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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어보' 이준익 감독, 낭만의 아웃사이더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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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1-04-01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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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아닌 '사람'을 먼저 보는 시선은 따스한 연민과 깊은 이해로 가득하다. 그 시선으로 담은 이야기는 특별한 온기와 생동감을 갖는다. 조선의 한 학자가 남긴 수산학 서적 '자산어보' 속 한 구절은 이준익 감독의 그 시선과 맞닿아 펄떡이는 생명력을 갖고 살아 숨 쉬며 강렬한 여운과 울림을 주는 이야기로 탄생했다. 


이준익 감독이 열네 번째 영화 '자산어보'로 돌아왔다. 


신유박해로 유배지에 오른 학자 정약전이 흑산도에서 해양 생물을 접하고 이를 세세하게 기록한 '자산어보'의 실제 서두에는 창대라는 섬사람이 등장한다. 두문사객하고 고서를 탐독하나 집안이 가난해 서적이 많지 않은 탓에 식견이 넓지 못한 이지만, 성품이 차분하고 정밀해 해양 생물을 접하는 대로 세찰하고 침사해 그 성리를 터득하고 있는 이. 그를 맞아들여 연구하며 완성한 책이 '자산어보'라는 것이다. 조선시대 학자가 남긴 어류 서적 속 정약전의 면모와 그를 도운 창대와의 관계를 발견하고 방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이준익 감독에게서 특유의 관찰력과 타고난 '이야기꾼' 면모를 엿보게 한다. 감독은 이미 정약전의 세계관은 '자산어보' 서두에 창대의 이름을 기명한 것에서부터 강하게 드러났다고 봤다. "신분을 떠나 수평 사회를 지향하는 그의 사회관이 반영된 것"이라고. 


역사 속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파고드는 것 또한 감독답다. '동주'의 송몽규가 그랬듯 '박열' 속 박열과 후미코가 그랬듯. 이준익 감독은 "원래 내가 아싸 출신이라 그래"라며 한결같은 너스레다. 모든 집단의 8대 2 법칙을 생각하면 '인싸'는 소수다. 다수가 '아싸'이니 '아싸'를 위한 영화를 만드는 것뿐이라고 너털웃음이다. 하지만 소위 '비주류'를 향한 감독의 애정은 늘 각별했다.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획일적인 시선을 거부하고 개성과 자유를 추구하는 감독의 가치관 때문일 터. 그런 감독이기에 정약전에 매료됐을 게 자명했다. 


정약전의 동생 정약용은 나라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실학서로 유명한 '목민심서'를 쓴 이다. '목민심서'는 어진 임금과 관료가 백성을 다스리면 나라가 번창한다고 믿는, 감독 표현에 의하면 "왕을 전제로 왕 밑에 신하로 들어가 백성들을 지혜롭게 다스리게 하는 공무원 행동 지침"이라면 정약전의 '자산어보'는 실질적으로 백성들이 학문할 수 있는 요즘 말로 '백과 사전'이었다. "그 가치는 어떻게 구분되어지는가를 따라가다보니 '자산어보' 안에는 생활이 있고 '목민심서' 안엔 사회의 한 단면과 부조리가 있더라"는 감독이다. 


이준익 감독이 말하길 집단이 유지되려면 수직사회의 형성은 필요하다. 수직사회는 집단을 지탱하는 중심이 되기에 '목민심서'도 소중한 가치관을 갖고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집단주의적 사상을 강요했을 땐 집단에 의해 희생되는 개인이 발생한다. 개인의 희생을 최소화하며 개인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것이 수평 사회다. 요즘 같은 개인주의 시대 현실에 맞는 역사 관점으로 보면 정약전의 세계관과 그 가치는 중요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두 책과 관련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구성하게 됐다고.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입장의 차이다. 그 차이가 서로에게 배타적인 사회적 갈등으로 커질 때가 있는데 그 갈등을 줄이고 서로를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는 감독이다. 


