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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비' 이원태 감독의 사명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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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3-03-01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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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태 감독의 주제의식은 한결같다. 사회의 어두운 면과 부조리에 대한 깊은 사유와 성찰이다. 시대의 병폐와 인생의 아이러니를 담고자 하는 감독의 기조는 어떤 이야기 속에도 살아 숨 쉰다. 감독으로서 뚜렷한 사명을 가진 만큼 제 역할에 충실하는 그다. 


영화 '대장 김창수' '악인전', 그리고 첫 드라마 '법쩐'에 이어 이원태 감독이 세상에 내놓은 이야기는 '대외비'다. 이전까지와 닮은 듯 미묘하게 다르다. 1992년, 총선과 대선이 한 해에 치뤄진 대한민국 정치판을 배경으로 택한 '대외비'는 정치인, 조폭, 숨은 권력 실세 세 인물을 주축으로 맞물리며 권력의 추악한 속성을 마주한 인간의 민낯과 욕망의 꿈틀거림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그 끝은 지독한 절망과 낭패감으로 가득해 가슴이 서늘해질 정도다. 허구적 상상력으로 채워 넣은 영화적 스토리임에도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현실 정치의 환멸적인 지점들이 맞닿아지니 무서운 사실감을 자아낸다. 이전까지 시스템에 저항하고 맞서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희열과 카타르시스를 전하던 감독의 방식과는 의아할 만큼 완연히 다르다. 


감독은 "제가 염세적인 사람은 아니고 낙천적이고 희망적인 사람"이라고 너스레로 말문을 연다. "모든 것에는 양면이 존재한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이 사회를 구성해나고 이끌어가는데 반드시 필요하지만, 여기엔 무서운 속성이 있다. 이탈리아 사상가 마키아벨리가 말했듯 '지옥에 가지 않으려면 우선 지옥으로 가는 길을 알아야 한다'." '대외비'를 각색하며 감독은 내내 이 말을 떠올렸다. 


92년의 시대상을 배경으로 한 것도 중요했다. "불과 얼마전엔 87년 민주화 항쟁도 있었고 올림픽도 치렀다. 당시 20대 초반 때 그 과정을 쭉 겪어왔다. 정말 우리나라는 비교할 다른 예가 없을 만큼 다이내믹했다. 빠르게 변하고 급진적인 터닝포인트도 많았다. 정권이 바뀌면 세상이 바뀔 거란 생각을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기본적인 정치의 속성은 그저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이는 2~3천 년 전 그리스 로마 시대 정치인들과도 다르지 않다.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사람은 변하지 않고 정치의 속성도 변하지 않는다"는 감독이다. 


그랬기에 '대외비'에 인간의 욕망과 한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과 배신, 권력의 비정함 등의 키워드를 떠올렸다. 그가 여태껏 살면서 보고 배우고 쌓아올린 세계관과 더불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담론을 담아 넣으면 가치 있는 작품이 될 거란 생각이었다. 


1년의 각색을 거치며 세 인물의 각기 다른 차별점을 그려내는 것이 가장 큰 중점이었다. 그가 말하길 국회의원 후보 해웅(조진웅)은 생존 위기에 내몰려 살기 위해 악해지는 인물이다. 해웅의 변화하는 모습에 방점을 두려 했다. 숨은 권력 실세 순태(이성민)는 공간을 통해서만 캐릭터가 드러나게끔 설계했다. '뭐 하는 사람이지? 직업이 뭐지? 돈이 많나?' 이 같은 의문점들이 계속 맴돌면서 '이 세상에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존재하는 힘'이라는 모호한 존재로 설정했다. 순태가 숨은 힘이라면 정치 깡패를 꿈꾸는 조폭 필도(김무열)는 움직이는 권력이다. 감독은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를 강조했다. "권력은 폭력의 일종이다. 정치는 합법적으로 폭력을 쥘 수 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시키는 대로 하게 만드는 것도 폭력이다. 지배하는 힘이 권력인 셈이다. 필도의 권력은 물리적으로 나오는 힘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 몸도 더 억세 보이도록 하고 더 강하고 진한 위압감을 주려 했다"는 설명이다. 


감독은 이처럼 세세한 인물의 디테일과 상황을 설정하면서도 배우들엔 디렉션을 일절 하지 않았다. "글이 꼼꼼하고 좋으면 그 안에서 배우 분들이 충분히 상상하며 연기하실 수 있기에 제 몫은 이들의 연기가 어색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라는 감독이다. 이원태 감독 특유의 선함과 배려, 성실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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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탓에 어둡고 추악한 욕망으로 채워진 '대외비'의 결말이 더욱 아이러니하다. 이에 대해 감독은 "진짜 권력으로 대변되는 욕망 앞에선 해피엔딩이 안 만들어지더라. 사람이 살아온 몇천년의 역사를 보면 참 비정한 게 많다. 사람의 존재 자체는 약하고 욕망은 세다. 권력과 돈은 비정하다. 그런 속성을 꼭 그려내고 싶어 이 작품을 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라고 다시금 의도를 분명히 전했다. 이어 감독은 '대외비'가 "영화적이면서도 사실 굉장히 현실적인 이야기"라고 정의했다. 작품을 두고 프랑스 배급사 대표가 "혹시 우리나라 이야기를 두고 시나리오를 썼느냐"고 물을 정도였단다. 이처럼 감독이 담고자 했던 것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기본적인 속성과 본질에 대한 이야기였다.


극 중 해웅은 감독의 메시지와 의도를 가장 잘 담아낸 캐릭터다. 해웅은 정치인으로서 나름의 순수함과 정의를 가진 인물이다. 그가 절대 악과 맞서며 벌이는 일은 초반 나름의 정당성을 갖는다. 직업의식이라 할 수 있고 인간의 도덕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를 압박하는 환경에 의해 결국 본질적인 정당성을 잃고 스스로 타락한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타협하고 순응한다. 그를 변화시킨 환경적 요인은 인간의 욕망으로도 비롯되고 절대적 권력을 쥔 이들의 힘으로도 발현된다. 이에 대한 감상과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감독은 그렇기에 "욕망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줘야 했다. 세상의 좋은 면을 따뜻하게 보여주는 것보다 어두운 면을 좀 더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제 몫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대중이 눈치채지 못한 불편한 진실을 밝히기로 한 감독의 용기이자 사명이 '대외비'란 제목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미처 다 알지 못하는 시대적 병폐와 부조리는 여전히 무수히 많을 테다. 그 속에서 가치 있는 판단을 하길 바라는 감독의 바람이 담긴 '대외비'다. 


물론 감독 역시도 이렇게 비정한 이야기를 연달아 하니 인간적으로 힘들단다. "악인전' '법쩐' '대외비'까지 연거푸 센 이야기를 내놓으니 제가 세상을 상대로 혼자 싸우는 느낌도 든다. 그래도 이런 이야기가 세상에 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포기할 수 없다"는 감독의 굳건한 소신이다.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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