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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일의 밤' 김태형 감독의 확고한 세계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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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1-07-12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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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깨달음에 대한 깊은 고찰을 통해 강렬한 주제의식을 구축하고 이를 형상화하는 것. 데뷔작 '제8일의 밤'으로 새롭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한 김태형 감독은 여러모로 알고 싶어지는 인물이다. 


2500년 전, 인간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지옥문을 열려고 했던 요괴는 붉은 눈과 검은 눈으로 나뉘어 부처에 의해 사리함에 갇혔다. 다시 '깨어나서는 안 될 것'을 지키기 위한 '지키는 자'의 사투를 그린 영화 '제8일의 밤'. 


이 이야기의 시작은 김태형 감독의 특이한 경험에서 비롯됐다. 어느날 자려고 벽을 보고 누웠는데 감은 눈앞에 등 뒤의 방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는 듯한 착각을 했다. 그때 문득 생각했다 '머리 뒤에 눈이 떠져 있다면 어떨까?' 그렇게 적어둔 '뒤통수, 머리카락 사이에 숨어 있는 검은 눈알'이라는 짧은 메모는 6년의 방대한 자료조사 끝에 철학적 메시지가 담긴 오컬트 스릴러 '제8일의 밤'으로 다시 태어났다. 


불교의 금강경을 바탕으로 한 불교적 색채가 짙은 오컬트 스릴러 영화는 생소하고 흥미롭다. 김태형 감독은 "마침 불교적인 철학을 많이 생각하던 찰나"였다며 6년 전 시나리오 구성 당시를 회상했다. 대표적인 불교 경전인 금강경은 붓다와 제자 사이의 대화 형식으로 돼 있으며, 석가모니가 대중에게 설법하는 장면도 담겨 있다. 그 장면을 상상해보던 감독의 머릿속에는 '그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공간에 어느 순간 요괴가 와서 속닥거리며 방해하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여러모로 창의력과 상상력이 남다른 김태형 감독이다. 감독은 그렇게 떠올린 요괴라는 이미지를 차용해 '깨어나서는 안 될 것'의 존재를 만들었다. 


이어 초고를 만들고 무려 6년의 각색 과정을 거쳤다. 감독은 "처음엔 호흡이 긴 이야기였고, 영화를 만들기 위해 압축하는 과정이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고 털어놨다. 실제 영화는 등장인물의 전사와 관계성 등이 암시하는 의미가 크지만 생략된 듯한 장면이 곳곳에 있다. 감독도 이를 아쉬워하며 "만약 좀 더 시간이 주어졌다면 인물들을 좀 더 제대로 보여줄 수 있었을 거다. 표면적으로 보면 삭제되고 줄인 부분이 많이 있다"고 털어놨다. 


이를테면 청석의 목에 걸린 묵언 수언 목걸이는 실은 진수의 것으로 과거 '지키는 자'가 되기 위한 과정을 거칠때 했던 수행이라는 설정 등이다. 이밖에도 감독이 전한 흥미로운 설정들이 꽤 많다. 드라마처럼 긴 호흡으로 스토리를 끌어갔다면 좋았을 법도 했다. 하지만 감독은 영화를 목표로 연출부 일을 하면서 꿈을 키워왔던 만큼 영화에 대한 애착이 컸음을 인정했다. 


장르적인 설정을 부각하기보다 메시지에 치중된 스토리 또한 감독이 고심하던 부분이었다. 감독은 "처음 구상을 할 때부터 공포 안에 드라마가 있지 않고, 드라마 안에 공포가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그래서 메시지 전달에 좀 더 집중하려고 노력했다"며 "메시지 중심을 잡다 보니 시나리오 과정에서 배제된 이야기가 많이 있었다"고 했다. 다만 이번 작품에서 오컬트 스릴러 장르에 대한 아쉬움을 느꼈을 관객들을 위해 다시 한번 시도해서 균형을 맞춰 더 확실한 재미를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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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협한 생각을 갖기보다 어떤 평가나 결과도 진지하고 겸허하게 수용하는 감독의 자세가 바람직하다. 이에 김태형 감독은 "영화를 공부하며 상업영화가 가져야 할 덕목 두가지를 배웠다. 하나는 믿고 자본을 투자해준 분들에 손해를 입히면 안 되고, 나아가 이익을 드려야 된다는 것. 또다른 하는 관객들에게 재미를 선사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진지하게 설파했다. 메시지 전달이나 명확한 주제 의식은 감독으로서 고집을 갖고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지만, 상업영화감독으로서 이 두 가지 덕목을 바탕으로 새기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번 작품은 관객을 즐겁게 해야 하는 부분에 있어 호불호가 갈린 것 같다. 그렇기에 다시 한번 더 오컬트 장르로 확실한 재미를 드려야 하지 않나 싶다"는 감독에게서 책임감과 솔직한 진정성이 엿보인다. 


비록 자신이 구축한 방대한 세계관이 영화에 다 담길 수 없어 아쉬움을 자아냈을진 몰라도, 김태형 감독은 오래 준비한 데뷔작을 통해 확실한 주제 의식은 물론 이를 담아내는 대담하고 흥미로운 창의력과 탄탄한 깊이를 엿보게 했다. 


특히 '깨어나선 안 될 것'의 정체가 사실은 신도 타인도 아닌 인간 스스로 만들어낸 지옥이라는 설정은 허를 찌르는 비유법이다. 탐욕·분노·어리석음 등의 번뇌 또는 과거의 업(業)에 대한 속박, 무한한 번뇌와 번민의 굴레를 끊어내는 것은 결국 스스로의 몫이다. 무수히 많은 고통과 좌절, 희망과 기쁨을 맛보며 정해진 삶을 살아가는 것. 그 인생의 진리와 깨달음이 담긴  묵직한 메시지는 깊은 여운을 남긴다. 데뷔작에 이처럼 명확하고 깊이있는 메시지를 담는 감독은 드물다. 


이에 감독은 "개인적으로 종교는 사람을 위한 핵심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생각해, 여러 종교들이 하나로 뭉친단 이념을 갖고 있다. 불교적인 색채라고 하지만,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며 공부하고 준비했던 과정은 서양 철학 쪽에 가까웠다"고 했다. 그중 '인간이 고통에서 어떻게 벗어나는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고. 불교적인 철학에서 봤을 땐 인생은 다 찰나이고 이 과정에서 허무함과 허망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결국 인생의 의미를 어떻게 찾아나가는 것인가를 핵심 포인트로 삼았다. "사람 내면을 보면 좀 더 이해가 쉬웠다. 과거에 대해 후회하며 분노하고, 미래가 어떨지 불안하며 두려워한다. 누구를 용서하고 누구에 감사하는 건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것을 생각하고 판단하는가는 결국 개인적인 선택 지점"이라며 "그런 내러티브가 있는 극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확고한 세계관의 본질을 전했다. 


더불어 감독은 "이야기 속에도 형이상학 적인 것을 형이하학적으로 표현하고 싶어했다. 예를 들어 사랑이나 미움, 이런 형이상항 적인 것을 눈에 보이게끔 표현하고 싶고 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인간이나 이겨낼 수 있는 것도 인간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렇기에 '제8일의 밤' 속 인간이 스스로의 결연한 의지를 갖고 속박에서 벗어나 구원을 얻는 웅장하고 경이로운 서사가 탄생할 수 있었다. 이처럼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깊은 주제의식까지 관통하는 이야기를 연출하고 이미지화하는 감독의 탁월한 재주는,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였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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