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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도 없이' 영특한 유아인의 변신 [인터뷰]

    유아인은 과감하고 영특하다. 매번 낯섦을 발견하게 하는데 그 낯섦이 반가운 그런 배우다.   말 없는 남자 태인과 다리 불편한 남자 창복. 두 사람은 달걀 장수다. 범죄 조직으로부터 일이 들어오면 시체 처리를 한다. 그러다 유괴된 아이를 맡게 된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일에 휘말린다.  유아인에게 '소리도 없이'(감독 홍의정)는 새로운 지점에 있는 작품이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을 때 허투루 쓰인 것이 없었다. 각각의 요소들, 대사들이 철저하게 유기적으로 연결된 촘촘하고 밀도 있는 시나리오란 생각을 했다. "아주 진지한 듯 하지만 엉뚱하게 뒤통수를 후려치는 듯" 했다. 범죄 조직의 하청을 받아 시체를 처리하는 하수인. 이를 표현하는 태도가 독특했다. 드라마틱하게 효과를 극대화하기보다 이를 담담하게 일상적인 톤으로, 때론 코믹하게 그려내면서 다른 시선을 준다는 것이 신선했다. 한국 영화에서 자극적인 범죄 소재를 다루는 아주 색다른 태도였다. 영화는 너무 노골적인 사회 고발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아름답고 착하게 명확한 메시지를 주지도 않는다. 다만, 나지막이 관객과 함께 편하게 호흡하며 저마다 메시지를 형성할 수 있게끔 이끌어내는 작품이란 점에서 "특별함"을 느꼈다고. 처음 대본을 봤을 때의 신선한 충격 탓에 감독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실제 만나본 감독은 가식이나 허세를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좋은 사람이었다. 희망을 걸어도 좋을만한 감독이란 생각을 했다. "과한 우아함이나 고고함 따위가 보이지 않는다. 전능한 신의 놀이를 하는 권위적인 감독들에게선 볼 수 없는 담담하고 따뜻한 시선, 태도 같은 것들이 있었다. 쉽게 말해 잘난 척하지 않았다"며. 그렇게 감독에 대한 강한 애정을 기반으로 작품에 기꺼이 참여했다.  '소리도 없이'는 연기적으로도 새로운 도전을 요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유아인은 대사 한마디 없이 갖가지 감정을 전달하고, 무려 후덕해진 몸으로 육중한 무게감을 드러낸다. 흥미로운 건 애초 태인의 모습은 지금 같은 설정이 아니었다. "처음엔 마르고 안 돼 보이는, 초췌하고 마이너 한 인물의 정형성을 그대로 담고 있는 콘셉트"였단다. 유아인은 여기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지금과 같은 캐릭터의 외형을 잡아가는 것을 감독에 제안했다. 어쩌면 사회로부터 방치된 채 살아가는 인물을 표현할 때 안정적인 외적 표현은 아닐 수 있었지만, 감독은 자신이 제안한 '의외성'을 흥미롭게 생각하며 수용했다.  그래서 삭발을 했고, 살을 찌웠다. 워낙 입이 짧고 촬영 때는 예민해 살이 빠지는 탓에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식빵 열개를 믹서기에 우유랑 갈아서 먹었다. 그렇게 배 나온 제모습을 보고 스스로 뿌듯했단다. "유아인이 기존에 그려온 이미지가 있으니 분명히 임팩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로 극단적인 외모 변화는 없었으니, 그 자체가 주는 영화적 효과를 시도하고 싶었다." 그의 내면의 고심은 이랬다. 순도 있는 연기, 그 진정성만으론 충분하지 않은 어떤 지점들이 생겨났다. 제 본질을 떠나 하나의 이미지를 그려내는 배우로 봤을 때 자신은 너무 많이 팔리고 소비됐다. 다양한 색이 묻어있고, 오염이 됐다면 오염이 됐겠다. 그렇기에 변화를 시도하고 싶은 의지가 생겼다. 물론 외적인 변화만이 전부가 될 순 없지만, 모든 연기의 출발점은 보여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처럼 극단적인 외모 변화를 시도하면서 그가 즐거움을 느낀 것도 당연했다. 이를 두고 "새로운 플레이가 연기 반경에 들어오기 시작한 느낌"이란다.   실로 태인의 뚱하고 심드렁한 표정. 세상만사 의욕 없고 무기력한 그 얼굴과 느릿한 몸짓은 배우 유아인에게서 발견한 낯설고 묘한 이미지였다. 이에 유아인은 "예전엔 인물에 맞는 몸의 태도나 걸음걸이를 의식적으로 많이 반영했는데 이번엔 저절로 효과가 있었다. 입술이랑 코, 눈두덩이에도 살이 찌니까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지는 몸의 태도가 있었다. 구부정하면서 걸을 때 보면 엉덩이가 이상하게 튀어나오고 이상한 에스라인이 생기더라"며 웃겼다. 