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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산: 용의 출현' 변요한, 마치 데일 듯한 뜨거움으로 [인터뷰]

    배우 변요한은 내내 뜨거웠다. 마치 "데일 듯한 기분"이었다고. 그만큼 폭발할 정도로 뜨겁게 집중했다. 매 작품 느꼈던 책임감이 이번에는 분명 다른 지점으로 다가왔다. 일종의 '사명감'이었다.  1700만 관객을 기록한 역대 흥행 1위 영화 '명량'에 이은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프로젝트 두 번째 이야기 '한산: 용의 출현'은 임진왜란 3대첩 중 하나인 한산도 대첩을 그린다. 변요한은 극 중 이순신과 조선을 위협하는 왜군 장수 와키자카 야스하루 역을 맡았다. 와키자카는 대담함과 잔혹함, 탁월한 지략을 모두 갖춘 장수이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서슬이 시퍼래서 조선을 향해 돌진하는 그의 모습은 그 자체로 극렬한 공포심을 자아낸다.  매번 작품을 통해 감화하고 그 자체도 어진 성품을 가진 이가 이같은 인물을 연기할 땐 어떤 마음가짐 일지 꽤 궁금했다. 그 답은 역시나 변요한 다웠다. "이 작품의 시작은 이순신 장군님에 대한 생각에서였다. 배우로서 작품에 참여할 때 늘 끝나고 제게 남는 것이 있다는 게 좋았다. 대본 보며 분석하고 찾아보고 작은 것부터 새롭게 알 수 있었고, 연기할 땐 왜군이란 역할에 집중하고 있지만, 이순신 장군에 대해 다시 한번 자긍심을 갖게 되고 '나라는 사람을 믿고, 어떤 환경에 있던 떳떳할 수 있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맡은 역할이 더욱 강렬하게 불타올라야 본질적으로 이순신과 그의 진법이 드러나고, 이는 당시 조선인들이 느낀 두려움이 용기가 되고 승리로 바뀌는 과정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꺼이 악독해지기로 했다. "제 역할에 후회는 없었다. 오히려 성취감을 느꼈다. 제가 안타고니스트 포지션으로 발란스가 맞아 떨어져 많은 분들이 이순신 장군님의 업적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고, 제가 무너지는 것도 볼 수 있지 않나." 덧붙여 변요한은 너무 강렬한 왜군 장수 이미지 덕에 관객들이 제 자신에게마저 거북함을 보인다면 "제 기존 이미지와 연기 패턴을 관객도 아실 거라 생각하고, 돌맞게 되는 순간 다른 필모를 얘기해야지"라며 눙을 쳤다.  변요한은 이 배역을 치열하게 준비했다. '명량'에도 조진웅이 연기해 선보여진 인물인만큼, 자칫하면 휩쓸려갈 수 있었고 겁을 먹을까 봐 아예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자신만의 와키자카를 만들기 위해 이를 조금이라도 방해하는 기운이 들어올 수 없게 했다고. 그렇게 준비한 와키자카는 젊고 강렬한 패기를 갖춘 장군의 모습이다.  특히 변요한은 와키자카를 '빌런'이라는 범위 안에 가두려 하지 않았다. "처음에 대본보며 분석할 땐 빌런처럼 해보려고 거울보고 억지로 사악하게 웃어보기도 하고 그랬다. 그러다 잘못 생각한 게 아닐까 싶더라." 단순히 이순신과 조선을 위협하는 일차원적인 기능적 캐릭터에 그치지 않고, 장군 대 장군으로서 각각의 지략과 전술, 성품들이 대비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겠단 판단에서다. "제가 구축을 잘해야겠더라. 빌런이라고 생각하면 그 안에 갇혀버린다. 빌런이 아닌 안타고니스트로 극 중 이순신을 바라보는 관찰자라는 포지션을 취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요한의 이 같은 고민 끝에 치밀하게 완벽하고 냉혹한 젊은 장수의 이미지가 완성됐고, 이는 극에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서사에 탄력을 얻는다.    육중한 위압감을 주는 왜군 갑옷과 서슬퍼런 눈매 또한 인상 깊은 이미지다. 변요한은 이를 위해 과감한 증량을 했다. "처음에 갑옷 입었을 때 아버지 옷 입은 아이처럼 어울리지 않았다. 