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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메이커' 이선균, 그림자에 불어넣은 숨결 [인터뷰]

    대한민국 정치사에 굉장한 족적을 남겼음에도, 그 누구도 자세히 알지 못하는 이가 있다. 존재도 이름도 숨겨진 선거 전략가, 그림자처럼 가려진 그 인물에 배우 이선균은 기어코 숨결을 불어넣는다.  서슬 퍼런 군부독재 시절, 번번이 낙선하는 정치인 김운범(설경구)이 있다. 빨갱이라 매도되고, 온갖 방해 공작에 본질이 훼손돼도 변함없이 눈부시고 고결한 이상과 신념을 좇는 이. 한편으론 미련하다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서창대(이선균)는 그런 그가 좋았다. 언감생심 바랄 수 없는 제 이상향을 실현시켜줄 그 사람을 동경했다. 비록 그의 그림자가 돼 어둠 속에 갇힐지라도 함께 하는 것이 기뻤다. 그들의 이상은 같았다. 세상을 바꾸기 위함 염원. 하지만 이를 향해 가는 길이 너무나도 달랐던 두 사람은 결국 갈등을 빚고 이들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영화 '킹메이커'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선거 전략가 엄창록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된 영화다. 이선균이 처음 대본을 봤을 땐 서창대가 꽤 부담스러운 캐릭터였다. 이 인물을 담아낼 그릇이 될까 하는 두려움이 컸다. 게다가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하지만, 알려진 사실이 너무도 없다. 풍문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많은데 정확한 기록은 없다. '선거판의 여우'라고 불릴 만큼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자문을 구할 정도의 전략가인데 왜 역사적 기록은 없을까 의문이었다. 이에 대한 부담이 상당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한편으론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 만큼 캐릭터를 구축할 때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 양반이 왜 전면에 나오지 못했을까 하는 당위성을 갖고 서창대의 과거와 트라우마를 만들어가며 연기했다"는 이선균이다. 그가 서창대를 구축한 핵심은 '트라우마'였다. "굉장히 똑똑하고 통찰력 있는 친구인데 이북 출신이라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빨갱이로 몰려 죽임을 당한 것을 직접 목격하며 큰 딜레마와 트라우마를 가졌을 것이고 '어떻게 살아남을까'를 고민하는 유년기를 보냈을 거다.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세상을 바꾸고 싶단 이상적인 꿈을 꿨지만, 여러 가지 한계가 있었고 이를 대신해줄 무언가를 종교처럼 바라고 찾았을 거다. 그렇게 찾은 대상이 김운범이란 인물이었다." 이선균은 서창대라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공감하며 숨결을 불어넣었다. 서창대에게 김운범은 그토록 애타게 찾아 헤맸던 자신의 꿈과 이상을 대신 구현해줄 사람이었다.  극 중 서창대는 명석한 두뇌를 활용해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선거 전략을 펼치고, 이전까지 연속 낙선의 고배를 마시던 김운범은 덕분에 선거에 연이어 승리하며 당을 대표하는 대통령 후보까지 올라서게 된다. 영리하고 기발한 선거 전략가와 강직한 정치인의 시너지는 그 자체로 통쾌한 감상을 준다. 하지만 이선균은 이 와중에도 섬세하고 예민한 서창대의 심리를 놓치지 않는다.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숨어 있어야만 했던 킹메이커. 그의 열등감과 욕망은 이상과 동경에 가려져 있지만, 저 수면 아래 조금씩 불안하게 일렁이는 순간들을 잘도 포착해내는 이선균이다. 그는 "서창대 본인의 욕심도 있었지만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을거다. 하지만 김운범이 점점 커질 때마다 그 뒤에 그림자로 있는 서창대가 느끼는 상실감도 커졌을 것 같다. 여기서 부딪히는 갈등이 큰 인물이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복잡하고 섬세하고 미묘한 캐릭터"였다는 설명이다.    결국 서창대는 김운범과 큰 갈등을 겪고 돌이킬 수 없는 길로 향해 간다. 