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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 가장 한국적인 오컬트 영화의 진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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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4-02-22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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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 말 그대로 기존에 있는 묘를 파는 의미다. 영화 제목이 '파묘'라니, 직설적이면서도 실험적이고 독창적이다. 대한민국 영화사에서 오컬트 장르의 한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장재현 감독은 흙으로 돌아가는 한국의 장례문화와 무속 신앙, 이 고유한 전통과 민속적인 이야기를 갖고 더욱 견고하고 진화된 K-오컬트의 진수를 선보인다. 놀랍고도 경이로운 수작이다. 


그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오컬트 미스터리 영화 '파묘'는 기획 단계부터 흥미롭다. 어렸을 적 100년이 넘은 무덤의 이장을 지켜본 장재현 감독은 당시 오래된 나무관에서 느꼈던 두려움, 궁금함, 호기심, 이런 복합적인 감정들을 언젠가 작품에 담고자 했다. 참 범상치 않다. 앞서 감독의 첫 상업영화 '검은 사제들' 역시 명동 골목길, 패스트푸드점 창가 너머, 어두운 곳에서 초조하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가톨릭 신부의 모습을 보며 떠올린 이야기였다. 이처럼 평범한 일상의 단면적인 이미지를 놓고 창의적인 발상을 떠올리는 감독이란, 참으로 비범한 재예다. 


이렇게 '파묘'는 가장 한국적인 발상으로 시작된 영화다. '음양오행', '이름 없는 묘', '혼령', '동티', '도깨비불', '쇠말뚝' 총 여섯가지 챕터로 이뤄져 있고, 크게는 두 갈래로 나뉘어 점층적인 스토리텔링을 쌓아간다. 꽤 긴 러닝타임에도 이를 인지하지 못할 만큼 각 챕터별 키워드가 명확하고 흥미로운 서사로 펼쳐져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각 플롯의 짜임새가 치밀하고 촘촘하며, 마치 만화 같은 구성과 독특한 캐릭터들의 팀 플레이로 완벽한 몰입감을 이끌어낸다. 


첫 번째 사연은 미국 LA에 사는 한인 갑부의 이야기다. 거액의 의뢰를 받고 이들을 찾은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은 기이한 병이 대물림되는 이 갑부 집안의 문제가 '묫바람'이 들어서라고 한다. 집안 어른들은 께름칙한 반응을 보이지만, 정신병에 걸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형의 뒤를 이어 장손이 된 차남은 힘겹게 얻은 늦둥이 아들마저 병세에 시달리자 이를 강행한다. 최고의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우해진)이 합세해 이들의 조상 묘를 파헤친다. 첫 '파묘'다.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갑부 집안의 수상쩍은 낌새는 미스테리를 더하고 내내 기묘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감독 특유의 장르적인 특색도 어김없이 발휘된다. CG를 최소화한 실사 촬영으로 오히려 포커스가 빗나간 투박한 앵글이 사실감을 더한다. 절대 사람이 묻힐 수 없는 악지, 행해서도 안 될 위험한 '파묘'를 벌이는 순간. 눈속임을 위해 돼지를 잡아 제물로 바쳐 벌이는 굿판은 화림을 필두로 모든 배우들이 홀려있는 듯한 압도적인 기세를 느끼게 한다. 


민간신앙, 음양오행 등 영화 저변에 녹아 있는 이미지가 시각화된 디테일과 극대화된 음악 소리도 압도적이다. 이를테면 관이 삐걱거리는 소리도 음악처럼 들린다거나, 산꼭대기 악지의 축축하고 스산한 분위기와 어우러진 풍수사, 장의사, 무속인들의 극적인 긴장감이 상당하다. 각 신마다 심혈을 기울인 티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렇다고 마냥 어둡고 무거운 것만은 아니다. 의외의 장면에서 은근히 터지는 적재적소 위트가 숨통을 트인다. 특히 최민식과 유해진의 호흡이 의외로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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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상함을 탈피한 설정과 반전을 비틀어 파고드는 본질 역시 허를 찌르게 하는 요소다. 화림과 봉길의 차림새만으로도 신선하고 파격적이다. 여가 시간에는 헬스와 사이클을 즐기는 젊고 예쁜 무당 남녀, 패션 센스도 탁월하다. 컨버스를 신고 굿판에 나서는 무당이라니. 보편적 이미지를 탈피한 MZ세대 무당의 비주얼과 대비를 이루는, 이른바 '꼰대' 풍수사&장의사 콤비는 묵직하게 무게감을 지탱하면서도 은근한 유머로 친근함을 더한다. 고리타분하고 미심쩍은, 그리고 사라져 가는 옛것들에 대한 구현을 이처럼 새롭고도 친근하게 표현해 낸 방식은 관객의 행여 모를 거부감을 덜어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게다가 본격적인 두 번째 '파묘'가 벌어지며 더욱 거대하고 충격적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속의 본질은 그동안 비주얼적 오컬트와 장르적 재미로 관객을 충족시켜온 감독의 더 깊고 진화된 역량을 엿보게 한다. 시대적 이야기의 접근을 이토록 장르적으로 녹여 흥미롭고 기발하며 통쾌하게 펼쳐낼 수 있는 감독의 재량이 가히 놀랍다. 


두 번째 파묘 후 나타난 거대하고 끔찍한 '험한 것'의 정체. 이 두려움과 공포에 맞서 벌이는 이들의 팀플레이가 고조될수록 감정이 요동치고 퍽 거룩하기까지하다. 기어코 깊이 박힌 쇠말뚝을 처치하는 엔딩은 아픈 과거를 지닌 가엾은 민족성에 대한 깊고 통쾌한 한풀이다. 과거를 잊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잔잔하고 유쾌하게 담아낸 담백한 엔딩마저 만족스럽다. 


노련한 배우들의 앙상블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끌어냈을 뿐더러, 가장 한국적으로 풀이한 장르 영화의 진수를 느끼게 하는 '파묘'다. 장재현 감독의 진화된 역량에 다시금 감탄할 따름이다.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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