해외에서 완벽하게 제작해서 수선이 불가능한 상태고 오는데만 두 달이 걸린 옷이다. 원래 제가 생각했던 외형적인 캐릭터의 형체들이 있었기에 예민하고 민첩한 느낌의 와키자카를 만들고 싶어 일부러 감량을 하고 갔더니 너무 어울리지 않았고, 그때부터 저만의 동굴로 들어갔다"는 그는 "벌크업을 하자고 생각하고 무제한 증량을 했다. 사실 제가 잘 찌는 체질이다. 고기도 좋아하고 태양인"이라며 웃겼다. 6개월 동안 증량했고, 갑옷이 몸에 맞는 순간 자신감이 생겼다. "다시  의상을 입는 순간 느꼈다. 이 작품에서 이 옷을 왜 나한테 입혔는지 의도를 알 것 같았다. 그 시대에 이렇게 전장에 준비된 왜군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라는 변요한이다.  일본어도 사극톤을 구사해야 했고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일본 사람들이 봤을때도 잘 들린다고 할 정도로 연습했다. 고어를 쓰다 보니 현대 관객들은 익숙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디자인 또한 와키자카를 연기하는 저로서는 인물을 좀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장착할 수 있는 일본어였다." 이를 위해 일본 대하드라마도 봤고, 오래된 언어들의 변화 등 숱한 자료를 파고 또 팠다. 하지만 주의한 것은 '감정'을 지키는 것이었다. "제일 중요한 건 감정이기에 언어에 얽매어 버리면 입체감도 떨어져 버린다고 생각했다. 체중 증량, 일본어 모두 감정을 찾기 위한 단계였을 뿐이다. 와키자카의 감정이 변함없이 제일 힘들었다. 어떻게 이순신 장군을 바라봐야 하고, 어떤 숙제로 해결할 수 있을까. 매 순간 딜레마였고 이 딜레마를 해결하고 나면 용기로 변하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이토록 치열했다. 그렇기에 "두려움은 전염병"이라며 자국의 병사들을 단숨에 죽이는 잔혹한 카리스마를 갖춘 모습부터 이순신을 향한 팽팽한 긴장과 자신감, 이윽고 지독한 패배감을 느끼는 인물의 모든 감정이 유려하게 드러날 수 있었다. 변요한은 "저 말이 바로 와키자카가 갖고 있는 정신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정신으로 계속 밀고나가려고 했고, 연기 시작할 때 가장 첫 포인트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런 그마저 이순신에 대한 두려움을 강하게 느꼈다. "마지막에 배에서 뛰어내리는 신을 찍고 나와서 '와 진짜 힘들다'라고 말을 뱉은 순간, 다시 생각해보면 그 힘들다는 '무섭다'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죽을뻔했다는 공포감을 느꼈다"고.  그는 "리순신"이라는 대사 한마디조차 어떻게 하면 잘 부를 수 있을지 굉장히 고민했다고 했다. 너무나 치열했기에 모든 신들을 찍을 때의 감정과 당시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고 했다. 그 모든 감정의 시작에는 '이순신'이 있었다. "불에 데인듯 뜨겁게 집중했다. 그래야만 이 전장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 더 잘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너무 몰랐고 잊고 살았나 싶기도 했다. 세트장에서 거북선을 볼 때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DNA가 끓어오르더라. 정말 크고 거대했고, 가만히 넋을 놓고 보게 됐다. 그냥 숙연해졌다"는 그의 말에서 뜨거운 진심이 느껴진다.  "영화가 정말 멋들어지게 잘 나온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좋은 영화가 나왔으니 자연스레 많은 분들이 봐주셨으면 좋겠고, 보신다면 아마 같이 느끼실 것 같다. '국뽕'이라고 말하지만, 전 써본적도 없고 그 의미도 잘 모른다. 그저 나에 대한 사랑, 나라에 대한 사랑이 전부인 것 같다." 어느덧 13년 차 배우가 된 변요한의 깊이는 이토록 깊다. "선배들이 그런 얘기를 자주 하신다. '쉬지 마라, 쉬면 뭐하냐' 저도 같은 생각이다. 이 직업 자체가 영원할 순 없다고 느껴진다. 그냥 연기하는 동안 최선을 다해 쏟아붓고, 그것이 'ING'가 되길 바랄 뿐이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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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산: 용의 출현' 김성규의 눈빛 [인터뷰]

