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이솜 "I LOVE MY SELF" [인터뷰]
멋과 개성이 넘친다. "I LOVE MY SELF", 자신을 믿고 사랑하기에 매사 밝고 자신감이 넘칠 테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섬세함과 진중함을 지닌, 배우 이솜이다.
까칠한 성격에 돌직구. 고졸 사원들이 토익 800점을 넘으면 대리 진급을 시켜준다며 개설한 토익반 공고에도 정리해고를 하려는 수작이라며 초를 친다. 마케팅 아이디어가 넘쳐나지만 현실은 선배에게 아이디어 뺏겨, 부서원들에 햄버거나 사다 바치는 보조다. 남들은 '싸가지'라고 해도 실은 누구보다 의리파인 유나는 추리소설 마니아의 특기를 살려 절친 동기들과 함께 회사 비리를 파헤친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감독 이종필)에서 이솜의 매력은 제대로 빛을 발한다. 과감하고 세련된 패션 스타일링은 물론 사탕발림 다 내려놓은 돌직구의 현실 직시, 하지만 어려워도 친구가 가고자 하는 길을 함께 가는 진한 우정을 지닌 '걸 크러쉬' 파워 때문이다.
정작 이솜은 유나 캐릭터를 보고 고민이 컸단다. 겉으론 강하고 화려해 보이며 할 말 다하는 성격이지만, 그 이면에 정서적인 부분을 어떻게 담아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대본만 봤을 땐 "말 많고, 아는 척하고 겉도는 얘기만 하는" 아이였다. 왜 그럴까 고민했고 결국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넣어보자고 감독에 제안했다. 유나는 겉보기와는 달리 자기 자신보다 주변을 더 생각한다. 친구들한텐 강해 보이고 늘 돌직구만 날려서 힘 빠지게 만들지만, 직장에선 상사한테 찍소리 못하고 긴장하는 모습 등 정서적인 면을 자연스레 부각하려 했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깊이 고민했다. '오지랖' 넓고 여리면서도 올곧은 자영(고아성), 느릿하고 차분하지만 '수학천재' 보람(박혜수). 너무도 다른 세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친해졌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직장 상사에 모욕적인 말을 듣고 포장마차에서 보람에게 털어놓으며 울다가, 멀리서 자영이 오자 "이자영한텐 말하지 마"라며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대사를 넣었다. 이는 유나와 보람, 자영의 관계를 형성하는 대사였다. 이솜은 이처럼 캐릭터의 내면을 꼼꼼히 연구하며 매력적이고 입체적인 인물로 변화시켰다.
이솜의 이같은 캐릭터 탐구 과정과 비하인드 스토리는 여간 흥미로운 것이 아니다. 극 중 말단 고졸 동료 송소라와의 관계도 중요하게 설정했다. "옥상에서 작당질을 할 때 송소라가 나타나는데 그때 촬영과 조명, 구도까지 완벽했다. 만화적으로 잘 표현된 장면이라고 생각했다"는 이솜은 실제 송소라와의 관계를 만화 '슬램덩크'로 설정했다. 유나는 강백호, 송소라는 서태웅이다. 아무리 잘하려고 발버둥 쳐도 서태웅을 이기지 못해 분하고 오히려 그 앞에서 까불대며 뻐기는 것이다. 이솜은 "송소라와 라이벌이지만, 그가 더 위에 있단 설정을 잡고 싶었다. 그런 캐릭터 구도와 뉘앙스를 많이 신경 썼다"고 귀띔했다.
'쌉쌍바'라고 유나가 늘 내뱉는 귀여운 욕설도 눈에 띄는 대사다. 이솜은 "다들 제가 욕을 잘할 거라고 생각하시는데 진짜 못한다. 어설프게 한다. 그런데 촬영할 때 한 번에 오케이가 나더라"며 민망해한다. 영화에선 나오지 않지만, 회사 비리를 파헤치는 일에 동참해준 친구들에게 자영이 고맙고 미안하다고 얘기할 때, "아냐. 난 널 위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해야 내 기분이 좋다"라고 유나가 말하며 흥얼거리는 노래는 직접 가사와 멜로디를 써서 준비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편집됐다고. 그러면서 즉석에서 그 노래를 불러주는 이솜이다. 이처럼 연기와 작품에 대한 애정과 순수한 열정이 가득하다. 유독 이번 캐릭터가 그랬단다. 여성 또래 배우들과 작업할 기회가 많이 없었기에 더 열심히 준비해서 잘하고 싶었다고.
