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안중근의 무게를 견딘 정성화 [인터뷰] >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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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안중근의 무게를 견딘 정성화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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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2-12-21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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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존경하는 위인 안중근. 그를 오랜 세월 담아낸 이가 있다. 이토록 한 인물에 깊이 감화될 수 있을까 놀라울 만큼, 매번 거짓 없는 참된 마음으로 진심을 쏟아내는 배우 정성화다. 그가 기어코 대단한 일을 해냈다. 대한민국 최초 오리지널 뮤지컬 영화의 주연을 꿰찬 것이다. 이는 값진 결실이자 응당한 대우였다.  


뮤지컬 영화 '영웅'(감독 윤제균)은 2009년에 초연돼 뮤지컬계를 휩쓴 동명의 창작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뮤지컬 오리지널 캐스트로 지난 14년간 안중근을 연기한 정성화는 영화에서도 대한제국 독립군 대장 안중근 역을 맡아 그 삶의 궤적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꿈을 이룬 것 같다. 구름 위를 떠다니는 느낌"이라고 말문을 연 그는 오리지널 뮤지컬이 영화화된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고 영광스럽다"면서도 "한편으론 두렵고 떨린다"고 했다. 


정성화는 뮤지컬을 본 윤제균 감독이 이 작품을 영화화한단 얘기를 했을 때, 설마 제가 안중근이 되리라곤 생각도 못해봤단다. 혼자 오만 생각을 했다. '다른 역할로 제의 받으려나, 다른 이가 맡게 되면 속은 쓰리겠지만 많이 응원해야겠다'면서. 하지만 윤제균 감독은 처음부터 정성화를 생각했다. 이는 지난 14년간 안중근의 삶의 궤적을 좇은 그의 진심, 그리고 오리지널 뮤지컬 팬들에 대한 존중의 의미가 함께 담긴 선택이었다. 뮤지컬 영화라는 불모지에 뛰어들며 티켓파워나 상업적 이익을 따르지 않고 오직 '진심'으로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정성화 역시 이를 알고 있었다. 그는 "이 영화를 선택할 때 망설이는 두가지 이유가 있을 거다. 첫 번째는 조연이었던 정성화가 어떻게 주연을 맡아 활약하는가, 두 번째는 뮤지컬 영화가 생소한데 이물감 없이 들어갈 수 있는가다"라며 냉철한 객관화를 보였다. 그렇기에 막상 캐스팅 제의를 받았을 때 엄청난 무게감이 실렸다. "작품 의미를 보면 오리지널 뮤지컬 영화의 첫 발자국이다. 관객 분들이 실망하면 다신 안 볼 거란 생각에 목숨 걸고 해야겠단 생각뿐"이었다고. 그래서 지독하게 배역에 몰입했다. 온갖 역경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간 독립군 대장 안중근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14kg의 체중을 감량했다. 표정과 눈빛, 수염, 헤어스타일 하나하나에도 디테일을 기울여 생전 모습을 재현하는데 주력한 것이다. 


극심한 다이어트로 인해 뮤지컬 무대에서 갑자기 기절해 쓰러진 적도 있었다. 사형대 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겨우 살았다. 관객은 암전 돼 이 상황을 모르고 스태프들은 난리가 난 사건이다. "그래서 그 부분만 되면 가슴이 떨리고 블랙아웃이 된다. 트라우마가 됐다"며 이제야 너스레지만, 얼마나 독하고 절실하게 배역을 준비했을지 눈에 선하다. "안중근 의사는 대한민국 국민에겐 자긍심 그 자체다. 우리나라에 그렇게 훌륭한 분이 계셨기에 그 정신이 이어져 지금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다. 대한민국 최초 오리지널 뮤지컬 영화 '영웅'도 제겐 자긍심이다. 윤제균 감독이 제게 항상 입버릇처럼 '세계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자'고 했다." 그에게 영화 '영웅'의 완성은 일종의 사명이었다. 


