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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이꽃' 고훈 감독, 아름다운 삶의 가치 [인터뷰]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용기 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시민의 삶,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이야기로 가장 전하고 싶은 건 위로와 희망이란 고훈 감독이다. 그의 영화엔 평범한 보통의 사람들을 향한 애정 어린 시선이 가득하다. 아름답게, 그리고 사람답게 사는 것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그였다.  영화 '종이꽃'은 사고로 거동이 불편해진 아들과 살아가는 장의사 성길이 옆집으로 이사 온 모녀를 만나 잊고 있던 삶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되는 이야기다. 영화는 진정한 삶과 죽음의 의미, 돈과 자본의 잣대로 취급될 수 없는 인간의 존엄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영화의 시작은 우연히 접한 한 장의사의 인터뷰였다. 죽음을 도와주는 사람, 죽음을 보내는 사람들의 방식이 기억에 남았다. 고훈 감독은 우리나라의 장례 문화가 죽음이 상업화되고 돈을 벌기 위해 경쟁하는 구도로 바뀐 듯한 구조가 안타까웠다. "우린 불평등한 사회에 살고 있고, 자본에 의해 좌지우지되며 좌절감도 느끼고 이에 따른 고통도 있다. 하지만 죽음 앞에선 모두 평등하다. 인간에 대한 존엄성은 같다. 이를 통해 위로가 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생각이 '종이꽃'으로 피어났다. 제목 '종이꽃'의 의미에 감독의 바람이 고스란히 담겼다. 꽃이 귀하던 시절, 소외되거나 가난한 이들에게도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 숭고함을 표현하기 위해 종이꽃으로 대신 예의를 표하곤 했다.  감독은 처음 이야기를 구상할 때부터 장의사 성길 역에 안성기를 떠올렸다. "이름도 모르는 한낱 영화감독의 작품에 하시려고 하겠나.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다" 그런 마음으로 시나리오를 보냈다. 일주일도 안 돼 만나잔 회신이 왔다. 믿기지 않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설레고 떨리더란다. 수줍은 10대 소년처럼 당시를 회상하며 다시금 감격에 젖은 감독이다. 당시 안성기는 감독에 "시나리오가 주는 울림이 있다. 잘 만들어보자"고 했다. 대사가 별로 없다는 점도 마음에 들어했더란다. "그 말씀은 대사로 뭔가 전달하기보다 선배님이 더 보여줄 게 많다는 거다. 160편이 넘는 영화를 하셨는데 아직도 무언가를 더 보여주고 싶어 하는 그 욕망이 보였다. 저는 '무뚝뚝하지만 그 안에 따뜻함을 보여주고 싶습니다'라고 했고, 선배님도 같은 생각이라고 하시더라"고 했다. 장의사 역할은 기라성 같은 배우에게도 처음 맡는 역할이었다. 안성기 또한 배우로서 욕심이 난다고 하더란다. 장의사 수업부터 종이꽃 만들기까지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고.  안성기는 영화의 첫 등장부터 시선을 압도한다.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하고 나와 담배를 태우는 모습. 친구의 "미안하다. 너한테 해야 되는데"라는 말을 들으며 대꾸 없이 담배만 태우는 얼굴. 이는 대사 한마디 없이, 그 주름진 얼굴과 허망하게 부서지는 담배 연기만으로도 세월의 무게를 여실히 느끼게 했다. 상조회사의 등장으로 일거리가 줄어든 장의사의 고단한 현실을 단번에 드러내는 신이었다. 불의의 사고로 거동이 불편해진 아들에게도 살가운 구석이 없다. 건조하고 메마른 삶을 살고, 녹록지 않은 형편 때문에 대규모 상조 회사에서 새롭게 일을 시작했지만 자신의 신념을 쉽게 꺾을 수 없는 고집, 돈으로 죽음의 가치를 평가하는 세상에 대한 분노, 그러나 순응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연민과 자책. 이 모든 성길의 감정을 안성기는 묵묵히 그러나 진실된 표정과 눈빛으로 오롯이 담아낸다. 