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유토피아' 아무리 봐도 특출난 엄태화 감독 [인터뷰] >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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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유토피아' 아무리 봐도 특출난 엄태화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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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3-08-09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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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하지만 사랑스러운 키보드 워리어의 현실 복수극(?)을 통해 이 시대 청춘들의 삶과 고민 등을 재기 발랄하게 그려낸 청춘물 '잉투기', 갑자기 달라진 시간 속에서 훌쩍 어른 남자가 돼 버린 소년을 믿어준 단 한 명의 소녀 이야기를 아련하고 따뜻한 판타지 '가려진 시간'. 전작들만 봐도 확실히 다르다. 기존 한국 영화에서 보지 못한 기발하고 신선한 이야기를 통해 특유의 특별난 정서를 드러냈던 엄태화 감독. 그가 7년만에 내놓은 신작은 더욱 놀랍고 진일보한 디스토피아 세계를 그린 '콘크리트 유토피아'다. 아무리 봐도 특출난 감독이다.


세상이 무너졌는데 아파트 한 채만 유일하게 홀로 우뚝 서 있다. 이 당황스럽고 기막힌 설정은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관통하는 본질이다.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침입과 아파트를 지키려는 입주민들의 방어, 극단적인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거나, 그럼에도 신념을 지키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결국엔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의미까지. 영화는 재난을 마주한 다양한 인간군상의 민낯을 그리면서도 독특한 블랙코미디 감성을 유지하는데 그럼에도 스멀스멀 스릴러적 불길함이 도사리고, 그 흔한 감정 과잉, 흔히 말하는 '신파' 없이도 재난의 끔찍함과 비탄을 느끼게 한다. 여기에 '아파트'를 주무대로 삼아 실제 사회 현상에 대한 뼈아픈 메시지와 공감을 전하는 엄청난 수작이다. 그야말로 영특한 엄태화 감독이다.


정작 본인은 주변의 평가에 들뜨지 않고 유난히 섬세하고 진중할 따름이다. 원작은 김숭늉 작가의 '유쾌한 왕따'이다. "왕따인 아이들이 학교가 무너져 집으로 돌아가보니 사람들이 이상해진 상태다. 원래 이런 디스토피물을 좋아하는데 영화화할 때 어디가 가장 효과적일까 생각했다. 아파트처럼 한국사회를 집약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더 좋은 장소는 없겠다 생각했다.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라면 괴롭고 슬프기도 한 정서와 애환이 있지 않나. 이런 이야기를 장르영화를 통해 재밌게 보여줄 수 있겠단 자신감이 있었다"는 감독이다.


감독은 아파트를 더 알아야겠단 생각으로 공부를 했다. 그때 1960년대부터 아파트가 정치적, 사회적으로 어떻게 생기게 됐는지를 다룬 박해천 작가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란 책을 보게 됐고 이를 가제로 썼다가 그대로 영화 제목이 됐다고. 실제 영화의 오프닝은 현실 다큐로 시작되며 과거 한국전쟁 이후 '살 곳이 없어 만든 아파트'가 어떻게 점층적으로 변화하고 사회적인 과열 현상을 일으키게 됐는지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빠르고 효과적으로 담긴다. 이 또한 인상적이다. "공부를 하다보니 제가 어릴 때부터 나고 자란 아파트가 이런 맥락으로 지금의 형태가 됐구나를 알게 돼 좀 더 흥미로웠다"는 감독은 무조건 재밌는 영화를 만들자고 다짐했다. "전작들도 재밌게 찍으려 했지만 약간 날이 좀 서 있는 느낌이 있다. 이번 영화는 정말 재밌어야 관객이 주제나 의미도 찾고, 영화에 숨겨진 디테일도 찾아낼거라 생각했다. 재미가 없으면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느낌이 들어서 재미가 뭘까를 생각했다. 내가 몰입할 수 있는 인물이 있고 그 인물이 내린 선택을 같이 생각해 보고 그런 선택들도 인해 예측할 수 없는 뒷 상황들이 계속 벌어지면 그게 몰입이자 재미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최대한 그걸 놓치지 않는 방법으로 만들어야겠단 생각"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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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이병헌이 흔쾌히 출연을 수락했다. 엄태화 감독은 "캐스팅 되는 순간부터 너무나 감사했고 확신이 있었다. 극 중 영탁의 회상 신 중 바둑알 신을 찍는데 제가 모니터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배우님도 모니터링을 하시면서 '내 얼굴이지만 처음 보는 얼굴'이라고 말씀 하셨다. '이렇게 30년을 수많은 작품을 하신 분인데도 새로운 얼굴이 나오는구나,, 그만큼 계속 시도하고 노력하는 배우구나' 감탄했다"는 감상이다. 극 중 이병헌이 맡은 영탁은 아파트의 화재를 진압하며 그 민첩성과 결단력, 희생정신으로 입주민들에 '추앙'을 받으며 단숨에 입주민 대표가 되는 인물이다. 그는 초반 어딘지 어리숙하고 맹해 보이는 모습에서 점차 권력의 힘과 무게에 도취돼 종국엔 집착과 광기를 일으키는 인물로 변모한다. 감독은 "이 영화의 초중반의 톤은 블랙코미디라 생각했다. 입주민들이 유토피아를 착각하는 모습은 더욱 풍자적으로 보이고 조금 떨어져서 지켜보게끔 했다. 그러다 영탁이 '아파트'란 노래를 부르는 순간부터는 이 영화에서 빠져나갈 틈이 없게 하고 싶었고 그때부터 스릴러의 톤을 갖고 가다 그 응축된 에너지가 마지막에 터지듯이 하고 싶었다"고 극의 흐름과 상징성을 설명했다.


