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윤아, '돌멩이'로 느낀 한계와 위로 [인터뷰]
상냥하고 따스한 기운이 있다. 그 탓인지 마주한 이에게도 기분 좋은 설렘을 준다. 배우 송윤아의 섬세하고 풍부한 감성을 엿볼 때 그가 지닌 친절하고 다정한 온기는 꾸밈없는 본연의 것임을 확신케 한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평화롭게 살던 8살 마음을 가진 어른 아이 석구는 어느 날 마을에 나타난 가출 소녀 은지와 친구가 되지만,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 벌어지며 세상이 송두리째 무너진다. 송윤아는 가출 소녀 은지를 돌보는 쉼터 김선생을 연기한다.
노 개런티의 아주 작은 영화, 그럼에도 송윤아가 '돌멩이'(감독 김정식)를 택한 이유는 "어떤 과정을 거치든 결론은 늘 인연인 것 같다. 제가 이 작품을 한 것은 인연이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를 다 읽고 한참을 소파에 앉아 그는 생각에 잠겼다. 누구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상황은 다르다. 누구나 석구가 될 수 있고 석구에 돌을 던진 사람이 될 수 있다. 이를 알면서도 그냥 지나갈 수 있고, 모른 채 살 수도 있다. 그렇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를 생각하게 했다. "내게 '돌멩이'가 찾아와 줘서 감사했다. 내게 위로를 해주려고 찾아온 영화같았다. 그런 인연이 느껴졌다"는 송윤아다.
김선생은 석구와 은지가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불편한 기색을 풍긴다.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 뒤,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였던 그는 자신이 본 것을 믿고 신념에 따라 행동한다.
송윤아는 대본을 읽고 김선생을 해석하길 "정의롭지 못한 일을 참지 못하며, 바른 길을 가려한다. 누군가가 억울한 상황에 놓이면 자신이 나서서 싸운다. 마음은 굉장히 뜨겁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굉장히 차갑고 건조한 사람"이라고 봤다. 하지만 신기했다. 제게 들어온 시나리오임에도 김선생에서 제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보통 대본을 볼 때 제가 어떻게 할지 상상하며 읽는다. 그래서 인물이 그려지고 보인다. 그런데 '돌멩이'는 저를 대입한 게 아니라, 여기에 어울리는 다른 배우들이 보여졌다"고. 이 배우가 하면 잘할 것 같아, 라는 생각. 제 모습을 한 번도 대입하지 못한 캐릭터. 대본을 보고 느낀 그대로 김선생을 잘 풀어낼 수 있길 바랐는데 결국 한계를 느꼈다.
그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됐을 때 신나서 따라갔다. 그때 영화를 처음 봤는데 제 연기에 너무 충격을 받았다. 내가 분명 상상하며 그렸던 김선생의 성격과 모습, 표현들이 아닌 거다. 제 목소리와 몸짓이 이렇게밖에 표현되지 않았나 하는 갭이 느껴졌다"고 털어놨다. 자신이 상상한 김선생의 모습을 그저 '송윤아'로 연기했구나, '나는 정말 여기 까지구나' 하는 자책. 창피함과 미안함이 뒤얽힌 감정이었다고. 그렇게 충격에 휩싸여 있던 터라, 주변을 살필 겨를이 없었는데 '송윤아가 영화가 마음에 안 든 거 아니느냐'는 말까지 나왔다. 그래서 너무 죄송했다고.
2년 만에 다시 개봉을 앞두고 본 '돌멩이'는 자신에 대한 연기 기대치가 비워지니, 오히려 마음 편하게 감상할 수 있었단다. 그랬더니 온전히 이야기에만 집중할 수 있게 돼 눈물을 펑펑 흘리며 봤다.
제 연기에 이처럼 냉정한 평가를 내리지만, 김선생은 송윤아의 또다른 얼굴을 충분히 끌어냈다. 송윤아가 그린 김선생은 그리 살갑지 않다. 반항적인 가출 소녀 은지가 소매치기범으로 몰릴 때도 아이를 위한 무조건적인 믿음을 보이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사건을 지켜보고 진실 여부를 판단한다. 그렇기에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자신이 목격한 것이 진실임을 확신하는 것이다. 김선생의 강경한 태도는 꺾이지 않는 꼿꼿한 믿음에서 기반된다.
결과적으로 석구가 무너진 세상에서 고립되게 만드는 결정적인 인물이 김선생이지만, 그의 행위 또한 정당하다. 그 괴리감의 간극을 만들어내는 김선생이다. 송윤아 역시 김선생이 처한 상황, 행한 행동이 관객의 입장에서 안타까웠다. "심적으로 어린 여자 아이와 다 큰 성장한 남자가 밤늦게 다니는 것에 걱정부터 드는 거다. 그러다 비 오는 날 밤에 김선생의 시선에선 그런 상황이 벌어진 거다. 김선생은 바르고 매뉴얼대로 가야 하는 사람이다. 정확한 것. 눈으로 본 것, 약속된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이기에 김선생의 행동은 너무나 당연했다. 결코 악역이 아니다. 자신의 할일을 끝까지 하는 것 뿐이다. 하지만 3자의 시선으로 봤을 때 너무 안타까운 것"이라고.
마지막 엘리베이터 신에서 보여준 김선생의 찰나의 표정은 특히 인상 깊다. 자신의 믿음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이미 제 믿음을 확신하기에 이를 무시하고 만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색안경을 끼고 있단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래서 자신은 공정하게 사실만 보고 판단한다고 믿고, 진실을 파헤치기보다 자신의 믿음을 증명해주는 것을 찾아 속단한다. 이같은 확증 편향이 어느새 무의식 속에서 자신을 지배하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송윤아는 극의 주제를 간파하는 미묘한 표정 변화를 담아낸 것이다.
해당 신이 어려웠단 그는 "지문에는 김선생이 어떤 마음 상태인지 지문이 없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다. 사건을 회상하는 신이 나온다. 그게 다였다. 너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제가 김선생이라면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았다. '내 생각이 맞아. 아무리 생각해도 맞아', '내가 본 게 다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이때까지 갖고 왔던 믿음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혼란한 마음으로 찍었는데 감독님이 이미 OK를 하고 다음 촬영 준비를 하시더라"고 회상했다. 대본은 인물들의 마음 상태나 행동이 친절하게 표현되진 않았다. 하지만 '돌멩이'는 그래야 했던 영화다. 송윤아는 "인물을 표현하는 배우들 몫으로 열어주신 것 같다. 감독님이 직접 대본을 쓰셨는데 정말 누구보다 더 사람을 잘 아는구나 싶었다. '돌멩이' 속 인물들은 '나 이런 사람이다'라고 작정하며 보여주는 게 아니다. 그냥 한 마을에서 펼쳐진 상황에서 다양하고 다른 많은 사람이 있다"고 했다.
덧붙여 "다름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게 쉽진 않지만, 그 다름 속에서 살아가는 게 인생인 것 같다"는 그다. 수많은 편견과 오해 속에서 자신을 지탱하는 법도 결국은 '사람'이다. "감히 이 나이가 되도록 살아가니까 사람한테 가장 상처를 주고 슬픔을 주는 존재가 사람이다. 하지만 가장 감사함을 주는 것도 사람이더라"며. 송윤아 역시 살면서 사람들로 인해 가장 큰 상처를 받지만, 사람들로부터 가장 큰 치유를 받는다. 그는 "제가 '돌멩이'를 통해 치유를 받았듯, 관객 분들도 위로가 되길 바라고 한 번쯤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를 생각하며 조금은 따뜻한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걸 가져도 되는 세상인 것 같다"고 희망찬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