    마음의 작용으로 눈에 나타나는 기색, 눈에서 내쏘는 기운. 배우 김성규의 눈빛은 유독 강하다. 수많은 말과 표정보다 그 눈빛 하나로 여러 가지 감정을 담아낸다.  역대 대만민국 흥행 1위 영화 '명량'에 이은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프로젝트 3부작' 두 번째 이야기 '한산: 용의 출현'은 한산해전을 그리는 동시에 왜구의 침입에 맞서는 이들의 모습을 불의에 맞서는 '정의'로 봤다. 이 작품의 키워드는 바로 '의로운 마음'이다. 이 키워드를 관통하는 구체적인 인물이 바로 김성규가 연기한 항왜 군사 준사다.  "이 전쟁은 무엇입니까" 조선군에 포로로 잡혀와 독기를 내뿜는 그는 무언가 달랐다. 치욕에 가득한 살벌한 눈빛이 아니라, 이 지옥 같은 전장에서 의미를 잃은 공허함과 절망이 엿보였다. "의와 불의의 싸움"이라는 이순신의 신념을 보고 그는 자신의 운명을 바꿨다. 조국을 버렸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조선의 편에서 온 힘을 다해 싸운 항왜 군사. 김성규는 뜨거운 눈빛과 진정성으로 인물에 설득력을 줬다.  정작 본인은 인물에 상당한 부담을 느꼈다. "다른 측면의 부담이었다. 서사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인물임에도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의'와 '불의'라는 것이 쉽게 직관적으로 이해되면서도 너무 포괄적인 느낌"이란 생각에서였다. "상징적으로 이처럼 처참한 전란 속에서 누구나 고민할 수 있는 문제겠지만, 인간으로서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이 과연 쉬울까 막연한 부담감이 있었다"고 할 만큼 김성규에게 준사 캐릭터는 일종의 도전이었다. 조국을 버리고 옳다고 믿는 신념을 위해 움직이는 인물, 이에 대한 진정성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자문하고 생각하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드러나지 않는 인물의 서사를 생각할 때 많은 사람들이 이 끔찍한 전란 속에서 죽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그 죽음의 의미와 가치가 한 단체나 개인의 이익이 아닌, 조금 더 본인이 믿는 것에 대한 의미 있는 죽음이 될 수 있길 바란 게 아닐까."   일본인 역할에 대한 부담도 꽤 컸다. 조선말을 하는 일본인. 그러나 누가 봐도 한국 배우이니 보는 이들이 거슬려하고 '진짜'처럼 보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고. "어눌하거나 우스워보이지 않아야 된단 것이 중요했다. 현장의 영향을 받아가며 톤을 잡아갔다"는 그는 외형의 비주얼도 변발을 했지만 우스워 보이면 안 된단 생각뿐이었다. 이어 "첫 의상 피팅할 때 머리를 자르고 간 상태에서 가발을 썼다. 그때 되게 놀랐다. 옆에 이순신 장군님의 박해일 선배님은 굉장히 멋지신데 저는 약간의 혼란이 왔다"며 제법 너스레다. 하지만 영화적으로 도움이 되는 비주얼이라 여겼고, 막상 현장에 그 차림을 한 채로 있으니 몰입이 쉬웠다는 설명이다.  또한 이순신 역의 박해일과 함께 연기하며 자연스레 영향을 받기도 했다고. 그는 "평소에도 굉장히 차분하시고 말 한마디나 제스처, 걸음걸이도 묵직한 느낌이 든다. 저런 아우라와 느낌을 보고 있으니 준사의 결정이 충분히 이해가 가능할 것 같았다"고 했다. 일례로 부산 촬영 때 카페에서 우연히 박해일을 봤는데 뒷모습이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굉장히 곧은 기운이었다. 누가 봐도 눈이 가는 느낌이었다. 