그런 태인을 만들기 위해 그가 기울인 노력과 강렬한 의지를 누구라도 모를 리 없다.  '소리도 없이' 태인의 감정이 읽히는 것도 유아인의 섬세한 표현력 덕분이다. 그는 도리어 감정을 표현이나 몸짓으로 드러내려 하지 않았단다. "말을 할 수 없단 전제하에 생성되는 몸의 움직임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표출하고 수정하며 다듬었던 것 같다. 저도 제게 이런 몸의 움직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놀라고 새롭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고. 이어 "말을 하지 못해 사람이 순수하게 보이는 효과도 있더라. 태인은 자신이 표현한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기에 말을 거부하는 인물로 봤다. 그래도 반대 의사를 표하거나 저항감을 내비칠 때 나오는 표정들이 귀엽지 않았나"라고 웃는다. 제가 연기했지만 태인이 퍽 귀여운 모양이다.  유아인은 이전까지 주로 캐릭터를 연민을 통해 접근했다. 잘났던, 못났던, 환경이 어떻건. 인간으로서 삶의 과업을 수행하는 자에 대한 연민. 이를 통해 인물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공감대를 형성한 뒤 제 안에서 인물을 깨어내는 식으로 작업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어떤 판단을 내리기 이전에 호기심이 들었다. 촬영 전까지 어떠한 형태의 답도 갖지 않은 상태로 임했다. 그는 "이런 친구에게 너무 큰 연민으로 다가서는 건 그다지 달갑지 않은 부정적인 미화의 위험이 있다. 미적 형태란 프레임을 통해 보여지면 어쩔 수 없이 미화되고 그 가치를 따질 수밖에 없게 된다. 어떤 악한 인물이라도 공감해서 표현하면 미화가 된다. 하지만 태인은 판단하는 것을 경계하며, 완전히 판단을 보류한 상태에서 궁금증과 호기심을 끌어안고 접근한 아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영화의 화두와 일맥상통한다. 선과 악이 모호한 경계에 있는 인물들은 보통의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이같은 악의 평범성을 통해 판단을 유보하게 한다. 그렇게 우리도 모르게 '소리도 없이' 괴물이 되어가고 있진 않느냐고 묻는다. 유아인은 "이 영화는 다른 위치의 사람들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지금, 이 관계성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를 말한다. 그 모든 원척적인 태도엔 감독이 세상을 향한 사랑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한다. 홍의정 감독의 세계는 조금 다른 결이다. 무언가를 신랄하고 날카롭게 노골적으로 비판하지 않는다. 어떤 한줄기 빛을 그려내는 희망적인 모습이 좋았다"고 작품에 대한 강한 애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배우로서도 한 사람으로서도 작품을 통해 한 번도 갖지 못한 몸과 내면을 체험할 수 있다는 건 큰 경험이었다. 아주 미세하게 한 발짝 나아간 것 같은 자유로운 느낌도 얻었다. 그게 가장 큰 수확이었다"며 "이런 경험이 잘 다듬어져서 언제 어떻게 무기로 쓰일진 모르겠다"며 설렘을 드러낸다. 시종일관 좋은 작품을 만났을 때의 감격과 기쁨을 가득 드러낸 유아인이다. 분명한 건 좋은 배우가, 좋은 작품을 만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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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윤아, '돌멩이'로 느낀 한계와 위로 [인터뷰]

    상냥하고 따스한 기운이 있다. 그 탓인지 마주한 이에게도 기분 좋은 설렘을 준다. 배우 송윤아의 섬세하고 풍부한 감성을 엿볼 때 그가 지닌 친절하고 다정한 온기는 꾸밈없는 본연의 것임을 확신케 한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평화롭게 살던 8살 마음을 가진 어른 아이 석구는 어느 날 마을에 나타난 가출 소녀 은지와 친구가 되지만,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 벌어지며 세상이 송두리째 무너진다. 송윤아는 가출 소녀 은지를 돌보는 쉼터 김선생을 연기한다.  노 개런티의 아주 작은 영화, 그럼에도 송윤아가 '돌멩이'(감독 김정식)를 택한 이유는 "어떤 과정을 거치든 결론은 늘 인연인 것 같다. 