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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 해양범죄활극의 쾌적한 묘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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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3-07-26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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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살아있다. 70년대의 낭만, 향수를 자극하는 음악, 각기각색의 캐릭터들, 긴장과 이완의 드라마적 서사와 해양범죄활극의 시원한 묘미까지.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영화 '밀수'다. 


70년대, 어느 어촌 마을에서 해녀들이 밀수를 했다더라. 한 소도시 박물관 사료에 적힌 이 한 줄의 문구로 밀수판에 가담한 해녀들의 이야기라는 큰 판을 벌린 류승완 감독. 이미 천만 전작을 보유할 만큼 믿고 보는 대표적인 스타 감독은, 관객의 기대에 아낌없이 부응한다. 충분히 쫄깃하고 흥미로운 서사, 스타 군단으로 채워진 다채로운 캐릭터들, 그리고 액션까지. 영화적 미덕을 요할 때 작품이 내포한 메시지나 철학은 그리 뜻깊지 않으나, 여름철 극장가를 겨냥한 오락 영화로서는 손색이 없다. 


배경은 70년대 후반, 공업화가 시작된 가상의 어촌 마을이다. 장비조차 없이 수경 하나에 의지한채 바닷속에 시원하게 뛰어드는 해녀들의 활기찬 일상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70년대 흥겨운 음악이 휘감고, 기분 좋은 뱃소리와, 시원한 수중 촬영으로 그 시절 해녀들의 이미지를 구현하니 보기에도 흥미롭고 괜한 설렘을 유발한다. 


적절한 캐릭터성도 풀어준다. 춘자(조춘자)는 전복을 캐다가 광어를 보고 따라가 손으로 낚아채 잡아올 만큼 억척스럽고 셈이 빠르다. 반면 진숙(염정아)은 다른 해녀들을 살피고 왈가닥 춘자를 염려하며 조용한 리더십을 보인다. 두 사람이 물속에서 서로를 끌어당기며 교차하는 신은 후반에도 수미상관 구조를 띠며 의미하는 바가 뜻깊은 장면이다. 


큰 수확을 했음에도 근처 들어선 화학 공장 때문에 오염된 어패류는 공업화가 시작되던 당시의 피치못할 폐해를 나타낸다. 생계가 막힌 해녀들은 결국 밀수에 가담하고 제법 큰돈도 만지지만, 이는 화를 불러 비극의 사건을 부른다. 도망친 춘자와 처참히 망가졌음에도 다른 해녀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기에 버텨내야만 하는 진숙. 살길을 모색한 두 해녀의 각기 다른 삶의 방식, 그리고 갈등과 오해, 화해에 이르기까지의 자칫 지루한 서사가 이어지며 이야기는 다소 루즈하고 산만해진다. 하지만 이때 적재적소에 캐릭터와 상황을 대변하는 음악을 배치하고, 새로이 등장한 캐릭터 혹은 변모한 캐릭터들의 모습을 통해 다시 흥미를 끌어당기는 식이다. 


월남 파병 이후 돌아와 전국구 밀수왕이 된,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권 상사(조인성), 끽 소리도 못하고 눈칫밥만 먹던 뱃사람에서 새롭게 군천 밀수판을 장악한 야망남 장도리(박정민), 예쁘고 통통 튀는 다방 막내로 시작해 군천 바닥 온갖 정보를 수집하고 마담 자리에 오른 고옥분(고민시), 그리고 날카로운 매의 눈을 가진 세관 계장 이장춘(김종수)까지. 범상치 않은 캐릭터들의 향연이 호화롭게 얽히고설키며 다양한 재미와 앙상블을 이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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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본격적인 밀수판이 재개될 때, 감독의 장기는 더 치밀하게 집약돼 펼쳐진다. 좁은 호텔 공간에서 펼쳐지는 떼거리 액션 신은 감독 특유의 날 것 감성을 한껏 이끌어내고 눈뗄 수 없는 박진감을 이끌어낸다. 여기서 아주 찰나에 뜻밖의 묘하고 설레는 멜로 감성을 이끌어낸 배우들과 이를 놓치지 않고 담아낸 감독의 선택도 매우 탁월하다. 


해녀들, 그리고 막내 옥분까지. 여성의 연대로 이끌어낸 마지막 수중 액션의 절정은 쾌적한 흥분감을 선사한다. 흐뭇하고 즐거운 영화임엔 틀림없다. 


간만에 뻔뻔하고 억척스러우며 저급한 팜므파탈 조춘자가 된 김혜수의 모습이 반갑다. 이전 작품들, 그리고 배우 본연이 지닌 성정과 무게감을 내던지고 마음껏 뻔뻔스럽게 활개 치는 모습이 그저 사랑스럽다. 염정아는 자칫 무덤덤하고 일차원적인 캐릭터를 온전히 그의 연기력으로 예사롭지 않게 만든다. 이런 두 사람의 만남은 다시없을 감동이다. 특히 영화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이들의 수중 교감 신은 괜히 뭉클하고 벅찰 정도다. 조인성은 근래 들어 가장 매력적이고 다채로운 연기를 펼친다. 김종수는 두 말할 것 없이 훌륭하다. 고민시&박정민 막내 조합은 '밀수'를 120% 채우는 완벽한 캐스팅이다. 


음악 감독으로 활약한 장기하의 센스는 나무랄데 없다. 그리고 짧은 쿠키 영상으로 마지막까지 기분 좋은 유쾌함을 안기는 '밀수'다.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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