이들의 감정이 극대화되는 서재 신은, 이선균이 꼽은 가장 좋아하는 신이기도 하다. "전환점이 되는 신이라 신경을 많이 썼고 잘하고 싶었던 장면이다. 두 인물의 갈등과 관계가 가장 명확하게 보여지는 장면이라 좋았고, 저나 설경구 선배님이나 감정에 동화돼 호흡도 좋았고 시너지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며 만족감을 드러낸 그는 "창대가 가졌던 여러 가지 말 못 할 감정들이 폭발하고 터지는 신이기에 그 장면이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이었다"고 회상했다.  자신의 이상과 실현을 대신 발현할 수 있는 인물에 대한 순수한 동경과 애정, 그러나 끝내 감출 수 없던 욕망과 서운함의 발현, 결국 틀어진 믿음으로 빚어진 오해와 갈등의 결말까지. 이선균 역시 씁쓸하긴 마찬가지였다. "측은했다. 관객도 그런 서창대를 보고 씁쓸하고 측은한 마음을 느꼈으면 했다."  영화는 정치 드라마지만, 이처럼 관계에 집중하고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만인의 딜레마를 건드린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이든 정당화시키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물음, 특히 서창대는 오직 승리를 위해 지역 감정, 뇌물 공세, 정치 공작 등 한국 정치사의 민감하고 어두운 요소들을 서슴지 않고 행하는 인물인 만큼 이선균의 고민은 더 깊었을 법도 했다. "우리 역사 속의 안 좋은 관습이잖나. 정확한 기록은 아니지만, 이 인물 일화가 이북 출신이라 굉장히 많은 차별을 받고 트라우마를 지녀서 누구보다 이를 잘 알 텐데도 다시 지역감정을 만드는 배후가 됐다는 설이 참 아이러니하더라. 한편으론 그러니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이 양반의 계략과 전략을 두려워하고 존중했던 인물이지 않았을까." 그 역시도 많이 후회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한 인물의 드라마틱한 서사를 깊이 있게 소화한 이선균이지만 기라성같은 선배 배우들, 그리고 무엇보다 설경구 덕분이란다. "저는 롤모델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제게 영향을 준 작품들 속에 경구 형이 있었다. 1994년 연극 '지하철 1호선'의 경구 형을 보고 정말 행복했고 '박하사탕' '오아시스' 속 그 모습도 정말 쇼킹했다. '나도 저렇게 연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설경구 선배님과 모든 선배님들을 정말 존경한다"고. 그리고 "작품은 분명히 감독을 닮아 있다. '킹메이커'가 유니크하고 스타일리시하게 보였다면 그건 변성현 감독님의 힘이다. 훌륭한 감독이고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인물"이라며 변 감독을 향한 존경을 보낸다. 그에겐 '킹메이커'를 촬영하는 매 순간이 행복이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얻는 건 결국 뛰어난 전략이 아닌, '진심'이라는 그다. "어떤 이득을 바라지 않고 솔직한 믿음과 진심을 유지하려는 느낌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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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메이커' 설경구의 '멋' [인터뷰]

    배우 설경구의 내재된 야성미와 섹시함을 발견케 하고 '지천명 아이돌'이란 유례없는 초특급 팬덤을 안겨준 영화 '불한당', 그 변성현 감독과의 재회라는 것만으로도 영화 '킹메이커'는 이미 엄청난 기대작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설경구는 눈에 띄게 멋스럽다. 정치인 캐릭터, 그것도 엄청난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한 인물인데도 특유의 멋짐이 부각되는 건, 비단 외양의 스타일링 때문은 아니다. 설경구가 그려낸 강직함, 올곧음, 그 고귀한 신념 등에서 이미 많은 의미가 함축된 '멋'을 뿜어낸 탓이다.  설경구가 '킹메이커'에서 맡은 역할은 번번이 낙선의 고배를 마시면서도 세상을 바꾸기 위해 도전하는 강한 집념의 정치인 김운범이다. 그가 얼마나 올곧고 정직한 인물이냐 하면, 온갖 부패와 독재로 위협받고 매도당해도 결코 흔들리거나 휘어지는 일 없이 제 신념과 성품을 꼿꼿이 지킨다. 정당한 목적을 위해 과정과 수단까지 정당해야 한다는, '어떻게가 아니라 왜 이겨야 하는지가 더 중요한 법'이라는, 정치가로서의 뚜렷한 대의명분을 지녔다. 비현실적인 영화적 캐릭터로 보이겠지만,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이 있다. 