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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데이즈' 윤여정, '이슬의 명예'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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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4-02-06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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꼿꼿하고 멋진 여인, 배우 윤여정에 대한 감상이다. 조감독 출신과 19년의 인연으로, '사람' 하나만 보고 영화에 출연했다고 확고하게 단언하는 그에게서 입바른 말과 미사여구로 감히 꾸밀 수 없는 진심이 느껴진다. 


'그것만이 내 세상'으로 인연을 맺은 김덕민 감독의 첫 연출작 '도그데이즈'의 출연 제안을 받고 기꺼이 응해준 윤여정은 "사람이 참 간사하다. 전 쭉 활동하고 있었는데 '미나리'로 상을 탔다고 주인공으로 섭외가 들어오더라. 그걸 보며 참 씁쓸했다. 이번 영화는 아무것도 안 따지고 감독님만 보고 했다. 우린 오래전에 만났는데 둘 다 취급 못 받을 때였다. 19년 동안 조감독을 하고 있다는데, 감독이 입봉 하면 꼭 하리라 전우애를 느꼈다"고 거침없이 얘기했다. 


'도그데이즈'는 반려견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이 예기치 못한 인연을 맺게 되며 시작되는 새로운 관계와 변화를 따스하고 유쾌하게 그린 영화다. 윤여정은 극 중 세계적으로 성공한 건축가 민서 역을 맡았다. 감독은 처음엔 캐릭터 이름까지 윤여정으로 할 만큼 예의와 존경을 비췄으나 윤여정은 오히려 너무 전형적인 자신처럼 보여질 것이 "싫다"고 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의상과 신발을 모두 제 것으로 준비할 만큼 감독의 의도를 파악한 윤여정이다. 감독이 윤여정을 통해 담아내고 싶은 캐릭터의 모습을 헤아려 캐치한 것이다. 


슬림한 핏의 기품있는 드레스 차림으로 우아하게 등장해, 건축인으로서 강단에 서서 자연스러운 입담과 성공한 자의 여유를 보여주는 윤여정의 모습은 첫 신부터 세계적인 건축가 민서의 모습을 고스란히 느끼게 했다. 윤여정은 "캐릭터도 나하게 비슷하게 써놨더라. 그래서 나같이 하면 될 것 같아 전부 내 옷, 내 신발을 착용한 것"이라며 "다른 작품 할 땐 이렇게까지 하지 않는다. 이번에 의상값도 안 들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덧붙여 "감독이 뭘 원하는지를 알고, 내가 해야 될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 때 가장 편안하다"고 했다. 


민서는 덕망 높고 성공한 여성의 모습 이면에 사람들과 함께 식사 하는 것도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라 말하고, 나 홀로 넓고 고요한 집에서 반려견 완다만을 의지하며 지낸다. 인물의 고독함과 쓸쓸함을 그저 덤덤히 담아내는 그의 모습에서 깊은 연륜이 느껴진다. 하지만 윤여정은 "늙어가는 건 외로운 거다. 외로운 연습을 해야 한다. 전 늘 외로웠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그런 민서가 반려견 완다를 잃고 이 과정에서 작은 인연을 맺게 된 배달부 진우(탕준상(와 함께 엮이는 과정은 유쾌하고 따스하며 적지 않은 감동을 준다. 특히 의외의 관계에서 나오는 "라면먹고 갈래요?"란 대사는 코믹하면서도 말랑하고 가슴 따뜻한 대사다. 넓고 좋은 집에서 살아도 홀로 쓸쓸히 의식적으로 끼니를 때우는 민서가 마음 쓰여 건네는 진우의 정이 느껴진다. 윤여정은 "그 아이가 그때 애드립을 넣고 싶어 하더라. 난 구식 배우라 느닷없이 애드립을 하면 곤란하고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디서 주워 들어와서 하고 싶다고 준비해 온 걸 해도 되느냐 하는데 그런 걸 보면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며 웃음이다. 


그렇게 진우의 좁고 열악한 고시원 방에 발을 들인 민서가 짓는 표정도 퍽 인상적이다. 그곳에서도 작은 꿈을 좇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 연민과 대견함을 느낀 어른의 표정이다. 그렇기에 이후 아이를 걱정하고 염려하며 애정 어린 잔소리를 하고, 이로 인해 발끈하는 진우의 가시돋힌 말에 상처받는 모습까지 이 잔잔한 듯 일렁이는 감정의 서사를 윤여정은 그저 덤덤하게 무심하게 그려낸다. 


