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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7 보스톤' 임시완의 맑고 지독한 광기 [인터뷰]

    가난하고 무력한 시대의 울분을 온 힘을 다해 달리며 항거하고 민족의 긍지와 자긍심을 키운 국민 영웅, 모르고 잊힌 역사 속에 잠든 그를 생생한 숨결로 살아 숨 쉬게 한 배우 임시완이다.  강제규 감독의 신작 '1947 보스톤'은 광복 이후 손기정 감독, 남승룡 코치, 서윤복 선수가 태극마크를 달고 우리의 이름으로 국제 마라톤 대회에 출전해 금메달을 거머쥐기까지의 험난하고 뜨거웠던 여정을 담은 실화다.  가엾고 비참한 시대가 가장 큰 허들이자 빌런인 영화에서 불가능한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끝까지 달리는 청년 서윤복의 모습은 뜨거운 감회에 젖게 한다. 실존 인물을 연기한 임시완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번 대본을 받고 서윤복 선수의 이야기를 처음 접했다. 이렇게 의미 있고 대단하신 역사적 인물인데, 왜 더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까. 이번 작품을 통해 손기정 선수뿐만 아니라 남승룡 선수, 서윤복 선수에 대해 많이 알고 자랑스러워해 주셨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임시완은 인물에 대한 역사적인 접근보다 외형적인 모습을 따라가고자 했다. 관객의 믿음을 얻기 위해 불굴의 마라토너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하단 판단이었다. "이 작품에 임하기에 앞서 이런 대단한 실존 인물을 제가 분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큰 책임감을 동반하는 작업이 될 것이란 마음가짐을 새겼다. 서윤복 선생님만큼,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국가대표 선수들만큼은 안될지언정, 작품에 임하는 동안은 국가대표의 마음가짐으로 살자고 마음먹었다"는 그는 극한의 체력 조절에 들어갔다.  작품 선택 후 촬영에 임하기 전 3개월, 촬영 5개월, 총 8개월의 시간을 국가대표 훈련양에 맞먹는 체력단련과 식단 조절을 한 그다. 그 과정을 들어보니 혀를 내두를만큼 독하다. 심지어 잔근육을 더 도드라지게 보이도록 이틀간 물도 끊었을 정도다. "감독님께서도 요구하지 않으셨는데, 제 스스로 만족을 위해 극한까지 해보고 싶었다. 그래도 인생을 살며 한 번쯤은 이렇게 해보고 싶단 생각 때문"이라며 해맑게 웃는 '맑은 눈의 광인'이다.  "몸을 만드는데 제일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란 그는 "물을 끊었던 순간은 눈 앞이 흐려지고 안 보이는 등 너무 아찔한 경험이었다. 근육에 계속 자극을 줘서 탄탄하게 유지해야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계속 꺼져서 이 텐션을 유지하는 게 달리기보다 더 힘들었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그 결과 체지방률 6%까지 도달했다. 지독한 광기다. "국가대표의 마음가짐으로 작품에 임한 거였는데, 만약 다시 하라 한다면 심도 있는 고민을 할 것 같긴 하다"며 그저 싱긋 웃는다.  이번 작품 덕분에 실제로 마라톤에 빠지기도 했다. "새로운 공간에 가면 뛰고 싶은 로망이 생기더라. 마라톤이 취미에 맞다"고. 완성된 영화를 볼 때도 마라톤에 심취해 경기 장면은 스스로 찍은 장면임에도 자신이 더 울컥하며 응원하게 되더란다. 그만큼 뜨거운 목표 의식을 담아내려 했다. "그들의 열정과 마음가짐이 얼마나 뜨거웠을까. 이를 극대화하는데 초점을 맞췄고, 각 분야의 서윤복 선생님 같은 분들이 일궈낸 결과들이 모여서 지금의 우리가 있겠단 생각이었다"고.    연기하며 감독과 선수로 호흡을 맞춘 하정우에게 영향을 받기도 했다. 임시완은 "제가 연기할 때 하나에 집중해서 몰입하면 시야가 좁아지는 느낌이 많이 든다. 그래서 다시 볼 때 '왜 저렇게 했을까. 다르게 했어도 좋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정우 형은 그런 긴장에 대한 완급 조절을 정말 잘하신다. 