그야말로 품격 있는 연기다. 안성기는 이로 인해 미국 3대 영화제로 꼽히는 제53회 휴스턴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외국어영화상은 물론 한국 배우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감독은 기쁨은 둘째치고 안도했다. "영화라는 것이 평가받는 자리에 있다.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좋은 상을 받으니 내가 할 일을 해냈단 느낌에 한결 편안해진 느낌은 있다"고 했다. 이전까지 함께 촬영을 하고도 감히 안성기의 번호조차 물어보지 못했단 감독은 수상 소식 이후 모르는 번호로 전화를 받았다. 안성기였다. "고 감독,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그렇게 기쁠 수 없었단다.    고훈 감독은 죽음을 많이 접했다. 조부모와 아버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친구의 죽음이 자신을 변화시켰다. 40대에 들어서 겪는 사춘기 같은 것이 왔다고. "죽음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갖게 됐다. 영화나 책도 그런 쪽으로 보며 생각을 하게 되고, 그때 바로 장의사 인터뷰가 눈에 띄었던 거다." 제주도 출신 감독은 전작 '어멍'에서도 제주식 장례 문화를 스크린에 담아낸 바 있다. 비주얼적으로 장례 문화를 스크린에 담고 싶은 바람도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죽음이란 색깔은 밝지 않다. 이에 감독도 "저도 죽음이란 건 두렵고 무섭다.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많이 무감각해진 것 같다"고 한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이 화두를 이끌어내는 건, 분명했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곧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소재로 하지만 그 안엔 삶에 대한 희망과 욕구를 계속해서 표현해왔다. 이를 통해 저 스스로도 치유가 된 것 같다. 불안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겠단 생각을 하며 찍었다"고.  극 중 안성기는 자본주의 사회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자책하고 괴로워하면서도, 삶의 처지 때문에 거부하지 못한다. 내면의 죄책감을 외면하지만 결국 성찰하고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다. 특히 영화 엔딩 속 그가 짓는 미소는 관객에게도 안도와 희망을 준다. 고훈 감독도 제일 좋아하는 신이다. "성길이 끌고 가는 감정이 죄책감이다. 관객 분들도 성길의 감정에 이입해주시길 바랐다"는 그는 "'종이꽃'의 마지막 장면은 원래 장례 행렬로 끝난다. 선배님의 클로즈업 단독샷은 원래 제 계획에 없었다. 엔딩을 바꿀 만큼 강렬한 신이었다"고 귀띔한다. 정말 신기하게도 구름이 걷히며 햇빛이 드러나고 그 햇살을 받는 안성기의 모습엔 그 어떤 디렉션도 없었다. 생각보다 훨씬 좋은 울림이 있었다고. 결국 '종이꽃'은 성길의 이야기다. 신념이 흔들리는 인간, 하지만 그 신념을 바로 세우는 인간의 존엄성. 그 고귀함을 안성기는 마지막 얼굴과 미소로 담아낸 셈이다.  감독은 이를 통해 관객도 위안을 받고 희망을 얻길 바랐다. "'동행'이란 KBS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정말 절망에 빠질 수 없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담담하게 생활한다. 그걸 보며 울컥한다. 그래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건,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들. 바로 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다."  "난 아름다운 사람은 아니오. 하지만 추한 사람으로 기억되기는 싫소." 이 극 중 대사는 '종이꽃'을 관통하는 메시지다. 추한 삶을 살지 않기 위해 종이꽃을 접었던 성길처럼, 누군가를 위해 종이꽃을 접어줄 수 있는 삶을 희망하는 감독이다. "스스로 행복이 뭘까를 자문하며 산다. 