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 죽음의 바다' 김한민 감독이 말하는 '이순신 정신' [인터뷰] >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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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 죽음의 바다' 김한민 감독이 말하는 '이순신 정신'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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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3-12-2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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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일생을 이토록 깊이, 그 오랜 시간 동안 열과 성을 다해 그리고자 하는 마음을 감히 재단하기도 어렵다. 이 모든 것이 그저 천행이었다 말하는 김한민 감독이다. 


2014년부터 시작된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프로젝트'가 '명량' '한산'을 지나 '노량: 죽음의 바다'로 위대한 방점이자 마침표를 찍었다. 감독의 지난 소회가 어땠을까 몹시 궁금했다. 하지만 감독은 "과연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 언제일까요?"라고 되물었다. 참 많은 감회가 담긴 한 문장이다. 


"10년이 이렇게 지나갔구나. 이순신 장군의 말을 빌리면 '천행'이었다. 만들어야 할 작품을 운 좋게 만들게 됐고 꼭 보여드려야 할 작품을 보여드리게 돼서 참 감격스럽고 마무리 짓게 돼 다행이고 뿌듯하다"는 그는 처음부터 이순신 3부작에 대한 뚜렷한 의식을 갖고 목표를 이룬 것이 다행이라고 했다. 


"단순히 '명량'의 인기에 힘입어 속편을 만드는 것이 아닌", "'한산'과 '노량'이 왜 존재해야만 하고 만들어져야 했는지에 대한" 목표와 사명감이 확실했던 감독이다. '노량'은 지난한 7년 전쟁의 종지부를 찍는 거룩한 승리의 해전을 그린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의 최후가 예견됐기에 마냥 통쾌한 승리감에 도취될 수 없다. 통렬한 승리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려 했던 감독이다.  그래서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위대한 유언 이후 '결코 이 전쟁을 이렇게 끝내선 안 된다'는 장군의 대사를 새로이 덧붙였다. 감독은 "제가 감히 주제넘게 장군님의 마지막 한 마디를 덧붙였다. 열도 끝까지라도 가서 기어이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고자 했던 장군님의 의지와 정신을 요약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창조하기보단 추출했다. 장군님의 정신을 요약한 것이었고, 이렇게 해도 그렇게 나를 나무라실 것 같진 않았다"고 했다. 


'노량' 속 이순신 장군은 오랜 전장에 정신적인 고통까지 더해져 피폐해진 마음을 속으로 삭힌다. 어머니와 아들, 동료를 잃고 패망 위기의 나라를 구하고도 그 공로를 인정받지 못하는 비통한 영웅의 면모는 사무치게 시리다. 그럼에도 장군은 다 끝난 전쟁이라고 말하는 상황에서 승리에 도취되지 않고 완전한 종결을 내기 위해 고독한 전장에 오른다. 이는 일말의 여지도 없이 항복을 받아내야만, 후대에 또다시 백성들이 고통받을 일이 없을 거라 여긴 판단에서다. 마지막까지 나라와 백성을 생각한 거룩한 성웅 이순신의 면모다. 그 의미와 주제의식을 전하고자 했던 감독이다. 


"지혜롭고 후대를 생각하는 혜안을 가진 그런 인물로서의 이순신 장군을 표현하기에 김윤석이란 배우가 아주 적합하고 희귀한 존재였다"는 감독은 특히 그와 함께 완성한 장군의 마지막 장면에 대한 감회에 젖었다. "사실 모두 아는 역사이자 결말의 느낌이 있기에 안 찍을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에 장군의 진정성이 들어있기에, 아무리 치열한 해전을 찍는다 한들 그 진실을 표현하기에 올바르게 기능하지 못하는 사상누각일 것이었다." 결국 정공법을 택한 감독이다. 이순신 장군의 진정성을 어떤 톤 앤 매너로 가져가야 더 잘 드러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눈을 감지 말고, 돌아가시는 순간에 화석화 됐으면 했다"는 감독의 말에 김윤석 또한 격한 공감을 해줬다고. 장군의 모습은 최대한 절제되고 담백하게 그려낸데 반해 북소리가 계속해서 관통하며 그의 정신을 담아내는, 웅장한 의미와 상징성을 드러내는 연출이다. 이 장면만으로도 감독이 얼마나 깊은 예의와 존경을 갖추고자 혈안을 기울였는지 고스란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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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의 치열함을 담아내기 위한 노력도 실로 대단했다. 역사적으로 굉장히 치열했던 전투였고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감독은 "이 전투를 따라가게 하는 이해도와 명징성이 뚜렷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전장의 중심에 이순신이 고독하게 서 계셨으면 좋겠단 생각이었다"고. 이름 없는 일개 병사를 시작으로 참혹한 전장의 순간들을 지나 이순신 장군을 향하는 롱테이크 신 역시 인상 깊은 장면이다. 그 끝에 동이 트고 그 여명을 바라보며 환영을 보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은 울컥한 감상에 젖게 한다. 떠나보낸 동료들과 아들이 돌아와 제 곁을 지키는 모습이 그의 고단하고 지난한 전장의 세월을 위로하며, 그 결단을 지지하는 듯한 모양새다. 그리고 자신의 최후까지 직감한 장군의 비장함이 가득하다. 이 거룩하고 웅장한 해전을 구현하기 위해 무려 800명의 인원이 참여했다. 굉장한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이토록 정성과 노력을 쏟아부은 감독에게 후회는 없었다. 다만 제가 그린 상황임에도 장군의 마지막 모습들을 직면하니 편집할 때부터 그렇게 눈물이 나더란다. "장군님의 마지막 대사에도 눈물이 나고, 어떤 때는 아들이 북을 치는 장면에서 눈물이 나고, 또 어떤 때는 장례 행렬에서 백성들과 같이 울기도 했다. 이런 팔불출 같은 경험을 했다"며 멋쩍어하지만, 한 사람을 이토록 깊이 존경하고 앙모하는 그 마음이 가늠할 길 없이 깊고 절절하다. 여전히 가슴이 답답하거나 마음이 우울할 때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읽으며 위로와 용기를 얻는단 감독의 마음은 진심이다. 그것이 절실히 묻어나는 '이순신 3부작 프로젝트'는 대한민국 영화사에도 기록적인 발자취가 아닐 수 없다. 


"이순신 장군 정신의 리마인딩을 그리고 싶었다. '명량'은 모두가 두려움에 빠진 상태에서 용기로 전환하는 그 중심에 이순신 장군이 있었고 그 정신이 우리에게 정말 중요하다고 본다. 집단적 두려움에 빠진 상태를 용기로 바꿀 수 있단 건 정말 대단하고 비단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인류에도 필요하다. '한산'은 전체적인 수세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능동적인 공세로 바꿔내는 지점이 보인다. 그런 결정적 전투를 지휘하고 수행하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에서 평소 준비돼 있지 않고 집중력 있게 수행하지 않았다면 그런 승세를 잡아낼 수 없다고 여기기에 그 거짓됨 없는 정직한 정신이 매우 소중하게 느껴지는 거다. '노량'에선 부당한 침량을 통한 올바른 전쟁의 종결이 무엇일지 생각했다. 우리 역사 속에 이것이 이뤄지지 않아 지속적으로 불행한 결과가 벌어지는 사례를 종종 봐왔기에 그런 의미에서 이순신 장군의 정신은 현대에도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게 아닐까." 


이 모든 업적을 이루고도, 그저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감독은 마지막에 이르러 이순신 장군을 직접 볼 수 있게 되면 "저 한번만 쓰다듬어주시면 안 돼요?" 정도의 "어떤 애교나 아양, 내지는 비빔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며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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