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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상선언' 한재림 감독이 본 희망 [인터뷰]

    한재림 감독은 희망의 연대를 꿈꾸는 사람이다. 사람 사는 세상의 따뜻함, 그 가치를 안다.  한재림 감독이 10년간 준비한 작품, '비상선언'은 사상 초유의 생화학 테러가 벌어진 비행기 안에서 재난에 맞서는 지상과 상공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재난 영화다. 감독은 오래도록 준비한 '비상선언'을 선보이기 전, "재난에 마주한 사람들, 재난에 맞서 싸운 사람들, 그리고 지쳐 있던 우리 모두에게 자그만 위로와 희망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선보이는 작품"이라는 진심의 말로 영화를 소개했다. 영화는 테러 그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재난 앞에 선 사람들 각각의 감정과 드라마에 집중한다. 누군가는 재난의 씨앗이 되고, 누군가는 재난 앞에 나약해지지만, 그 누군가는 용기 있는 결정을 내린다. 선량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연대, 그리고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숭고한 선택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비상선언'이다.   한재림 감독이 10년 전 시나리오를 받았을 당시, '우아한 세계'를 끝내고 '관상'을 찍기도 전이었다. 당시 항공기 테러 사건 설정이란 큰 틀은 재미있었지만, 뒷부분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또 무슨 말을 전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의 재난 상황을 지켜보며 이 작품을 통해 관객에 어떤 의미를 전해줘야 할지 감이 잡혔다. 막상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때쯤 실제로도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재난이 전 세계를 지배하고 마비시킨 현실은 새삼 놀라웠다. "어떻게 영화적 상상이 현실이 되나 기막힌 감정도 들었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하지만 제가 작품을 통해 담고자 했던 의미가 실제로도 이뤄지고 있다는 것에 안도하기도 했다." 비록 어쩔 수 없는 재난을 맞닥뜨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고 의미 있게 잘 이겨내고 있는 사람들, 그 속에서 피어난 희망을 담고 싶었고 실제 상황에서도 이를 발견했던 감독이다. 이를테면 "가장 인상 깊었던 게 이탈리아에서 격리 중인 사람들이 방에 갇혔지만 창밖으로 나와서 노래를 합창하는 장면"이다. 감독은 "이런 조금의 따뜻함, 연대감이 이 세상이 주는 재난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라고 봤다. 항간엔 '더킹' 때부터 지금의 '비상선언'까지 감독의 예지력이 실로 놀랍단 반응도 있다. 이에 한재림 감독은 억울하단다. "법이라는 것이 절대적으로 보여지지만 그걸 다루는 건 사람이고, 그렇기에 사람이 중요하다는 걸 말하는 게 '더킹'이었는데 하나의 예언, 예고처럼 돼버려서 정말 싫었다. 그래서 장르영화를 하면 이런 일이 안 일어나겠지 했는데, 또 코로나가 벌어졌다. 이미 그때는 캐스팅이 완료됐고 촬영 들어가기 일보직전이라 안 할 수도 없었다. 또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관객에 새로움을 주고 싶은데 억울했다. 다음 작품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감독은 재난 영화란 장르를 취하며 윤리적 문제에 부딪히기도 했다. '공포심을 줘야 하는 것인가, 공포란 것은 어디서 기인하는가'란 고민이었다. 감독은 "고어하거나 하드한 장면을 담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이 심리적 공포로 점점 인간성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런 생각에 비롯된 것이 빌런의 기능이다. 대개의 항공 테러 영화가 범인의 목적, 대치, 갈등을 그려내고 여기서 긴장감을 더욱 유발하는 형식이라면 '비상선언'에선 초반 생화학테러를 일으키는 인물로서만 기능할 뿐이고 영화는 이후 이 재난을 맞닥뜨린 다양한 인간군상에 온전히 초점을 맞춘다. 