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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박사 퇴마 연구소' 김성식 감독, 떡잎부터 남다르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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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3-09-28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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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박찬욱. 한국 영화사의 상징적인 두 거장을 거치며 될 성 부른 나무의 남다른 떡잎을 틔운, 준비된 신임 감독 김성식. 오랜 영화 경력으로 단단히 쌓은 내공과 열망을 군더더기 없이 풀어낼 줄 아는 비범한 신인의 등장이다. 이제 꽃 피울 일만 남았다.


오컬트 판타지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은 익숙한 듯 참신하다. 기존 퇴마 소재 영화에서 봐왔던 설정과 캐릭터를 비튼 신선한 시도, 간결하면서도 능수능란하게 장르적 거부감을 상쇄하고 극적인 효과를 이끌어내는 연출이 탁월하다. 낯선 이름 김성식 감독의 첫 연출작이지만, 그의 필모그래피는 몹시 화려하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홍원찬 감독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에서 조감독을 했고 장준환, 연상호 감독도 거치며 단단한 영화 경력을 쌓은 이다. 애니메이터 출신이기도 한 감독은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에서 "원작에서의 빙의 설정이 재밌었다. 하지만 추석 개봉을 목표로 전 세대가 즐길 수 있는 액션물을 만들기 위해 오컬트 판타지는 외피이고, 현실과 너무 동떨어지면 리얼리티가 떨어질 것 같아 이 부분을 조율하며 염두했다"고 했다.


덕분에 영화는 유쾌하고 간결한 기조를 유지한다. 귀신 잡는 유튜브를 운영하며, 의뢰인의 심리 상태를 간파해 이를 화려한 말빨로 홀려놓고 첨단 장비를 이용해 블록버스터급(?) 가짜 퇴마쇼를 벌이는 천박사(강동원), 인배(이동휘) 콤비. 엉뚱한 퇴마 콤비의 모습이 전형적인 장르의 범주를 벗어난 탓에, 이후 신비한 토속 신앙과 오컬트적 세계관에 돌입해서도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영리한 전략이다.


감독은 "제일 중요했던 건 천박사 캐릭터다. 유쾌하면서도 진지한 맛이 있는 캐릭터를 좋아하한다. 마치 '카우보이 비밥'의 스파이크 스피겔 같은 쿨하면서도 헐렁한, 매력적인 캐릭터를 그려보고 싶었는데 그런 지점을 천박사에 접목시키려 했다"고 설명했다. 강동원이 아니었다면 연출을 포기했을 것이라고 말할 만큼 그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그는 "동원 선배님이 인트로에서 내비게이션 소리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이미 모공과 동공까지 보이는 디테일에 희열감을 느꼈다"고 너스레다. "평소 생각했던 영화적 이미지가 있었다. 눈을 보며 쌍꺼풀이 없는 쪽은 복수심과 결의가 느껴지고, 있는 쪽은 사슴 같기도 하고 약간 슬퍼 보이기도 한다. 그런 부분을 따로 부각하며 찍을 때 역시 '맞았구나' 하며 쾌감이 느껴지고 재밌게 찍었다"고.


비단 강동원뿐만 아니다. 영화 속 모든 출연진들이 조화를 이루는 것도 감독의 탁월한 캐스팅 안목을 엿보게 하는 요소다. 특히 이런 장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빌런 역할은 배우 허준호가 맡았다. 신의 한 수다. "애초부터 범천 역은 선배님을 생각했다. 주름만으로도 무서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범천의 첫 등장도 생각해 둔 이미지가 있었다. 마치 '지옥의 묵시록'에서 말란 브론드가 연기했던 역할처럼, 햇빛이 반만 비치고 있는 어둠 속에서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섬뜩함을 중점적으로 표현하려 했다"는 감독이다.


