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김성수 감독, 비로소 완성된 그날의 퍼즐 [인터뷰] > 인터뷰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서울의 봄' 김성수 감독, 비로소 완성된 그날의 퍼즐 [인터뷰]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3-11-26 08:02

본문

김성수.jpg

열아홉 살 소년이 한밤 중에 숨죽여 들었던 두렵고 무시무시한 총성. 불안함을 뚫고 나오는 호기심과 그 후로 오래도록 가진 의문. 비로소 그날의 퍼즐 조각을 맞춘 이야기는 희대의 역작이자 수작이 되어 남았다. '서울의 봄' 김성수 감독이다. 


12.12 군사 반란 실화를 모티브로 한 '서울의 봄'은 김성수 감독에겐 오랜 염원이자 영문 모를 부채감을 안긴 작품이었다. 계속 자신 없어하면서도 이 시나리오를 놓지 못하는 제게 스스로 반문하기를 수개월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집에서 큰 잔치가 벌어져 방도 뺏기고 나가 있으란 말에 신나서 집을 나왔던 열아홉의 그가 거리를 지나는 장갑차를 봤다. 너무 신기해서 쫓아가는데 멀리서 총성도 들렸다. 지나가던 아저씨들이 어서 집에 가라 했지만 호기심이 왕성할 그 나이, 친구 집 옥상으로 가서 어두워 보이지도 않는 그곳을 응시했다. "모두가 그렇지 않나. 많은 세월이 지나도 인생에서 선명한 날. 또렷한 건 밤하늘의 찬 공기와 총소리가 너무 컸고, 너무 무서워서 서있지 못하고 웅크리고 앉아서도 계속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훗날 영화 감독을 데뷔하던 90년대 중반에서야 그날의 의문이 풀렸다. 허망했고, 분개했다. 패배의 상실감과 매캐한 최루탄 연기에 갇혀 흘러간 그의 지난 20대가 이런 이유에서였다니, 오랜 의혹이 해소됨과 동시에 큰 충격과 속상함에 빠져 있던 그다. '서울의 봄'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그의 표현대로라면 "혈관 속 피가 역류하는 듯한 전율"을 느꼈고 "내 마음은 어느새 잔뜩 겁에 질린 열아홉 살이 맞닥뜨린, 숨 막히는 그 겨울밤 속으로 정신없이 내달리고 있었다."


어쩌면 '서울의 봄'은 김성수 감독의 운명이었다. 그는 "절대 다큐 같아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영화 같아서도 안 됐다.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면 안 되는 영화였고, 그런 걱정과 염려. 마음의 긴장 상태로 이 영화에 임했던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웠다는 감독이다. 역사적인 기록에서 출발한 사건이지만 그 빈틈을 메꾸고 영화적으로 창작해 표현하는 것은 감독의 특별한 권한이자 누릴 수 있는 묘미다. "영화광으로서 어떤 사건과 직면했을 때 인간이 내린 결정과 판단, 이런 신념과 야망, 욕심에 관심이 많다. 역사 속 인물들을 제가 잘 모르니 저는 그들이라 여겨지는 인물을 제가 만든 세계로 불러들여 상황극을 만들어준 것"이란 김성수 감독은 "왜 이름을 바꿨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전 실존인물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없다. 안 좋아는 사람들이라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쿨하게 답했다. 


그는 단순히 역사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느낀 바를 제 생각으로 표현하는 것이 감독의 몫이라 여겼다. "실제 사건과 인물에서 출발했지만 건방지게 말하면 김성수 세계 안에서 움직이는 아바타였으면 했다"는 것이다. 다만 전두환을 모티브로 한 전두광을 연기한 황정민이 대머리까지 닮은꼴 분장을 한 것에 대해서는 "실존인물이든, 영화 속 인물이든 그 사람이 모든 원흉이고 모든 걸 주도했고 결국 승리의 과일을 모두 따먹은 사람이라 가장 중요했다. 역사가 영화로 전향되는 스위치, 그런 징검다리 도약대 역할을 정민 씨가 해줘야 했기에 외피를 덮어씌운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감감.jpg


극화 시켜서 풀어낸 영화지만, 실화가 주는 무게감과 결국 오래도록 빼앗긴 '봄'이 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보긴 힘든 작품이다. 의기양양하게 웃는 최후의 반란군들 모습과 대비되는 진압군의 갖은 고초는 허망함과 탄식, 분노를 유발한다. 감독은 영화란 명분으로 통쾌한 결말을 바꿔치기할 수도 있지만 "그런 쉬운 선택은 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감독이 사실 자기 영화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지만, 이야기의 맥락을 보고 과연 이런 야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힘을 합치는 탐욕의 무리들이 어느 도처에서나 벌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이런 일이 늘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벌어질 수 있다. 과거를 들여다보는 이유는 우리가 앞으로 닥쳐올 미래를 잘 해결해야겠단 생각 때문에 하는 거 아니겠느냐"고 했다. 또한 마지막 사진의 의미를 두고 "그들이 영광의 기록을 자랑스럽게 찍은 사진이다. 하지만 이를 본 사람들은 어떨까. 절대 그렇게 보지 않을 것"이라며 단언했다. 


무엇보다 김성수 감독은 반란군을 막는 진압군의 이야기를 통해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닌, 본분에 책임을 다하는 사람과 본분을 망각한 채 지나친 욕망을 갖고 이를 충족시키려는 사람의 모습을 부각하려 했다. "숫자는 적었지만 실제 진압군의 이름으로, 그 명분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반란군을 제압한 분들이 있었다. 그분들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게 만들면 이 탐욕의 무리들이 더 잘드러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결국 김성수 감독이 '서울의 봄'을 기어이 담아낸 것은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경험하지 못한 야만의 시대, 폭력의 시대를 상기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니었다. "개인의 어떤 결정과 판단이 큰 영향을 끼칠 때가 있다. 영화 속에도 반란군, 휩쓸린 사람들, 진압군, 구경하던 사람들 등 수많은 인간군상이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의 소용돌이로 빨려들어간다. 이런 순간에서 각각의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각자 삶을 살아온 방식으로 대답한다. 어떤 생각과 세계관을 갖고 인생을 살아가고 마무리 짓느냐가 삶의 과정이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인가 승리의 세계관만 부각한다. 이겨야 하고, 앞서야 하고, 압도해야만 한다고. 하지만 그게 과연 옳을까." 열아홉 소년의 기억을 오십 중년의 나이에 다시 꺼내본 감독 또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삶의 평생 난제이자 가장 가치로운 의문을 '서울의 봄'을 통해 되새기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공감 0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추천뉴스

게시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