그런 모습을 배우려 했다"고 털어놨다.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단 그는 "원래도 궁금증이 많은데 가뜩이나 좋아하는 연기를 하다보니 더 파고들고 싶고, 저보다 더 뛰어나고 경험이 많은 분들은 어떤 노하우를 갖고 있는지 탐구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그만큼 연기가 좋다는 임시완이다. "왜 좋을까 생각해보면 연기의 과정 자체가 참 숭고한 작업 같다. 제가 혼자 오롯이 고민하고 풀어야 하는 숙제가 있고 이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어떤 감정과 과정을 거쳐 이런 공식을 만들었는데 이는 누가 됐던 틀렸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스스로 이런 내면의 세계를 만들고 그 고유영역에서 감정을 만들어내는 것이 연기의 큰 매력 같다"는 심오한 설명이다.  이어 "연기자로서 어떤 작품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기에 기회가 왔을 때 이를 잡을 수 있도록 나를 만들어놓자는 생각"이라며 "이제껏 색다른 것들에 도전하는 과정이었고 점차점차 임시완이란 사람의 색깔과 방향성이 정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정해졌다면 더 집중하고 극대화해서 임시완이기에 해낼 수 있는 것들이란 목표를 이루고 싶다"는 포부를 전한다.  이토록 연기에 대한 열정이 뜨거운 임시완이다. 그 마음으로 '1947 보스톤'이라는 의미 깊은 레이스를 끝마칠 수 있었다. 그는 "저는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자세히 모르지만, 가슴 뭉클함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감독님께 정말 좋은 영화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며 만족과 존경을 표했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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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7 보스톤' 하정우가 인생을 달리는 법 [인터뷰]

    배우 하정우는 진지한 무게감을 안고, 비극의 시대 한줄기 빛이었던 국민 영웅 손기정이 됐다.  강제규 감독의 신작 '1947 보스톤'은 광복 이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 마라톤 대회에 나간 손기정, 남승룡, 서윤복 선수의 이야기를 담은 감동 실화다.  손기정은 국민 누구나 다 아는 국가적 영웅이다. 특히 그가 베를림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도 슬픈 표정으로 일장기를 가리는 모습은 모두의 뇌리에 깊게 박힌 잔상이다. 그런 인물을 연기하는 건 엄청난 부담일 테다. 하정우는 울분과 탄식, 좌절과 무력, 능청과 열망 등 다양하고 생생한 감정을 담아내며 국민 영웅 이면의 사람 냄새나는 캐릭터를 소화한다. "이 전에도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는 연기해 봤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온 국민이 다 아는 인물이고 실화기에 굉장히 조심스럽고 어려웠다"는 그는 "선생님의 성향을 제가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도 어렵고, 단정하는 것도 어려운" 것이었다고 했다. 이런 부담을 안고도 작품을 택한 건 강제규 감독 때문이었다.  "시나리오를 먼저 본 게 아니었다. 강제규 감독님은 제가 어렸을 때, 학생 신분으로 배우를 꿈꾸던 시절부터 정말 좋아했던 분"이라고 털어놓은 그는 "정말 대단한 작품을 만들어내셨고,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시초가 되신 분이잖나. 특히 '태극기 휘날리며'는 군복무 시절 휴가 때 봤는데 정말 놀라웠고 반갑고 멋졌다"고 했다. 그 후 연기자가 됐을 때도 어느 식당에서 우연히 봤다. 연출부를 데리고 열띤 토론을 하고 있는 강제규 감독의 모습이 멋졌다. 