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굴' 조우진, 타고났다 [인터뷰]
조우진은 타고났다. 코믹 연기도 출중하다. 탁월한 연기 감이다.
인사동에서 관광객들에게 기념품을 판매하는 남자의 정체는, 알고 보면 신라 고분에 있는 벽화를 감쪽같이 도굴한 전력으로 꾼들의 세계에서 명성을 떨친 바 있는 고분 벽화 도굴 전문가 존스 박사다. 손 털고 평범한 삶을 살던 그가 갑자기 찾아온 천재 도굴꾼의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받고, 갑자기 일명 '인디아나 존스' 모자를 쓰는 순간. 그 찰나에 조우진은 이미 그 행위만으로 각종 도굴꾼들이 모여 짜릿한 판을 벌이는 범죄오락물 '도굴'(감독 박정배) 속 존스 박사의 경쾌한 생동감을 담아낸다.
이처럼 강렬하고 확실한 캐릭터의 첫 등장은, 조우진의 애드리브로 만들어진 신이다. "프레임 밖으로 빠졌다가 태세 전환해서 모자를 쓰고 등장하면 재밌을 것 같아서"란 생각에서 해본 거라니, 타고났다고 말할 수밖에. 그는 "사실 '인디아나 존스' 하면 모자와 채찍, 허리춤에 총을 찬 모습이 떠오르지 않나. 존스 역할을 맡고 나서 감독님께 제일 먼저 의상 중에 모자가 있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극 중 존스 박사의 시그니처인 모자는 "물리적 가치를 따지면 저렴한 거지만, 본인에겐 심장과도 같은 플렉스"란다.
조우진은 사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팬이다. 그토록 애정 하는 존스 박사 캐릭터를 따온 인물이라니, 끌리는 것도 당연했다. 게다가 대본을 받고 다 읽기까지 "44분"이라는 정확한 수치도 기억할 만큼, "찰지고 재밌는" 이야기였다. 무엇보다 그는 "그동안 제가 남을 괴롭히는 역을 많이 했는데 이제 절 보며 관객들도 편안함을 느끼고 미소를 띠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게 지루함이나 피로감이 드시지 않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만나게 된 '도굴'"이었다. 그러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겠다.
다채로운 캐릭터 팀 플레이가 중요한 케이퍼 무비 특성상 캐릭터들 간의 어울림도 중요하지만, 개개인의 고유한 매력도 분명해야 한다. 조우진은 그런 의미에서 제 몫을 넘치게 해낸다. 그가 등장하는 신은 큰 액션이나 대사가 없더라도 존재만으로 한 컷, 한 컷,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를테면 첫 도굴 작업을 앞두고 시뮬레이션을 설명하는 신에서 아무도 집중하지 않자 칠판에 분필을 수차례 던지는데 그 분필 깨지는 소리마저도 그토록 웃기고 경쾌할 수가 없다. 조우진은 "어쩌다가 최진기 선생님 강의를 봤는데 분필을 참 잘 던지시더라. 언제 한번 저걸 차용해야겠다 싶었는데 마침 존스가 열성적으로 설명하는 장면에서 다들 듣는 둥 마는 둥 하길래 요때 써먹어야지 싶었다"고 풀이한다.
허구적인 인물의 삶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일은 모든 배우의 몫이긴 하겠다만, 이처럼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을 포착해 세밀하고 현실적인 묘사로 이끌어내는 것은 비단 조우진의 예리한 관찰력과 영리한 감각 덕분이다. 그럼에도 그는 그저 "얻어걸린 것뿐"이란 겸손이다. 그 신 이후 열광하는 사람들의 반응에 금세 뿌듯해져서는 "왜 가수가 은퇴를 반복하는지 알겠다. 바로 팬들의 반응 덕분이지"라며 누가 봐도 과장스럽고 만화 같은 허세 동작을 취하는 그 뻔뻔한 모습마저 사랑스럽던 존스 박사다. 조우진은 "정말 '오글거림 주의' 대사들이 많았다.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며 새삼 얼굴을 붉힌다. 하지만 극복도 빨랐다. "존스 박사가 톤이 높다. 오글거리는 대사를 차별화시키면서 진중한 호흡으로 띄어서 얘기하면 더 재밌지 않을까 싶더라"고.
