하는 방식을 고수한다. 김희애는 "제가 애드립을 못한다"고 너스레였지만 "배우의 취향이나 장기라고도 볼 수 있지만, 제 색깔과 의견을 넣다 보면 자꾸 제가 선호하는 제 모습이 보이게 될 것 같아서 이를 지양하는 편이다. 가급적 제가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대본에 충실한 걸 선호하고, 텍스트를 통해 필터링해서 또 다른 나를 연기하고 싶다"는 확고한 연기 지론이다.  심여사는 이만재를 자신이 짠 청치판의 말로 사용하면서도 절박한 그에게 가장 유일하고 막강한 조력자이기도 하다. 마지막까지 의중을 알 수 없어 더 미스테리하고 긴장감을 자아낸 캐릭터다. 그는 "저도 대본을 읽을 때 빌런일까 아닐까를 계속 의심하며 봤다. 이만재를 이용하려 했는지, 도와주려 했는지 처음부터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닌 것 같다. 사람도 늘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하지 않나. 그래서 연기할 때 심여사가 좋은 사람인지 어떨지 규정지어서 하기보단 한신 한 신 집중해서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극 중 심여사가 뱉는 품위 있는 정치론 역시 묵직하다. 김희애는 "알맹이 있는 대사를 할 수 있어 좋았다"며 "감독님께서 어떤 뜬구름 잡는, 이미지나 패션적으로만 겉핥기를 하는 게 아니라 이처럼 철저하게 조사해서 갖고 계신 생각들이 많았다"고 했다.    영화의 주제와 메시지 역시 깊이 공감했다. 그는 "이름은 그 사람이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이만재라는 인물은 먹고 살기 위해 팔다 팔다 이름까지 팔았다. 아무것도 아닌 줄 알고 팔았다가 관까지 들어가 지옥을 겪게 된다. 이름이나 명예나 중요한 줄은 알았지만, 공기처럼 의식을 못하고 있다가 이 영화를 보고 이름값의 의미와 중요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고 했다. 깊을 희, 사랑 해. 김희애의 이름 뜻이다. "운명적으로 잘 지어진 것 같다"며 여전히 사랑받는 배우로서 존재하는 것에 이름의 의미를 새겨본다.  어느덧 배우 생활 40년 차에 접어든 김희애는 남다른 감회를 느꼈다. 그는 "저도 이렇게 오래할 줄 몰랐다. 고등학교 때부터 광고 모델 일을 해서, 그때는 이게 운명이란 생각도 안 들고 여러 가지에 치이느라 그만두고 싶었다. 계속 시행착오나 실패, 허들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하나씩 넘어가며 멈추지 않았다. 만약 40년 동안 연기해야지, 했다면 못했을 텐데 멈추지 않고 오다 보니 커리어가 되더라"고 돌이켰다. 실패도 과정이고, 위기도 경험이라고 여기며 결국 멈추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과거와는 달라진 '여배우'의 영역에 대해서도 감사했다. "저희 세대는 아무래도 남아선호사상 시절이다 보니 여성이 구속받고 위축되는 시대였다. 예전엔 할 수 있는 역할이 한정적이었다. 옛날에 비하면 지금은 할 수 있는 인물과 이야기가 많아졌다. 심여사 같은 캐릭터도 여성이 했을 때 관객이 좋아해 주시는 시대가 온 것"이라며 미소였다. 그도 그럴 것이 20대 때는 "여배우는 술을 마셔야 배우"라는 원로 배우의 말에 술을 억지로 먹다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었다니. 이처럼 웃지 못할 씁쓸한 시대를 거쳐 독보적인 배우로서 다양한 시도와 역할을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는 김희애의 '커리어'가 얼마나 더 대단하고 의미 있는 것인지 새삼 느낀다.  "마음 한구석에 저에 대한 자신감이나 자존감은 있으나, 요즘엔 워낙 연기 잘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과연 나도 저 정도를 할 수 있을까. 해낼 수 있을까 하는 퀘스천 마크가 항상 따라다닌다"며 겸손인 그는 "김희애와 캐릭터 사이에 1부터 10이 있다면 10이 완전히 버려지는 상태의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는 바람을 강하게 드러냈다. "완전히 제가 없는, 1도 생각이 안 나는 그런. 백프로 몰입해서 내가 보이지 않는 연기를 하는 것." 40년 차 관록의 배우지만,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 연기에 대한 갈망이 이토록 강렬하고 깊다.  사진=콘텐츠 웨이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