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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나희 순정' 순정과 낭만을 잊은 그대에게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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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1-11-25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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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이고 무분별한 콘텐츠의 범람으로 피로도를 느끼는 이들에게 필수 관람이 필요한 영화가 있다. '착한 영화'라고 해서, 마냥 무료하고 따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소소한 웃음과 감동이 있다. 아름답고 찬란한 자연이 있고, 훈훈하고 따스한 이웃의 정이 있다. 그리고 지키고 싶은 순정도 있다.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농촌 낭만극 '싸나희 순정'(감독 정병각)은 지치고 메마른 이들의 감성을 충족시키는 특별하고 소중한 힐링 영화다.


각박하고 생기없고 고된 삶. 문득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떠났다. 시인 유 씨(전석호)는 가방 하나 달랑 맨 채 목적지 없는 기차에 오른다. 그러다 문득 창가에 비친 흐드러지게 핀 도라지꽃이 고와서, 예뻐서, 홀린 듯 그곳에 내린다. 꽃밭에 누워 몽환적인 감상에 젖어들 때 불청객의 목소리가 들린다. 왜 꽃밭을 망가뜨리느냐는 뽕밭 주인 농부 원보(박명훈)의 못마땅한 잔소리다. 그 잔소리마저 구수한 사투리와 섞여 듣기 좋다. 유 씨는 불쑥 묻는다. "여기 묵을 방 있나요?". 그렇게 어느 시골 동네 마가리에서의 뜻하지 않은 삶이 시작된다. 


영화 '싸나희 순정'은 류근 시인과 퍼엉 작가의 스토리툰 '주인집 아저씨'를 원작으로 한다. 유씨와 원보의 동거 생활과 뜻밖의 '케미'는 극의 메인 테마다. 유 씨는 지친 도시인이다. 시는 더 이상 써지질 않고 탈출구를 찾지만 쉽지 않다. 그는 무작정 떠난 시골에서도 도시에서와 별반 다를 것 없이 술에 절은 채 무력감과 탈력감에 빠져 허우적댄다. 


반면 원보는 조용하고 잔잔한 시골 마을에 살지만, 누구보다 활력이 넘치고 열심히 살아간다. 마을 주민들을 세세하게 챙기는 고운 마음씨와, 남몰래 연모하는 감독님을 향한 뜨겁고 순박한 순정, 그리고 동화 작가를 꿈꿀 만큼 섬세하고 순수한 동심이 있다. 


생활 패턴과 성향마저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이지만, 유씨는 차츰 원보에게 스며들고 원보 또한 정을 베풀며 이들의 관계는 조금씩 변해간다. 


영화는 특별한 에피소드가 딱히 없다. 그래서 더 자연스럽다. 조용하고 무료하지만, 때론 소란하기도 한 시골 생활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은 다채로운 이웃들의 모습으로 생기를 띤다. 원보의 친구이자 택시 운전사(최대철), 중학생 딸을 둔 돌싱맘이자 우주 슈퍼 아줌마(김재화), 원보가 연심을 품은 축구 감독(공민정), 매력적인 카페 주인(심은진), 도라지밭주인 이웃 할머니(전성애) 등.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마가리 주민들의 모습은 따뜻한 이웃의 정을 느끼게 하며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룬다. 이처럼 기쁨, 슬픔, 위로를 나누며 서로 연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묘하지만 다정하고 풍만한 소속감을 느끼게 한다. 


전석호, 박명훈을 비롯한 모든 배우들이 사랑스럽고 소중하다. 아름다운 시골 풍경도 여운을 가득 남긴다. 


여기에 스토리시를 원작으로 한 만큼, 종종 등장하는 아름다운 시 한 구절이 주는 마음의 평화가 있다. 적재적소 허를 찌르는 원보의 대사들도 구구절절 명대사다. 원보는 인생의 길라잡이와도 같다. 그의 구수한 사투리에 녹아드는 말들은 '나를 나로 살아가게 하는' 힘을 주고, 알차고 값진 인생을 살아갈 용기를 준다. 


그런 원보를 통해 변화하는 유씨는 관객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현대 사회에 놓인 '개인'으로서의 무력과 우울, 각박하고 메마른 감성으로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사람. 그러나 차츰 원보와 마가리 이웃들에게 동화돼 그마저도 따스한 온기를 되찾고 충족감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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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살면서 지키고 싶은 '순정'이 있다. 꼭 이성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사사로운 욕심 없이 순수한 애정을 쏟을 수 있는 감정. 어느새 메바르고 빛바래 퇴색된 이들에게 잊었던 '순정'의 뜨거운 낭만을 일렁이게 한다. 삶은 녹록지 않다. 하지만 삶의 기쁜 일, 힘든 일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이들이 있다면 그것만으로 살아갈 용기는 충분히 생긴다. 오늘날 위태로운 사람들에게 따스하고 정겨운 위안을 전해주는 영화 '싸나희 순정'이다. 러닝타임 104분.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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