평생을 군부독재와 맞서 투쟁하며 민주주의를 완성한 거목,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변성현 감독, 그리고 온전히 다시 뭉친 '불한당' 팀과의 재회라는 설렘과 반가움보다는 덜컥 겁이 났단 설경구다. "아시다시피 김운범을 보면 연상되는 분이 있다. 정말 많은 존경을 받은 큰 사람이시기에 스스로도 어려워했다. 제가 따라 한다고 따라지는 것도 아니고, 모사를 한다고 해도 되지도 않을 것이었다"고. 애초 시나리오에는 떡하니 배역 이름이 '김대중'이었으니, "변성현 감독이라 거절은 못하겠지만 걱정이 많은 캐릭터"였다는 설명만 봐도 그 부담감이 오죽했으랴 싶다. 배역 이름을 김운범으로 바꾸니 그나마 심리적으로 편해진 모양이다. 그가 특별히 애정하고 인정하는 '불한당' 팀이 이 작품을 어떻게 만들어나갈까 궁금함도 생겼단다. 그때부터 김운범에 체화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됐다. "참고 자료를 봤지만 따라 하려고 하지 않았다. 닮으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주어진 대사에 집중하려 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 만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설경구는 김운범의 외로움을 먼저 봤다. 언제나 강직하고, 누구나 동경하는 그의 모습에서 오히려 외로움을 느꼈다니 의아했다. 하지만 "위치상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 인물이고 정치 지도자라는 입장에서 이 조직을 이끌고 나가는 사람이지만 현실은 자신이 주도적으로 끌고가기보다 주로 리액션을 한다. 참모들 얘기 듣다가 실없는 소릴 한다거나, 주변에 사람은 많이 있지만 혼자 감당해야 할 것이 많고 외로운 캐릭터" 였다는 진지한 설명에서, 그가 얼마나 이 인물을 깊이 헤아렸는지가 엿보였다. 더불어 그를 불쑥 찾아온 선거 전략가 서창대(이선균) 캐릭터와 비교했을 땐 더욱 평면적으로 보였단 설명이다. "서창대는 무언가를 감추고 있지만 욕망은 불타오르고, 김운범을 통해 자기 욕망을 표현하며 빛으로 나아가고 싶은 권력욕까지 다양하게 드러내는데, 김운범은 어떤 고저 없이 딱 소신 하나로만 버텨야 하고 큰 틀을 잡아줘야 하는 인물이었다. 기복이 있어야 재밌기도 할 텐데 감정을 표현해선 안 되는 역할이라 어려웠다"는 설경구는 제게 주어진 숙제였다고 했다.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 품고 있어도 표정에는 만감이 교차하는 모습이 보였으면 했다.  고민은 기우였다. 극 중 설경구가 흔들림 없이 지켜낸 소신은 인물의 타고난 기품과 성질을 드러내며 우러름을 이끌어낸다. 그렇다고 마냥 경외의 대상만은 아닌 것이 은근히 실없는 모습, 따스한 성품 등이 언뜻 비치는데다 목포 연설 신에서 그가 보인 간절함과 눈물은 인간적인 동요를 일으킨다. 그야말로 숨 쉬듯 자연스레 김운범 그 자체가 된 설경구다.  그 또한 목포 연설 신을 회상하며 "실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설문을 많이 인용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그때 당시 어떤 모습이었을까, 어떤 분위기였을까, 조금 상상하게 되더라. 순간에 동화됐다고는 감히 부끄러워 말하지 못하지만, 그때 당시 상황을 상상해보니 연설이라기보단 처절한 싸움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그때 감정이 훅 올라옴을 느꼈다. 덧붙여 "군부독재의 엄청난 권력에도 굴하지 않는다는 건 정말, 그 시대에는 더욱 대단한 일이다.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같았다. 그 엄청난 힘에 맞선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분이었다"고 다시금 존경을 표해본다.    대한민국 정치사 속 가장 상징적인 인물과, 그의 그림자에 가려진 인물. 하지만 설경구는 정치 이야기보단 두 사람의 이야기로 접근해주길 바랐다. 그가 서창대에 느끼는 감정도 깊었다. 느닷없이 제 앞에 나타난 인물이지만 그의 솔직함과 인간적인 끌림에 반했고, 목적은 같지만 너무나 다른 과정에 대한 불안감을 느꼈을 것이었다. 결국 다른 길을 가게 됐음에도 그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을 가졌을 것이라고. "김운범에게 서창대는 네 번의 실패 끝에 드디어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본 무대에 설 수 있는 시작을 하게 해준 인물이라 생각한다. 