제가 이 작품을 한 것은 인연이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를 다 읽고 한참을 소파에 앉아 그는 생각에 잠겼다. 누구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상황은 다르다. 누구나 석구가 될 수 있고 석구에 돌을 던진 사람이 될 수 있다. 이를 알면서도 그냥 지나갈 수 있고, 모른 채 살 수도 있다. 그렇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를 생각하게 했다. "내게 '돌멩이'가 찾아와  줘서 감사했다. 내게 위로를 해주려고 찾아온 영화같았다. 그런 인연이 느껴졌다"는 송윤아다.  김선생은 석구와 은지가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불편한 기색을 풍긴다.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 뒤,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였던 그는 자신이 본 것을 믿고 신념에 따라 행동한다.  송윤아는 대본을 읽고 김선생을 해석하길 "정의롭지 못한 일을 참지 못하며, 바른 길을 가려한다. 누군가가 억울한 상황에 놓이면 자신이 나서서 싸운다. 마음은 굉장히 뜨겁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굉장히 차갑고 건조한 사람"이라고 봤다. 하지만 신기했다. 제게 들어온 시나리오임에도 김선생에서 제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보통 대본을 볼 때 제가 어떻게 할지 상상하며 읽는다. 그래서 인물이 그려지고 보인다. 그런데 '돌멩이'는 저를 대입한 게 아니라, 여기에 어울리는 다른 배우들이 보여졌다"고. 이 배우가 하면 잘할 것 같아, 라는 생각. 제 모습을 한 번도 대입하지 못한 캐릭터. 대본을 보고 느낀 그대로 김선생을 잘 풀어낼 수 있길 바랐는데 결국 한계를 느꼈다.  그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됐을 때 신나서 따라갔다. 그때 영화를 처음 봤는데 제 연기에 너무 충격을 받았다. 내가 분명 상상하며 그렸던 김선생의 성격과 모습, 표현들이 아닌 거다. 제 목소리와 몸짓이 이렇게밖에 표현되지 않았나 하는 갭이 느껴졌다"고 털어놨다. 자신이 상상한 김선생의 모습을 그저 '송윤아'로 연기했구나, '나는 정말 여기 까지구나' 하는 자책. 창피함과 미안함이 뒤얽힌 감정이었다고. 그렇게 충격에 휩싸여 있던 터라, 주변을 살필 겨를이 없었는데 '송윤아가 영화가 마음에 안 든 거 아니느냐'는 말까지 나왔다. 그래서 너무 죄송했다고.  2년 만에 다시 개봉을 앞두고 본 '돌멩이'는 자신에 대한 연기 기대치가 비워지니, 오히려 마음 편하게 감상할 수 있었단다. 그랬더니 온전히 이야기에만 집중할 수 있게 돼 눈물을 펑펑 흘리며 봤다.    제 연기에 이처럼 냉정한 평가를 내리지만, 김선생은 송윤아의 또다른 얼굴을 충분히 끌어냈다. 송윤아가 그린 김선생은 그리 살갑지 않다. 반항적인 가출 소녀 은지가 소매치기범으로 몰릴 때도 아이를 위한 무조건적인 믿음을 보이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사건을 지켜보고 진실 여부를 판단한다. 그렇기에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자신이 목격한 것이 진실임을 확신하는 것이다. 김선생의 강경한 태도는 꺾이지 않는 꼿꼿한 믿음에서 기반된다.  결과적으로 석구가 무너진 세상에서 고립되게 만드는 결정적인 인물이 김선생이지만, 그의 행위 또한 정당하다. 그 괴리감의 간극을 만들어내는 김선생이다. 송윤아 역시 김선생이 처한 상황, 행한 행동이 관객의 입장에서 안타까웠다. "심적으로 어린 여자 아이와 다 큰 성장한 남자가 밤늦게 다니는 것에 걱정부터 드는 거다. 그러다 비 오는 날 밤에 김선생의 시선에선 그런 상황이 벌어진 거다. 김선생은 바르고 매뉴얼대로 가야 하는 사람이다. 정확한 것. 눈으로 본 것, 약속된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이기에 김선생의 행동은 너무나 당연했다. 결코 악역이 아니다. 자신의 할일을 끝까지 하는 것 뿐이다. 하지만 3자의 시선으로 봤을 때 너무 안타까운 것"이라고.  마지막 엘리베이터 신에서 보여준 김선생의 찰나의 표정은 특히 인상 깊다. 자신의 믿음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이미 제 믿음을 확신하기에 이를 무시하고 만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색안경을 끼고 있단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래서 자신은 공정하게 사실만 보고 판단한다고 믿고, 진실을 파헤치기보다 자신의 믿음을 증명해주는 것을 찾아 속단한다. 