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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트' 정우성, 그답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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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2-08-11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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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은 참 한결같다. 성실하고 바람직한 삶의 태도, 여기에 굳건한 신의를 지킬 줄 아는 이다. 시종일관되게 걸어온 삶의 방식과 품격에 감화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청담 부부'라는 팬들의 애칭이 붙을 만큼 두텁고 오랜 우정을 자랑하는 정우성, 이정재는 23년 만에 한 작품에서 조우했다. 무려 이정재가 연출한 첩보 영화 ‘헌트’다. 대중이 반가운 기대감을 갖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정우성은 이정재의 캐스팅 제안을 무려 3년간 거절했다. '삼고초려' 끝에 성사된 만남이었다니, 다소 의아하지만 속내를 들으니 충분히 그답다. 정우성이 전한 이정재 감독의 연출 계기는 이렇다. 4년 전, 이정재가 '남산' 시나리오 초고를 두고 제게 제작 의지를 밝혔다. 정우성 또한 둘이 같이 연기하면 좋겠단 생각은 내심 있었다. 작가와 감독을 구하는 동안 파트너이자 동료로서 조력하고 응원했다. 하지만 이 과정 속에 이정재는 부침을 겪었고, 계속해서 정우성과 의견을 주고받고 스스로 시나리오 수정 작업을 했다. 그러다 주변에서 '직접 하는 게 어떠냐'는 얘길 들었다. 이전까지 한 번도 연출에 뜻을 둔 적 없었고 당시 정우성이 연출작 '보호자'를 준비할 때인데, 이를 보면서도 '죽어가는 거 아니냐'라고 걱정했던 이정재다. '나한테 감독 연출 직접 해보라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이정재가 물을 때 정우성은 그냥 웃었다. "이 양반도 진짜 고생길로 접어들려 하는구나" 속으로 그리 생각했단다.


결국 결단을 내린 이정재는 제작, 각본, 연출은 물론 연기까지 직접 하고 심지어 제게 배역을 권유했다. 정우성이 이를 계속 거절한 이유는 친우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염려, 그리고 관객에 대한 예의와 진심 때문이었다. "그저 우리만의 의미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작은 사이즈의 영화도 아니고 연출 도전만 잘해내기도 힘든데, 여기에 우리 둘이 출연한다면 '저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얼마나 잘하나 볼까'하는 시선까지 견디기 힘들지 않겠나. 더 날카로운 평가의 기준이 있을 거다. 그러니 연출만 해서 그나마 가벼운 발걸음으로 도전을 이겨냈으면 한 것"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러나 이정재는 확고했다. 이에 "진짜 고난의 길을 가려고 하는구나. 오케이, 그렇게 마음 억었다면 바구니에 든 계란이 다 깨진다 해도 부딪혀보자. 치열하게 만들어보자" 결심한 정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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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제작이란 타이틀, 이정재의 연출 도전, 오랜만의 조우까지. 부담이 큰만큼 정우성은 더 치열하게 연기했다. 촬영장도 매순간 교감하며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작은 감정은 다 던져버리고 서로의 감정에 여유를 두지 않고 견제했다. 우리가 맛봐야 할 감정은 이게 아니라고 되새겼다." 그러면서도 이정재가 지치지 않길 바라고 지켜볼 뿐이었다. 정우성 또한 연출하며 빠져드는 외로움을 익히 알기에, 이정재의 그런 모습이 포착되는 때가 있었고 그때마다 짠하기도 했다고. 이 모든 것을 감내하고 작품을 완성한 친구가 자랑스럽고 뿌듯했단 정우성이다. "우린 서로에게 바라는 게 없다.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응원한다. 단 한 번도 서로에게 '왜'라고 물은 적 없다. 어떤 선택을 하든, 결과가 어떻든 바라보고 응원하고 본인이 가져야 할 의미를 함께 공유한다." 


그렇게 탄생한 '헌트'는 80년대 군부독재 시절을 배경으로, 안기부 조직에 숨어든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한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의 밀도높은 심리전부터 '대한민국 1호 암살'이라는 키워드로 이어지는 방대한 스토리와 액션, 사회적 함의와 압도적 미장센까지 퍽 놀라운 결과물로 완성됐다. 개봉 전부터 칸 영화제 공식 초청 등, 범상치 않은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정우성은 "우리가 담은 의미, 물론 이것이 전부가 아닌 영화의 본질적 재미와 캐릭터를 구현하는 연기적 완성도까지 나쁘지 않게 해냈구나" 싶어 비로소 안심했다. 