사람들이 제 영화를 보고 위로받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 앞으로 만들 영화라도 그런 영화이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그게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싶다. 아름다운 삶을 살려고 노력하면 그 빛과 향기, 색깔이 충분히 스며들고 긍정적인 자세가 큰 힘을 발휘할 것"이라 믿는다.  사진=(주)로드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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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이꽃' 김혜성의 낯선 얼굴 [인터뷰]

    배우 김혜성의 낯선 얼굴을 봤다. 우울과 절망으로 절규하면서도 사실은 무너지지 않고 살고 싶다며 발버둥 치는 그 처절함이 가득한 표정은 낯설고 또 낯설다. 언제나 밝고 해사한 소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 것만 같던 그가 이처럼 불쑥 낯설고 기묘한 감상을 전한다. 누구도 아직 그의 전부를 알지 못한다. 미래가 촉망되는 의대생이었지만 불의의 사고로 거동이 불편해진 이후 삶의 희망을 포기한 지혁. 그런 그를 묵묵히 돌보는 장의사 아버지 성길과의 관계는 건조하기 짝이 없다. 옆집에 이사 온 은숙-노을 모녀는 지혁을 차츰 변화시키고 삶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한다.  김혜성이 영화 '종이꽃'(감독 고훈)의 지혁 캐릭터 제안을 받았을 땐 이미 안성기가 아버지 성길 역할로 확정된 후였다. 시나리오도 두 시간 만에 그 자리에서 다 읽을 만큼 좋았다. 별 고민 없이 바로 그날 하겠다고 결정했다.  거동이 불편한 지혁이기에 집에서 하반신을 묶어놓고 상체로만 기어 다니며 생활하는 움직임을 익혔다. 침대에서 혼자 떨어지기도 수차례였다. 온몸이 멍투성이가 돼도 그건 전혀 힘든 게 아니란다. "아픔에 익숙해져야 했다. 배우로서 당연한 거다. 움직임이 어설퍼 보이면 안 되잖나." 대수롭지 않은 그다. 은근히 악바리 근성이다. 예쁘고 고운 외모만 봐선 퍽 연상되지 않는 이미지다. 하지만 김혜성은 자신이 밝은 이미지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낯을 가리고 부정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이란다. "감독님도 절 보시기 전에 '거침없이 하이킥' 이미지처럼 밝은 아이라고 생각하셨을 것 같다. 실제로 출연을 결정하고 감독님과 처음 뵀을 때 대화도 많이 안 나눴다. 전 거의 대답만 했다. 그런 모습들을 보고 지혁이의 우울감 등이 보였고 그 접점이 있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고.  알고 보면 김혜성은 지혁의 모습과 닮은 구석이 많다. 김혜성은 자신의 감정을 지혁에 대입해 연기했다고 털어놨다. 이를테면 포기하고 싶단 부정적인 생각과 한계들, 의심하고 자책하는 감정들 따위다. 김혜성은 "연기를 시작한 처음부터 그랬던 것 같다. 어렸을 땐 어리니까 그냥 했던 것 같다. 군대 다녀온 뒤부터 심리적 변화도 생기고, 진지하게 연기를 생각하다 보니 나에 대한 의심이 커지고 자책이 커지더라"고 했다. 스스로를 모질게 대할 때도 많았다. "스스로 내 편이 되어줘야 하는데 내 편이 아니라 남 편이 되는 거다. 그럴 때 나를 걱정하는 가족들이 느껴졌다. 그래서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을 바꾸고 자책보단 용기를 주고 있다." 익숙한 걸 좋아하고, 사람들이랑 친해지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하지만 한 번 마음을 열면 누구보다 깊게 사귀는 편이다. 그런 김혜성이 지혁에 녹아든 모습이 종종 보였다. 병뚜껑을 열어달란 은숙의 요란한 성화에 마지못해 받아 들곤 안간힘을 써서 결국 열었을 때, 저 스스로도 뿌듯하고 기쁜데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추고 무뚝뚝하게 구는 모습. 실은 누구보다 밝고 상냥한 지혁의 본성을 그 표정 하나로 표현한 김혜성이다. 