이같은 확증 편향이 어느새 무의식 속에서 자신을 지배하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송윤아는 극의 주제를 간파하는 미묘한 표정 변화를 담아낸 것이다.  해당 신이 어려웠단 그는 "지문에는 김선생이 어떤 마음 상태인지 지문이 없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다. 사건을 회상하는 신이 나온다. 그게 다였다. 너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제가 김선생이라면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았다. '내 생각이 맞아. 아무리 생각해도 맞아', '내가 본 게 다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이때까지 갖고 왔던 믿음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혼란한 마음으로 찍었는데 감독님이 이미 OK를 하고 다음 촬영 준비를 하시더라"고 회상했다. 대본은 인물들의 마음 상태나 행동이 친절하게 표현되진 않았다. 하지만 '돌멩이'는 그래야 했던 영화다. 송윤아는 "인물을 표현하는 배우들 몫으로 열어주신 것 같다. 감독님이 직접 대본을 쓰셨는데 정말 누구보다 더 사람을 잘 아는구나 싶었다. '돌멩이' 속 인물들은 '나 이런 사람이다'라고 작정하며 보여주는 게 아니다. 그냥 한 마을에서 펼쳐진 상황에서 다양하고 다른 많은 사람이 있다"고 했다.  덧붙여 "다름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게 쉽진 않지만, 그 다름 속에서 살아가는 게 인생인 것 같다"는 그다. 수많은 편견과 오해 속에서 자신을 지탱하는 법도 결국은 '사람'이다. "감히 이 나이가 되도록 살아가니까 사람한테 가장 상처를 주고 슬픔을 주는 존재가 사람이다. 하지만 가장 감사함을 주는 것도 사람이더라"며. 송윤아 역시 살면서 사람들로 인해 가장 큰 상처를 받지만, 사람들로부터 가장 큰 치유를 받는다. 그는 "제가 '돌멩이'를 통해 치유를 받았듯, 관객 분들도 위로가 되길 바라고 한 번쯤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를 생각하며 조금은 따뜻한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걸 가져도 되는 세상인 것 같다"고 희망찬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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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멩이' 김대명, 잔잔하게 일으킨 감정의 파장 [인터뷰]

    8살 마음을 가진 어른 아이의 순진무구한 표정부터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자신의 세상이 송두리째 무너졌을 때의 두려움과 상처까지 섬세하고 깊은 감성으로 살려낸다. 배우 김대명이 일으킨 잔잔한 파문은 점차 거대한 감정의 동요를 이끌어낸다.   '돌멩이'(감독 김정식)는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 석구가 가출 소녀 은지를 만나 친구가 되지만,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 일어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다.  지적 장애를 가진 이들을 캐릭터로 한 작품들은 숱하게 많지만, 김대명은 기존의 것을 참고하기보다 실제로 석구와 같은 친구들을 20년 동안 돌봐준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직접 만든 DVD를 봤다. 그들의 일상도 다를 바가 없었다. 똑같이 밥을 먹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이야기를 나눈다. 김대명은 이를 보며 "제 마음속에 남아있는 또 다른 편견을 깨는 계기"였다고 곱씹었다. 석구의 세상이 안쓰럽고 힘들 거란 연민과 동정은 자신의 착각일 수 있겠다고. 석구의 세계를 바라보는 제 마음이 힘든 것 뿐이었다. 그래서 그 역시 어떤 감정이나 상황을 재단하고 장치를 두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표현해 연기하려 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그냥 석구를 느끼려" 했다.  8살 마음을 가진 어른 아이 석구의 감정을 느끼기 위해 김대명은 제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도 가보고, 멀리서 운동장을 쳐다보기도 했다. 친구들과 노는 걸 좋아하고, 엄마 말을 잘 안 듣기도 하던 개구쟁이 아이의 모습을 회상하며 그때의 감정을 상기했다. 