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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비' 조진웅, 아프게 꼬집힌 감정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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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3-03-01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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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조진웅은 언제 봐도 특유의 깊이와 단단함이 있다. 올곧은 성정 탓이다. 그렇기에 그가 어떤 낯선 얼굴, 이른바 비릿하고 추악한 검은 욕망의 민낯을 드러냈을 때 충격의 여파는 더 크고 허를 찌른다. 


1992년, 현행 헌법 사상 처음으로 총선과 대선이 같은 해에 진행되던 당시의 정치판을 배경으로 한 범죄 영화 '대외비'에서 조진웅이 맡은 해웅은 빽도 족보도 없이 뚝심 하나로 20년을 정치판에서 구른 인물이다. 밑바닥 정치 인생을 끝내고 국회의원이 되고 싶은 그는 적당히 허세도 있고, 나름의 정의감과 사명도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당내에서 버려져 공천에 탈락하고 정치 자금도 쪼들려 궁지에 몰린다. 악으로, 깡으로 버티던 해웅은 행동파 조폭의 돈과 힘을 빌리고 해운대구 재개발 계획이 담긴 대외비 문서를 손에 넣어 권력 실세라는 거대한 힘을 무너트릴 판을 짠다. 


빚에 시달리지만 성공한 정치인이 되고 싶은 해웅의 욕망은 초반에는 순수하고 정의롭다. 시민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은 열망. 좌절하지 않고 무소속으로 나서 어떻게든 검은 권력과 맞서려는 의지까지 응원하게 되는 인물이다. 그러나 꼬이는 상황과 숨 막히는 압박이 거듭되며 그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조진웅은 평범한 인간이 권력에 사로잡혀 결국 타락하고 악으로 기울어가는 인물의 서사를 안타까울 만큼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그의 세밀한 감정 연기와 변화가 새삼 무서울 정도다.


조진웅은 김구 선생의 젊은 시절을 그린 영화  '대장 김창수'에 이어 이원태 감독과 다시금 호흡을 맞췄다. 감독은 "이번에도 어려운 작품을 줘 미안하다"고 했고, 조진웅은 "알면서 주시느냐"고 너스레를 쳤다고. 해웅은 영화의 메시지를 관통하고 대변하는 인물이다. 권력의 속성으로 인해 변화하는 인물. 그 복잡다단한 감정적 서사를 오롯이 담아내야 하기에 결코 쉽지 않은 캐릭터다. 그럼에도 그는 "세상에 쉬운 캐릭터는 없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그는 오히려 '대외비'를 통해 제 자신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고, 이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를 두고 관객도 깊이 있는 조망을 하길 바랐다. "해웅은 끊임없이 '딜'적인 상황에 놓여 고민한다. 스스로 이 방법이 옳지 않다는 걸 알고 인정하면서도 갈 수밖에 없는 상황과 결국 자신의 욕망도 이를 원하게 된다. 어떤 이정표를 따라 악인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그런 해웅을 디테일하게 만들고 표현해야 사람들이 보며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내 모습도 저렇지 않은가 돌아보기도 할 것 같았다"고. 


