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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 죽음의 바다' 김윤석, 성웅을 체화하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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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3-12-23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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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 프로젝트 최종장에서 마지막 이순신이 된 김윤석. "이건 끝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마치 이순신 장군의 결기와 기개가 엿보인다. 그만큼 인물과 혼연일체 돼 깊은 정서적 공감과 사명을 다한 그였다.


'노량: 죽음의 바다'를 참여한 소감에 대해 "빈말로 하는게 아니다. 2차 세계대전에 관한 영화만 봐도 수십 수백 편이다. 이순신 장군도 7년의 전쟁을 치렀다. 우리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이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더 뛰어난 작품이 나오길 기대한다"며 깊은 진심을 전한 김윤석. 그는 그저 "'노량'의 의미를 관객에게 잘 전달했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 먹먹한 마음"이라고 했다. '노량' 속 이순신의 모습이 관객에 설득력을 갖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마음이라고. 


처음 이순신 역을 제안 받았을 땐 이전 시리즈와 인물에 대한 부담보다는 "내가 이 배역을 할 나이가 됐구나"하는 감회에 젖었단 솔직한 감상이다. "30년이 넘게 연기를 하는데 연극에선 20대 때 '로미오와 줄리엣'을, 30대 때는 '햄릿'을, 40대에는 '맥베스' 그 이후 방점을 찍으면 리어왕을 한단 얘기가 있다. 제가 50대에 이순신 장군을 연기하게 됐구나." 계속 어려운 역할이 들어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나이 들어가며 주어지는 역할이 다르고 이에 맞는 혜안을 기르고 있나, 이렇게 나이가 들어가는 건가 싶었다고. 


이후 든 감상은 김한민 감독에 대한 감탄이었다. "이순신 장군에 관한 이야기를 세편으로 나눠 찍겠다 하고 그걸 실제로 완성시켰다는 건 진짜 대단한거다. 기발하지만 얄팍한 아이디어는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이 사람의 끈기와 집념, 성실성, 현장에서 흔들림없이 가는 기운이 대단했다"고. 김윤석도 그 못지않게 촬영 들어가기 전부터 김한민 감독과 만나 시나리오를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겨가며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그 의미에 어떤 대사와 행동을 하는지를 집요하고 철저하게 파악했다. "'명량'에선 열두 척의 배로 기적적인 승리가 필요했고, 전쟁 양상이 완전히 뒤집어지는 '한산'에선 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했다. '노량'에선 승리보다 이 전쟁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하루종일 이야기를 나눴다"고. 비단 자신뿐 아니라 감독은 모든 배우, 스태프들과 모든 장면에서 어마어마한 회의를 했다. 심지어 조명의 빛이 조금이라도 틀어져선 안 된단 완벽한 마음으로 임했다. 이렇게 10여 년을 넘게 이 시리즈를 임했을 감독을 보곤 "믿고 맡기겠다"는 생각뿐이었단 그다. 


성웅 이순신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위인이다. 하지만 간접적으로나마 캐릭터로서 인물을 체화하니 김윤석이 느낀 감회는 더 깊고 애틋했다. "이순신 장군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명량'과 '노량' 사이라고 한다. 한양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한다. 왜군들이 점량한 육지로는 갈 수 없어 뱃길로 한양에 아들을 보러 가던 노모가 배에서 돌아가신다. 하늘이 무너지는데 그렇게 고문을 시키고 계급장을 뗀 백의종군이 된 상황에서 다시 '명량'의 전투에 나가라 한다. 이 사람 몸은 이미 반 죽었다. 손은 계속 떨고 각혈한다. 그럼에도 '명량'에서 기적에 가까운 승리를 거뒀다. 그 보복으로 왜군들이 아들 면이를 죽인다. 그 시절이 이순신 장군을 가장 피폐하고 반 시체로 만든 1년이라고 하더라. 그것을 알고 난 뒤에 이 사람은 더 이상 영웅과 성웅이 아니라 700년 전에 이 땅에 있었던, 7년간의 전쟁에서 군인의 신분을 다한 아주 불행한 남자란 생각이 들더라." 


