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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장률 감독, 공간에서 포착한 삶의 정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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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0-08-24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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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중국 변방 도시의 공기를 포착한 '망종'부터 경계의 도시 연변을 그린 '두만강', 고혹적인 천년 고도를 담은 '경주', 시간이 멈춘 듯한 소도시 군산을 그린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등 공간이 품고 있는 정서와 질감, 익숙함 속 낯섦을 포착하는 장률 감독의 시선이 후쿠오카를 향했다.

 

'후쿠오카'는 28년 전, 한 여자 때문에 절교한 두 남자와 귀신같은 한 여자의 기묘한 여행을 담은 영화다. 장률 감독은 사랑이라는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한 소재를 역사적 아픔과 모순이 공존하는 후쿠오카를 배경으로 녹여냈다.

 

늘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는 공간에 대한 궁금증을 품고 왔던 장률 감독에게 후쿠오카란 도시는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후쿠오카는 10년을 다녔는데 일본 같지 않았다. 도쿄는 전형적인 일본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후쿠오카는 많이 달랐다. 사람들이 더 여유롭고 개방적이었다"는 감독은 후쿠오카가 사라진 동네의 정서를 담고 있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감독들마다 영화를 찍을 때 시작하는 출발점은 다르다. 어떤 이는 스토리에서 출발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인물, 혹은 그림 등에서 출발하기도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제 출발은 늘 공간이었다"는 장률 감독은 궁금증이 생기고 다시 오고 싶은 느낌을 받는 곳에서 늘 기묘하고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내가 갔을 적엔 빈 공간이었는데 여기 있던 사람들의 시선, 온도, 냄새가 아직 공간에 남아있다 싶을 적에, 바로 거기서 출발한다. 공간이란 게 사람보다 더 많은 걸 묵묵히 담고 있다. 그 공간에 내가 갔을 때 사람들의 옛날 모습과 행동, 언어들이 떠오르면 영화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후쿠오카'다. 한자를 풀이하면, 행복의 언덕이라는 뜻을 지닌 후쿠오카는 소담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항구도시의 역사가 흐르는 곳이다. 한국과 가까운 거리로 수많은 재일동포가 살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중국과도 오래 교류한 국제화 도시로 큰 도시 규모를 자랑하지만, 동네 혹은 마을의 정서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낯설고도 익숙한 도시, 과거와 현재의 역사가 혼재된 도시, 그 공간 속의 아름다움과 기묘함을 모두 담은 장률 감독이다.

 

특히 민족 시인 윤동주는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싸늘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도시의 아름다움과는 별개로 윤동주의 죽음으로 인해 한 도시 전체가 감옥처럼 느껴지는 상반된 경험은 이번 작품의 토대가 됐다고. 이전 작품들을 통해서도 줄곧 시인 윤동주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표현한 장률 감독은 이번에도 윤동주의 작품을 등장시키며 그 숨결을 담아낸다. 그는 윤동주 시인의 시를 읽을 때 자신이 성장한 공간이 그대로 떠오르곤 한다며 "우리의 제일 아름다운 시인이 그곳에서 돌아가셨다. 그 공간에 대한 애도를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극에 등장하는 시는 '자화상'과 '사랑의 전당'이다. 스스로에 대한 질문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에 어우러지는 시는 음율과 생명력을 갖고 극을 휘감는다.

 

또한 영화는 후쿠오카를 찾은 인물들이 꿈과 현실, 연령과 성별, 국적과 언어의 경계를 뛰어넘고 자유롭게 유영하는 기기묘묘한 판타지를 선보인다. 재중동포 출신 장률 감독은 지난 작품들에서도 한결같이 경계의 지점에서 이를 부유하듯 넘나들며 모든 경계를 무너뜨려왔다. 그는 경계의 허물림에 대해 "실제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말을 하며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얼마나 좋겠나. 영화는 그렇게 할 수 있다"며 웃어 보였다. 이어 "모든 사람이 갖는 제일 강렬한 감정은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소통을 하려면 자기 식으로, 자기 말투로, 자기 감정을 이야기하는 게 맞지 않겠나. 극 중 '너무 긴장하고 살아서 그런다'는 대사가 있다. 혼자 살 수 없는 세상에서 소통을 하자면, 편한 마음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인간적, 사회적, 국가적 소통의 단절과 경계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내면적인 치유를 선사하고픈 감독의 바람은 '후쿠오카' 곳곳에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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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판타지 같은 세상이다. 특히 극 중 귀신같은 여자 소담의 존재는 더욱 기묘하다. 성인임에도 교복을 입고 있거나 뜬금없이 단골 헌책방 주인에 후쿠오카 여행을 제안한다. 그리고 후쿠오카를 여행하던 중 어디론가 사라졌다 불쑥 나타나기도 하고, 언어를 모르면서도 현지인과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이에 대해 장률 감독은 이런 판타지 역시 우리 현실이라고 운을 뗐다. "꿈이나 상상도 현실의 정서에서 적용된 건 다 현실의 한 부분이라 생각한다"며 소담 캐릭터에 대해서도 "실 생활에서도 우리 눈에는 독특하고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지라도 그 사람을 더 만나고 알아보면 전혀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아름다운 한 부분처럼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 여자를 동시에 사랑해서 28년 동안 인연을 끊고 살아온 제문과 해효도 마찬가지다. 감독이 느끼길 두 사람은 엉뚱하지만 귀염성이 있는 이들이다. 각자의 공간에서 그들의 삶과 정서가 묻어나는 것 역시 감독이 애정 하는 것들이다. 일본에 사는 해효가 운영하는 작은 술집 들국화, 제문의 서울 헌 책방. 각 공간의 냄새는 인물의 사연과 성격을 담아낸다. "아무리 작은 공간이라도 사람과의 삶과 관계가 있다"는 감독은 실제로도 "내가 모르는, 혹은 나는 벌써 버린 정서들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눈길이 간다"고 했다. 늘 사라진 정서를 간직한 사람들, 공간을 포착하며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온 장률 감독답다.

 

몽환적이고 파편적인, 경계를 유영하는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들. 장률 감독 특유의 화법은 아름답지만 몽롱해서 많은 관객에게 의문과 호기심을 낳기도 한다. 이에 장률 감독은 웃으며 '후쿠오카'가 사랑 이야기라고 간단하게 정의했다. "사랑이 이뤄지고 끝나고, 증오가 되기도 하고 악연이 되기도 하는 것들. 다 사랑의 범주에 있지 않나. 사랑의 외연을 넓혀서 악연에서 빠져나오는 두 남자와 이를 돕는 한 여자의 이야기"라며 "관객마다 다 삶과 정서가 다르기에 어떻게 받아들이셔도 다 좋다"고 했다. 이어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기에 계속 카메라를 들고 있다. 좀 더 성실한 마음을 갖고 카메라를 들고 찾아보면 아름다움이 나오지 않을까"라고 마지막 말을 전한다. 언제나 기묘하고 아름다운 공간과 정서를 찾는 감독에게 어울리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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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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