그는 "그 신이 아직 은수에게 마음을 서서히 풀어가는 과정이기에 환하게 웃을 순 없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은숙에게 표현 아닌 표현을 했던 장면이다. 지혁이가 워낙 '츤데레'라서 그 장면 찍을 때 신경을 많이 썼다"고 했다. 휠체어와 악전고투를 벌인 끝에 마침내 혼자 힘으로 올라타 환호를 내지르는 장면은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었다. 그는 해당 신에 대해 "휠체어를 고정시켜놔도 상체 힘으로만 타려고 하다 보니 힘에 밀려서 그 장면 찍을 때 육체적으로 정말 힘들었다. 여덟, 아홉 번을 찍은 것 같다. 너무 힘들었고, 정말 성공한 뒤에 환호 지르는 건 실제 기쁨의 소리였다"고 웃어 보인다. 아무래도 행동에 제약이 있다 보니 얼굴과 분위기로 감정을 표출해야 했고, 지혁의 심리 상태를 잘 드러내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다고. 또한 그렇게 신경 쓴 부분을 잘 포착해줘서 감사하다고 예의 바른 인사다.    지혁의 사고 이전부터 성길과는 친근한 부자 사이가 아니었다. 여행 작가를 꿈꿨지만 아버지의 바람대로 의대생의 길을 택했고, 아버지 몰래 마지막으로 떠난 여행에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절망적인 사고를 겪고 아버지와 더욱 멀어졌다. 서먹서먹한 부자 관계를 위해 실제로도 선배 안성기와 촬영장에서 대화를 많이 하지 않았단 그다. 이를 두고 저가 촌스러워 그런 거란다. "실제로도 이런 감정을 잡고 가야 연기가 표현된다고 생각해서 촬영장에서 혼자 심각하게 따로 떨어져 있었다"며 "안성기 선생님과 대화도 더 나누고 얘기도 듣고 싶었는데 제가 그 구분이 안 되다 보니 아쉬웠다. 그래도 꾸준히 선생님께서 '잘한다'고 칭찬해주셔서 그 말 한마디가 큰 도움과 용기가 됐다"고.  죄책감에 시달리며 뒤척이다 잠든 아버지를 가만히 껴안는 신은 그의 가슴에 가장 와닿는 장면이었다. "지혁이가 이전까진 아버지를 한 번도 안아준 적이 없을 거다. 처음 아버지를 껴안는데, 실제 안성기 선생님이 저보다 체구도 크신데 안는 순간 그렇게 작아 보일 수가 없었다. 실제 저희 아버지가 떠올랐고 그런 뭉클한 울렁임이 올라오더라." 이처럼 점차 변화하는 지혁의 감정선을 오롯이 그려내며 섬세하고 깊이 있는 연기를 보인 김혜성이다. 하지만 "감독님께서 시나리오를 순서대로 찍어주신 덕분"이라며 "감정이 혼란스럽지 않게 쌓여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셔서 그런 것"이라고 한다.  물론 19회 차 촬영이라는 빠듯한 스케줄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시간 제약이 있다 보니 제 연기가 아쉬워도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배우로서 부담과 불안감도 있었다. 철저하게 생각하고 준비했다고 해도 준비한 만큼 안 될 때가 있고 여기서 내가 해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좀 힘들고 고달프기도 했다"는 그다. 김혜성은 이처럼 자신에게 엄격하고 냉정하지만, 그만큼 단단하게 성장한다.  그가 말하길 어릴 땐 고정된 이미지에 자격지심도 컸다. 하지만 좀 더 생각이 깊어지고 나이가 들다 보니 의식하지 않으려 한다. 안 되는 걸 억지로 바꿀 순 없잖나. 그러니 "자신의 소신과 신념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며 깨달음을 정의한다. 배우로서 살아온 지난 16년을 돌아봤을 때 그는 스스로 "정신이 건강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무엇보다 그를 지탱하는 것은 가족이다. "부모님도 그렇지만 우리 3형제가 우애가 돈독하다. 열심히 사는 형들을 보며 자극을 받고 부끄럽지 않은 동생이 되고 싶단 생각이다. 형들도 막내인 제게 헌신적인 사랑을 준다. 제 힘은 다른 무엇도 아닌 가족"이라고.  여전히, 연기할 때가 제일 재밌단 김혜성이다. 물론 괴롭고 속상할 때도 있지만, 카메라 앞에 서 있는 순간순간이 제일 기분 좋고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기에 고통과 고민이 뒤따를지라도 행복하다 말한다. 생각보다 더 단단한 내면을 갖고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을 부여하며 변함없이 성장하고 있는 김혜성이다.  사진=(주)로드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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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고아성은 지금 맑음 [인터뷰]

