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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정우성의 품격과 소신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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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3-11-26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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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본연의 성정이 이토록 자연스레 묻어나는 배역이 또 있을까. 영화 '서울의 봄'에서 너무도 고귀한 자부심과 사명을 지키는 인물로 분해, 충격적 사건을 목도한 관객들에 단 하나의 '희망'이 되어주는 정우성이다. 그 특유의 성품과 올바름이 고스란히 투영된 인물이었고, 누구도 이보다 더 완벽한 싱크로율을 발휘하긴 어려울테다. 


정우성은 이미 '서울의 봄' 캐스팅 단계에서 김성수 감독이 제게 전화를 할 거라 짐작하고 있었다. 김성수 감독이기에 일단 반은 마음이 기울지만 '헌트' 촬영이 끝난 시기였기에 잇단 두 작품에서 외피적으로 비슷한 캐릭터를 또 맡게 된다면 과연 관객이 이태신을 온전히 받아들일지 우려가 됐다. 그랬더니 "나 너 아니면 안 해"란 감독의 반 협박을 들었다. "당연히 같이 작업하는 즐거움과 신뢰는 있지만 이런 외부적 요소로 인해 우려를 말씀드린 건데 귀에도 안 먹힌 것 같다"며 웃으며 당시를 회상한 그다. 감독의 협박에 가까운 캐스팅 고집은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다. 감독이 정우성이기에 믿고 맡긴 캐릭터 이태신은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군의 사명에 충실한 인물이다. 내란 음모를 일으키는 전두광 무리들에 맞서 끝까지 대항하는 그의 신념과 사명감은 뜨거운 감명을 일으킨다. 특히 정우성이 연기하기에 익히 그의 평소 언행에서 읽히는 본연의 옳고 그른 성정과 맞물려 더 깊은 몰입을 이끌어낸다.


의외로 "많은 분들이 이태신 캐릭터에 호응해주셔서 놀라웠다. 상황에 대한 분노도 느끼고, 아주 징글징글한 황정민 형 연기도 보고,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기가 빨리는 느낌을 받았기에 '잘한 게 맞나' 반문을 여러 번 했다"는 정우성이다. 그는 "실제 인물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지만 이태신은 극 중 가장 허구성이 많이 이입된 인물이기에 캐릭터를 만들 땐 모든 걸 배척해야 했다. 막연함이 있었기에 더 많은 관찰과 고민을 했다. 감독님께서 참고 영상으로 제가 UN난민친선대사로 뉴스 인터뷰 했던 걸 보여주셨다. 그 영상의 의미는 인터뷰에 임하는 제 자세였던 것 같다. 타인의 이야기를 타인에게 전하는 만큼 단어 선택 하나도 신중하고 조심스럽고, 강요가 되어서도 안 된다. 그런 모습을 원하신 것 같다. 감정적이며 저돌적으로 불같이 달려드는 무리들을 대할 때, 본분을 지키기 위한 이성적 사고와 차분함 이런 모습을 이태신에게 얹길 원하셨던 것 같다"고 이해했다.


그가 말하길 "이태신은 어떤 사람일까를 막연함 속에서 찾아가는 첫 단추"가 처음 참모총장으로부터 수도경비사령관을 제안받는 신이었다. 이를 조용히 거절하는 모습에 이 사람이 담겨 있었다고. 우직하고 투철한 신념을 갖춘 인물이지만, 정우성은 이를 선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그저 맡은 본분과 직무에 책임을 다하는 소신있는 인물이라 여겼다. "올바름이란건 정의되기 힘들다. 누군가의 올바름이 다른 누군가에겐 올바르지 않을 수 있다. 감독님 전작 '아수라' 때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안에 전두광도 있을 수 있고, 육본의 우유부단한 '똥별'들도 있을 수 있고, 이태신도 있을 수 있다. 내 안엔 다양한 내가 있다. 그러다 어떤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어떤 모습이 튀어나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큰 차이를 만드는 것 같다. 감독님은 그런 자세로 인물을 다루는 것 같다. 선택의 명분, 의미부여를 하기보다 본분을 지키는 그런 신념의 사람으로 이태신을 그리려 했다"는 그는 "감독님께서 이태신을 통해 그날의 사건을 함께 목격하길 바라신 것 같다. 명분과 정의를 강요하거나 선과 악의 대결이라기보다 인간 본성을 탐구하는 태도, 인간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고 해석했다.