먼 발치에서 이를 보며 '나도 큰 블록버스터 배우로 저 판에 끼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해졌다고. 시간이 흘러 사석에서 감독과 연을 맺고 가까워졌으나 "캐스팅을 할 만도 한데 안 해주더라"며 능청을 떤 하정우는 "어느 날 집에 놀러 갔는데 자연스레 이 작품을 하신단 얘길 들었다. 그러고 제안을 주셨다. 안 할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본격적으로 시나리오를 봤을 때, 단순한 마라톤 영화가 아니라 좋았고 실화라는 무게감이 있지만 이들의 여정이 굉장히 강렬한 드라마였기에 그 드라마가 좋았단 하정우다. 그는 나라 뺏긴 설움, 그리고 일제의 탄압으로 더는 마라톤을 뛸 수 없게 된 손기정 선수의 무력감, 하지만 천재 마라토너의 재능을 엿보고 다시 희망과 열정을 품게 되는 인물의 다채로운 변화를 그려낸다. 하정우는 "손기정 선생님이 이북 출신이다. 이분의 기질은 저희 할아버지와 고향이 비슷하고 큰 아버지의 모습과 닮아서 그런 모습을 참고했고 이해도 많이 되더라"며 "주어진 신들을 받아서 그 안에서 어떻게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밝혔다.  1940년대, 의외로 트렌디한 의상과 헤어스타일도 흥미로웠던 하정우다. "사진을 찾아보니 그렇게 멋지시더라. 제 30대 시절과도 좀 닮은 것 같다"는 너스레다.   작품을 통해 직접 체화한 실존 인물에 대한 감상은 "국가를 위해 인생을 바치고 불가능한 일을 이뤄내는 고집과 힘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었다. "일장기를 달고 뛰었던 한이 서려있기에 어떻게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태극 마크를 달고자 하는 모습이 대단했고 어떻게 보면 책임감도 있었을 것 같다. 제가 그 속의 깊이를 재단할 순 없다. 그래서 더 말하기도 조심스럽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과 핍박, 아픈 가족사와 고난의 시기를 거치고도 손기정 선생님이 다시 일어나서 서윤복을 발굴하고 끝내 태극마크를 달게 하는 그 힘이 놀라웠고 감탄했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어렵게 태극마크를 달고 뛴 대회인 줄 몰랐다. 단면적인 이야기들을 알고 나니 더 흥미로웠고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단 생각이었다. 그래서 더 이 작품을 잘 해내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박진감과 속도감이 넘치는 마라톤 대회 장면은 그가 뽑는 영화적 재미다. 하정우는 이번 작품을 "신파로 치부할 수 없는 이야기, 태극기를 달게 된 의미와 그 숨겨진 드라마들은 우리가 알아야 하는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하정우에겐 염원하던 강제규 감독과의 작업이고, 미처 알지 못했던 실화의 값진 의미도 알게 된 소중한 작품이다.    매번 배우로서 진심을 다하지만, 그 마음이 관객에 닿지 않을 때가 있음을 그는 매순간 느낀다. "늘 스스로 단속하려 한다. 너무 고여있지 않나. 안일한 선택을 하지 않나.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 배우가 갖는 숙명이다. 어떻게 캐릭터를 이해해서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늘 고민하고 경계한다"고.  그는 마라톤처럼 체력 안배가 중요하단 생각을 했다. "살아가는 것도 마라톤과 같다. 체력 안배가 중요하단 건 그만큼 끝까지 가고 싶은 바람이다. 롱런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나이 들어가며 더더욱 깨닫는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전력질주로 달렸던 것 같다. 이제는 뒤도 돌아보고 쉬기도 한다. 인디언들이 말을 달릴 때 뒤를 돌아보는 이유가 제 속도보다 영혼이 못 따라올까 봐 체크해야 된다는 말이 있다." 배우 하정우가 인생을 달리는 법이다.   "어릴 때 오디션 보러 다닐때 하루의 마무리는 늘 영화 틀어놓고 잠드는 거였다. 