절 보더니 놀라지도 않고 살짝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데 그것만으로도 좋은 사람이란 인상이 심어지더란다. "준사 입장에서도 이순신 장군의 태도, 의병을 대하는 시선까지 너무도 좋은 사람이란 확신을 갖고 선택과 결정을 내렸고, 이후로 이를 더욱 확신해나가는 과정이 분명히 있었을 것 같더라." 덧붙여 김성규는 "영화적으로 잘 나왔을진 모르겠지만 이순신 장군님을 만나는 신에서 감정적으로 동화된다고 해야 할까, 위로받는 느낌도 받았다. 그래서 그 신을 잘 해내고 싶었던 마음도 컸다"고 했다.  육지에서 벌어진 웅치 전투에서 조선군과 함께 싸우고,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수많은 의병들이 몰려올때 준사가 느낀 뚜렷한 확신은 큰 위안이 됐을 테다. "결과를 봤을 때 감동스러웠고, 그 안에서 함께 전투를 벌이는 준사의 모습을 보며 스스로는 이 역할을 해냈고, 할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스러웠다."   이처럼 고민을 거듭해서 당위성을 찾아간 준사 캐릭터다. 변발을 한 왜구의 외양에도 제 신념을 따라 조선을 향해 싸우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의로움'의 정의였다. 김성규는 많은 말을 전하지 않고도 강한 의지와 흔들림 없는 신념이 담긴 단호한 눈빛으로 그 당위를 전달한다. 김한민 감독이 그를 발탁하며 "배우 같은 배우", "이 시대에 같이 현장에 있을 수 있어 좋다"고 극찬한 이유도 알만하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침착할 따름이다. "처음엔 너무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고 좋은 말이겠거니 했다. 그래도 나를 인정해주시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또 그렇게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시는 모습을 보며 순수함을 느꼈다. 솔직함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겐 자칫 부담이 되거나 강압으로 느껴질 수 있는데 제가 느낀 건 '어떻게 저런 쑥스러운 말을 하실까' 할 정도로 솔직하시고, 이것이 감독님만의 개성이고 강점이지 않을까 싶었다"고.  김성규는 연기를 관두려던 시점에 '명량'을 봤다. 아무 생각없이 재미있다는 관점으로 봤을 뿐이었다. 그러나 현재, 그는 여전히 배우 일을 하고 있고 '한산'에 함께 하게 됐다. 당시 영화를 함께 본 친구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 꿈을 포기하던 시절의 네가 본 작품의 감독님이 지금 너를 캐스팅했다"며 저보다 더 감격했단다. 정작 김성규는 "너무 낭만적인 친구"라며 멋쩍어한다. 친구의 유난스러운 호들갑에도 '어떻게 이 역할을 할 수 있을까'만 고민했다. 이제야 돌이켜보니 "인연도 신기하고, 여러모로 타이밍이라는 것도 묘하다"고 생각해본다. 여러모로 진중한 타입이다. 하지만 "관객으로서 '한산'이 더 재밌다. 오히려 제가 이 상황에 들어가서 찍게 되니 전란의 황폐함, 그 속에 담백하게 있는 이순신 장군님의 모습이 더 확 와닿더라. 많은 걸 표현하지 않는 듯하면서도 오롯이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무게들이 외롭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더 몰입이 되며 느끼다 보니 오히려 다른 재미가 있더라"고 감상과 확신을 전했다.  '범죄도시'의 장첸 3인방으로 대중에 확실한 눈도장을 찍은 후, 그는 매번 강렬했고 범상치않은 기세를 발산하며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정작 본인은 쏟아지는 반응에도 침착하고 흔들림이 없었다. 김성규는 "'범죄도시' 이후 지금이 딱 5년 정도 됐을 거다. 계산해본 적 없어서 짧은 시간인지, 더 뭔가 해냈어야 하는지 사실 모르겠다. 지금 돌아보면 되게 감사하다. 운이 좋았다. 작품들이 다 임팩트가 있어서 더 그렇게 생각해주시는 것"이라며 겸손이다. 