이는 한재림 감독의 의도였다. "빌런은 재난 영화로 보느냐, 테러 영화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 작품은 재난영화로 봤고 임시완은 재난의 상징이다. 그래서 빌런은 재난일 뿐이지,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다. 그저 재난으로 바라봤을 뿐"이라고. "보통의 재해는 왔다 가면 끝이다. 저는 이 재난 이후 남겨진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 것이냐에 집중했다. 점점 확장되는 재난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이라 생각했다. 두려움이 만든 인간성 훼손, 증오심, 이기심. 그렇기에 이런 재난에 흐트러지는 인간의 모습과 더불어 사람의 아주 작은 용기, 인간성이 이런 재난에 버티고 서로 연대할 수 있는 힘이라고 봤다."      '관상' '더킹' 등의 전작에서도 그렇듯, 사회적 시선과 함의가 담긴 감독 특유의 기조는 '비상선언'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특히 정체모를 생화학 물질이 가득찬 항공기에 대한 불안감에 봉쇄정책을 펼치고 심지어 민간기 공격을 감행하는 다른 국가들의 자국 이기주의나, 국내에서 펼쳐지는 극렬한 양분화 현상이 적나라하게 묘사됐다. 감독은 이에 대해 "직접적인 묘사라고 생각하진 않았다"며 "저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우리한테 피해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저는 이 두려움도 나쁘다고 생각지 않는다.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두려움과 무서움을 우리는 어떻게 극복해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재난 앞에 두렵고 힘들다.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 성실할 수 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두렵고 도망가고 싶으니까.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 조금의 성실함들이 모인다면 재난을 극복해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그런 희망을 갖고 싶었다." 한재림 감독의 작품에선 유독 사람이 먼저 돋보인다. 이번에도 수많은 배우들이 등장하지만, 각각의 위치에서 성실히 제 몫을 다할뿐더러 '있음직한' 사람들의 모습으로 사실감을 더한다. 감독이 요구한 디렉팅도 하나였다. 사실적인 연기다. 감독은 "장르영화지만 장르적으로 과장하지 말아 달라 했다. 자신의 역할이 무엇이다 해서 그 직업이 앞서지 말고 사람이 앞서 달라고 부탁드렸다. 다만 승무원은 그렇지 않다. 승무원은 승객들에 안심을 줘야 하는 태도가 중요하니 그런 태도를 요구했다. 정말 많은 배우들, 한국의 상징적인 배우님들이 나오셔서 모든 인물이 다 기억에 남는다. 모든 배우들이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연기, 사실적인 연기를 보여줄까 고민하셨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어 일일이 읊은 배우들에 대한 코멘터리에서 깊은 진심과 존경이 느껴진다. "도연 선배님도 정말 감사하게 그렇게 크지 않은 역할임에도 작품의 의미를 이해해주셔서 출연해주셨고, 강호 선배님도 익살 맞고 능구렁이같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조금은 지질하기도 한 소시민 역할을 해주셨다. 특히 마지막 장면을 참 좋아한다. 시완 씨도 과연 이런 사람이 있다고 생각 들 정도로 섬뜩한 연기를 해줬다. 특히 김소진 씨는 역을 제안할 때 약간 미안했다. 사무장이라 어떤 특별한 캐릭터가 있기보단 소진 씨가 하면 참 잘할 것 같단 생각에 '더킹' 때 인연으로 부탁했는데 흔쾌히 해주셨다. 그 연기를 보며 너무 놀랐다.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인간의 성실함이란 게 무엇인지 증명해줬다. 박해준 씨는 예전부터 좋아했다. 어떤 역할해도 분위기가 남다른 자신만의 바이브가 있다. 그리고 비행기 안의 모든 승객분들은 어렵게 오디션을 통해 뽑은 분들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이 다 기억난다. 이 영화는 배우들의 영화인 것 같다." 이처럼 사람에 대한 애정과 진정성이 있다. 한재림 감독은 퍽 '좋은 사람'이다. 따뜻한 사람들의 연대를 꿈꾸고 희망을 엿보는. 정작 본인은 스스로를 "뭐 하나만 제대로 잘했으면 좋겠는데 이것저것 자꾸 하는 감독 같아 죄송스럽다. 그냥 호기심이 많고 재밌는 걸 많이 하고 싶어하는 감독"이라며 별스럽지 않게 정의할 뿐이다.     사진=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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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상선언' 이병헌, 마음이 이끌린 순간 [인터뷰]