애니메이터 출신 감독답게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과정이 퍽 훌륭하다. 사실, 웹툰 원작의 기본적인 캐릭터 설정과 '빙의' 소재만 따와서 이를 자신만의 영화적 해석과 상상력으로 풀어낸 지점도 꽤 놀라웠다. 특히 천박사와 유경의 기본 설정을 제외하곤 전부 새롭게 창조된 캐릭터와 스토리다. 감독은 "원작의 빙의 소재가 재밌었다. 이를 소재로 해서 귀신을 어떻게 가둘까 상상을 하니까 새로운 그림이 펼쳐지더라"며 "한국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어 설경을 찾아보게 됐고 이를 구체화하며 쇠사슬로 악귀를 잡아가두는 모습 등을 떠올렸다"고 귀띔했다. 귀신을 잡아 가두기 위해 경문과 문양을 한지에 조각한 설경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다. 게다가 빙의됐을 때 영혼이 시각적으로 날아다니는 모습 또한 감독이 스스로도 흡족하게 여기는 신이다. 놀라운 상상력의 산물이건만 "아무래도 이런 류의 만화를 좋아해서 그런가, 어렸을 때부터 이런 이미지들이 자연스레 축적됐다"고 쑥스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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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보며 애니메이션 감독을 꿈꿨던 그는,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을 보며 영화에 매료돼 군 제대 후 무작정 연출부 일을 시작했지만, 영화 전공이 아닌 데다 지방 출신인 탓에 작품 합류가 쉽지 않았다. 염원하던 봉준호 감독의 연출부에 들고 싶어 마침 '설국열차' 제작을 앞둔 감독의 소식을 듣곤 저 역시 원작을 각색한 시나리오를 들고 무작정 찾아가 "연출부가 하고 싶다"고 고백했단다. 실로 엄청난 패기다. 이에 멋쩍어하며 "너무 절박해서 그랬던 것 같다. 정말 영화 일이 하고 싶고 배우고 싶었다"는 감독이다. 이후 연락이 왔지만 흐지부지하게 됐고 비로소 '해무' 연출부로 일할 당시, 제작자인 봉준호 감독을 다시 만나게 됐다. 감독은 그를 기억했고 그때 제가 건넨 시나리오도 여즉 보관하고 있더란다. 그 인연으로 '기생충' 조감독을 맡게 됐다. 인연의 시작이다. "아마 불쌍해서 뽑아주신 게 아닐까 싶다. 지방에서 올라와 어렵게 살고 있다니까 딱하게 여기셨고 맡긴 일은 열심히 해내니까 그러신 것 같다"며 너스레인 그다. 아마도 서툴지만 절박하고 강렬했던 그의 진심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던 게 아닐까.


이후 박찬욱 감독까지 거친 그는 봉준호, 박찬욱 감독의 '키드'라는 애칭을 받고 모두의 기대 속에 데뷔하게 된 행운아다. "꿈만 같다.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살인의 추억'과 '올드보이'다. 어렸을 때 이 영화들을 볼 때의 희열감, 영화적 쾌감이 영화를 하고 싶단 꿈을 꾸게 했다. 전 성공한 '덕후'다. 돌이켜보면 영화감독의 꿈을 이루기까지 힘들었지만 버틸 수 있었던 건 운 좋게 쉬지 않고 일했기 때문인 것 같고, 이렇게 감독님들이 계속 영화를 만들어주신 덕분"이란다. 훌륭한 스승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체화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느냐는 사실 개인의 몫이다. 감독은 맨 몸으로 부딪힌 영화 현장에서 차곡차곡 실력과 안목을 길렀다. "봉준호 감독님은 정말 꼼꼼하고 디테일하시다. 그런데 말씀하시는 것이 복잡하지 않고 간단명료하다. 그 안에 모든 게 포함돼 있다. 이를 많이 따라하려고 애썼다. 박찬욱 감독님께는 감독으로서 가져야 할 품위와 자세, 성실성과 근면함을 많이 배웠다. 두 감독님의 모습을 보고 많이 배우며 따라 하려고 애쓴 것 같다. 연출 하면서도 '감독님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고민 많이 했다"고.


그는 존경하는 멘토인 두 감독이 그러했듯 "재밌는 영화, 관객의 기대감을 배신할 수 없는 영화를 만들고 싶은" 바람이다. 아주 잘 배운, 준비된 감독의 떡잎은 남다르다. 이미 천박사의 무궁무진한 시리즈도 머릿속에 그려져 있고, 유전적 변형을 일으킨 부엉이들이 서울 한복판에 섞여 살아가는 새로운 창작물에 대한 귀띔도 해준다. 몹시 흥미롭고 독창적인 설정이다. 보통내기가 아닌, 비범한 감독의 탄생. 지켜보기 즐거울 따름이다.


사진=CJ ENM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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