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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이일형 감독, 팝콘&콜라가 필요한 영화의 덕목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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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2-10-22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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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 영화감독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을 자연스럽게 인지하고 있다. "어떤 주제와 의미를 이야기하든, 팝콘과 콜라를 들고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게 꿈"이라는 이일형 감독이다. 


검사와 사기꾼이라는 극과 극 캐릭터 버디물 '검사외전'으로 970만 관객을 동원하며 첫 연출 신고식을 호쾌하게 찍은 이일형 감독이 6년 만에 내놓은 신작은 기존 복수극의 통념을 깨는 영화 '리멤버'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80대 노인의 친일파 숙청기, 이 과감하고 파격적인 키워드만으로도 흥미롭건만 그의 전공 분야인 '버디 케미'까지 녹여내며 특유의 장기를 발휘한다. 평생을 간직한 복수를 실행하는 80대 노인과 영문도 모른 채 그 일에 휘말리게 된 그의 절친 20대 청년. 의외의 주인공들은 의미 깊은 역사인 일제강점기를 각기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며 보다 많은 사유를 낳는다. 이일형 감독의 진일보한 역량이다. 


'리멤버'의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렇다. 감독은 '검사외전' 이후 휴식기를 가지며 영화를 많이 보던 때 우연찮게 '리멤버: 기억의 살인자'를 보게 됐다. 치매가 오기 시작한 노인이 가족을 죽인 아우슈비츠의 나치를 찾아 원수를 갚기 위한 여정을 벌이는 이야기다. "원작이 재밌었다. 예술영화고 로드무비 형태였지만 콘셉트가 좋았다. 한국의 시대적 이야기에도 잘 맞고 고민하다가 리메이크를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고. 전작이 워낙 가볍고 유쾌한 팝콘 무비였기에 감독의 새로운 노선이 신선한 것도 사실이다. 이에 "영화라는 게 감독의 취향과 성향이 있겠지만 가는 길은 분명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콘셉트에 길이 있으면 그 길을 제시하는 게 감독의 일"이란 답변이다. "'검사외전'은 검사와 사기꾼이란 가벼운 터치로 즐거움을 주는 영화라 생각했고, '리멤버'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지할 수 있는 주제의식이 있었다. 대중영화감독으로 어떻게 하면 더 쉽고 재밌게 전달할 수 있을까 이야기적인 부담이 컸다." 


그가 말하길 일제강점기는 한국인 모두에게 여러 의미를 가진 시대다. 수많은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소환된다. 하지만 그는 기존 작품들과는 달리 과거의 사건이 아닌, 현 시점과 연결된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일제강점기는 시기만 해도 100년이 넘은 오래된 이야기다. 보통 그 시기를 그릴 때 시대극 형태를 많이 띤다. 이 영화의 차별점은 현재의 이야기였다. 우리가 좀 더 현실적으로 다가갈 수 있고, 즉각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일제강점기를 소재로 하지만, 교조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것이 그의 목표였다. 친일에 대한 옳고 그름의 교조적 관점이 아닌, 개인의 복수극을 통해 사유 거리를 시사하고 싶었다. "저도 그 시대를 산 사람이 아니잖나. 역사로 아는 것이지 제가 그 시대를 숨 쉬고 살아보지 않았기에 모르고 알 수 없다. 저도 그들의 논리가 틀렸다고 생각하지만,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원점으로 돌아가 기본적인 생각을 해보고 싶었다"고. 그렇기에 극은 80대 노인 필주(이성민)의 '복수극'이란 장르적 기능을 충족시키면서도 20대 청년 인규(남주혁)의 시선과 생각이 중요했다. 현시점에서 과거의 사건을 바라보는 창구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감독은 "주인공 캐릭터와 그가 처한 상황에 설득력이 없다면 관객은 방관자가 될 수밖에 없다. 필주는 친일파에 온 가족을 잃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60년을 살아온 사람이다. 그가 가진 인생의 무게를 저도 이해할 순 없다. 그가 하는 복수가 100프로 옳다고 할 수 있을까 답을 내릴 순 없지만, 같이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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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말하길 필주는 복수를 꿈꾸고 일종의 사고를 친다. 인규는 이에 대해 상식적으로 접근하는 면에서 더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다. 필주가 사람을 해하는 행동은 분명 잘못됐고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지만, 그렇게 할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보고 연민을 느끼게 되는 거다. 우리 사회가 정상적인 시스템이라면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하기에 필주는 사적 복수를 한다. 이에 대한 상식적이면서도 어른스러운 인규의 모습에서 관객도 비슷한 마음을 느낄 거라고 생각했다. 


