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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 허명행 감독, 그저 액션 '멋'에 취하지 않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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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4-02-09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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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역사의 수많은 레전드 액션 신을 탄생시킨 명실상부 대한민국 액션 마스터 허명행 무술 감독. 그의 첫 연출작인 넷플릭스 영화 '황야'는 아포칼립스 장르라는 무한함 속에서 그동안 쌓아온 액션 노하우를 총망라한 작품으로, 공개 동시에 글로벌 1위를 기록하며 전세계 팬들을 사로잡았다. 준비된 감독의 화려한 신호탄이다. 


모든 것이 폐허가 된 세상, 오직 힘이 지배하는 무법천지 속에서 주인공 남산(마동석)은 닥치는대로 사냥해 부족한 물과 식량을 얻고, 마을 사람들을 보호하며 살아간다. 어느날 봉사단이라 자칭하는 인물들이 마을의 어린 소녀를 보호하겠단 명분으로 데려가지만, 여기엔 미치광이 의사 양기수(이희준)의 음모가 있다. 결국 남산은 수나를 구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허명행 감독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마동석은 '황야'에서 만인이 그에게 바라는 유쾌하고 따스한 히어로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다만, 아포칼립스 장르를 빌어 그동안 쉬이 할 수 없었던 온갖 액션을 그야말로 미친듯이 선사한다. 마동석이 샷건을 날리고, 마테체를 휘두르며, 빌런들의 목을 따는 모습을 볼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이미 그 자체로 짜릿하고 신선하다. "마동석이 하는 청불 액션을 제대로 보여 드리고 싶었다"는 감독은 "동석 형이 보여준 메이커적인 액션은 '범죄도시' 시리즈인데 거기선 형사로 나오기에 제압하는 액션이 주라서, 직접적인 상해를 입히는 건 배제됐다. '황야'라는 아포칼립스 배경을 두고, 파충류화된 뱀 인간들을 세우면 이전까지 허용할 수 없던 액션들을 다 보여줄 수 있겠단 확신이 생겨 여기에 중점을 뒀고, 마동석의 액션을 좋아하고 기대하는 팬들은 너무 만족하실거란 생각에 신나게 액션 디자인을 했다"고 전했다. 


마동석의 잔혹한 고어 액션은 괴기스러운 파충류 인간을 처단하며 더욱 통쾌한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하고, 매드 사이언티스트 면모를 지닌 캐릭터를 부각해 만화적이고 극적인 효과를 더한다. 감독은 이같은 양기수 캐릭터에 대해서도 "그 사람 입장만 보면 최선을 다한 사람이다. 자신의 신념으로는 이 배합만 성공하면 이 세기말에서 다들 신인류로 태어나 잘 살수 있는데 왜 나를 괴롭히느냐는 입장이다. 그런 방향성을 확실히 했고, 실질적인 선과 악의 구도이긴 하지만 양기수가 괴물화가 돼 남산과 대결하는 흐름은 피하고 싶었다"고 분명히 했다. 그렇기에 양기수가 생산한 뱀인간과의 최후의 대결이 펼쳐지고, 스스로 몰락한 괴물같은 의사 양기수의 결말이 더욱 뻔하지 않은 신선함을 야기한다. 


