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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메이커', '척'하지 않는 변성현 감독의 정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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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2-01-28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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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달변가는 아니다. 저를 꾸밀 줄 모른다. 하지만 화려한 언변으로 환심을 사기보다 묵묵한 진심으로 '척'하지 않고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그 모습이 도리어 시원스럽다. 변성현 감독이다. 


변성현 감독의 신작 '킹메이커'는 故김대중 전 대통령과 한때 그의 선거 참모였던 엄창록을 모티브로 한 정치 영화다. 영화는 196~70년대 치열했던 한국 정치사를 배경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강하고 올곧은 의지를 가진 정직한 신념의 정치인 김운범(설경구)과 그를 기발한 전략으로 돕는 선거 메이커 서창대(이선균)의 관계와 갈등을 통해 수단과 목적, 그 정당함의 정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를 관통하는 이 주제는 변성현 감독이 스스로에게도 끊임없이 해답을 갈구하던 딜레마였다. "늘 평소에 생각하고 질문했던 것들이다. 내가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을 향해 가는데, 그 목적을 위해 올바르지 않은 수단을 택해도 괜찮은 건가. 그렇게 선택을 했을 때 내가 느낀 죄책감, 이에 대한 합리화 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한 정치 영화는 다소 민감한 소재일 수 있지만, 감독의 오랜 고민과 고찰을 풀어내기엔 적합한 인물이었다. 물론 감독 역시 고심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감독 역시도 존경하는 이다. "현대사의 가장 큰 인물이시고 성인, 거목이라고도 표현하는 분이다. 하지만 제 개인적인 존경심과는 별개로 그분을 우상화하거나 영웅화 시키고 싶지 않았다. 영화 배경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인동초라는 별명을 얻기 전, 촉망받는 젊은 정치인 시절을 그린다. 그래서 이 사람의 이데올로기를 파고들기보다 서창대가 바라보는 시선으로 굳은 신념을 지닌 젊은 정치인 김운범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는 설명이다. 


감독은 김운범을 제가 생각하는 '어른'의 모습으로 봤다. "요새는 어른답지 못한 사람에 꼰대라는 말을 많이 쓰지 않나. 실존 인물의 정치적 업적을 미화하지 않되 그 성격은 너무도 이상적인 어른의 모습으로 그리고 싶었다"고. 김운범은 그야말로 이상향에 가까운 사람이다. 정직한 대의명분을 가졌고, 치열하고 야비한 선거판에서도 "어떻게 이기는지보다 왜 이겨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말하는 꼿꼿하고 고결한 이다. 변성현 감독은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데 저랑은 너무도 다른 성격이라 전 아마 안 될 것 같다"는 너스레로 웃긴다.   


반면 한국 정치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에도 대중에게 익히 알려진 바가 없는 엄창록은 오히려 접근이 쉬웠다. "김대중 대통령 자서전에 몇줄이 나와있다. 선거판의 귀재인데 상대 진영으로 넘어갔다고. 그런데 여기에 대한 원망도 크게 없었고 제가 느끼길 그 문장에서 애틋함이 읽혔다." 도대체 어떤 인물일까 호기심에 여러 자료를 찾아봤다. 그 이름이 거론된 모든 자료를 다 뒤져봤고, 가족들 수소문도 해봤지만 찾지 못했다. 이처럼 알려진 정보가 없다는 게 오히려 신기했고 창작자로선 "끼어들 여지가 있어 마음에 들었다"는 감상이다. 


그렇게 그려낸 서창대는 대의를 위해서 어떤 명분이라도 내세운다. 저들이 하는 마냥 더 비겁하고 야비한 수를 써서라도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김운범과 같은 이상을 꿈꾸지만 계속해서 충돌이 일어난다. 영화에서 특히 마음에 드는 점은 서창대를 마냥 미화하지 않는것이다. 한국 정치사의 무서운 폐해인 지역감정을 조장한 이가 바로 엄창록이라는 썰을 짚고 넘어간다. 이에 감독은 "처음부터 미화하지 않고 이를 짚어주려 했다. 초반 서창대의 선거 전략은 일부러 귀엽고 유쾌하게 그리며 '재치 있는 캐릭터'로 보이길 바랐다. 또 이를 통해 당시 선거 운동이 얼마나 조악했는지를 그리려 했다. 이후 창대가 한 행동은 똑같다. 하지만 그것이 무겁게 받아들여지길 바랐다. 그러면 우리가 초반에 재밌게 봤던 지점도 다시 돌아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감독이 실존인물에 느낀 감상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분의 개인적인 설계만으로 지역감정이 생기진 않았겠지만, 그 썰이 사실이라면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죄인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렇기에 엔딩에서도 이를 분명히 했다. 극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 '빛과 그림자'처럼 각자의 소신을 지킨 두 사람이 오랜 시간이 흘러 재회했을 때 더욱 밝아진 빛의 김운범과, 그런 빛을 똑바로 마주할 수 없는 그림자의 창대의 표정을 그려낸 것은 감독의 의도였다. 