실제론 어떤 사이고 어떤 전개가 펼쳐졌을진 모르겠지만, 영화 속 두 사람은 서로 틀어졌어도 믿으려 하고 서로 원망하지 않았던 존재라고 생각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운범과 서창대의 각기 다른 삶의 방식. 이 중 뭐가 옳은 것이라고 장담할 순 없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 김운범의 너무나도 우직한 소신이 결코 미련하거나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대망의 에필로그는 참으로 만감이 교차한다. 설경구는 이에 대해 "관객에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당신은 어떠냐고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많은 일과 시간을 겪고 나서 그토록 바라던 꿈을 이루는데, 저는 이에 대한 성취감보다 오히려 먹먹하고 기분이 좀 그렇더라"고 회상하며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진 그다. 알고 보면 이토록 여리고 선한 이다.  한편으론 김운범이 추구하는 이상향과 신념은 너무나 올곧고 고결해서 벅찬 감상이 들기도 했단다. "수단과 목적이 전부 정당성이 있어야 한단 그 신념에는 동의하지만, 제가 그렇게 살 수 있을지는 장담 못하겠더라. 물론 배우로서 제가 하는 일도 큰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가 강한 소신이나 신념을 갖고 임한다기보단, 하루하루 내일의 신을 위해 며칠 전부터 고민하고 노력하는 책임감을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 제 삶의 목표"라는 그다. 그저 묵묵히 제 몫을 다할 뿐인 그 모습이 도리어 듬직할 따름이다.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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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송' 박대민 감독의 탁월한 선택 [인터뷰]

    구한말 시대 탐정 추리극 '그림자 살인', 코믹 사기극 '봉이 김선달'을 연출한 박대민 감독이 전작과는 180도 다른 매력으로 중무장한 범죄 오락 액션 '특송'을 들고 돌아왔다. 짜릿하고 영리한 카체이싱 액션과 감각적인 미장센, 그리고 은근한 휴머니즘과 유머러스함까지 두루 갖춘 영화는 이미 국내 개봉 전부터 해외 47개국 선판매와 5개국 동시기 개봉이 확정될 만큼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특송'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낸 박대민 감독, 대중의 뇌리에 그 이름 석자가 확실히 각인될 것이 자명했다. 돈만 주면 무엇이든 배달해주는 여성 드라이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 여성 액션은 종종 있었지만, 이를 카체이싱과 결합하니 이토록 이색적이고 매력적일 수가 없다. 영화는 초반부터 앳된 얼굴의 여주인공 은하(박소담)가 현란한 카체이싱을 펼치는 장면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오르막, 내리막, 좁은 도로, 주차장, 기찻길 등을 기상천외한 운전 테크닉으로 완급조절을 하며 달리는 은하는 마치 차와 한 몸이 된 듯하다.  박대민 감독이 구상한 영화 '특송'의 시작은 '운전대를 잡고 있는 여자'였다. "액션을 찍는 건 처음이지만 워낙 액션을 좋아하고, 여성 주인공이 극을 이끌어가는 이야기도 좋아했다"는 감독은 "'그림자 살인' 때도 추격전이 나오긴 했는데 이를 더 확장하고 싶었던 느낌이 있었다. 주변에서 제가 액션을 잘 찍을 수 있을지 걱정하시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의외의 선택이라기보단 그동안 하고 싶었던 걸 해낸 느낌"이라고 털어놨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영화를 보는게 취미셨고 자주 저를 데리고 극장에 가주셨단다. 주로 액션 영화들을 봤는데 보면서 정말 즐거웠다. 그렇게 자라며 영화를 보는 게 취미이자 일상이 됐고, 어느 순간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갖자는 생각으로 영화감독이 됐다. 그때부터 줄곧 제가 느꼈던 것처럼 관객들에 즐거움을 주고 장르적 쾌감을 줄 수 있는 장르 영화를 하고 싶단 바람이 컸다고. "이번 작품이 제가 제일 하고 싶었던 색깔에 가장 맞는 영화다. 이렇게 하고 싶었던 것에 더 집중해서 잘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 드리려 했다." 