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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데이즈' 유해진, 타고난 자연스러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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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4-02-06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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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느 때라도 이질감이 없다. 배우 유해진의 연기가 그렇다. 어떤 공간 속에 놓여있든 마치 오래전부터 그곳에 존재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타고난 그의 장기다. 


'영끌'해서 장만한 소담한 건물의 '갓물주'. 까칠하고 차가운 도시 남자. 유해진이 영화 '도그데이즈'에서 맡은 민상 캐릭터의 첫인상이다. 누가 봐도 능력 있는 남자다. 그러나 출근길에 개똥을 밟고 제 건물의 세입자이자 동물병원 원장인 진영(김서형)에게 분노의 잔소리를 하는 모습은 '쪼잔한 갑질'의 전형이다. 게다가 반려견의 생사가 시급해 가벼운 접촉사고를 낸 보호자를 병원까지 좇아와서 뺑소니라며 경찰까지 부를 만큼 얼핏 인정머리 없는 '비호감'의 기운도 풍긴다.


하지만 그런 민상을 유해진이 연기한 탓에, 썩 밉지 않다. 민상이 회사 프로젝트를 위해 본의 아닌 반려인 연기를 능청스럽게 해내고, 진영과 티격태격하면서도 미묘한 '로코' 기운을 풍기고, 이가운데 은근 속정 깊은 내면을 언뜻 드러낼 때. 역시나 빠져들 수밖에 없는 남자로서의 매력이 어필된다. 


유해진은 "각 인물들의 에피소드가 나뉜 이야기인데 자연스럽게 엮이고 덜컥거리는느낌이 없더라. 얘기가 따로 놀지 않아 좋았다. 처음에 걱정한 건 심심하고 밍밍할 거란 생각이었는데 제 스스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엄청난 사연을 녹여낸 영화는 아니지만, 보기에 큰 스트레스 없이 상투적이어도 재미가 없진 않은 영화"라며 "자극적인 이야기도 필요하지만, 이런 말랑하고 소소한 이야기도 있어야 하지 않나"라고 감상평을 전했다. 


반려견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이 예기치 못한 인연을 맺게 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도그데이즈'. 극 중 유해진은 반려동물에 치를 떨고, 유기견의 밥그릇도 걸리적댄다며 발로 차버릴만큼 유난스럽게 그려지지만 실제론 반려견을 사랑하고 애틋하게 떠나보낸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촬영하며 세상을 떠나보낸 반려견 겨울이 생각이 유독 많이 났단 그다. "한 번이라도 겨울이와 대화할 수 있었다면 구태의연한 사랑한단 말보다 그저 일상적인 말을 듣고 싶었을 것 같다. '밥 줘. 푸짐하게 줘라' 이런 거"라며 반려견을 떠올리는 그 표정이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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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상이 주차장에 숨어 사는 유기견 '차장님'을 잠시 맡아주는 과정에서 천둥번개가 치자 무서워 품을 파고드는 작은 강아지를 보며 슬쩍 미소짓는 장면 역시 유해진의 '진짜' 표정이 나온듯했다. 그는 "다른 분들도 개를 보는 눈이 그렇게 그윽하게 느껴졌다고 하시더라"며 멋쩍어하면서도 "민상도 어렸을 때 반려견에 대한 아픔이 있었고, 그렇게 좋아하고 소중하게 길렀던 개가 있었음에도 바쁘게 살다 보니 이를 잊었다. 회사 다니며 출세하고, 건물만 있으면 된다는 주의였다. 이성에 대한 관심도 없었다. 그러다 강아지를 매개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런 민상을 보며 저 역시도 소중한 정서를 잊고 살았던 건 아닐까 싶었다"고 털어놨다. 


