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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메이커' 설경구의 '멋'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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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2-01-24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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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설경구의 내재된 야성미와 섹시함을 발견케 하고 '지천명 아이돌'이란 유례없는 초특급 팬덤을 안겨준 영화 '불한당', 그 변성현 감독과의 재회라는 것만으로도 영화 '킹메이커'는 이미 엄청난 기대작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설경구는 눈에 띄게 멋스럽다. 정치인 캐릭터, 그것도 엄청난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한 인물인데도 특유의 멋짐이 부각되는 건, 비단 외양의 스타일링 때문은 아니다. 설경구가 그려낸 강직함, 올곧음, 그 고귀한 신념 등에서 이미 많은 의미가 함축된 '멋'을 뿜어낸 탓이다. 


설경구가 '킹메이커'에서 맡은 역할은 번번이 낙선의 고배를 마시면서도 세상을 바꾸기 위해 도전하는 강한 집념의 정치인 김운범이다. 그가 얼마나 올곧고 정직한 인물이냐 하면, 온갖 부패와 독재로 위협받고 매도당해도 결코 흔들리거나 휘어지는 일 없이 제 신념과 성품을 꼿꼿이 지킨다. 정당한 목적을 위해 과정과 수단까지 정당해야 한다는, '어떻게가 아니라 왜 이겨야 하는지가 더 중요한 법'이라는, 정치가로서의 뚜렷한 대의명분을 지녔다. 비현실적인 영화적 캐릭터로 보이겠지만,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이 있다. 평생을 군부독재와 맞서 투쟁하며 민주주의를 완성한 거목,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변성현 감독, 그리고 온전히 다시 뭉친 '불한당' 팀과의 재회라는 설렘과 반가움보다는 덜컥 겁이 났단 설경구다. "아시다시피 김운범을 보면 연상되는 분이 있다. 정말 많은 존경을 받은 큰 사람이시기에 스스로도 어려워했다. 제가 따라 한다고 따라지는 것도 아니고, 모사를 한다고 해도 되지도 않을 것이었다"고. 애초 시나리오에는 떡하니 배역 이름이 '김대중'이었으니, "변성현 감독이라 거절은 못하겠지만 걱정이 많은 캐릭터"였다는 설명만 봐도 그 부담감이 오죽했으랴 싶다. 배역 이름을 김운범으로 바꾸니 그나마 심리적으로 편해진 모양이다. 그가 특별히 애정하고 인정하는 '불한당' 팀이 이 작품을 어떻게 만들어나갈까 궁금함도 생겼단다. 그때부터 김운범에 체화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됐다. "참고 자료를 봤지만 따라 하려고 하지 않았다. 닮으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주어진 대사에 집중하려 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 만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설경구는 김운범의 외로움을 먼저 봤다. 언제나 강직하고, 누구나 동경하는 그의 모습에서 오히려 외로움을 느꼈다니 의아했다. 하지만 "위치상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 인물이고 정치 지도자라는 입장에서 이 조직을 이끌고 나가는 사람이지만 현실은 자신이 주도적으로 끌고가기보다 주로 리액션을 한다. 참모들 얘기 듣다가 실없는 소릴 한다거나, 주변에 사람은 많이 있지만 혼자 감당해야 할 것이 많고 외로운 캐릭터" 였다는 진지한 설명에서, 그가 얼마나 이 인물을 깊이 헤아렸는지가 엿보였다. 더불어 그를 불쑥 찾아온 선거 전략가 서창대(이선균) 캐릭터와 비교했을 땐 더욱 평면적으로 보였단 설명이다. "서창대는 무언가를 감추고 있지만 욕망은 불타오르고, 김운범을 통해 자기 욕망을 표현하며 빛으로 나아가고 싶은 권력욕까지 다양하게 드러내는데, 김운범은 어떤 고저 없이 딱 소신 하나로만 버텨야 하고 큰 틀을 잡아줘야 하는 인물이었다. 기복이 있어야 재밌기도 할 텐데 감정을 표현해선 안 되는 역할이라 어려웠다"는 설경구는 제게 주어진 숙제였다고 했다.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 품고 있어도 표정에는 만감이 교차하는 모습이 보였으면 했다. 


고민은 기우였다. 극 중 설경구가 흔들림 없이 지켜낸 소신은 인물의 타고난 기품과 성질을 드러내며 우러름을 이끌어낸다. 그렇다고 마냥 경외의 대상만은 아닌 것이 은근히 실없는 모습, 따스한 성품 등이 언뜻 비치는데다 목포 연설 신에서 그가 보인 간절함과 눈물은 인간적인 동요를 일으킨다. 그야말로 숨 쉬듯 자연스레 김운범 그 자체가 된 설경구다. 


그 또한 목포 연설 신을 회상하며 "실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설문을 많이 인용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그때 당시 어떤 모습이었을까, 어떤 분위기였을까, 조금 상상하게 되더라. 순간에 동화됐다고는 감히 부끄러워 말하지 못하지만, 그때 당시 상황을 상상해보니 연설이라기보단 처절한 싸움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그때 감정이 훅 올라옴을 느꼈다. 덧붙여 "군부독재의 엄청난 권력에도 굴하지 않는다는 건 정말, 그 시대에는 더욱 대단한 일이다.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같았다. 그 엄청난 힘에 맞선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분이었다"고 다시금 존경을 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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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치사 속 가장 상징적인 인물과, 그의 그림자에 가려진 인물. 하지만 설경구는 정치 이야기보단 두 사람의 이야기로 접근해주길 바랐다. 그가 서창대에 느끼는 감정도 깊었다. 느닷없이 제 앞에 나타난 인물이지만 그의 솔직함과 인간적인 끌림에 반했고, 목적은 같지만 너무나 다른 과정에 대한 불안감을 느꼈을 것이었다. 결국 다른 길을 가게 됐음에도 그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을 가졌을 것이라고. "김운범에게 서창대는 네 번의 실패 끝에 드디어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본 무대에 설 수 있는 시작을 하게 해준 인물이라 생각한다. 실제론 어떤 사이고 어떤 전개가 펼쳐졌을진 모르겠지만, 영화 속 두 사람은 서로 틀어졌어도 믿으려 하고 서로 원망하지 않았던 존재라고 생각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운범과 서창대의 각기 다른 삶의 방식. 이 중 뭐가 옳은 것이라고 장담할 순 없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 김운범의 너무나도 우직한 소신이 결코 미련하거나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대망의 에필로그는 참으로 만감이 교차한다. 설경구는 이에 대해 "관객에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당신은 어떠냐고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많은 일과 시간을 겪고 나서 그토록 바라던 꿈을 이루는데, 저는 이에 대한 성취감보다 오히려 먹먹하고 기분이 좀 그렇더라"고 회상하며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진 그다. 알고 보면 이토록 여리고 선한 이다. 


한편으론 김운범이 추구하는 이상향과 신념은 너무나 올곧고 고결해서 벅찬 감상이 들기도 했단다. "수단과 목적이 전부 정당성이 있어야 한단 그 신념에는 동의하지만, 제가 그렇게 살 수 있을지는 장담 못하겠더라. 물론 배우로서 제가 하는 일도 큰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가 강한 소신이나 신념을 갖고 임한다기보단, 하루하루 내일의 신을 위해 며칠 전부터 고민하고 노력하는 책임감을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 제 삶의 목표"라는 그다. 그저 묵묵히 제 몫을 다할 뿐인 그 모습이 도리어 듬직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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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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