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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변수, 박소담의 장악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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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3-01-18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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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소담은 찰나에 시선을 사로잡고 현혹시킨다. 영화 '유령' 속 그가 보여준 놀라운 장악력에 그저 넋을 놓을 뿐이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도발적인 매력을 무기 삼아 조선인임에도 총독부 실세인 정무총감 직속 비서 자리에 오른 유리코는 거침없이 당당하고, 실로 안하무인이다. 조선총독부에 숨은 항일조직 스파이 '유령'의 용의자로 의심받고 호텔에 끌려와도 안팎을 휘젓고 다니며 앙칼지고 겁 없이 행동하는 인물이다. 자신을 방해하거나 모욕감을 준 이에겐 반드시 되갚는다. 하지만 표독스럽고 도발적이며 강한 기질의 그녀가 갑옷처럼 두른 화려한 의상을 떨쳐낼 때, 단번에 그의 전사까지 납득시킬 만큼 강력한 전율이 인다. 박소담은 그야말로 '유령' 속 압도적 변수이자 비책이다. 


박소담은 쏟아지는 칭찬에 부끄러워하면서도 "저희 가족이 솔직하고 객관적이다. 그런데 여동생이 따로 카톡으로 '영화 정말 재밌게 잘 봤고 고생 많았겠다'고 보내줘서 정말 감동했다"고 털어놨다. 곧이어 "제가 유리코를 해낼 수 있었던 건 감독님과 선배님들 덕분"이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의례히 하는 말이 아니라 유달리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유령' 촬영 당시 그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닥쳤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느꼈지만 영문을 몰랐다. 최악의 컨디션으로 악착같이 연기했다. 후시녹음까지 마쳤을 때 결국 목소리가 안 나왔다. 갑상선 유두암이었다. 배우로서 목소리를 잃는단 두려움에 겁이 나기도 했다. 박소담은 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유령' 팀의 배려와 따뜻한 에너지 때문이었다고 했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 가장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그는 "몸이 아픈 줄도 모르고, 그냥 힘든가? 싶었다. 제가 계속 물 젖은 솜처럼 처지는데 이하늬 선배님이 마치 엄마처럼 늘 제 상태와 컨디션을 챙겨주셨다. 촬영하는 내내 혼자 스스로 의심도 많이 하고 자책도 컸는데 모두 정말 많은 에너지를 주셨다. 하늬 선배님께 이렇게 받기만 해서 어떡하냐고 했을 때 '돌려주려 하지 말고 다른 후배들에 주면 돼'라고 하셨다. 정말 큰 감동이었다. 저도 그렇게 좋은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프지 않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아팠던 덕분에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를 알았다"고 했다. "제 주변에 좋은 분들이 많아 그분들께 기댈 수 있었다. 제가 좋은 칭찬을 들을 수 있는 건 이분들 덕분이라 요즘 하루하루가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영화 속 유리코는 펄떡이는 생동감으로 극을 휘어잡는다. 박소담이 얼마나 필사의 노력을 했을지가 눈에 선하다. 하지만 모든 연민의 감정을 배제하고 박소담은 단연 독보적인 활약을 한다. 특히 의상부터 컬러풀한 핸드백, 모자, 액세서리, 과감한 퍼 소재와 레이스, 코르셋, 드레스 등 현란하고 화려한 코스튬으로 시선을 압도한다.  


이에 박소담은 "처음에 의상을 입으러 피팅룸에 갔을 때 정말 너무 화려하고 많았다. '이 모자에 이 퍼에 이 장갑까지 다 한 착장인거죠?'라고 되물을 정도였다. 보통 포인트로 하나만 착용하지 않나. 평소에도 그렇고 캐릭터적으로도 입어볼 일이 없는 옷들이었다"고 했다. 게다가 화려함의 절정인 오렌지 색깔 드레스는 용의자로 갇혀있는 호텔 방의 소파 색과 일부러 맞춘 것이라는 귀띔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디테일을 잡은 의상이다. 처음엔 어색해서 잘 어울리는지 계속 의심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할 때 화려한 메이크업, 모자, 펄 등 이런 의상과 소품들이 유리코에겐 정체를 감추기 위한 갑옷이었다. 입고 있을 땐 정체를 숨길 수 있어 감사했고 하나하나씩 벗어던질 때마단 희열을 느낄 수 있어 감사한 의상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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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담은 유리코의 자유분방함과, 그 이면에 깊숙히 감춰둔 외로움을 연민했다. 그는 "처음 대본을 볼 때 캐릭터 설정을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얘는 또 어떤 말을 내뱉게 될까' 스스로도 걱정했다. 천계장(서현우) 대사처럼 '유리코짱, 어쩌려고 저래'라는 마음이었다"고 너스레다. 심지어 제 앞에 놓인 성냥을 두고도 일부러 멀리 있는 차경(이하늬)을 불러 불을 붙이라고 지시하는 신에선 "감독님, 이거 너무 가까이 있는데요? 이 정도면 제가 해도 되는데"라고 민망했을 정도다. 


하지만 "어떤 말과 행동을 하게 될지 모르는 인물이라 표현의 자유가 있었다"며 "유리코는 다 해도 되겠다 싶었다. 뭘 해도 '쟤 왜 저래?' 싶을거고, 그러면서도 그러는 이유가 나중에 타당하게 설명이 된다"고 했다. 그가 말하길 유리코는 철저히 자기 자신과 정체를 숨긴 채 모두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성깔을 부리며 혼자 쏘아대고 다닌다. 그렇게 보이기 위해 얼마나 혼자 외로웠을지, 그렇게 더 단단해지고 강해진 게 아니었겠느냐며. "어떻게 정무총감 직속 비서까지 오르게 됐는지, 얼마나 힘들게 여기까지 왔을지, 그러면서도 그 아픔과 외로움을 오롯이 혼자 견뎌냈다. 유리코가 '괜찮아 난, 죽어도'라는 말을 그렇게 덤덤하게 내뱉기까지 얼마나 아팠을까 싶었다."


박소담은 그토록 쏘아대며 다니던 유리코가 막상 살이 다 타들어가고 찢겨가는 고통 속에서는 어떻게든 이 악물고 참아내는 모습이 가엾고 안쓰러웠다. "제가 감히 그 당시 이런 이들의 마음과 아픔을 설명할 순 없고 익숙해질 것 같진 않지만, 너무 감정 몰입이 되면서 정말 잘 표현해내고 싶었다"는 그의 진심이다. 그렇기에 그가 느낀 엔딩 신의 감동은 더 컸다. "배우로서도, 배역으로서도 마지막에 그런 엔딩으로 마무리 짓는 게 정말 뭉클했고 기뻤다"는 감상이다. 


유리코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그는 "한 작품 안에서 다양한 모습을 한꺼번에 보여드릴 수 있어 가장 좋았다"고 말했다. 그의 투지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유리코의 다채로운 변주와 엄청난 활약은 지켜보기 즐겁다. 


"하루하루, 하나하나에 감사하며 행복하다"는 박소담은 "기회가 되면 기타를 배워서 직접 기타치며 노래하는 팬미팅을 해보고 싶다. 그 생각을 20대 때 했는데 벌써 30대가 됐다"며 웃는다. 재밌게 살기로 다짐도 했다고. 인생의 진정한 행복감을 더 소중하게 느끼며 누릴 수 있는 그는 지혜롭고 용감하다. 

 

사진=CJ ENM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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