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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유토피아' 이병헌의 광기를 보았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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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3-08-0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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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을 집어삼킨 대지진, 모든 것이 폐허가 된 서울에서 기이하게 홀로 우뚝 솟아있는 아파트 한 채. 살기 위해 몰려드는 생존자들, 그리고 살기 위해 내쫓는 입주민들. 지옥 같은 아비규환 속, 살아남기 위해선 기존의 사회 규범과 도덕적 양심은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그렇게 점차 생존이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며 변모하는 인물의 민낯을 소름 끼치게 사실적으로 그려낸 이병헌. 그에게서 광기를 보았다. 


모든 것이 무너졌는데 홀로 남은 아파트 한 채라니, 기이하고 장르 영화적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비현실적 상황이다. 하지만 이병헌은 바로 여기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재미를 느꼈다. "시나리오 받기 전에 이 설정을 들었을 때 정말 만화같지 않나. 오히려 이 안에 많은 이야기가 들어가고 벌어질 것 같았다"는 그는 "재밌겠다 싶어서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기대했던 것만큼이나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절대악도, 절대선도 없이 상식선 안에서 공존하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이야기. 그러나 극단적인 상황 탓에 갈등이 계속되는 지점들이 그의 취향을 저격한 것이다. 


영탁은 아파트에 발생한 화재를 순식간에 해결하며 존재감을 떨치고 이로 인해 황궁 아파트 주민 대표로 발탁된다. M자 탈모가 부각되는 뻗친 머리와 어딘지 어리숙한 외양과는 달리 아파트를 지키겠단 마음으로 발휘된 리더십과 빠른 판단력, 희생 정신이 주민들의 환심을 단단히 샀고 이로 인해 공고한 권력을 얻게 된다. 


이병헌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영탁의 감정이 시작됐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진 설명은 "영탁은 과거 여기저기서 당하고 그러면서 분노와 우울, 무기력을 느끼는 등 정말 많은 것들을 짊어진 소시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직업이 무엇이고, 과거가 어땠는지가 중요하지 않은 상황에서 입주민 대표가 되고 난생처음 권력을 쥐어보며 심경의 변화가 조금씩 생기는 시작점이 됐다"고.


"처음엔 완장을 찼을 땐 그게 완장인줄도 몰랐을 거다. 그러다 대표로서 내 아파트, 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뭔가 한번 해보려 하고 자신도 모르는 새 새롭게 시작된 두 번째 삶에서 권력의 맛을 느낀다. 그것이 아주 기형적인 형태로 커져 가는데 본인은 느끼지 못한다."


영탁은 극 중 가장 드라마틱하게 변모한다. 극한 상황에 마주한 인간의 극적인 변화와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인물로서 숨막히는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엄태화 감독은 "캐릭터의 사연을 얼굴 표정으로 한 순간 다 표현해 내는 장면을 보며 '아 이게 진짜 영화구나'란 생각을 했다"고 감탄했을 정도다. 실제 극 중 영탁이 핏발 선 눈으로 아파트 지키기에 사활을 걸고, 기존 사회 규범에 어긋난 행위를 서슴지 않고 저지르며 정당성을 요구할 때 그의 차갑고 광기에 휩싸인 얼굴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서늘하고 충격적이다. 


이에 이병헌은 "모든 인물이 변화가 있지만, 영탁의 변화는 캐릭터를 그리는 포인트라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부터 악역, 선역을 따지기보다 사람을 그리려 했던게 맞는 것 같다. 영탁은 굳이 따지면 악역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이 인물을 연기할 때 인물이 하는 행동과 말을 이해는 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영탁 입장에선 이게 최선이라 생각하며 해선 안 될 짓들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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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극 후반 광기로 폭주하는 영탁의 모습은 "리더였고, 나를 따르던 사람들이 도리어 나를 내몰려고 할 때 진짜 말도 안 되게 억울하겠구나 분노가 쌓였겠구나 그 상황에서 물불 안 가리고 아무것도 안 보이는 상태일 거라 생각했다"고 귀띔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신은 주민 잔치에서 '아파트'를 부르는 신이다. "애초에 콘티를 볼 때도 마을 파티가 열리고 여기서 술도 취하고 마지못해 떠밀려 아재 춤을 춰가며 노래를 흥얼흥얼 부르는데 프레시백이 나오고 이게 끝나면 극단적 클로즈업이 된다. 이 장면의 의도를 아니까 굉장히 좋은 시퀀스가 되겠구나 상상하며 촬영했고, 실제로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임팩트 있는 신이 됐다." 


엄태화 감독은 박찬욱 감독의 '쓰리몬스터'를 찍을 당시 막내 연출부로 만나 인연이 있었다. 감독의 기발함과 연출력을 칭찬하던 이병헌은 "엄태화 감독이 정말 착하다. 배우에게 디렉션을 거의 안 주는데 신인 배우들은 막막할거다. 그래서 전 일부러 많이 말을 걸었다. '이 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뭘 보여주려 하느냐, 그 의도는 뭐냐' 그렇게 대화를 하며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하고 서로 많이 고쳐간 부분들이 많은 영화"라고 특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특히 "영화의 정서가 정말 좋았다. 피식피식 웃게 되는 블랙 코미디가 있지만 이상하게 웃을수록 긴장감이 커지는 것. 그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자 색깔"이라고 자신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정식 개봉 전 이미 전세계 152개국 선판매를 시작으로 각종 해외 영화제 러브콜을 받으며 글로벌한 관심을 받고 있다. 이병헌은 "지진이 벌어진 상황을 그린 현대물이기에 외국에서도 공감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 특성을 담은 아파트라는 공간. 여기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사회적인 의미는 다른 문화처럼 생각될 것 같아 궁금하고 흥미롭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여전히 신비로운 배우이고 싶다는 이병헌은 늘 관객에 작품을 내보이기 전 그 역시도 긴장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옛날에는 언제쯤이면 연기에 대한 부담이 없어질까 생각했다. 문득 아직도 부담을 가져야 하나 싶을 때도 있지만 나름 확신을 갖고 자신있게 연기했는데 내 감정이 관객에 고스란히 전달 안 되면 어떡하나, 상식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면 어떡하나 하며 늘 떨리고 긴장된다"고. 관록의 대배우도 이 정도 엄살은 피울 때가 있다. 


사진=BH엔터테인먼트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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