    고아성은 현재 밝고 명랑하다. 지금의 밝음이 만족스럽다며 환하게 웃는 그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감독 이종필)의 입사 8년 차 말단 여직원 이자영. 실무 능력은 완벽하지만 현실은 커피 타기 달인인 그는 토익 600점을 넘으면 대리로 승진해 진짜 '일'을 할 수 있단 희망을 품는다. 하지만 회사의 폐수 무단방류 현장을 목격한 뒤 이를 동기들과 파헤치려 한다. 오지랖이라 해도 좋다. 일과 직장을 누구보다 사랑하기에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오지랖'이라고 불리는 자영. 고아성은 평소 말수도 적고 내성적인 편이라, 자신과는 다른 자영을 위해 의도적으로 스스로 바뀌려 노력했다. 촬영에 집중하느라 몰랐는데 당시 만났던 주변 사람들은 '정말 밝아졌다'는 얘기를 그렇게 하더란다. "MBTI 검사를 정기적으로 한다. 이 작품 하기 전엔 무조건 I(내향형)가 나왔는데, 이후 E(외향형)가 나오더라. 영화 찍다 보며 느끼게 됐다. 다음 영화 찍을 때까진 성격이 이렇게 간다. 이번 영화를 통해 바뀐 제 성격이 좋다. 주변 사람들도 밝아졌다고 좋아하시더라"며 저도 신기한 눈빛이다. 실제 고아성이 풍기는 분위기부터 발랄하고 통통 튀는 딱 그 또래들의 모습이었다. 환한 얼굴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조잘조잘 얘기하는 그 기운이 싱그럽다.  그 또한 제 나이에 할 수 있는 명랑한 역할을 하고 싶단 바람이 있던 찰나, 이 작품을 만나게 됐다. 독특한 제목부터 새로웠고, 극이 밝고 명랑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 안에 진중한 메시지도 담겼고 사회문제도 담겼다. 이종필 감독과도 이미 알던 사이였고, 안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감독이 진지한 편지를 한통 보냈단다. 91년도에 실제 모티브가 된 사건부터, 내부고발을 성공시킨 여성 직장인 얘기, 환경 문제 등을 빼곡히 쓴 정성이 가득한 편지. 그래서 감독에 얘기했다. "이렇게 진지하게 안 하셔도 이 영화 할 것"이라고. 감독은 이렇게 진지하게 안 하면 설득 안 당할 것 같아 그런 거라고 말했다. 사회적인 울림을 주는 작품들에 자주 출연했던 고아성이기에 감독의 '오지랖'이 작용된 모양이다. 고아성은 "그동안 딱히 의도해서 선택한 건 아닌데 돌이켜보면 부정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제가 그런 이야기에 많이 끌리는 것 같고, 감독님이나 작가님께서도 저한테 그런 모습을 끌어내고 싶어 하시는 게 아닐까"라고 정의해본다.  결론은 밝은 작품을 하고 싶던 차에 또래 여배우들과 함께 의기투합해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모아 신나게 촬영할 수 있던 작품이다. 다양한 사회적 쟁점들을 밝고 명랑하게 그려낸 영화의 톤 앤 매너도 흡족했다. 고아성은 "저희 영화가 참 알차다. 우정, 추리, 복수극, 승리 스토리 등 모든 게 다 담겼다. 또래 배우들과 친근하고 충만한 작업을 했다는 건 두고두고 뿌듯할 것 같고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 같다"며 기뻐한다. '싸가지'라고 불리지만 누구보다 의리파인 돌직구 유나(이솜), 어리바리해 보이지만 올림피아드 우승 출신 수학 천재 보람(박혜수)과의 극 중 '케미'는 스크린 밖에서도 여전하다.  작품을 통해 끈끈하고 돈독한 동료이자 친구를 만나게 된 이들이다. 고아성은 "처음 시나리오 읽을 때부터 세 배우의 합이 중요하겠단 생각에 이를 중점적으로 봤다. 누구 하나만 노력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며 "처음 만나서 각자 우리가 어떻게 작품을 읽었는지 얘기를 나누는데 그때 정말 좋은 예감을 받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셋이 합숙까지 하며 더욱 돈독해졌다. "솜 언니는 정말 큰 언니처럼 많이 챙겨주고 요리를 잘해줬다. 