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 죽음의 바다' 정재영이 느낀 먹먹함 [인터뷰] > 인터뷰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노량: 죽음의 바다' 정재영이 느낀 먹먹함 [인터뷰]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3-12-23 15:20

본문

c.jpg

오랜만에 스크린에 얼굴을 비춘 배우 정재영은 이순신 3부작 영화의 최종장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으로 분해 저만의 존재감과 위엄을 유감없이 뽐냈다. 잘 정리된 눈썹과 날카로운 눈매, 근엄하면서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풍채. 그리고 이순신을 향한 연민과 존경까지 고스란히 담아낸 그다. 


정재영은 김한민 감독에게 캐스팅 제안을 받았을 때, 제 역할보단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이야기에 더 집중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부분, 그 마지막을 어떻게 표현했을 것이며 어떤 느낌일까 기대를 하며 시나리오를 봤는데 생각 이상으로 먹먹하고 감동적이었다"는 그는 무조건 같이 참여해야겠단 생각이었다. 


결심은 좋으나, 명나라 장수인만큼 언어적 한계와 부담이 가장 막막하고 큰 걸림돌이었다. "여태껏 남의 나라 말로 연기한 적이 없더라. 연기 중에 언어가 반 이상을 차지하는데 사투리 구현하는 정도로 생각해야 하는 건지 가늠이 안 됐다. 처음엔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간단히 시작했는데 막상 하면 할수록 너무 어렵더라"고. 한국말로 연기할 때처럼 감정을 자연스레 실어 표현하기 위해 무려 반년을 외우고 익혔다. 은근 노력파다. 


게다가 "부족한 실력으로 진린이 우스꽝스럽게 보이면 무게감이 떨어질테고, 그러면 작품에 큰 누를 끼치는 것인데 촬영하면서도 너무 부담되고 걱정이 많았다"는 그에게서 단순히 제 역할에 대한 고민뿐 아니라 이순신 3부작에 대한 깊은 애정과 동경이 엿보였다. 


그의 말로는 20년 동안 네 편의 작품을 함께 한, 너무나 친한 형 허준호가 진린의 오른팔 등자룡으로 등장했음에도 현장에서 대화를 제대로 나누지도 못했다. 반가워서 한국말로 떠들다간 중국어 대사의 뉘앙스를 까먹을까 봐, 그 느낌을 잊지 않기 위해 말을 아꼈다는 것이다. 이에 허준호는 "내가 재영이한테 뭐 실수한 게 있었나" 따로 고민했을 정도란다. 


그는 "한국말로 연기해도 완성작을 보면 '저게 최선이었나, 뭔가 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데 이번엔 다른 나라 말로 하니 오죽 아쉬웠겠나. 내가 이 말을 백프로 이해하지 못하기에 더 풍부하고 정확하게 감정이 실리기가 어려운 것이 아쉬웠다"는 고충과 함께 "차라리 아무도 모르는 언어, 외계어로 연기하라면 자신 있게 할 수 있다"고 너스레다. 


언어적 한계를 제외하면 캐릭터에 대한 이해는 쉬웠다. 그는 "가상 인물이 아니라 실존 인물이고, 한편으론 이분에게도 누가 되는 연기는 하지 말아야겠단 생각도 있었다"며 "다른 작품에서 나온 진린은 이순신을 방해하는 포악하고 폭력적인 인물로 묘사가 되는데 '노량'에선 훨씬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순신과 진린의 우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며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그는, 척척박사처럼 진린에 대한 정보를 전했다. "실제론 이순신보다 두 살이 많았다. 그럼에도 그를 어르신이라는 뜻의 '노야'라고 칭할 만큼 좋아하고 존경하는 관계였다는 건 고증이다. 실제 후손 분들이 다 귀화해서 노량 해전이 있던 여수 남해에 자리를 잡고 살고 계신다. 이순신 장군님 후예들과 교류하며 잘 지내신다더라. 그만큼 신뢰가 있었단 얘기"라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정재영은 진린이 이순신을 생각하는 마음에 대해 "같은 생사를 건 경험을 한 동료로써, 존경하는 장군으로써, 형제보다 더한 전우애라는 게 있었을 것"이라고 가늠했다. "물론 한국 사람으로서 이순신 장군님에 대한 애정이 좀 더 보이지 않게 들어간 것일 수도 있다"고. 

 


노량죽음의바다_캐릭터포스터(진린).jpeg


그가 느끼길 '노량'의 김윤석은 "실제로 이순신 장군을 뵙진 못했지만,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 저렇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단다. "형이 입은 갑옷만큼이나 부담감이 많았을거다. 촬영 내내 영화에 나오는 모습 그대로 현장에 있었다. 아직도 말없이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잔상에 남는다. 문득문득 이순신 장군을 보는 느낌이었다. 장군님도 저렇게 고뇌하지 않았을까." 반면 "진린은 장군답지 않은 비단 망토 차림에 전쟁터에서는 더 사치스럽게 혼자 털 달린 옷을 입고 있어 불만이었다"는 찰진 입담으로 웃음을 자아낸 그다. 


이순신을 향한 안타까움과 먹먹함도 더욱 깊이 느꼈다. 전쟁의 끝이 눈 앞에 보이는데도 일본군의 철수를 용인하지 않고 진정한 항복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이순신 장군을 막아서며 실리를 찾는 진린의 모습도 심적으론 답답했다. "진린이 빨리 장군을 도왔으면 완전히 손쉽게 다 이겼을 텐데, 미적미적한 모습이 화가 났다. 하지만 이순신을 심적으론 너무 좋아해도 명나라의 대표 장수로서 본국의 실리도 좇아야 하는 입장"이었다. 


극 중 진린이 말한 "당신네 파렴치한 임금도 알아주지 않는 일"이라는 대사는 그야말로 가슴 아픈 비수다. 그 말을 한 정재영 또한 안타까웠다. "아마 당시에도 그 현장에서 생사고락을 같이 하면서 이순신 장군님의 뚝심이나 결단을 선뜻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을거다.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 임금도 이렇게 잘하는 걸 알아주지 않는데 왜 나라를 위해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이처럼 진린이 대신해주는 대사들이 많았고, 이에 대한 이순신 장군의 행동과 답을 그리고자 함"이 아니었겠느냐고. 자신은 그 역할을 수행한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는 그다. 


김한민 감독이 장장 10년을 달려온 이순신 3부작의 최종장에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그에게 큰 영광이었다. "단순히 흥미롭고 재밌단 생각만으론 이렇게 오랫동안 할 수 없다. 부모자식간의 애정만큼이나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될 거다. 이 정도로 누구나 다 아는 사람을 이렇게 깊고 오래 연구하고 애정을 갖고 3부작으로 재현해 낸 감독님께 대단하다고 말하고 싶다. 박수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는 여전히 '노량'의 동튼 바다를 오래도록 울리던 영화 속 북소리의 여운을 잊지 못한다. "영화를 다 보고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노량'은 통쾌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단순히 장군님의 최후를 그린게 아니라 참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고 전쟁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고. 다시 영화관을 찾아가 그 여운과 먹먹함을 느낄 거라는 그의 진심이다.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공감 0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추천뉴스

게시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