그토록 염원하던 액션물을 찍게 된 박대민 감독은 그야말로 숨겨진 기량을 십분 발휘한다. '특송'의 주특기인 카체이싱 액션은 익히 봐왔던 그것과는 다르다. 비밀스러운 특송 업무를 위해 낡은 차량을 개조한 탓에 폐차 직전의 '고물차'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차 등을 활용한 점이 이색적이다. 게다가 스피드와 스케일에 공을 들여온 기존 카체이싱 액션과는 달리 '특송'의 카체이싱 장면은 도심부터 주택가 좁은 골목까지 곳곳을 누빌 뿐더러, 빠르게 달리다가 단숨에 속도를 줄여 적을 따돌리기도 하는 등 완급 조절이 변화무쌍하다. 마치 차가 살아 숨 쉬는 듯한 리듬감을 준다. 현란하면서도 영리한 카체이싱 액션이 이렇게 신선하고 흥미로울 수가 없다. 다만, 한정적인 공간에서 이를 더욱 효과적으로 담아내기 위한 감독의 노고가 눈에 선했다.  이에 박대민 감독은 "아무래도 공간적인 제약이나 테이크를 여러번 갈 수 없는 상황 등 많은 한계가 있어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오히려 이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재밌는 작업이었다. 나오는 그림들 보는 재미도 있었다"고 즐겁고 뿌듯한 표정이다.  카체이싱 액션 외에도 클라이맥스 폐차장 액션 신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잔혹하고 강도 높은 액션이 펼쳐지는데 이를 타고 흐르는 팝 뮤직과 암전을 반복하는 조명의 효과는 그토록 감각적이고 흥분감이 고조될 수가 없다. "액션 수위나 강도가 세서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고, 음악이 이를 상쇄하는 역할을 할 수 있겠다고 음악감독님이 제안해주셨다. 음악이 많은 도움이 됐다"는 감독은 "아무래도 찍을 땐 가장 긴장한 신이다. 해당 장소에 가구나 소품도 많고 여기서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는 액션인데 자칫하면 부상을 입을 수 있으니 긴장해서 촬영했다"고 했다. 하지만 "조마조마하고 배우들이 다칠까 걱정했는데 몸 사리지 않는 액션 시퀀스로 결과물까지 잘 살아서 정말 만족했다"며 "이번 영화로 카체이싱과 액션은 원 없이 찍어본 것 같아서 후회 없이 작업했다"고 안도한다.    영화는 테크니컬한 카체이싱 액션을 토대로 긴박한 범죄 사건과 독특한 악역을 만나 일종의 로드무비 추격전으로 변주하고, 종국엔 강렬한 누아르와 감각적인 액션 시퀀스, 그리고 훈훈한 휴머니즘까지 지나침 없이 골고루 담아낸다.  무엇보다 살아 숨쉬는 익숙한 듯 낯선 캐릭터들의 탄생이 돋보이는데, 그중에서도 송새벽이 맡은 악역 경필 역은 가히 감탄할 만하다. 경찰이면서도 깡패 조직을 운영하고, 느슨하고 능청스러워 보여도 그토록 잔혹하고 두려운 인물이다. 특히 은하가 탈북민인걸 알자마자 "빨갱이"라고 혐오하는 발언 하나만으로도 그 비뚤어진 정신세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건, 그야말로 놀라운 캐릭터 구현이다. 이에 쑥스러워하는 감독은 "송새벽 배우의 공이 크다. 시나리오로 봤을 땐 자칫하면 전형적인 악당으로 그칠 수 있었는데, 배우가 식은땀을 흘리며 고민하고 연기했다. 정말 독특한 인물의 연기를 본 것 같다"며 공을 돌렸다. 덧붙여 저를 낮추며 함께 대본 작업을 한 두 명의 작가들에게도 공을 돌리는 그다.  첫 액션 연기로 완벽한 합격점을 받은 박소담은 이미 진작부터 눈여겨본 배우였다. 감독은 그에게서 "액션을 잘할 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이유는 "'검은 사제들'이나 '국가대표2'를 볼 때 얼굴이나 대사로 드러나는 감정적인 표현뿐만 아니라 몸을 잘 쓰는 배우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며 다시금 뿌듯한 미소다.  어린 시절 아빠 손을 잡고 자주 다니던 극장에서 느낀 행복감을 간직한 소년, 이후 어른이 되어서도 고스란히 묻어둔 이 감정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픈, 그런 낭만을 간직한 순수한 박대민 감독이다. 그가 후회없이 내보일 수 있는 '특송'은 그런 의미에서 더욱 특별하다. 정말 좋아하는 장르 액션을 연출하며 원 없이 행복감을 느낀 감독에게서, 단순히 자기만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객에도 이 쾌감을 전달하기 위해 성실히 노력하고 고심했음이 보이는 까닭이다. "'특송'은 분명한 장점이 있는 영화다. 몰입감이 느껴지고 심장이 두근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는 그에게서 영화를 향한 특별한 애정이 드러난다.   사진=NEW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