파충류인간에 대한 설정도 꽤 디테일했다. 감독은 "영화 전반적으로 양기수 실험실에 토막난 도마뱀들이 있는 것은 잘못된 실험체를 나타낸다. 권상사가 쥐를 먹거나 최후 액션에서 얼굴 표피가 벗겨지는 것도 뱀을 차용한 것이다. 악어가 식량을 안 먹고도 최 2년을 살 수 있고, 뱀도 겨울잠을 자지 않나. 도마뱀 역시 꼬리가 잘려도 자생한다. 양기수 박사가 꿈꾸는 것이 식량과 물 섭취 없이 버틸 수 있는 인간의 변화란 설정이었다. 이런 파충류를 대상으로 과도한 실험을 해서 파충류 인간이란 부작용이 생긴 것"이라며 "남산이 초반에 악어를 사냥한 것도 결국 이를 처단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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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아포칼립스 세기말 장르에서 으례히 관객이 기대하는 요소들을 깊게 다루지 않았다는 점에선 아쉽다는 평가도 더러 있다. 이런 장르물에서 심도 깊이 다루는 인간 본성과 내면의 모습, 탄탄히 쌓은 인물의 서사와 스토리적 갈등 없이 오로지 질주하는 마동석의 청불 액션만 내세웠다는 지적이다. 특히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같은 배경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영화인만큼 두 작품의 비교는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허명행 감독은 이 또한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는 "'황야'는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나온 이후 기획된 것이 아니라 동시에 시작했다. 아쉬워하는 분들의 반응도 충분히 공감한다. 특히 서사 이야기에 대한 불호가 작업 당시에도 있었다. 애초 기획한 각 캐릭터의 서사가 많았으나 이를 영상적으로 풀려다보니 너무 헤비해지더라"며 "액션 영화가 길어지면 개인적으로 지루함을 느껴서 선택을 해야 했다. 서사를 덜어내고 간단한 이야기 구조를 잡았다. 이 장르를 택한 건 영화를 풀기 위한 소재와, 판타지에 대한 주무대가 되는 설정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잔인한 액션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런 설정에서 충분히 존재할 법한 빌런을 설정하고 이를 처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덕분에 액션 수위를 높여 유연하게 보여줄 수 있을 거란 판단에서였다. 


그는 "26년 동안 무술 감독으로 액션에 몸 담은 사람으로서, 제가 연출을 한다 했을 때 '얼마나 연출을 잘할까' 바라보는 기대치가 있으셨을 거다. 하지만 그 기대에 보답 못한 건 맞다"고 하면서도 "하지만 프로젝트 포커스 자체가 액션으로 설정했기에 만약 다른 부분에 욕심을 부렸다면 더 중심을 잡지 못하는 영화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제 스스로 아쉬운 건 없다. 그런 부분들은 조급해하지 않고 차차 연출하며 분명 다 보여드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서사 중심의 이야기를 한다면 그 또한 잘 풀수 있을 거란 자신이 있다"고 했다. 


이는 이유있는 자신감이다. 실로 감독이 설정한 영화의 수많은 비하인드를 들으면 이토록 디테일하고 흥미로울 수가 없다. 또한 감독으로서의 확신과 역량도 분명했다. 이를테면 마동석의 위트를 더욱 부각하고 싶어 고집한 장면들이다. 감독은 "심각한 액션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마구 몰아붙이면 지칠 수 있으니까 피식피식 웃는 타이밍이 있길 바랐다. 남산이 등에 맨 칼을 못 잡는 것도 그렇고, 사랑꾼도 더 재밌는 게 없나 찾다가 나온 단어다. 워낙 호흡 잘맞는 크루들과 함께 하니까 절로 아이디어가 나오고 정말 즐겁게 작업했다"며 "톤앤매너가 심각하게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마 배우님의 액션과 코믹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종합선물세트처럼 드리고 싶었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처럼 허명행 감독은 속된 말로 그저 '액션 멋'에 취해 액션만 고집하는 이가 아니었다. 연출의 방향성을 명확하게 정하고 이에 대한 흔들림 없이 소신을 지키는 것이다. 그의 범상치않은 내공과 내면의 강직함도 느껴진다. 그가 단순히 선망받는 무술감독으로 안주하지 않고, 연출로 분야를 확장한 것도 "후배들 위해서 해야될 일이라고 여겼다. 저는 서울 액션 스쿨 소속의 무술 감독이고, 수장인 정두홍 감독님과 오래전부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목표가 스턴트 사업부도 있지만, 영화 제작 사업부에서의 성공을 바랐다. 시나리오 개발하고 작업하고 저도 계속 성장했고 이제는 후배들도 제작자로서 꿈을 꿀 수 있고, 감독으로 끌어줄 수 있는 그런 상황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사명감 덕분이었다. 


감독은 "4월엔 '범죄도시 4'가 개봉된다. 그 전에 먼저 찍은 '황야'다. 이렇게 데뷔작으로 관객을 먼저 만날 수 있어 기분 좋고 만족스럽다. '범죄도시'는 이제 4편까지 나왔으니 마석도란 캐릭터가 어떤 변주를 줘야하고 관객이 뭘 기대할지에 포인트를 맞췄고, 원래 마석도가 지닌 유연함과 코믹함의 기조는 유지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 지, 명확히 알고 이를 실행하는 이의 자신감이 이처럼 보기 좋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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