비디오테이프, DVD를 모으며 봤던 것들도 또 반복해서 보고 그만큼 영화가 좋았다"는 그는 영화를 통해 인생을 배웠다고 했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지난 20년 동안 영화 현장에서 참 많은 걸 배웠다. 많은 친구들이 생겼고, 영화를 찍는 것도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재밌다"고 했다. 여전히 설렘을 느끼고, 이를 느낄 수 있어 감사하다 말하는 배우 하정우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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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7 보스톤' 달림에 매료된 강제규 감독의 진심 [인터뷰]

    최초의 한국형 첩보 액션 '쉬리'와 역대 두 번째 천만 관객을 동원한 블록버스터의 시초 '태극기 휘날리며'로 한국 영화사의 거대한 획을 그은 강제규 감독. 그가 오랜만에 선보이는 작품은 오래도록 공들인 마라톤 영화 '1947 보스톤'이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운 마라톤 금메달리스트는 영광과 환희를 누리기보다 고개를 떨군 비참한 얼굴로 가슴에 단 일장기를 가렸다. 그리고 그의 금메달보다 일장기를 가릴 수 있는 월계수 화분이 부러웠다 말하는 동메달리스트까지. 비극의 시대 민족 영웅이었던 손기정 선수와 지금껏 많이 알려지지 않은 남승룡 선수. 그리고 그들이 발굴한 제자 서윤복이 해방 이후 태극마크를 달고 세계 대회에 나가기까지의 험난한 여정을 생생히 담은 영화 '1947 보스톤'.  해방 이후, 여전히 혼란스럽고 가난과 설움이 가득한 나라. 운동화 한 켤레 살 돈 없지만 후배들을 키우려 노력했던 두 메달리스트가 신예 서윤복과 함께 기적처럼 이뤄낸 환희와 자긍심의 순간. 이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실화를 처음 접한 강제규 감독은 "나름 스포츠, 특히 마라톤 영화들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으로서 이런 이야기를 모르고 있었다니 부끄러웠다"고 했다. "정말 사실이냐 할 정도로 잘 짜인 실화였다. 주변 스토리도 무궁무진했고, 만들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엄청나더라. 드라마로 10부작은 만들어도 될 만큼 재밌는 이야기였다"고.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이 행운이라 여겼고 뭉클한 감상도 들었단 감독이다. 하지만 영화 준비를 하며 우려의 시선을 많이도 받았다. "투자자나 주변 분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옛날 이야기엔 관심 없고 잘 안 보려 한다고. 게다가 마라톤이라니, 더욱 관심을 가질리 없다"는 견해들이 주를 이뤘다. 그럼에도 감독은 이 기적 같은 실화에 뜨거움을 느꼈고, 찍고 싶은 열망이 더 컸다. "이야기의 본질을 바꿀 순 없다. 역사에 관심 갖고 이걸 봐야 된다고 강요할 수도 없다. 영화에 거부감을 덜 갖게 하고 자연스레 이 시대의 정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했다"는 감독은 "실화를 얼마나 충실하게 잘 구현해 낼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손기정 남승룡 서윤복 세 분이 한 팀을 이뤄 하나의 목표를 향해 어떻게 달려가는지"를 치우치지 않고 그려내는 것에 집중했다.  해방 이후에도 독립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가엾고 비참한 민족의 울분을 표현하는 마라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렸던 마라토너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값지고 의미깊다. 특히 가난과 설움, 무시와 조롱을 견디며 이뤄낸 이들의 값진 승리는 실화기에 더욱 가슴 뭉클한 감동을 안긴다. 강제규 감독은 "현재를 살아가는 관객도 힘과 용기를 잃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함께 담고 싶었다고 진심을 전했다. '1947 보스톤'은 절로 가슴이 뜨거워지고 민족 자긍심이 고취되는 실화이지만, 감독은 관객에 자칫 '국뽕'이란 과잉 감정을 일으킬까 고심하기도 했다. "이번에 연출하며 되게 조심한 부분이다. 