30여 년 전 두 청춘스타들이 세월이 흘러 이처럼 깊이 있는 주제의식을 통찰해 의미 있는 작품을 직접 만들고, 해외에서도 그 작품성을 인정받는 현실을 보니 이들이 차곡차곡 걸어온 길과 그 영향력이 새삼 놀랍고 이토록 멋스러울 수가 없다. 정우성은 "시사회 직후 동료 분들이 '좋은 자극 줘서 고맙다'는 얘기를 하더라. 그 말에 여러 요소가 내포된 것 같았다"는 정우성은 "어쩌다 보니 운이 좋아서 새로운 한국 영화 부흥기라고 일컬어지는 90년대에 우리가 데뷔했고 청춘스타 수식어를 얻으며 외형적으로 좋은 모습만 보였는데, 그 긴 시간 동안 두 친구가 얼마나 영화에 진지하게 임하고 고민했는지 이 작품을 통해 그 의미와 진정성이 잘 전달된 것 같아 뿌듯함을 느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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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이 연기한 김정도는 그야말로 배우 본연의 성정이 연상되는 인물이었다. 이정재 감독은 배역을 제안할 때 배우가 지닌 본연의 색깔은 물론 팬의 입장에서 그 배우에게 보고 싶은 연기까지 고려했다고. 강인하고 강직한 성품을 지닌 김정도는 군인 출신으로 군사 쿠테타에 가담했지만 이에 대한 죄책과 부채감을 가진 인물이다. 이런 인물을 연기하는 정우성의 마음가짐 또한 너무도 그다웠다. "실제 5.18 민주항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우리 사회가 합의하는데도 긴 시간이 걸렸다. 사건 자체에 대한 아픔과 상처도 깊은데, 지금까지 상처를 주고 생채기를 내는 긴 시간이 계속됐다. 정우성이란 사람은 그 역사적 사건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아픔을 줬는지 지켜본 사람이잖나. 개인적인 소회도 인물에 함께 얹어질 수밖에 없더라." 

 

그가 말하길 김정도는 군인으로서 의문을 가졌다. 이 같은 폭력이 가해지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고민을 객관화하며 생각했다. 또 잘못을 바로잡아야겠다는 신념과 딜레마에 빠진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이 딜레마를 가져갈 수 있는 원동력은 피해자에 대한 공감과 아픔, 억울함과 한이라고 봤다. 이에 대한 절대적인 공감이 필요했고 김정도라는 사람의 내면에 이런 한을 집어넣고 연기했다고. 덧붙여 "폭력에 대한 바로잡음, 평화에 대한 갈구는 김정도와 박평호 모두 일맥 하지만, 분단된 현실에서 한 방향으로 향해 갈 수 없다. 이런 두 인물이 각자의 신념적인 행동을 하고자 했을 때, 그 뜨거운 열기가 마주할 때 이 두 존재감은 서로 각인이 된다. 박평호와의 대립 관계 안에서 완성될 수밖에 없는 캐릭터 구성이다. 부딪히면 깨질 수밖에 없는, 그러나 서로 닮아있는 모습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설명이다. 


"예전부터 주어지는 성공, 찬사 그런 수식어에 머물러지 있지 않으려 했다. 이다음에 할 수 있는 게 뭘까를 선택했다. 그렇게 서로에게 긍정적 자극을 줬고 커다란 위로가 되기도 했다. '헌트'는 우리 만남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우리가 그 긴 시간 동안 시간과 경험을 허투루  쓰고 있진 않았구나 하는, 두 배우가 영화인으로서의 삶을 입증하는 작품이었으면 한다"는 정우성의 진심이다. "그래도 우리가 함께 활동하는 걸 재밌어해 주시고 긍정적으로 봐주시니 용기를 얻게 된다.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다양한 도전과 노력을 해볼 필요는 있겠다고 서로 생각을 나누고 있다"는 그의 말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정우성의 연출작 '보호자'도 시작이 좋다. 엄청난 호평과 함께 토론토영화제에 초청됐다. 정우성은 "미사여구가 너무 좋아 큰일났다"며 기분 좋은 너스레지만, 오랜 연륜을 헛되이 쌓지 않은 이들의 진심이 일으킨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닐까 싶다.


사진=메가박스 중앙 플러스엠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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