윤여정 또한 "워낙 무심하고 오래 살아서 그런지 그렇게 감동받을 것도 없고 슬플 것도 없이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면서도, 상처받을 때가 있다. 늙으니까 노여움도 많아지고 아직도 이 나이에 배신을 겪고 그런 상황일 때 정말 끝이 안 나는구나 싶을 때가 있다"며 "제가 무슨 도인도 아니고 저도 상처를 받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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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민서가 하는 무심한 듯 심금을 울리는 대사들은 특히 인상깊다. "넌 안 늙어봤지만 난 젊어봤잔니"란 대사는 갖은 풍파와 인생을 겪어온 어른이 진심으로 할 수 있는 마음 씀씀이다. 윤여정은 "제 역할에 충실해서 했다. 딱히 주옥같다는 생각은 안 해봤다"면서 "청춘이 안 됐어서 나름 충고를 하는데 작가가 잘 쓴 말이다. 전 젊은이들에 이야기를 안 한다. 나하고 다른 세상에 사는 이들에 내가 감 놔라 배 놔라 한다고 해서 들을 리가 없고 오지랖이 된다. 그런 충고의 말을 싫어한다. 저였다면 그런 말을 안 했을 것"이라고 했다. 


간혹 많은 이들이 그를 인생의 롤모델로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도 "우습다.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인생을 살면 되는거다. 당신이 살아야 하는 인생과 내가 살아야 할 인생이 다른데 갑자기 무슨 롤모델이냐"며 쿨한 답변이다. 


이처럼 가식 없고 거침없는 그다. 그렇기에 어떤 미사여구나 입바른 소리가 없이 그가 보여준 말과 행동이 더욱 깊은 의미를 지니는 것일 테다. 그는 김덕민 감독에 대해 "현장에서 오랜 조감독 생활을 했기에 워낙 준비를 많이 해오고, 스태프나 배우나 곤란한 상황을 안 만들며 효율적으로 일하더라. 우리 쪽을 생각하며 일해주는 사람이었다. 어떤 때는 사람을 잘못 보기도 하는데 이번엔 정말 사람 잘 봤구나 싶었다"고 했다. 이 다정할 것 없는 직설적인 말이 그의 애정 표현 방식인 셈이다. 


윤여정은 "현장에 일하러 왔으면 민폐를 끼치지 않고 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배우로서의 철칙을 전하기도 했다. "나는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반세기 전의 세계를 살았다. 그 사람들은 꼰대가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만 스스로 조심하고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돈 벌려고 알바로 시작한 배우였고, 우리 때는 시집 잘 가는게 중요했다. 결혼하면 은퇴가 당연시되는 시절이었다. 이혼하고 다시 돌아왔을 때, 아무도 다시 써주지 않았다. 김수현 작가가 저와 한 약속이 있었다. '넌 재능이 있다. 나의 도움 없이 자립할 수 있다. 내가 지금 드라마에 널 쓰는 순간 너는 혼자 자립할 수 없는 거다'라고 했다. 그렇게 2년 동안 아무도 써주질 않았다. 김수현 작가가 '촌스러운 놈들'이라 하며 그 약속을 깨고 저를 써줬다. 정말 고마웠다. 서른여덟에 다시 시작했다. 그때 느꼈다. 배우로 돌아오길 잘했구나." 이 무심한 속 얘기 속에 지난한 세월과 말 못 할 감정이 다 담겨있는 듯하다.  


"전 다정다감한 사람은 아니다. 로망도 없고, 후회도, 낙담도, 변명도, 아양도 없이 한길을 살다보니 외진 길이 됐을 뿐." 마종기 시인의 '이슬의 명예'라는 시를 인용하며 '이 사람도 나 같은 삶을 살았구나' 싶었다는 윤여정. 먹고살기 위해 배우를 했던 사람이 어느새 노배우가 되어 돌아본 인생에 대한 감상이다. "바라볼 일보다 반추하는 일 밖에 없다. 그래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오래 활동하고 싶다"는 그 한마디 속에 배우로서의 자부심과 애정이 깊이 묻어나는 건 당연했다. 


사진=CJ ENM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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