혜수는 막내인데 정신적 지주 같았다. 전 리액션 담당이었다"며 웃음을 자아낸 고아성은 "또래 배우들과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은 다 누렸던 것 같다"고 충만한 행복감을 드러낸다.  세 사람이 붙는 신은 특히 다 좋았다. 지하철 장면을 찍을 땐 너무 감성에 젖어 눈물이 나기도 했단다. 그가 말하길 세 사람의 집 방향이 다 다르듯, 자영은 혼자서 비리를 목격했고 친구들은 처음엔 시큰둥하다. 혼자 속상해하며 '오지랖 많은 내가 참고 넘어갈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때 안 도와줄 것처럼 하던 친구들이 도와준다는 거다. 너무 고마워서 플랫폼 건너편에서 외치는데 그 지하철도 스크린 도어 없는 90년대의 지하철 모습이었다. 게다가 이 촬영 다음날이면 신식으로 바뀌는 공사가 들어간다. "뭔가 마지막 남은 장소에 대한 낭만도 겹쳤고, 참고 참다가 고맙다고 외치는데 두 사람에게 느끼는 진한 감정도 있었고 여러모로 엄청 젖어있었다"고. 이처럼 뭉클했던 신이 수두룩했다. 특히 친구들과 함께 행진하는 듯한 출근길 신은 한껏 격앙되고 떨렸다. "실제 이 거리에 이 사람들이 있었을 거란 실감이 났다"고 했다. 아직 서울에 남아있는 90년대 장소에 대한 낭만이 느껴졌고, 만약 저가 90년대에 청춘을 누렸더라면 그 출근길을 걸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 하지만 작품을 통해 그 시절의 향수를 느껴본 것만으로도 기뻤다.    영화는 9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옛 시절의 낭만과 향수가 가득하지만, 한편으론 고졸, 여자 사원들에 대한 차별이 만연하게 보인다. 고아성은 "촬영하며 그 공간에 들어섰을 때 말단 고졸 사원들을 구분하는 자주색 유니폼을 입고 서로 마주보고 앉아있는 대열에서 차별이 느껴지더라. 제가 혼자 복도에 책상이 빠져서 개미 쳐다보는 신을 찍을 때도 너무 서운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그 서운함을 담아서 터뜨릴 때 내면의 통쾌함이 있었다고 눈을 빛낸다.  남들은 자영더러 '오지랖'이라 하지만, 아무리 괴롭고 힘든 일이 벌어진대도 옳은 길을 가야 한다고 믿는다. 고아성도 자영처럼 책임감을 스스로 짊어지는 마음이 뭔지 알았기에, 자영이 얼마나 마음고생 했을지 연민이 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타적이고 마냥 착한 것 같지만, 자영은 자신만의 신념이 확고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친구들이 함께 였기에 가능했다며. 자영으로 살 수 있고, 자영의 성격을 새로 갖게 돼 기쁘단 고아성은 "실제 성격은 딱히 없는 것 같다. 내향적이고 외향적인 성향의 중간 지점에 있는 것 같다. 제 원래 성격의 장점이라면, 공감을 잘한다는 거다. 너무 공감하면 힘들 때도 있고, 제 자신이 흔들리는 경우도 있지만 사람을 잘 이해한다는 것이 저도 좋아하는 지점인 것 같다"고 했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로 최연소 청룡영화상 신인상 타이틀을 획득한 고아성은 어느덧 23년 차 배우, 20대의 끝자락에 도달했다. 하지만 대단한 타이틀은 정작 그에게 "잊고 살 때가 많은" 것이다. 작품 수가 많아져도 예전 작품을 보고 "잘 봤다"고 기억해주는 사람들, 배우로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연기했던 지점을 알아봐 주고 이해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그저 반갑고 보람찰 뿐이다. "연기하며 기복이 심해진다. 이 작품에서 잘했다고 해도 다음 작품에서 잘한단 보장이 없다. 볼링이 유일하게 아마추어가 프로를 이길 수 있는 스포츠라더라. 연기도 경력과 무관하게 한 순간의 판단으로 너무나 바뀌는 것 같아 사실 겁나지만, 잘 이어오고 있다. 제 연기의 원동력은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이에 대한 지치지 않는 애정 때문인 것 같다."  "배우 하는 게 정말 행복하고 좋다"는 그의 표정에 행복과 밝음이 가득하게 차 있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