존스 박사는 낭만을 표방하는 인물이지만, 조우진은 그 기저에 깔린 것이 무엇일지 생각했다. 그 답은 순수성이었다. 그가 말하길 존스 박사는 첫 도굴 작업 성공 이후, 받은 돈을 모두 레트로 한 빨간 스포츠카를 사는데 쓴다. 자유롭고 낭만이 느껴진다. 어떻게 보면 각박하고 시니컬해진 세상에서 살아나가긴 비현실적인 인물이다. 단지 재밌어 보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레트로 감성과 이에 대한 혜안을 가진 순수한 인물. 그렇기에 허세와 허풍도 가능한 그런 존스 박사로 진지하게 임하는 것이 중요했다고. 그리고 그는 "스필버그 감독도 우리가 순수했던 시절을 그리는 걸 목표로 했다"고 덧붙였다. 본인도 그런 순수한 낭만을 지녔기에 존스 박사의 순수성과 낭만의 가치를 표현하고자 함이 아니었나.
탁월한 감각으로 존스 박사를 탄생시킨 그지만, 사실 사람을 즐겁고 재밌게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단 생각을 전한다. "사람의 감정, 희로애락을 건드리고 표현해야 하는 건 계속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워낙 밝고 경쾌한 존스 박사를 연기한 덕분에, 촬영장에서 그의 모습도 조금은 달랐다. 스태프들과 더 장난도 많이 치고, 얘기도 많이 했다. 이는 연기할 때도 도움이 많이 되고 "서로 격려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고, 좋은 결과물 찍었다는 보람과 성취감"이 느껴졌다.
또한 그는 극 중 등장하는 벽화와 각종 문화재, 미술품 등도 눈여겨봐 달라 당부했다. "유구한 역사와 유물 앞에서 제가 하찮게 느껴질 정도로 경건함을 느꼈다"며 "비록 영화를 위해 제작된 소품들도 있지만, 영화가 구현한 모든 소품과 공간들은 엄청나게 심혈을 기울였다. 이를 목격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영화적 재미를 느낄 것"이라고 자부했다.
조우진은 '기억에 남는 배우'에서 어느덧 '믿고 보는 배우'가 됐다. 하지만 "익숙해지고 노하우가 생기고 노련함도 생길 줄 알았는데, 덜 떨고 있을 뿐이고 살짝 덜 긴장할 뿐이지. 끝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런 긴장감과 텐션을 늘 갖고 있어야 스스로 자신을 잠그고 채찍질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장면에 임하는 태도, 작품에 임하는 태도를 늘 고쳐 잡아야 한다고. 물론 꾸준히 작품을 하며 관객과 호흡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이자 축복"이라며 "제 능력과 상관없이 기대가 높아진 걸 실감한다"는 그는 이에 따른 고민도 늘고 정신없고 부담되긴 마찬가지라 한다. 그러나 "욕먹는 걸 두려워하진 않으려 한다. 두려워하는 순간 배우로서도 인생으로서도 성장이 아니라 노화가 될 수밖에 없단 생각"이다. 그의 목표다. "늘 성장을 꿈꾸자."
"때에 따라선 관객에 위로도 해줄 수 있고, 같이 울어드릴 수도 있는 거다. 영화란 매체를 통해 관객이 현실에서 도피하게끔도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조우진이 꿈꾸는 "아티스트"의 정의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건 뭐든 열심히 최선을 다해 연구하는 것이다. "배우란 정말 행복하고 복에 겨운 직업이란 생각을 한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고, 공감을 이끌어낸단 행복감도 있지만 그 못지않게 큰 건 인생, 그리고 사람을 배워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배우로서의 삶도, 제 개인의 삶도 더 풍성해지는 것 같다"며 제가 받은 충족감을 관객에도 돌려주고 싶어 한다. 그런 조우진의 정성이, 그 세밀한 연기에 고스란히 담길 뿐이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