복수극이란 장르적 재미를 추구하며 이같은 주제의식을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게 전달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는 감독은 "감독이 뭔가 주입하려는 게 아니라 어떻게 관객과 호흡할 수 있을까 연출적으로 그려내는 게 가장 무섭기도 하고 고민이 됐다"고 털어놨다. 오히려 대본을 쓸 때가 재밌단다. "이야기를 창조하고 인물을 만들고 대사를 쓰는 과정이잖나. 그때 글을 쓰면서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이해가 된다.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할지 결정해야 흔들림이 없는데 오히려 글을 쓸 때 그 방향이 정리된다. '내가 왜 이 영화를 하고 있지' 모호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이 영화는 이런 식의 톤 앤 매너를 갖고 있고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거야'라고 결정하는 과정이 된다"는 설명이다.  


노인의 복수란 이질적인 극의 형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리얼한 분장과 액션이 중요했다. "배우 본연의 모습이 보이면 안 됐다. 100프로 노인의 모습이어야 했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첫 번째 관건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관객이 몰입할 수 없다. 그것이 개인적으로 큰 도전이었다." 감독은 이성민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일단 연기를 너무 잘하신다. 감독이 원하는 모습을 별 말 없이도 즉각적으로 찾아가신다. 또 선한 모습, 동네에 있을 것만 같은 외형적인 이미지가 있다. 그런 사람이 왜 복수를 하고 액션을 취하는지를 설득할 수 있는 분이다. 그 지점에서 감사하고 대단한 배우"라는 찬사다. 액션 역시 사실감을 위해 속도를 낮췄다. 노인이 필생을 꿈꿔온 복수극이 가지는 처절함과 이에 대한 공감은 리얼한 묘사를 통해 완성됐다. 특히 인상 깊은 것은 오래된 소총, 페트병을 이용한 소음기, 콜라 캔과 화약 가루를 활용한 빈티지하고 리얼한 액션의 구현이다. 이에 대해 "흔히 풀 수 있는 액션 영화가 아니라서 이를 돌파하는 방식을 많이 고민했다. 노인이 할 법하면서도 현명함과 경험으로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액션들을 소소하게 배치하는 것이 이 노인의 힘을 보여주고, 캐릭터성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도 전체적인 톤 앤 매너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는 설명이다. 감독의 재치가 돋보인 부분이다.  


결국 영화는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잊혀지는 것, 잊지 않으려고 하는 것. 이에 대한 행복과 괴로움, 그리고 연민과 안정을 주는 방식을 저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라고 생각했단 감독이다. 깊은 의식과 배려가 묻어난다. 그럼에도 "극장이란 공간에서 즐거움을 가져갔으면 좋겠다. 영화가 주는 재미는 확실해야 한다. 그게 슬픔일 수도 있고, 지적 호기심일 수도 있다. 이 영화의 주제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 아니라 한 번 정도는 생각해볼 수 있는 이야기로 봐주셨으면 한다"고 재미를 우선으로 추구하는 감독이다. 이어진 그의 비유가 퍽 찰지다.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도 정확하고 심도 있게 수업하시는 분도 있지만, 흥미를 끌며 재밌게 하시는 분도 있잖나. 저는 후자가 되고 싶다. 그게 저의 성향이고, 같은 이야기를 해도 순간순간 주제와 상황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관객과 여러 가지 방식으로 대화하고 싶다"고. "'저 사람 얘기는 어떤 이야기든 되게 쉽고 재밌어'라고 느낄 수 있는 감독"이 되길 희망하는 그였다.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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