이를 위해 음악의 변주도 매우 중요했다. 재밌는 건 조수미의 '봄의 소리 왈츠'를 삽입한 비하인드다. "한국 사람이라면 조수미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으면 2002년 월드컵 당시의 환희가 떠오르지 않나. 그런 유토피아적인 기시감을 끌고 오잔 생각"이었다고. 이밖에도 후반 작업을 오래도 했는데 CG를 최대한 리얼하게 살리려 했고, 무려 2년 동안이나 음악 감독과 함께 영화 톤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놀아보려 애를 썼다는 감독이다. "황궁 아파트는 86년도에 지어진 아파트로 설정했다. 영광의 시대를 나타내는 것 같은, 그 시기의 신시사이저 악기들을 많이 사용했고 그러면서도 재난이 벌어져서 선사시대로 돌아간 느낌이니 뼈가 부딪히는 느낌의 타악기도 써보자 했다. 정말 여러가지 시도를 많이 했다"는 설명만 봐도 감독의 치밀한 작업 정신이 엿보인다.


특히 또 흥미로운 작업 비하인드는 실감 나는 미술이다. "미술에 정말 신경을 많이 썼다. 이 집들을 만들 때 사람이 한 명도 안 나와도 누가 사는지를 알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을 드렸다. '집의 시간들'이란 다큐를 보며 느낀건데 사람이 한 명도 안 나온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이 사는지 알겠더라. 우리 영화도 이 아파트, 집이라는게 인물들만큼이나 중요한 하나의 캐릭터로 보였으면 해서 정말 디테일하게 작업했다. 그런 재미도 찾아보셨으면 좋겠다." 이토록 세밀하고 섬세한 작업을 통해 완벽한 작품이 탄생되는 것이다. 요즘 국내 관객이 질색하는 '신파' 코드가 배제된 점 또한 감독의 답변이 매우 심플하다. "이 영화가 가진 무드를 깨지 않는게 중요했다. 모든 균형을 잡으려 하다보니 그런 코드가 왜 굳이 필요한가 싶었다. 제가 생각하는 톤 안에서 완성도를 만들어가는 게 더 좋지 않을까 그런 판단을 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참 신기한 재난 영화다. 결국 안전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없다. 허무와 절망감을 동반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을 통해 희망을 말한다. 감독은 "희망으로도 보고 절망으로도 보고 그런 이야기를 관객 분들께서 서로 나눠주시면 좋겠단 생각이다. 그래도 이 영화의 톤과 무드 안에서 가장 현실적인 희망이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명화란 인물이 중요한 건 대안은 없지만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모두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기에 시도조차 안 할때 방법을 찾아보자고 얘기할 수 있는 것, 그것이 희망이 아닐까 생각했다"는 것이다. 감독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와 인간의 모습이다. "내가 배고프면, 상대도 배고프지 않을까. 내가 아프면 저 사람도 아프지 않을까. 이런 정도의 질문을 서로 가지고 살면 어떨까. 본인이 처한 현실이 극단적일수록 나만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어렵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그런 생각을 갖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는 감독의 '유토피아'다. 엄태화 감독, 은근히 따스한 심성의 사람이구나 싶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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