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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박사 퇴마 연구소' 허준호, 결코 군림하지 않는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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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3-09-2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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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칠하고 대인스러운 풍모, 서글서글한 성품에 붙접이 좋아 사람을 절로 따르게 한다. 매 작품 범접할 수 없는 특유의 기세로 보는 이들을 압도하지만, 실상의 모습은 대반전의 연속인 배우 허준호다.  


허준호는 추석 극장가를 정조준한 퇴마 판타지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감독 김성식)에서 강력한 악귀 범천 역을 맡아 특유의 비범한 연기로 극을 압도한다. 그는 음산한 토굴에 정좌를 틀고 앉아 첫 등장하는 신부터 남다른 위력과 파괴적인 힘을 드러내며 공포와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특히 검은 눈동자 없이 불투명한 막이 가득한 동공과 쩍쩍 갈라진 피부의 거친 질감은 절로 소름 끼치는 비주얼이다. 


정작 허준호는 "솔직히 그 현장은 앉아서 무게만 잡고 있는 신이라 과연 무서워보일까 염려했다"며 "감독님께서 카메라 구도와 음악, 조명까지 어우러져 후반 작업을 해주신 덕분"이라고도 겸손이다. 그의 성품은 이처럼 내내 겸손했고, 살가웠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들뜬 감정을 솔직하게 비치는 모습도 의외였다. 개봉 전부터 예매율 1위를 달리는 데다, 주변의 평가도 호평일색이니 "진짜 그러느냐"고 신나서 되묻기도 여러 번일 정도였다. 


그는 처음 대본을 읽고 순식간에 읽히는 속도감에 감탄했다. 하지만 만만치않은 액션을 수행해야 했기에 선뜻 역할이 내키진 않았다. "주변에서 다들 왜 안 하려 하느냐고 강력히 추천했었다. 하지만 제 몸은 제가 잘 알잖나. 과연 이 액션을 다 해낼 수 있을까, 내 동작이 너무 느려서 이 좋은 배우들과 작품에 방해가 되는 건 아닐까 솔직히 고민이 많았다"는 그는 "해낼 수 있을까 겁이 났다"고 당시의 심경을 털어놨다. 데뷔 38년 차, 관록의 배우가 이토록 폼 재는 법 없이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이 의외다. 결국 고민 끝에 도전을 택했으나 의외로 액션에 대한 자신감과 욕심이 생겼다는 그다. 매 신 한 동작을 열 번 이상 찍으며 많은 테이크를 연결해 소화해야 했던 과거의 촬영 방식과 달리, 디테일한 작업으로 끊어 찍는 현재의 촬영 기법에 놀랐다고 순수하게 감탄한다. 


극 중 허준호는 묵직한 무게감과 파워가 느껴지면서도 탄탄한 내공이 엿보이는 노련한 검술 액션으로 천박사 역의 강동원을 압도하고 위기감을 고조로 치닫게 한다. 액션에 대한 걱정은 그의 괜한 기우이고 엄살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다. 허준호는 허허 웃으며 "동원이는 팔만 뻗어도 선이 곱고 예쁘지 않나. 그런 친구들이 하는 액션 선은 남다르다"며 "저는 액션을 해냈다는 게 가장 기쁘다. 사실 현역에서 뛰는 이 나이대 액션 배우가 별로 없지 않나. 하지만 이번 작업처럼 촬영한다면 앞으로도 더 하고 싶다"고 했다. 