민상의 어린 시절 에피소드 역시 유해진이 직접 아이디어를 낸 경험담이다. "그때 우리집 개 이름이 쫑이였다. 어렸을 때 학교에 갔다 왔는데 개가 없어졌다. 그때 얼마나 트라우마가 컸던지 우는 건 당연하고 어른들이 싫었다. 당시 초등학교 2~3학년 때였는데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계속 큰 충격으로 남아 있었다. 사회생활하며 잊고 살았다. 그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 


이처럼 '도그데이즈'는 그에게 애틋하고 빛바랜 추억을 다시금 꺼내보며 회상할 수 있던 작품이었다. 여기에 유해진 전매특허(?) 말랑한 '로코 케미'까지 덤으로 딸려온다. 동물을 '극혐'하는 건물주와 개 털을 옷에 달고 살만큼 열혈 동물 애호가인 세입자, 이 상충되는 설정의 두 사람이 은근히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 마음을 열어가고 각자의 아픈 속내를 공유하며 마음을 쌓아가는 순간들이 그리 달달하고 흐뭇할 수가 없다. 유해진은 '케미'의 완성을 모두 김서형에 공을 돌렸다. "이번에 서형 씨가 앞머리를 내리고 처음 현장에 왔을 때부터 '그래, 이런 것 좀 해. 너무 좋다'고 했다. 늘 생각했던 이미지와 달라 보이니까 수수하고 털털해 보였다. 스타일적으로도 서형 씨가 많이 맞춰줬다"고. 


'레슬러'의 황우슬혜, '달짝지근해'의 김희선, '도그데이즈'의 김서형까지. 범상치않은 기운을 가진, 그러나 사랑스럽고 독특한 여성들과의 '케미'가 유독 어울리는 그다. 이에 "저도 평범한 멜로면 재미가 없는 것 같다. 이런 의외성이 있을 때 재미있는 것 같다"며 동의했다. 이어진 '지천명 멜로 장인'이란 수식어에 큰 웃음을 터뜨린 그는 "관객들이 좋게 봐주셔서 다행이다. '유해진 로코 동의 못하겠어' 하면 더 할 수 없지 않나. 전작 '달짝지근해'로 한 고비는 넘은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곤 "젊었을 때 했다면 더 제대로 보여줬을 텐데"라며 능청이다. 


하지만 그는 "멜로가 강점은 아닌 것 같다. 어떤 이야기든, 그 속에 들어가려고 한다. 그게 통하면 멜로든 스릴러든 대중이 잘 받아들여주시는 것 같다"고 이내 진중한 답변이다. 


이처럼 사람 냄새 철철 나는 일상의 소담한 모도, 압도적인 위압감으로 숨막히는 연기를 보여준 미치광이 왕의 모습도 유해진은 매 순간 언제 어디서나 그 모습에 완벽히 녹아들어 있다. 그럼에도 이 같은 인정과 호평은 대중이 제게 친근감을 느껴주신 덕분이라며 겸손인 그다. 다만, 영화 '올빼미' 속 미치광이 왕을 연기할 땐 오래간만에 정말 즐거웠다는 속내다. "마치 연극 무대에 올라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하는 느낌이었다. 연극 무대가 가진 선 굵음과 몰입, 에너지가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연기하며 농담 한 마디 없었던 현장이었지만 정말 행복하게 연기했다. 정말 큰 만족감이 있었다"고. 수상과 흥행의 결과보다 이런 연기 맛을 느낀 것만으로도 행복했다고 말하는 그는 천생 배우다. 


"제 안에서 나올 수 있는 게 사실 뻔하다. 제가 많은 연기를 하더라도 저는 저라서 캐릭터를 매번 새롭게 창조하고 그러질 못한다. 다만 제가 할수 있는 건, 어느 작품이든 그 얘기 속에 들어가면 좋겠단 바람을 갖고 한다. '왜 저 속에서 혼자 겉돌아?'라고 느껴지시지 않게 연기하려 한다"는 유해진이다. 매 순간 진심을 다한 연기를 선사하기에 그가 주는 익숙한 기시감도, 새로운 낯섦도 모두 반가울 따름이다. 


사진=CJ ENM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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