극 중 정약전, 약용 형제는 각각 유배지에서도 서로의 안위를 묻고 생각을 주고받는다. 사상은 달랐음에도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이 한시를 통해 우아하고 운치 있게, 때론 애절하게 담긴다. 감독은 이를 두고 "서로 반대되는 이들의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것, 그리고 깊은 이해를 하는 것. 그게 조화"라고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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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사극에서 일상성이 보이는 영화를 찍고 싶은 감독의 바람은 "먹고 채집하고 호기심을 갖고, 일상에서 만들어진 책"인 '자산어보'의 의미와도 일맥상통했다. "일상은 유쾌한 거다. 이 영화는 일상이 주가 됐다. 조선 시대의 일상의 기지라는 것이 유쾌하고 활동적인 것으로 그려지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는 감독이다. 


흑백으로 담긴 흑산도의 절경 또한 먹으로 빚은 수묵화 같이 아름다우면서도 때론 선명하고 펄떡이며 요동치는 격정을 담기도 한다. 이에 감독은 "'동주' 때의 흑백은 조심스러운 선택이었다. 동주란 인물은 순수의 상징이었고 이에 어긋나게 인물을 담으면 그 자체로 훼손하는 느낌이라 너무 조심해서 함부로 찍을 수 없는 조심스러운 흑백이었다면, '자산어보'는 좀 더 역동적으로 찍었다. 그러면서도 흑산도란 자연 환경이 미학적으로 담기는 흑백 촬영을 시도했다. '동주'는 방어적이었다면 '자산어보'는 공격적인 흑백"이라고 설명했다. 


정약전의 유쾌한 면모를 담아냈지만, 사실 그는 시대란 비극에 맞물려 배척된 지식인으로서의 비애가 있다. '자산어보' 서두에 적힌 "흑산이 두려웠다"는 그의 고백은, 강한 이상과 신념을 지닌 지식인 이면에 인간의 외로운 내면을 엿보게 하며 연민을 품게 했다. 하지만 감독은 "배척당한 사람이 남은 생에 무엇을 위해 사느냐, 이에 따라 가치관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애수가 아닌 의지를 봤다. 약전은 다른 세상을 꿈꿨다. 왕도 없고 계급도 없이 모두가 평등한 사회, 감독은 이를 사상적 근대성으로 봤다. "'자산어보'의 성질이 그렇다. 성리학에선 그게 무슨 가치가 있겠나 싶지만 정약전은 체제적인 근대까지 생각한 것"이라고. 


물론 인간적인 연민으로 보자면 세상 끝에 유배 온 정약전의 마음은 삶에 대한 의지가 많이 꺾였을 것이었다. "처음 흑산도를 갈 때 태풍 온 다음날 가서 정말 무서움을 넘어 지옥이라 생각했다. 1800년대에 목선을 타고 흑산도로 가는 정약전의 심정은 어땠을까 싶더라"고. 하지만 유배지에 온 조선 학자를 품어준 가거댁과 흑산도 사람들이 없었다면 정약전은 없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관리들의 수탈에 극도로 피폐해진 백성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지는 비극의 클라이맥스는 형언할 수 없는 충격과 슬픔을 준다. 실제 정약용의 시 '애절양'과 맞물려 드러나는 개인과 시대의 비극은 더없이 강렬하다. 감독은 "애절양은 정약용이 직접 그 시대에 목도한 걸 쓴 거다. 그 시대의 선명한 단면을 그려주지 않으면 이 영화는 껍데기라 생각했다. 이 영화에 알맹이를 담기 위해 넣은 신"이라고 그 의미를 전했다. 


이토록 깊이 있고 알면 알수록 가치 있는 메시지가 담긴 '자산어보'다. 매번 이야기의 힘으로 관객을 홀리고, 이처럼 곱씹을 수 있는 삶의 가치와 여운을 전하는 이준익 감독의 기조는 늘 한결같다. 감독은 "오늘같이 내일을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내일 뭐가 되어야지 하면 평생 오늘을 못 산다. 그저 오늘을 살라"고 삶의 가치를 전한다. 그저 주어진 오늘의 인생을 즐기는 감독의 여유와 낭만은 여전했다.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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