오히려 영생을 향한 강력한 욕망을 지닌 악귀 캐릭터의 내면적 접근은 간단 명료했다. 이전에도 장르물은 익히 해봤기에 이에 대한 경계나 거부감이 없었단 그는 "저는 장르를 보지 않고, 스토리를 본다. 재밌는 대본을 선호했다"며 "어떤 작품이든 인물에 몰입할 땐 가장 쉽게 접근한다. 지금은 '설경을 뺏어야 해. 내 걸로 만들어야 해. 천박사를 죽이자. 이것들을 갈아 마셔버리자' 하는 마음으로 다가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의외로 간단하다. '동원이를 세상에서 제일 세게 때려보자' 하는 타격감으로 때렸다"는 너스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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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이야기하지만 연기에 대한 그의 진지한 고민과 태도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허준호는 대본에 집중하는 '대본파' 배우다. "대본을 정말 충실히 본다 현장에서도 보고 또 보고 끊임없이 본다. 될 수 있으면 많이 보고, 쉼표와 말줄임표의 의미까지 그 뜻을 찾는다. 그 대본 안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자꾸 더 보게 된다. 그러면 어느 순간 제 상상과 그림이 펼쳐지고, 여기에 녹아들게 된다. 그리고 감독님과 상의하며 보강할 것을 찾아낸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연기 디테일이 놀라울 만큼 섬세했다. 영화 후반 쇠사슬에 묶여 설경에 빨려 들어가는 신을 두고 "CG 입힌 완성본을 보니 사슬에 불이 들어오더라. 촬영할 땐 압박감에 대한 리액션만 연기했기에 제 안에 뜨거움에 대한 표현이 없더라. 그 감정선이 너무 미흡해 계속 아쉽고 후회가 된다"고 했다. 이미 강력한 집착과 분노로 이글거리다 무섭게 소멸해 가는 모습이 충분히 인상 깊었음에도 배우는 이토록 깊은 아쉬움과 후회로 자책한다. 


허준호는 "관객이 만원도 넘는 돈을 내서 영화 한편을 보고 집에 들어가기까지 최소 네다섯 시간이 걸린다. 그 소중한 시간을 제게 써주시는 건데, 설렁설렁해선 안 된다. 지금 넷플릭스만 해도 제가 안 본 작품이 수십, 수백 개가 걸려있다. 이 와중에서 선택되려면 알찬 작품이어야 한다. 그 속에서 제가 배우로서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하고 이런 디테일함을 살려서 연기로 보답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래야 스스로에게 떳떳할 것 같단 확고한 생각이다. 이처럼 지독하고 철저한 연기관이 있기에 그의 연기는 매번 어느 작품에서도 유독 강렬한 잔상을 남기는 것일 테다. 


그는 이번 영화 현장이 유독 즐거웠다. "토굴이랑 법당에만 갇혀 있어서 흙가루와 먼지가루를 엄청 먹느라 기관지가 굉장히 힘들었다"며 우스갯소리지만 "정말 좋은 팀을 만나 행복한 작업을 했다. 작품도 얻고, 사람도 얻은 현장이다. 영화에 대해 건강하고 치열한 논쟁을 하는 친구들을 뒤에서 지켜보며 여기에 함께 섞여 들어가 작업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또 문경의 겨울은 너무 좋았다"고 회상한다. 


군림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단 그의 바람도 사람 됨됨이를 엿보게 한다. "사람들이 절더러 다가오기 힘든 얼굴이라 한다. 제 아내도 그런 말을 한다. 현장에 가면 어느덧 아저씨, 할아버지 뻘이다. 얼마나 불편하겠나"라며 사람 좋게 웃는 그는 "저는 한 번의 공백기가 있어서 지금의 삶이 좋다. 연기는 그냥 제 일이다. 일어나면 생각하는 해야 될 일. 행복하고 편안하고 감사하고 기적인 일이다. 물론 오래 했다고 편한 건 없다. 남에게 제가 들어가야 하는 작업이라 어렵다. 하지만 해내고 나서의 성취감과 좋은 평가들을 얻는 뿌듯함에 달리고 또 달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두가 인정하고 탐내는 관록의 배우지만, "이런 역할을 믿고 주시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 말할 수 있는 그의 겸손한 성정이 따스한 인간미를 느끼게 한다. 앞으로도 그는 "언제나 필요한 배우"가 되고 싶단 바람이다. 


사진=CJ ENM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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