대척점에 선 전두광 역의 황정민과 처음 리허설을 할 때, 만만찮은 캐릭터를 대하는 만큼 ''타 죽는 게 아닌가'하는 부담이 컸다고 엄살인 정우성은 "테이크가 끝나면 상대방 표정에서 느껴진다. 아, 형이 이태신을 느꼈구나"라며 웃었다. 해당 장면에서 극도의 긴장감이 도사리고 있음에도 반란군 무리들에게 "보기 안 좋다, 몰려다니지 말라"고 속시원히 일갈하는 이태신과 그로 인해 무안함과 분함을 풀 데 없는 전두광의 표정도 은근히 통쾌하고 유머러스한 장면이다. 정우성은 "이태신이 그렇게 원리원칙을 따지고 꼿꼿하고 딱딱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저 본분에 대한 책임을 지키려는 사람인데, 군인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으니까 한마디 하는 거고 군대라는 체계가 있는데 체계 없이 몰려다니니까 한 마디 했다"고 미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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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전방부대까지 불러들이는 반란군의 조직적인 움직임에 손발이 묶였음에도 끝까지 홀로 맞서는 이태신의 사투는 안쓰럽고 비통하기 짝이 없다. 정우성은 "답답해서 스트레스가 쌓이지만 그걸 화로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다. 상황에 대해 부정하지 않으려다 보니 이를 극복하려 하지만, 외면 당하고 상황은 더 안 좋은 쪽으로 흐르며 혼자 고립되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그럼에도 이를 온전히 다 받아들이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감정적 대처보다는 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야 할지 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 여겼다"고 했다.


특히 희대의 명장면이라 꼽히는 최후의 바리케이드 신은 "7월에 찍느라 정말 힘들었다. 감독님이 농담으로 '정우성 키 크잖아.. 잘 넘어가겠지? 그래서 만들었어' 했다"고 전하며 웃겼다. 하지만 이내 "장애물이 있어도 느리지만 꿋꿋하게, 무거운 발걸음이 되고 넘어져도 일어나서 그렇게 가려고 하는 사람이 이태신이란 사람인 것 같더라. 자신의 소신을 위해 그가 길을 걷는 자세가 아니었나. 그 길에 철망이 찔리고 아픈 게 사실일지라도, 그렇게 가더라도 극적인 해결이 이뤄지지 않을걸 알고 있음에도 그냥 가야 하기 때문에 가는 것"이라고 의미를 전했다. 탐욕의 무리들에 철저히 짓밟힐지언정 마지막까지 그가 지킨 꼿꼿한 자부심과 올바름의 가치는 지켜보는 이들에게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의미 깊은 질문을 던진다.


항간엔 '이태신 장군 앓이'가 일어날 정도로 멋진 사람을 연기한 정우성이다. 그리고 정우성이기에 더욱 진심으로 몰입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캐릭터 싱크로율 제로라고 손사레친 그는 "멋있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어떻게 보면 이태신은 자신의 본분을 지키려 부단히 노력한다. 그 모습을 많은 분들이 바람직한 성향이라고 느끼고 공감하기 때문에 이태신을 응원해 주시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너무 많이들 좋아해 주셔서 저에게 부담스러운 캐릭터로 남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보게 됐을 때, '서울의 봄' 이태신이 저에게 어떤 의미의 캐릭터인지 알게 될 것 같다"고.


"사람이 살면서 소신이란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제가 추구했던 건 어느 캐릭터에도 머물러 있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비트'로 청춘의 아이콘이란 수식어가 쓰인 순간, 빨리 이걸 벗어나야지 했다. 아이콘이 되고 싶지 않았고 아이콘일 수 없었다. 그저 어떤 청춘의 외로움을 보인 것 뿐이고, 많은 분들이 동시성을 느껴주신 것뿐이다. 배우로서 제가 여러 가지 선택을 해왔다. 흥행만을 좆지 않고 무모한 도전도 하고, 다양한 시도도 했다. 그게 주류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용기낼 수 있는 작은 씨앗을 품은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됐다. 그게 배우 정우성의 소신이었던 것 같다. 지나온 제30년을 돌이켜보면 그런 소신으로 임한 저를 발견하게 되는 것 같다." 이런 품격과 소신을 지킨 정우성이다. 그가 연기한 올곧은 캐릭터에서 그의 성정이 자연스레 묻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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