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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맨' 명확한 주제의 빈약한 활용도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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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4-02-07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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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데드맨'(감독 하준원). 주제와 메시지는 명확한데 효과적으로 풀어내질 못한다. 그래서 더 아쉽다. 


오프닝은 꽤 강렬하다. 겨우 숨 쉴 틈만 연결해 놓은 좁은 관짝 안에서 옴짝달싹 못하며 빠져나가려 악을 쓰는 슈트 차림의 남자. 절박한 외침 끝에 강제로 열린 뚜껑, 남자가 본 세계는 마치 지옥과도 같은 아비규환이다. 수많은 상자에서 나온 사람들이 정체 모를 누군가들에 의해 봉으로 맞고 제압당한다.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폭력으로 짓밟는 이 끔찍한 곳은 대체 어디인가. 남자는 머리를 맞고 피를 흘리며 기절하고, 어디론가 끌려간다. 도망칠 수 없는, 도저히 살아서 나갈 수 없는, 죽은 자들의 감옥. '데드맨'의 시작이다. 


이쯤 되면 불안감이 엄습하는 와중에 절로 호기심이 솟아난다. 인상 깊은 시퀀스다. 그러나 이후 이어진 이야기의 리듬은 들쭉날쭉하다. 이처럼 인상 깊은 시퀀스들은 몇몇 있는데, 스토리가 좀처럼 매끄럽지 못하다. 


현재 중국 사설 감옥에 갇힌, 공식적으로 죽은 남자 '데드맨' 이만재의 과거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스토리가 열린다. 성실한 영업사원이던 남자는 IMF 이후 생활고에 시달리며 가정을 책임져야 할 가장으로서 어떻게든 살아보려 발버둥 친다. 장기라도 팔아보려 음지 세계를 찾았으나 무서워서 선뜻 행하질 못한다. 그런 그에게 장사치는 '이름값'을 제안한다. 고작 이름값이 몸값보다 높다. 솔깃한 제안이다. 신체의 망가짐보다 흔한 이름 빌려주는 게 뭐 어떠냐 싶다. 그래서 바지사장 노릇에 뛰어들었다. 


여기까진 매우 흥미롭다.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긴 이름값이 이후 한 사람의 삶을 처참히 파괴하고 망가뜨릴 만큼 엄청난 폐해를 불러일으킨다는 설정이 놀랍고 생소하지 않나. 그러나 바지사장이 되어 부를 축적하며 변해가는 만재의 모습이 효과적으로 와닿지 않는 건 이 과정을 불친절한 서사로 메꾸고 지나친 점이다. 어떻게 이름만 빌려줬음에도 막대한 부를 생성할 수 있는지의 과정은 지나치게 생략됐고, 이 과정에서 얽힌 이들은 많고 복잡하다. 쩐주, 바지사장, 명의 거래, 모자 바꿔 쓰기, 테마주, 세탁기 등등 그럴싸한 키워드만 가득할 뿐. 명의 거래 범죄를 소재로 내세워놓고 이를 관객에 제대로 설명하질 않으니 순식간에 몇십억을 잃고, 심지어 천억이 왔다 갔다 해도 허무맹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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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례로 금융 범죄 실화 영화 '블랙머니'만 봐도, 경제에 해박하지 않은 일반 관객이 어려워하고 잘 모르는 경제 순환 논리를 캐릭터를 통해 쉽게 풀이하려는 연출 의도가 명확했다. 그래야 이해하고 몰입한다.     


하지만 '데드맨'은 감독의 자만심인지, 배려의 부족함인지. 알기 어려운 이야기 속에 캐릭터만 뛰논다. 그러니 순식간에 흥미를 잃는다. 애초 몰입이 온전히 되질 앟으니, 천억 횡령 누명을 쓰고 죽은 사람이 된 만재가 정치 컨설턴트 심여사의 도움을 받아 고군분투하는 과정도 썩 와닿질 않는다. 


이 과정에서 정치판까지 뛰어든다. 새로운 신당 창당에 들어간 백 억, 나머지 출처 모를 구백억. 정치판을 주무르는 정체 모를 사람들. 서사는 빈약한데, 그럴싸한 소재들만 지나치게 무장했다. 바지사장 노릇에 많은 사건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셈인데, 좀처럼 풀이가 되질 않으니 저들만의 리그에서 따로 논다.   

 

아우르고 싶은 이야기가 많고 이것저것 담아내려는 신인 감독의 열정은 알겠으나, 과유불급이다. 전달하고자 하는 명확한 메시지가 있다면,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스토리가 필요한 법이다. 또한 소재를 활용했으면 이를 대중적인 시각으로 풀이할 줄 알아야 한다. 감독 혼자 모든 걸 독점하고 저 하고 싶은 말만 강조한다면, 이를 기꺼이 들어줄 친절한 이가 누가 있을까. 친절은 베푸는 자에게 돌아가는 법이다. 이름값 제대로 하며 살아야 된단 메시지만 표류 중인 '데드맨'. 좋은 소재와 주제의 활용도가 아쉽다. 


다만 이만재를 연기한 조진웅은 익히 조진웅스럽고, 김희애가 맡은 심여사 캐릭터는 서사가 빈약하고 미스테리하지만 정치판에서 꼿꼿하고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모습이 독특하고 강렬하다.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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