뮤지컬과 영화의 차이는 낯설지만 신선했다. "뮤지컬에선 막연히 먼 발자취에서 보던 것들을 영화에선 가까이서 볼 수 있고 역사적 사건별로 디테일하게 나열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공연적인 환상이 영화적 미장센과 몽타주로 표현 방식이 바뀌는게 재밌고 새로웠다"고. 다만, "공연 때는 모든 홀을 다 채우도록 연기해야 하는데 영화에선 작고 섬세한 연기를 해야 한다는 차이가 있다. 특히 이 작품은 현장 라이브를 했는데 MR을 인이어로 낀 채 들으니 마치 노래방에서 에코 없이 노래하듯 생 소리가 나왔다. 노래를 잘 못하는 것처럼 여겨져 답답하고 굉장히 애를 먹었다. 하다 보니 노하우가 생겼고 감정의 디테일과 밸런스를 맞추는 게 가장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뮤지컬 넘버를 어떻게 하면 대사처럼 들리게 하고 감정을 이어갈 수 있을지가 최대의 난제이기도 했다. "기존의 뮤지컬 영화는 갑자기 정제된 음악이 시작되며 뒤에 있는 앙상블이 춤을 추거나 이런 쇼적인 위주의 영화가 대부분이었다. 갑자기 노래가 시작되면 관객이 감정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노래가 어떻게 해야 대사처럼 들리고 감정이 이어질지가 가장 큰 숙제였다. 우리가 가장 많이 나눈 대화가 '송 모멘트'였다. 극 속에 녹아든 음악, 대사처럼 들리는 노래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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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안중근 의사의 얼굴과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영화의 큰 장점이었다. 구국투쟁을 맹세한 단지동맹을 할 때의 결연하고 강직한 모습부터, 회령 전투에서 잘못된 선택으로 동지들을 잃는 뼈아픈 경험으로 자책하는 인간적인 모습, 사랑하는 가족과 어머니를 향한 애틋함, 두려움과 고뇌 등 수많은 감정이 응집된 인간 안중근의 모습을 입체감 있게 그려낸 정성화는 그야말로 짙은 감탄과 여운을 안긴다. 정성화는 "공연에선 안중근 의사가 강하게 보이는 부분이 있다. 캐릭터가 가진 에너지를 세게 전달해야 하기에 강렬하게 보여야 했다면, 영화에선 비범한 사람의 평범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가장 신경 쓴 건 인물의 평소 모습 생활 연기가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절제되면서도 담담한 연기가 뮤지컬과는 또 다른 면"이라고 설명했다. 


그에게 안중근은 이미 삶의 일부분이다. 무려 14년의 세월 동안 한 인물의 정신과 숨결을 연면히 체화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제 인생에 가장 큰 롤모델이자 스승님 같은 분이다. 우리는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사람으로 알고 있지만, 그 이면을 살펴보면 그분이 가진 철학가적인 면모, 신앙인으로서의 모습, 사상가로서의 생각까지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그분의 유묵이 제 삶에 적용되는 게 많다." 특히 배우로서 정성화는 안중근 의사의 유묵 중 고막고어자시를 늘 되새긴다. '스스로 잘난 체하는 것보다 더 외로운 것은 없다'는 뜻이다. "이 말은 안중근 의사가 제게 하는 말 같단 생각이 든다. 제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사람들이 알아줄 거다. 정말 성실하게 작품 활동만 하며 앞만 바라보고 살았다. 어떻게 보면 제가 작품에 임하는 자세는 그분의 가르침"이라고. 


그에게 '영웅'은 깊은 사명과 애정과 존경이 담긴 유일무이한 작품이다. '아 놔, 이제 정성화가 안중근으로 보여'란 어린 친구의 리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단 그는 학생들이 장기자랑으로 '영웅' 속 넘버 '누가 죄인인가' 무대를 하는 영상들도 봤다며 "이렇게 어린 친구들이 간접적으로 역사적 자긍심을 갖고 경험해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에너지도 있고, 시간이 나면 찾아가 깜짝 등장하고 싶다"고 대견한 아빠 미소다. 


 

늘 진실되게 연기하고 성실하게 작품에 임했음을 스스로 자부할 수 있는 정성화다. 그동안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대한민국 창작 뮤지컬의 영화화, 그 대단한 업적에 첫 발자취를 남긴 그다. "이 작품을 통해 뮤지컬 영화의 새로운 길이 열렸으면 좋겠다"는 그의 바람이 원대하고 희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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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CJ ENM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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