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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의 목소리 담은 국내 노동영화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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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0-04-23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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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의 벽을 넘어 연대를 노래한 노동영화를 소개한다. 


5월 1일 노동절을 앞두고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노동영화의 기념비 '파업전야',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을 수상한 구로공단 여공들의 삶 '위로공단', 여성 감독과 여성 제작자가 만들어낸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카트'와 개봉을 앞둔 1세대 이주노동자이자 문화운동가 ‘미누’를 조명한 다큐 '안녕, 미누'가 그 주인공이다. 


부당하고 열악한 현실에 맞서 싸우며 함께하는 세상을 노래했던 사람들, 한 시대의 목소리를 담은 국내 노동영화는 90년대 16mm 필름으로 제작된 금기의 영화를 지나 영화관 속 선명한 디지털 화면에서 상영되며 변화의 상징으로 거듭났지만, 2020년 현재 노동자들의 현실은 여전히 각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연대를 촉구하는 노동영화는 지속적으로 관객을 만나왔고, 여전히 소수지만 만들어지고 있다. 군부정권에 맞선 노동자들의 파업을 담은 '파업전야'(1990),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고군분투를 그린 '카트'(2014), 60-80년대 국내 제조업을 이끈 구로공단의 여공들을 기록한 '위로공단'(2014)은 9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 노동영화의 대표작들이다. 여기에 5월 개봉을 앞둔 '안녕, 미누'까지, 함께하는 세상을 만들어 나간 노동자들을 주인공으로 한 국내 영화 4편을 소개한다.


'파업전야'(1990)는 폭압적인 군부정권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꿈과 현실을 담아낸 리얼리즘 수작이자 국내 노동영화의 고전 격 작품이다. 실제 공장과 파업 현장에서 노조 결성을 위해 힘쓰는 노동자들과 함께 촬영하여 한국 사회 노동의 참상을 다뤘다는 이유로 1990년 전국 상영 시작과 함께 불법 영화로 규정되며 정부의 탄압이 이어졌다. 제작자 전국 수배령은 물론 필름과 영사기 압수, 상영 저지를 위해 헬기와 전경 1800여 명을 동원하는 엄혹했던 상황 속에서도 30만 명이 넘는 인원이 대학가 등에서 이 영화를 관람한 것으로 추정된다. 상영을 도운 노동자들과 상영 투쟁에 동참해 표현의 자유를 지켜낸 관객들의 연대가 없었다면 이룰 수 없는 성취였다. 2019년 5월, 노동절을 맞이하며 30년 만에 정식으로 극장 재개봉을 하는 쾌거를 이뤄내며 스크린을 통해 아직도 유효한 연대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한국 상업영화 최초로 비정규직 노동 문제를 다룬 '카트'(2014)는 대형마트의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이 부당해고에 맞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주류 미디어에서 기피했던 노동자들의 현실과 파업 현장을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가감 없이 진실되게 보여준다. 여성 감독과 여성 제작자가 만나 만들어낸 여성 노동자들의 서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두 아이의 엄마, 싱글맘 등 사회 외곽에 놓인 현실적인 여성들의 삶과 노동을 그리며 80만 관객을 동원, 대중적 성공과 함께 노동운동에 대한 대중의 인식 변화에 앞장섰다. 2018년 영화의 실제 모델인 홈플러스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된 희소식과 함께 다시 한번 우리 시대 노동 문제를 되돌아볼 기회를 제공했다. 


휴먼 아트 다큐멘터리 '위로공단'(2014)은 생존을 위해, 가족을 위해 그리고 저마다의 꿈과 행복을 위해 열심히 일해 온 사람들의 눈물, 분노, 감동의 이야기를 담았다. 세계 최정상급 현대미술축제인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2015)에서 한국 최초로 은사자상을 수상했으며 상하이 국제영화제, 몬트리올 국제영화제에 초청되는 등 전 세계 영화계와 미술계 모두를 사로잡으며 주목받았다. 이른바 ‘공순이’로 불렸던 과거 구로공단의 여성 노동자들과 인터뷰를 시작으로 한국을 넘어 캄보디아, 베트남까지 아시아 전역을 아우르며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냈다. ‘그 많던 구로공단의 여공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위로공단'은 40여 년의 세월을 아우르며 각 세대의 일하는 풍경을 매개로 과거와 현재를 만나게 하며, 세대 불문 이 시대의 모든 노동자들에게 헌사를 보낸다.


우리 사회의 소외된 목소리를 대변해온 이주노동자 미누의 이야기를 그린 '안녕, 미누'는 함께하는 세상을 꿈꾸며, 손가락 잘린 목장갑을 끼고 노래한 네팔사람 미누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궂은 식당 일부터 봉제공장 노동자 등 한국에서 살아간 18년 동안 다양한 직업을 거쳤던 국내 이주노동자 1세대의 아이콘이자 문화운동가 미누. 2003년 이주노동자 강제추방 반대 농성장을 시작으로 한국 최초 다국적 밴드 ‘스탑 크랙다운’을 결성하여 투쟁과 축제의 장이면 어디서든 노래했고, 이주민의 권리뿐만 아니라 노동절, 이라크 전쟁 반대 집회, 한미FTA 반대 집회,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 등에서 공연하며 한국의 노동자와 소외된 목소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연대했다. 


“자신의 꿈과 한국 사회의 미래를 일치시켜 놓은 사람”(고병권 철학자), “슬픈 얼굴, 흔들리는 땅 위에서 흔들리지 않는 그의 목소리”(심보선 시인) 등 미누를 기억하는 각계각층의 평처럼, 함께하는 세상을 꿈꾼 미누는 발화를 멈추지 않았다. 휴먼 다큐멘터리는 '안녕, 미누'는 이처럼 사회를 향한 거대한 프로파간다가 되거나, 누군가를 표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시선으로 우리 주변을 돌아보도록 돕고 노동자에 대한 혐오 혹은 시혜의 감정 대신 공존에 대한 화두를 던지며 연대라는 시대정신을 이야기한다.


'파업전야' '카트' '위로공단'에 이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따뜻한 연대를 노래한 ‘미누’의 존재가 남기는 의미 '안녕, 미누'까지 다양한 노동영화를 만나보자.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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