해당 신의 여운은 상당한데, 그동안 쌓아올린 두 사람의 만남, 갈등, 결별, 재회의 서사는 여느 멜로물 못지않게 애틋하고 절절한 까닭이다. 이에 감독은 "제가 늘 쓰는 작법에 멜로가 있는 것 같다. 이런 작법으로만 글을 써왔고 제 모든 영화가 독립영화 시절부터 이 방식을 선호했다. 어쩌면 다른 걸 못하는 걸 수도 있다. 의도하지 않은 의도였다고 보시면 된다"고 쿨한 답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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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의도에 따르면 영화는 크게 3막으로 나뉜다. 1막은 번번이 낙선하는 김운범과 서창대의 첫 만남 이후, 기발한 전략으로 선거에서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경쾌하고 가볍게 그린 선거 드라마다. 2막은 신민당 대선 후보 경선을 통해 치열한 선거판의 전략과 열기를 그리며 정치드라마의 장르적 방점을 찍는다. 3막은 달라진 관계를 맞이한 김운범 서창대의 각기 다른 길을 통해 어두운 드라마를 그린다.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3막에 달렸다. "가장 하고 싶은 질문을 던졌다. 옳은 목적을 위해 옳지 않은 수단도 정당한가. 내가 생각하는 정의가 과연 옳은 것인가. 한 번은 생각해봐야 될 것 같았다. 제가 어릴 때부터 살아오며 느꼈던, 옳다고 믿었던 것들에 대한 의심을 할 때가 있다. 이를 늘 고민하고 추구하는 것이 정의이지 않을까." 변성현 감독의 정의에 대한 변이다. 


이토록 우아하고 세련된 정치 선거 영화의 완성은 변 감독 특유의 스타일리쉬한 연출력 덕분이다. 하지만 감독은 이런 평가가 부담스럽다. "제가 생각하는 스타일리시함은 이명세 감독님이다. 얼마 전에도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봤는데 전 아마 이렇게 못 찍을 거라고 얘기했다. 그냥 클래식한 걸 좋아하고 하나하나 공들여 찍을 뿐이다. 저는 제 작품에서 그저 배우들이 더 잘 돋보이길 바라고, 배우들에 더 공을 많이 들인다"고 손사래다. 결과론적으로 이런 평가는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 덕분이라고 덧붙인다. 과거 함께 작업한 스태프들이 감독의 신작을 위해 전부 다시 뭉치는 것만 봐도 얼마나 의리 있고 대단한 일이냐 싶은데 정작 변성현 감독은 "제 힘이라기보단 워낙 사적으로 자주 만나고 친해서 그렇다"고 저를 낮춘다. 괜한 겸손이 아니라 진심으로 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쿨함이다. 문득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지는 변 감독이다. 그러자 "솔직한 편인 것 같은데 그렇게 완전 솔직하진 않고, 놀기도 되게 좋아하는데 노는 것만큼 되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고 잠깐의 궁리 끝에 내놓은 답변이 이렇다. 


'킹메이커'를 완성한 후, 진심으로 영화 일을 하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단 그다. "진짜 백프로 진심"이라고. 이처럼 달변은 아니어도 말재주 없는 이 쿨한 말속에 다 전하지 못한 진심이 엿보이는 사람이다. "시대의 걸작은 안 되더라도 '저 사람 작품은 볼만하다'는 이야기는 들을 수 있도록 열심히 성의껏 영화를 찍고 싶은 바람"이라는 변성현 감독의 진심이다.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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