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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교:디텐션' 이것은 '진짜' 공포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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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0-08-1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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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영화의 묘미는, 허구적 상상력으로 꾸며진 공간에서 미지의 존재를 간접 경험하며 스릴을 즐기는 데 있다. 하지만 단순히 오락거리로 즐기려 했던 이 불안과 공포가 실체가 되어 폐부 깊숙이 타고 들어올 만큼 끔찍한 기억으로 다가온다면, 이보다 더 두려운 감상이 또 어디 있을까. 너무나 고통스럽고 처절하게 아름다운 영화 '반교: 디텐션'(감독 존 쉬) 이것은 '진짜' 공포다. 


비가 내리는 어두운 밤, 텅 빈 교실에 잠들어 있던 팡루이신이 잠에서 깨어난다. 영문도 모른 채 홀로 남은 학교는 하루아침에 폐허가 된 듯 스산한 분위기를 풍기고, 한 학년 후배인 웨이중팅과 마주친다. 두 사람은 흐릿한 촛불에 의지한 채 자취를 감춰버린 선생님과 친구들을 찾아 나선다. 끔찍한 환영과 학교를 떠도는 유령들이 두 사람을 위협하고 단서를 파헤쳐나갈수록 조금씩 드러나는 충격적인 진실은 거대한 공포의 참변을 마주하게 한다. 


영화는 2017년 대만의 한 인디 게임 개발팀이 제작한 동명 게임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 게임은 대만의 역사적 배경과 접목시킨 반전 스토리, 음산하고 독특한 게임 아트웍, 몰입도 높은 퍼즐과 추리 요소들로 인기를 끌었고, 이후 제작된 영화 역시 대만 현지 개봉 당시 자발적 입소문이 이어져 흥행 수익 1위는 물론 각종 영화제를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반교: 디텐션'은 단순한 공포를 넘어 1960년대, 자유가 사라진 대만의 어두운 역사를 담아 현실적인 공포의 기억을 빨아들인다. 과거 국공내전을 빌미로 무려 40년 가까이 계엄령이 선포된 대만은 자유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수많은 이들이 간첩과 반체제 인사로 낙인찍혀 투옥되거나 처형당했다. 영화는 이 '백색 테러' 시기인 1962년을 배경으로 한다. 


자유가 금지된 세상, 살아있는 자들의 활기라고는 없는 죽어있는 거리와 학교, 학생들. 영화는 시작부터 통제와 간섭을 당하는 지옥 같은 학교의 모습을 담아낸다. 철저한 억압 속에도 학교 창고에 숨어든 몇몇의 선생과 학생들은 금서를 옮겨 적고 독서회 활동을 하며 자유와 희망을 꿈꾸지만, 누군가의 밀고로 인해 헌병대에 끌려가 끔찍한 고문을 당하며 사경을 헤맨다.  


이제부터 첫 번째 챕터 '악몽'이 시작된다. 길이 끊어져 고립된 학교의 풍경은 쾨쾨한 죽음의 냄새가 곳곳에 도사리는 비현실적인 모습이다. 세상이 끝날 듯 몰아치는 폭풍우, 죽음을 암시하는 물건들, 귓전을 울리는 환청, 어둠 속에서 기척을 내는 존재 등. 익숙한 학교라는 공간을 낯설게 만드는 시청각적 효과들이 돋보인다. 


특히 게임이 원작이었던 만큼 유일하게 학교에 남은 팡루이신과 웨이중팅이 곳곳에 숨겨진 단서들을 찾아 나가는 과정은 사이드 스크롤 플레이 방식을 재현한 듯한 패닝샷, 1인칭 카메라 시점 등을 활용해 관객 또한 이들과 함께 학교를 헤매는 듯한 생동감을 준다. 


영화는 앞서 오프닝의 독서회 활동을 통해 당대 역사적 배경을 암시한 뒤 몽롱한 무의식의 세계로 돌입하는 영리한 흐름으로, 첫 챕터의 불친절한 서사와 궁금증들을 용인할 수 있게 한다. 


갖가지 단서들을 획득한 뒤 영화는 두 번째 챕터 '밀고자'로 넘어간다. 앞서 챕터가 시청각적 공포를 부각했다면, 이번엔 심리적 불안과 공포를 극대화한다. 국가라는 거대 권력 집단의 압력과 더불어 밀고자를 찾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믿음과 불신 사이의 혼돈은 걷잡을 수 없는 회의와 번민을 낳으며 정신 질서를 무너뜨린다. 그 자체만으로도 숨 막히게 갑갑한 공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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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반교: 디텐션'은 기존 공포 영화와는 확연히 다른 결을 띤다. 이런 장르물이 의례히 추구하는 과도하게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장면이나 사운드의 고조 등을 내세우지 않는다. 설령 괴기스러운 신들이 부각되더라도 슬픔과 분노, 회한으로 점철된 감정적인 공포를 극대화하기에 도리어 가엾고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구현되는 점이 이질적이다. 이를테면 잘린 목에서 발견된 금서나 전교생들이 사형수처럼 얼굴에 자루를 쓴 모습은 자유와 생명을 박탈당한 그들의 처지를 나타내는 그로테스크한 상징적 연출이다. 


마지막 세 번째 챕터는 비로소 악몽에서 깨어난 '살아남은 자들'의 몫을 심도 있게 얘기한다. 절망과 공포가 도사리는 억압과 야만의 시대, 부당한 권력에도 피어나는 한줄기 희망은 있다. 끔찍하게 자행된 숱한 희생들, 비정상적으로 무너진 삶과 이에 따른 숨 막히는 상실 그리고 지독한 절망감은 걷잡을 수 없는 무력과 공포를 낳는다. 그럼에도 자유와 희망을 열망하는 인간의 절박한 신념은 아름답고 숭고한 가치를 지닌다. 


우리의 삶 또한 멈추지 않듯, "살아 있어야 희망도 있다." 영화는 누군가는 살아 남아 이를 기억하며 다시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해야 하는 이유를 말하고자 한다. 특히 "우리를 죽인 건 네가 아냐, 넌 이용당한 거야"라는 극 중 대사는 '살아남은 자들'의 죄책감을 위로하며 뜨겁고 뭉클한 연대를 피워 올린다. 한국 역시 암울하고 절망적인 독재 정권 시기를 지나온 만큼, 깊은 파동을 일으키는 영화다. 


이처럼 탄탄한 이야기의 힘과 진정성을 갖고 암울했던 시대의 공포를 지나 희망의 연대를 말하는 '반교: 디텐션'은 이제껏 본 적 없는 아름다운 공포물의 탄생을 알린다. 8월 13일 개봉.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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