고아성, 박혜수와 함께 합숙도 했다. "아무리 촬영이 피곤하고 힘들어도 같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다 함께 잤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만들어간 영화다. 모니터를 볼 때 각자 개성 있는 친구들이 정말 사이가 좋고 돈독하구나 느껴져서 좋았다"는 그다. 셋이 함께 있으면 그저 좋았단다. "한 명이라도 없으면 완전체 느낌이 안 났다. 가장 좋아하는 신이 회사 출근하는 장면에서 각자 캐릭터 소개가 지나가고 보람이 넘어졌을 때 다 같이 일으켜주는 모습이다. 참 친근해 보인단 생각이 들더라."
이솜은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주제를 담고 있음에도 세 친구들이 흥미롭고 신나게 풀어내는 과정이 좋았고, 무엇보다 90년대를 배경으로 한 것이 즐거웠다. "그 시대를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로는 유나가 가장 적합하단 생각이 들었기에 제대로 하고 싶었고 신나게 준비했다"고. 모두가 공감할만한 분위기를 내고 싶어서 옛날 영상들을 찾아봤고, 엄마의 젊은 시절 사진도 찾아봤다. 지금보다 더 과감하고 화려한 스타일링이 멋스러웠다. 본인도 모델일을 했어서 그런지 의상과 메이크업에는 의견을 많이 냈다. 사진 속 엄마가 입은 옷을 그대로 소화해서 입은 것도 있다. 검정 목폴라에 묵직한 골드 목걸이를 매치하고 가죽 치마를 착용한 패션이다. "엄마의 패션을 그대로 꼭 한번 입었으면 좋겠단 생각에 입게 됐다"지만, 정작 엄마에겐 쑥스러워 말을 안 했단다.
겉모습부터 내면까지 화려하고 당차지만, 속 정 깊은 유나 그 자체였던 이솜이다. 10년 전 인연이 있던 감독은 애초부터 이솜을 염두하고 유나 캐릭터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솜은 "유나와 조금은 비슷하지만 많이 다르다. 유나만큼 많이 알지도 못하고, 할 말을 하지도 못한다. 일할 때는 명확하게 얘기하는 편이지만, 요 근래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자주 해서 저를 그렇게 봐주시는 것 같다. 스스로 그런 사람인지 물으면 맞다고 대답할 순 없을 것 같다. 주체적이고 싶어 하는 여성인 것 같다"고 털어놨다. 결과적으로 완성된 영화를 보고 유나를 하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그가 느끼기에도 완성된 유나의 모습은 친구들을 위해 정의로운 일을 나서서 할 수 있는 굉장히 멋진 여성이었다. 이솜이 유나의 대사 중 가장 좋아하는 건 "아이 러브 마이 셀프"다. 그는 "저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단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극 중 유나는 '싸가지'로 대변되지만, 실제 자신이라면 '고인물'이라고 불리지 않을까 싶단 이솜이다. 사실 유행을 잘 모르고, 카톡도 안 한다. 신조어나 최신 유행들도 이번에 고아성, 박혜수에게 알게 된 게 많기 때문이란다.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세 가지 단어들로 스스로를 정의하길 "나 스스로에게 냉정한, 친구들에겐 철없는, 어떤 면에선 까다로운 나"라고. 하지만 그런 자신을 사랑하는 "I LOVE MY SELF"를 되새긴다.
이솜에게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2020년에 찾아온 90년대 영화란 굉장한 의미가 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모든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을 잘할 수 있는 원동력은 일을 사랑하는 거다. 그걸 또 느껴서 이번 영화를 계기로 일을, 그리고 나를 더 사랑하려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자신과 일을 사랑하는 그의 모습이 누구보다 당당한 이유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