그리고 이제 이는 그가 가야 할 새로운 방향성이 되기도 했다. 김성규는 "배우로서도 사람으로서도 더 다양한 시도를 해야 되지 않을까 고민이 많은 시기"라고 털어놨다. "사실 제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고 싶은 사람이 아니다. 다만 이제는 의미에 대해 많은 생각 한다. 연기를 관두려던 시기, 가능할까 싶었던 일들이 이뤄지고 있는 게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다. 부담과 책임감을 갖게 되는 시기 같다"며 끝까지 진중함을 잃지 않는 그였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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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산: 용의 출현' 박해일이 그린 지장 이순신 [인터뷰]

    영명하고 신중한 눈빛에서 청고한 기품이 배어 나온다. 박해일이 그 어느 때보다 진중한 고민과 사명감으로 완성한 지혜로운 장수 이순신의 모습이다.  1700만 관객 동원, 한국 역대 흥행 영화 1위의 저력을 발휘한 '명량'의 앞선 이야기, 한산도대첩을 그린 '한산: 용의 출현'에서 박해일은 젊은 시절의 이순신을 연기한다.  "어렸을 때 장군감이란 소리도 못 들어봤던 제가요?" 김한민 감독의 제안을 받고 박해일은 적잖이 당황했던 모양이다. 엄청난 부담이었다. 그가 말하길 이순신은 누구도 싫어하지 않는 단 하나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매 시기마다 문화적으로 이순신을 다루고 기념하는 작품들이 나온다. 60년대부터 이순신을 다룬 컨텐츠가 나왔다. '성웅 이순신' 영화를 비롯해서 '조선왕조 오백년' '난중일기' '불멸의 이순신' 등 꾸준히 작품이 나온다는 건, 그만큼 이야기할 것이 많고 되새겨야 할 게 많은, 남녀노소 모두가 존경하는 위인이기 때문이다. 실존 인물에 대한 부담이 크다 보니 오히려 전작의 흥행 부담이라는 물리적 상황까지 고려할만한 균형감이 없었다고.  전작의 영광에 편승하려는 요행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이 사뭇 진지하다. 특히 그가 시대별로 조목조목 읊은 작품들만 봐도 그가 인물의 무게감을 견디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연구와 고민을 했는지 눈에 선하다.  그런 그에게 김한민 감독의 결정적 한마디가 있었다. "넌 최민식 선배같은 용맹스러운 명장의 느낌은 아니"라고 못을 박아주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더란다. "'한산'에서는 젊은 지략가의 모습을 보여주려 하고, 지혜롭게 수군들과 함께 전투를 승리하는 이야기로 만들 생각이다. 붓과 활이 잘 어울리는 캐릭터를 함께 만들어보자. 너라는 배우가 어울릴 것 같다." 감독의 말은 박해일의 말로 다 못 할 부담과 압박감을 한결 편하게 했다.  그 역시도 다양한 콘텐츠에서 시대마다 그려온 이순신의 느낌이 미묘하게 다르다고 느낀 찰나였다. "물론 다 이순신 장군이 갖고 있는 기질과 면모들이지만 미세한 차이가 있었다." 실제 그가 탐구한 자료들 속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순신은 말수가 적고 희노애락과 같은 감정 표현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다들 입을 모아 선비의 기질이 있다고 했다. 수양을 많이 쌓은 도인 같은 이미지였다. 저는 이순신 장군님의 무인의 기질을 가져가되 이런 부분을 많이 살려 균형감 있는 모습을 그리려 했다. 감독님께서도 워낙 역사 지식이 깊으시고, 이순신 장군님을 오랫동안 연구하신 분이기에 서로 의견을 많이 나눴고 제가 건의한 부분들도 최대한 많은 흡수를 해주셨다"고 했다. 무엇보다 김한민 감독과 세 번째 작품을 함께 하기까지 인연을 맺은 시간만 해도 17년이다. "꽤 오랜 시간을 만났으니 저라는 배우의 기질을 많이 고려해주셨던 것 같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의 정서, 저라는 배우의 정서를 잘 녹여낼 수 있는 표현이나 지문들, 그런 질감과 상황을 만들어주신 덕분"이라며 겸손이다.    