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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메이커' 이선균, 그림자에 불어넣은 숨결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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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2-01-24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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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치사에 굉장한 족적을 남겼음에도, 그 누구도 자세히 알지 못하는 이가 있다. 존재도 이름도 숨겨진 선거 전략가, 그림자처럼 가려진 그 인물에 배우 이선균은 기어코 숨결을 불어넣는다. 


서슬 퍼런 군부독재 시절, 번번이 낙선하는 정치인 김운범(설경구)이 있다. 빨갱이라 매도되고, 온갖 방해 공작에 본질이 훼손돼도 변함없이 눈부시고 고결한 이상과 신념을 좇는 이. 한편으론 미련하다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서창대(이선균)는 그런 그가 좋았다. 언감생심 바랄 수 없는 제 이상향을 실현시켜줄 그 사람을 동경했다. 비록 그의 그림자가 돼 어둠 속에 갇힐지라도 함께 하는 것이 기뻤다. 그들의 이상은 같았다. 세상을 바꾸기 위함 염원. 하지만 이를 향해 가는 길이 너무나도 달랐던 두 사람은 결국 갈등을 빚고 이들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영화 '킹메이커'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선거 전략가 엄창록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된 영화다. 이선균이 처음 대본을 봤을 땐 서창대가 꽤 부담스러운 캐릭터였다. 이 인물을 담아낼 그릇이 될까 하는 두려움이 컸다. 게다가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하지만, 알려진 사실이 너무도 없다. 풍문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많은데 정확한 기록은 없다. '선거판의 여우'라고 불릴 만큼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자문을 구할 정도의 전략가인데 왜 역사적 기록은 없을까 의문이었다. 이에 대한 부담이 상당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한편으론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 만큼 캐릭터를 구축할 때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 양반이 왜 전면에 나오지 못했을까 하는 당위성을 갖고 서창대의 과거와 트라우마를 만들어가며 연기했다"는 이선균이다. 그가 서창대를 구축한 핵심은 '트라우마'였다. "굉장히 똑똑하고 통찰력 있는 친구인데 이북 출신이라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빨갱이로 몰려 죽임을 당한 것을 직접 목격하며 큰 딜레마와 트라우마를 가졌을 것이고 '어떻게 살아남을까'를 고민하는 유년기를 보냈을 거다.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세상을 바꾸고 싶단 이상적인 꿈을 꿨지만, 여러 가지 한계가 있었고 이를 대신해줄 무언가를 종교처럼 바라고 찾았을 거다. 그렇게 찾은 대상이 김운범이란 인물이었다." 이선균은 서창대라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공감하며 숨결을 불어넣었다. 서창대에게 김운범은 그토록 애타게 찾아 헤맸던 자신의 꿈과 이상을 대신 구현해줄 사람이었다. 


극 중 서창대는 명석한 두뇌를 활용해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선거 전략을 펼치고, 이전까지 연속 낙선의 고배를 마시던 김운범은 덕분에 선거에 연이어 승리하며 당을 대표하는 대통령 후보까지 올라서게 된다. 영리하고 기발한 선거 전략가와 강직한 정치인의 시너지는 그 자체로 통쾌한 감상을 준다. 하지만 이선균은 이 와중에도 섬세하고 예민한 서창대의 심리를 놓치지 않는다.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숨어 있어야만 했던 킹메이커. 그의 열등감과 욕망은 이상과 동경에 가려져 있지만, 저 수면 아래 조금씩 불안하게 일렁이는 순간들을 잘도 포착해내는 이선균이다. 그는 "서창대 본인의 욕심도 있었지만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을거다. 하지만 김운범이 점점 커질 때마다 그 뒤에 그림자로 있는 서창대가 느끼는 상실감도 커졌을 것 같다. 여기서 부딪히는 갈등이 큰 인물이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복잡하고 섬세하고 미묘한 캐릭터"였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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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서창대는 김운범과 큰 갈등을 겪고 돌이킬 수 없는 길로 향해 간다. 이들의 감정이 극대화되는 서재 신은, 이선균이 꼽은 가장 좋아하는 신이기도 하다. "전환점이 되는 신이라 신경을 많이 썼고 잘하고 싶었던 장면이다. 두 인물의 갈등과 관계가 가장 명확하게 보여지는 장면이라 좋았고, 저나 설경구 선배님이나 감정에 동화돼 호흡도 좋았고 시너지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며 만족감을 드러낸 그는 "창대가 가졌던 여러 가지 말 못 할 감정들이 폭발하고 터지는 신이기에 그 장면이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이었다"고 회상했다. 


자신의 이상과 실현을 대신 발현할 수 있는 인물에 대한 순수한 동경과 애정, 그러나 끝내 감출 수 없던 욕망과 서운함의 발현, 결국 틀어진 믿음으로 빚어진 오해와 갈등의 결말까지. 이선균 역시 씁쓸하긴 마찬가지였다. "측은했다. 관객도 그런 서창대를 보고 씁쓸하고 측은한 마음을 느꼈으면 했다." 


영화는 정치 드라마지만, 이처럼 관계에 집중하고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만인의 딜레마를 건드린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이든 정당화시키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물음, 특히 서창대는 오직 승리를 위해 지역 감정, 뇌물 공세, 정치 공작 등 한국 정치사의 민감하고 어두운 요소들을 서슴지 않고 행하는 인물인 만큼 이선균의 고민은 더 깊었을 법도 했다. "우리 역사 속의 안 좋은 관습이잖나. 정확한 기록은 아니지만, 이 인물 일화가 이북 출신이라 굉장히 많은 차별을 받고 트라우마를 지녀서 누구보다 이를 잘 알 텐데도 다시 지역감정을 만드는 배후가 됐다는 설이 참 아이러니하더라. 한편으론 그러니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이 양반의 계략과 전략을 두려워하고 존중했던 인물이지 않았을까." 그 역시도 많이 후회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한 인물의 드라마틱한 서사를 깊이 있게 소화한 이선균이지만 기라성같은 선배 배우들, 그리고 무엇보다 설경구 덕분이란다. "저는 롤모델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제게 영향을 준 작품들 속에 경구 형이 있었다. 1994년 연극 '지하철 1호선'의 경구 형을 보고 정말 행복했고 '박하사탕' '오아시스' 속 그 모습도 정말 쇼킹했다. '나도 저렇게 연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설경구 선배님과 모든 선배님들을 정말 존경한다"고. 그리고 "작품은 분명히 감독을 닮아 있다. '킹메이커'가 유니크하고 스타일리시하게 보였다면 그건 변성현 감독님의 힘이다. 훌륭한 감독이고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인물"이라며 변 감독을 향한 존경을 보낸다. 그에겐 '킹메이커'를 촬영하는 매 순간이 행복이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얻는 건 결국 뛰어난 전략이 아닌, '진심'이라는 그다. "어떤 이득을 바라지 않고 솔직한 믿음과 진심을 유지하려는 느낌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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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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