어른이 된 지금의 자신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어렸을 땐 울기도 하고 감정을 드러내는 게 가능했는데 지금은 슬퍼도 안 슬픈 척, 기뻐도 안 기쁜 척하며 감정을 감춘다.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는데 노력이 필요하더라"는 그에게 석구는 바람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이를테면 누군가를 대가 없이 믿어줄 수 있고, 세상이 들이민 잣대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 등이다. 그렇게 가감 없이 제 감정에 솔직할 수 있는 석구가 부러웠단 김대명이다.  '어른 아이' 석구의 세계는 '어른' 김대명의 시선으로 보기엔 부러운 것 투성이었다. 단순히 친구들과 노는 게 좋았고, 운동장에서 세네 시간을 뛰어놀면서도 행복하고, 소풍을 기다리며 설렘을 느끼던 감정들. 제겐 이미 빛바래 희미해진 감정들을 오롯이 느끼고 있는 석구가 부러웠던 모양이다. 김대명은 이를 두고 "그런 설렘들을 꾸준히 느낄 수 있는 게 부러웠다"고 고백했다.  한적하고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 녹아든 석구는 동네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장난을 치며 해맑은 웃음을 짓기도 하고, 제가 좋아하는 신부님을 만날 땐 퍽 곰살궂게 구는 귀여운 구석도 있다. 이토록 천진난만한 석구의 모습을 언어가 제한된 표정과 몸짓으로 나타내면서도 특유의 풍부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김대명의 섬세한 표현력은 꽤 놀라웠다. 석구의 감정에 깊숙이 동화된 그였기에 당연했다.   물론 예기치 못한 사건 이후 달라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못하던 석구에게 모든 사람들, 그리고 오랜 친구들조차 등을 돌리고 '돌멩이'를 던질 땐 마음에 타격감이 컸다. 저 또한 누군가에 대한 편견과 의심,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 다른 이에 상처를 주는 행위를 했었는지 돌이켰다. 그는 "맞고 틀리다가 아닌 다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석구는 분명 자신의 표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굳이 보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며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에서 문제가 생긴다. 이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고 희망했다. "아무리 제가 맞다고 확신해도, 상대가 아니라고 한다면 한 번쯤은 듣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 스스로 상처 받고 피해입을까 봐 내 생각만 하며 살게 되지 않나. 그렇기에 많은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지만, 막상 해보면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돌멩이'가 김대명의 마음에 일으킨 파문은 이처럼 단단한 가치관으로 자리 잡았다.   데뷔 14년 만의 첫 주연작이란 타이틀은 김대명에게 남다른 책임감을 안겼다. "갑자기 어깨에 무언가가 쌓이기 시작하는" 기분이라고 이를 표현한 그는 "선배님들은 이런 길을 걸어오셨구나 싶었고, 주연으로써 책임감과 더불어 현장의 스태프와 배우들이 저와 함께 하는 작업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더 노력을 하게 되더라"고 했다. 달라진 변화가 반갑기보단 더 조심스러워졌다. 아직도 자신이 부족한 탓이란다. "시간이 지나면 불안한 마음이 사라질까 했는데 오히려 더 커지고 걱정이 많아진다. 내가 무언가를 잘못했을 때 나 때문에 피해볼 사람들에 대한 걱정이 크다. 그러면서도 항상 잘 살았으면 하는 믿음을 갖고 있다"는 그다. 김대명에게 여전히 연기는 어렵다. 제일 괴로우면서도 재밌는 일이기 때문이다. 연기를 잘하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주연에 대한 욕심은 없다. 목적을 두지 않고 자신이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속, 할 수 있는 캐릭터를 잘 해내고 싶을 뿐이다. 매 작품 새삼 놀라운 연기 변화를 보여주고 있으면서도 그는 여전히 연기에 목마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