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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의 사랑 영화, 그 강렬한 파동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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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2-06-28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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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고 낯설다. 서스펜스와 로맨스의 결합, 익숙할 순 있어도 박찬욱 감독이기에 그 감상은 확연히 다르다. 감정의 절제, 소통과 불통, 미묘하고 아슬아슬한 경계를 오가며 불안한 감정의 파고에 일렁이다 도달한 끝은 거대한 파도가 덮쳐온다. 박찬욱 감독의 수사 멜로극 '헤어질 결심'이다. 


단정한 슈트 차림만 봐도 깔끔하고 예의 바른 형사 해준(박해일). 그는 밤낮없이 사건에 매달리고 미제 사건의 현장 사진을 제 집 벽에 붙여놓으며 불면증에 시달린다. 어느 날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며, 사망자의 젊고 예쁜 중국인 아내 서래(탕웨이)를 만난다. 한국어가 서툴지만, "마침내 죽었다"고 말하는 그녀의 단어 선택이 미묘하게 신경에 거슬린다. 의심스럽다. 속을 알 수 없는 서래를 몰래 관찰하고 수사하며 해준은 점차 호기심을 느낀다. 수사 과정이 거듭될수록 의심은 관심이 되고 진실은 혼란 속에서 요동친다. 켜켜이 쌓이는 두 사람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은 절정에 다다르는 듯하다가 이내 무너지고 붕괴된다. 


그리고 다시, 이제는 그녀가 애써 외면하고 침잠된 해준의 경계를 넘는다. 또다시 벌어진 변사사건을 매개로 다시 얽히게 된 두 사람은 미묘하고 집요하게 이어진 감정의 파국을 맞는다. 


파격과 금기를 넘나드는 강렬한 소재와 표현으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던 박찬욱 감독이 새롭게 선보인 수사 멜로극 '헤어질 결심'은 이전과는 확연히 결이 다르다. 


형사와 용의자라는 관계로 시작된 두 남녀의 미묘하고 팽팽한 감정은 쉽게 진심을 드러내지 않고, 선뜻 다가설 수도 없는 절제된 감정을 보여준다. 영화는 수사극의 형태를 띠는만큼 사건의 전말과 진범에 대한 호기심을 야기하며 불안과 긴장을 조성한다. 


계속해서 의심과 경계를 놓치 못하게 하는 서스펜스가 극 전체를 휘감는 와중에도, 수사 과정에 따라 깊어지는 남녀의 내밀한 심리 변화를 담아내며 멜로의 기능을 수행한다.     


늘 상대에게 예의 바르고 친절한 모습의 해준, 늘 꼿꼿하고 당당한 태도를 잃지 않는 서래. 다른 듯 닮은 두 사람이 서로를 같은 부류로 느끼는 과정도 흥미롭다. 특히 이들은 낯설게 느껴지는 어휘들을 사용하고, 문어체로 소통하며 뜻밖의 표현과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박찬욱 감독 특유의 감각적인 영상미와 어우러진 두 사람의 모습은 절제된 감정으로 오히려 더 많은 정서적 여운을 전한다. 특히 심문실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 함께 먹는 정갈한 초밥, 이를 치우는 리듬감은 전혀 의도하지 못한 공간에서 에로틱한 텐션을 부각하며 낯설고 색다른 감상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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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중요한 모티브는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파도'의 의미와 정훈희의 노래 '안개'다. 잔잔한 고요와 격정의 요동침이 공존하는 파도는 운명으로 맞설 수 없는 것이고, 뿌옇게 가려진 안개 속에서 시야가 흐릿할 때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보기 위한 의지와 노력을 내포했다. 해준이 정의할 수 없는 자신의 감정에 점차 혼란함을 느끼며 의문을 품을 때마다 등장하는 인공 눈물 넣는 신 또한 그런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종국에 해준은 보이지 않던 서래의 내면을 봤다. 이미 거대한 파도가 덮쳐 모래성을 무너뜨린 직후다. 서래의 붕괴다. 


'헤어질 결심'은 절제된 감정의 미묘한 떨림과, 요동치는 내면의 파동이 공존하는 멜로 드라마다. 이를 수사극을 차용해 독특하게 감정을 쌓으며 전달하는 것도 이 영화만의 묘미다. 결국 잔뜩 긴장한 끝에 순식간에 치밀어 오르는 멜로의 여운과 잔상이 너무도 강렬하다. 파격적인 소재나 자극적인 장면 없이 최소한의 요소로도 우아하고 매혹적인, 가장 이성적인 로맨스를 완성한 박찬욱 감독이다. 견고한 세계관의 완성, 독보적인 성숙미를 엿보게 하는 '헤어질 결심'이다. 탕웨이, 박해일을 염두하고 쓴 맞춤형 대본은 탁월하기 짝이 없다. 러닝타임 138분.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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