관객들이 그런 부담을 갖지 않도록, 과유불급을 되새겼다. 이미 벌어진 팩트 자체가 드라마틱하기에 여기에 힘을 싣게 되면 강요가 되고 부담이 되는 거라 생각하며 최대한 절제했다"고. 다만, "가공과 비가공의 차이 같다.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해 인위적으로 얘기를 비틀고 만들어내서 강요하는 건 나쁜 '국뽕' 같다. 민족감을 고양시키려 뭔가를 과장되게 만들어내지 않고 있는 사실을 담대하게 그리는 것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착한 '국뽕' 아닐까"하는 마음이다.  워낙 실화가 드라마틱해서 영화적 과장을 심하게 부린게 아니냐는 오해를 살까도 걱정이었다. 이를테면 마라톤을 관람하던 시민이 목줄을 놓쳐 레이스에 개가 난입하고 이로 인해 서윤복 선수의 페이스가 무너지게 되는 최대의 위기 신이다. 이 또한 실화였다. "이런 것부터 시작해서 실질적인 에피소드가 많다. 신발끈이 풀렸는데 묶을 시간이 없어 물을 부어 최대한 신발이 쪼여지게 하려 했던 것도 실화"라는 감독의 귀띔이다.  '자칫 단조롭고, 지루할 수 있는 마라톤 경기를 어떻게 잘 농축해서 중요한 포인트를 살릴 수 있을 것인가'는 당시 감독이 가진 최대의 고민이었다. 선수와 선수간의 갈등, 오르막 내리막 등이 펼쳐진 레이스의 변형, 마라토너들의 전략과 작전, 다양한 시각적 비주얼 등 복합적인 요소들을 염두하며 "관객도 함께 마라톤을 달리는 심정으로 감상할 수 있게"끔 했다. 덕분에 드라마틱하며 박진감 넘치는 마라톤 경기가 완성됐고, 그 생생한 현장감은 가슴 벅찬 카타르시스와 뜨거운 울림을 선사한다.    대학 시절 '불의 전차'를 보며 달림에 매료됐고, 달리는 영화를 찍고 싶던 꿈을 비로소 이룬 강제규 감독이다. 그의 뜨거운 진심이 가득 담긴 영화다. 특히 감독은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본질적인 문제를 직면하게 된다. 각자 맡은 소임을 열심히 하는 것, 자신의 꿈과 노력 결정들을 실현시키고자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시절 여러 가지 혼란과 가난과 어려움이 있을 때 이 세 선수는 달리는 사람으로서 이를 통해 꿈을 성취하고 동시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이상을 품지 않았을까. 그들의 정신이 지금의 우리나라를 만든 동력이자 힘이라는 걸 많은 분들이 느껴주시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국 영화의 패러다임을 바꾼 강제규 감독은 지난 시절을 돌아보며 "한국 영화가 시장 점유율 10%일 때부터 영화를 시작했기에 한국 영화의 명암을 누구보다 많이 알고 지금까지 오고 있는 사람이다. 당시 무엇을 극복하고 진화해야 할리우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당당히 견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까를, 독립투사도 아닌데 참 많이도 고민했다. 그리고 정말 운 좋게도, 스스로에 대한 도전과 극복을 통해 '쉬리'와 '태극기 휘날리며'를 만들게 됐고 좋은 결과로 이어져 감사했다"는 소회다. 코로나와 OTT 산업의 성장 등으로 어려워진 한국 영화계 현실이지만 "그동안 후배들이 일취월장하며 일궈낸 큰 성장이 있었고, 늘 파도처럼 좋을 때가 있으면 어려움도 있다. 이 위기를 슬기롭게 잘 극복해 내는 것. 다른 드라마나 콘텐츠가 흉내 낼 수 없는 두 시간의 압축미를 보여줄 수 있는 영화만의 특권을 작품에 잘 녹여내는 것"이 그의 새로운 목표다. '쉬리'를 보며 감독의 꿈을 꿨다 말하는 이들, 해외에서 한국사를 가리킬 때 교본처럼 소개되는 '태극기 휘날리며' 등. 이런 일화들을 겪을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단 감독이다. 하지만 과거의 영광에 얽매이지 않고 그는 현재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중이다. 이는 강제규 감독이 안주하지 않고, 도태되지 않는 이유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