극 중 셋째 아들 면의 환영을 좇으며 정신적인 고통을 드러내는 이순신의 모습은 통탄스럽기 짝이 없다. 실제 김윤석 또한 그 장면을 연기하며 온 몸이 덜덜 떨리더란다. "부모가 살면서 받는 가장 무서운 천벌이 자식이 죽는 걸 보는 거라고 하지 않나. 저도 이 나이에 이 역을 맡아 몰입하며 연기하다 보니 정말 자식이 죽는 걸 내 눈으로 본 것처럼 몸이 떨리고 대사가 잘 안 나오는 경험을 했다"는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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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고통스러운 심정이었음에도 최후의 전장을 결단하고 흔들림 없는 기개로 굳은 의지를 보이는 이순신 장군이다. 참혹한 전장 속에 고독하게 서 있던 그가 동이 틀 무렵 기묘하게 환상을 보는 신은 특히 인상깊다. 떠나보낸 동료들과 아들이 모두 돌아와 그의 곁을 지키는 신은 예견된 장군의 최후를 알기에 더욱 가슴 아프지만 그의 말 못 할 고단함을 위로하는 뭉클한 장면이기도 하다. 감독은 이 신을 두고 '장군님이 예지몽을 많이 꾸시는데 그 해를 보면서 본인에게 어떤 운명이 다가왔다고 느껴지시지 않을까요? 어려운 말인데, 어쩌면 이 해는 내가 인생에서 보는 마지막 해구나. 그런 운명을 느끼시지 않았을까요'라고 얘기했단다.


"7년간의 전쟁에서 본인에게 가장 힘이 되어준 장군들이 환영이 되어 나타난다. 부산포 해전에서 대조총에 맞아 즉사했던 녹도만호 정운 장군, 물길을 가장 잘 아는 아름다울 향기로울 향이라 해서 향도란 별명이 있는 어영담 장군, 이순신이 자신보다 어리지만 훨씬 뛰어나다 했던 전라우수사 이억기. 이 친구는 칠천량 해전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스스로 바다에 뛰어들어 죽었다. 죽기 전 '우리는 질 겁니다. 집니다'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얼마나 분하고 억울했으면. 이 귀한 사람들을 다 앗아간 전쟁이구나. 그 장면에서 저도 무언가의 감정이 격하게 밀려들었다." 이들의 사연을 하나하나 상세히 읊으며 충혈된 눈으로 안타까움을 표하는 김윤석이다.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도 말했듯 "파렴치한 임금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이토록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도 반드시 치러야 했던 이유, "올바른 끝을 내야만 진정한 새로운 시작이 된다. 멈추고 없던 일로 하자고 하며 잊혀버리면 그 억울함을 어떻게 달랠까"라는 그의 말이 깊이 사무친다. 


이토록 인물과 혼연일체 된 그 모습이 낯설고 놀랍다. 이미 김윤석은 연기야 두말할 것 없는 배우지만, 그 어느때보다 더 깊고 강렬한 감상을 전한다. 실존 인물의 진심까지 헤아리고 공감하며 최대한으로 담아내고자 했던 그의 진정성 때문 아닐까. 


모두가 기억하는 이순신 장군의 최후 유언을 찍는 시도 그는 "진실되게 표현하자"는 생각 뿐이었다. "슬프고 외로워도 그렇기에 더 절제하며 연기했다. 어떤 배우가 VIP 시사회를 보고 나서 '가슴에 칼을 담은 사람의 모습이 저런 모습이구나'라고 했다더라. 함께 연기한 정재영 씨도 '형님이 기적적인 승리도 거두어보고 압도적 승리도 거두어봤지만 더 피폐하고 고독해진 이순신의 모습으로 보였다'고 하더라." 그는 그저 김한민 감독이 그리고자 했던 '노량'에서의 이순신 모습을 "제가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잘했던 못했던 관계없이 최선을 다했다는 얘기를 드리고 싶다"고 담담하고 겸허한 자세다. "누가 뭐래도 소신껏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고, 7년 동안 난중일기를 쓸 만큼의 성실성, 본인이 맡은 책임감을 다하는 모습. 과연 또 누가 그렇게 할 수 있겠나." 그가 인물을 통해 체화하며 실로 마음에 새긴 이상이었다.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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