그렇게 박해일이 그려낸 이순신의 모습은 눈빛 속에 지혜로운 이미지가 묻어난다. 무인이면서도 고귀한 품위가 묻어나고, 이는 백성과 동료, 부하를 소중히 여긴 이순신의 어진 모습을 부각한다. 그러면서도 진중함 속에 묵직한 강인함이 엿보인다. 특히 극 중 많은 대사를 하지 않음에도 그가 느끼는 많은 감정과 고뇌를 엿보게 하고, 그의 침착하고 단호한 눈빛과 "발포하라"는 네마디 만으로도 웅장한 전율을 일게 한다.  정작 배우로서는 일차적 감정을 전달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 대사가 극히 제한된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대사만큼 중요한 감정을 담아 눈빛으로 실어보내야 했고,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인물의 표현이었다. 드라마 앞뒤 상황의 문맥을 감안하고 보여줘야 하는 잠깐의 얼굴, 짧은 대사 안에 응축된 기운을 표현해야 했기에 기존과는 결이 다른 방식으로 좀 더 강하고 깊이 있게 연기하려 했다"는 그다. 항상 어딘가의 그림자처럼 이순신의 기운이 묻어나길 바랐다. "숙소에서도 평소와는 다르게 양반 다리로 정좌하고 앉아 차분하게 시나리오를 본다든가 일상에서 작게라도 그런 기운들을 가져가려 했다"고.  앞서 '명량'의 최민식이 절더러 "고생 좀 해봐라"며 씨익 웃었다는 격려(?)의 의미를 깊이 깨달은 그는 때때로 촬영장에 숨이 멈추는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여수에 이만 평 세트를 지어놓고 촬영하는데 배 위 장루에 혼자 올라서 있으면 모든 게 잘 보인다. 전투를 지휘하기 좋은 공간이다. 반대로 모든 스태프들, 지나가는 주민들도 저를 보고 있다. 그 부담은 실로 말할 수 없었다. 그런 경험이 처음이냐 하면 그건 아닌데, 전 국민이 아는 위인, 성웅으로 숭상하는 캐릭터를 연기한다고 하니 그 장루에 서 있기조차 부끄럽고 힘들었다." 오히려 한 여름 무더위 속 전투복을 입고 촬영하는 육체적인 힘듬이 기꺼웠을 정도다. "수많은 스태프와 왜군 조선군 의병으로 나오는 수백 명의 단역 분들이 처참하게 죽어가는 장면을 연기하는 더운 날, 제가 힘든 건 힘든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런 상황을 찍고 있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과연 내가 맡은 역할에 대한 존재감을 계속 유지해나가고 있는가' 그 생각을 매 순간 놓지 말아야겠단 생각뿐"이었다고.  이처럼 박해일이 이번 작품을 임하는 마음은 유독 깊은 책임감과 진중함이 있었다. 거북선이 구현됐을때 느낀 감상도 남달랐다. "귀선은 이 작품의 상징이다. 저는 용두 머리의 기운을 보며 짠한 느낌도 들었다. 조선을 지켜내는 수호신 같은 느낌도 들고, 한이 느껴지기도 했다. 또 다르게 이야기하면 매미 소리가 울리는 할머니 산소에 간 것 같은 느낌이더라."  박해일은 "어느 나라나 힘들었던 역사가 있고, 그 시기에 나라를 구한 인물이 있다. 역사라는게 참 대단하고 계속 다뤄지는 이유도 알겠다. 이 영화는 시대에 어울리는 개념으로 만들었고, 다른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태도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정의했다. 덧붙여 "저는 이 영화가 정말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단 개인적 바람이 있다. 이순신 장군님의 존재가 전 세계에도 많이 알려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고 저도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이순신의 진심이 무엇일까를 찾았고, 이를 찾은만큼 최대한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의로운 성웅. 그 가치와 자긍심을 배우로서 진정성 있게 담아낸 그의 노력은 더할 나위 없이 값진 것이었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