그 역시도 점차 타락하는 해웅의 선택을 보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얘는 무슨 생각을 하지?' 하면서도 옳지 않은 걸 알면서 선택하게 되는 순간들, 혹은 그런 망설임의 순간들이 떠올랐다. 예를 들면, 무명 시절 작은 작품에 조연으로 구두 계약을 맺었다. 그때 더 큰 작품에 주연으로 딜이 왔다. 작업 시기가 겹치는 상황, 선택을 해야 했다. 후자를 택한다면 배우로서 성공의 길은 좀 더 빨라질 것이었다. 분명 먼저 기회를 준 전자의 상황을 택해야 하지만, 인간적으로 흔들리게 되더라고. 결국 그는 전자를 택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아쉬운 감정이 들었다. '한 번 모른척 하면 되는데'라고 후회했던 과거 자신의 모습이 겹쳐졌다. "이 작품이 너무 아프게 꼬집어주더라." 말은 그렇게 해도, 조진웅 특유의 한결같은 성정은 결국 요행을 바라지 않고 옳다고 믿는 길과 의리를 택했다. 너무도 그 다운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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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특유의(?) 그럴싸한 외면을 위해 살도 조금 찌웠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말하는 인물 보면 대부분 멀쩡하게 생기진 않았잖나"라며 웃긴 조진웅은 "피상적으로 든 생각이다. 딱 떨어지거나 댄디한 모습과는 안 어울릴 것 같아서 살을 조금 찌웠다. 배가 살짝 나온게 귀엽기도 하더라"고 웃는다. 주안점을 둔 건 의외로 연설 장면이었다. 그는 "연설의 패턴을 읽는 것이 중요했다"고 말한다. 그는 국회의원들의 연설 장면을 많이 참고했다. 후보 시절의 연설과 당선 후의 연설문이 미묘하게 다르고, 각자의 스타일로 각색하고 호흡을 맞추는 패턴을 읽을 수 있을 만큼 디테일하게 공을 들였다. 이에 "저는 어쨌든 공천도 못 받았고 무소속으로 나와 너무나도 절실하니까 그런 외침도 있어야 하고, 꼭 돼야 한단 것을 어필하고 신뢰감을 무조건 쌓아야 하기 때문에 연설 장면이 굉장히 중요한 하나의 몽타주였다"며 "제 화법에 맞춰서 만들어보기도 하고 진짜 강하게 각인될 수 있도록 연습했다"는 설명이다. 


극 중 해웅을 무너뜨린 숨은 권력 순태 역의 이성민과는 이미 각별한 인연을 자랑하는 조진웅이다. 두 연기 장인이 만났으니 당연하게도 강렬한 시너지가 일고, 이는 '대외비' 속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특히 순태는 해웅의 숨을 옥죄어오는 막강한 절대 악이며, 해웅은 그를 상대로 순응하기도, 발악하기도, 꾀를 내기도 하며 치열하게 부딪힌다. 특히 순태와 맞붙은 해웅이 식은땀을 흘리는 찰나의 포착만으로도 숨막히는 긴장감과 공포를 야기한다. 이에 "현장이 덥기도 했고 우연찮게 거기서 땀이 딱 흘러내리더라. 얻어걸렸다"고 눙을 친 조진웅은 "그 정도의 긴장감은 당연히 흐를 거고, 이를 들키지 않으려 했다. 같이 연기해 봐야 이 느낌을 아실텐데"라는 짧은 너스레로 이성민과 그의 연기를 애정하고 존경했다. 


"이 작품의 엔딩은 해웅이 권력의 정확한 기생충이 되는 것"이라고 못 박은 조진웅은 "이 영화가 우리가 의도한 지점들을 잘 찾아갔다. 이왕에 어두울거면 완전히 어두운 게 맞지 않나.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을 보게 하고 권력의 민낯을 보게 한다. 이런 결말을 보며 과연 이렇게 사는 삶이 좋은가, 맞는가를 생각하게 했고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게 우리가 해야 될 일인 것 같다"고 했다. "경중이 다를 뿐이지, 살면서 고민의 순간들이 오고 옳지 않은 길을 가는 경우도 생긴다. 그걸 한번 따끔하게 꼬집어볼 수 있는 영화였다. 전 작업하면서 많이 꼬집혔다. 많은 반성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됐고, 살면서 좀 더 옳은 방향의 선택을 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계기가 됐다"고. 


조진웅은 이처럼 작품의 메시지를 깊이 공감하고 사유하는 배우다. "이런 메시지를 공감하고 체험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저 스스로를 다시금 점검하고 삶에 적용시킬 수 있는 계기가 돼 제겐 감사한 영화였다"는 그의 진심에서 그의 올곧음, 따스하고 정의로운 성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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