    배우 이병헌은 마음이 움직이는 이야기 속에 빠져들고 싶다. 늘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마음으로 연기하는 덕분에  매번 탁월한 연기력에 대한 찬사가 따라오는 것일 테다.  아토피로 고생 중인 딸의 치료를 위해 비행 공포증을 딛고 하와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 탑승 전부터 딸과 자신의 주변을 꺼림칙하게 맴돌던 의문의 남성이 같은 비행기에 탄 사실을 알고 의심과 불안에 빠진다. 그리고 닥친 재난 상황, 놈이 범인임을 직감한다. 혼란의 비행기 안에서 공포감과 공황, 하지만 딸을 지켜야 하는 아빠이자 승객들을 구출해내고 싶다는 의무감까지. 그는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 점점 깨닫는다.  이병헌은 한재림 감독의 항공 재난 영화 '비상선언'에서 평범한 아빠 재혁으로 분했다. 실제 20대 때 비행기에서 처음 공황장애 증상이 발현돼 이후 가끔씩 과호흡이 와서 늘 비상약을 갖고 다닌다는 그가 비행 공포증으로 공황 상태에 놓인 인물 설정을 연기한다니 공교롭기도 하다. 이병헌은 "캐릭터로 연기하고 카메라 앞에 있을땐 괜찮다. 가끔 저로서 그럴 때가 있다"며 안심시킨다. 대형 비행기 세트에서 실제를 방불케 할 만큼의 촬영이 있다 보니 걱정과 불안은 없지 않아 있었지만, 며칠 촬영한 뒤로는 아주 편하게 촬영했다는 설명이다.  재혁은 극 후반 비로소 인물의 전사와 정체가 밝혀지기 전까지는 내내 평범하고 흔한 아빠의 모습이다. "사실 예전에도 아버지 역할은 했었지만, 실제 제 아들과 비슷한 또래의 아버지 역할이 되니 아무래도 더 확신을 갖고 아버지로서 연기할 수 있었다"는 그는 "영화에 나오는 어떤 상황이든 연기하는데는 수월했던 것 같다. 다만, 딸을 둔 아빠이기 때문에 아들 가진 아버지와는 달리 얼굴 표정이나 말투 등을 주변의 딸 가진 아빠들 모습에서 많이 관찰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기에 딸과 눈높이를 맞추고 서로 다정하게 안아주며, 조용하고 부드럽게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부분이 또다른 느낌이었다고.  공항에서 혼자 화장실에 간 딸이 오질 않자 찾아나서고, 그때 딸이 목격한 수상한 남자의 행동을 듣고 경계심을 세우거나, 남자의 집요한 관심에 불쾌감을 드러내는 모습 등은 이병헌의 사실적인 반응과 표정들로 더욱 긴장을 불어넣었다. 그는 "정말 그런 인물이 있다면 엄청난 위협감을 느끼고 너무 공포스러울 것 같았다"며 "임시완 배우가 그 인물을 잘 그려냈기에 저도 공포스러운 연기를 할 수 있었다"고 공을 돌렸다.  생화학 테러가 벌어져 혼돈과 공포에 빠진 비행기 내부에서, 딸을 지켜야 하는 아빠로서 느끼는 재혁의 감정도 사뭇 와닿았다. 특히 딸이 아토피로 인해 감염자 취급을 받을때 사람들의 냉정한 시선에 잔뜩 겁을 먹고 아빠에게 매달려 울먹이는 신에서 이병헌은 눈빛으로 깊은 분노와 절망을 담아낸다. "그 당시에는 그런 극단적인 상황에서 인간성을 드러내는 사람들 모습을 보며 약간 환멸을 느낀 것 같다.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었다. 어쩌면 이 감정은 코로나와 비슷하기도 하더라. 확진되면 왠지 떳떳하지 못하고 죄인이 된 것 같고, 사람들이 슬금슬금 피한다고 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현실적으로 유사한 상황을 찍으니 묘한 기분도 있더라."    이병헌은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발현되는 사람들의 이기심, 인간성, 그러나 인간이기에 내릴 수 있는 숭고한 결정과 희생들이 그려진 지점이 영화의 묘미라고 했다. "이 영화가 재난 영화로서 가져야 할 스릴감은 충분히 담겼다고 생각한다. 장르는 재난 영화지만, 예측하지 않은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그 상황을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인간의 이기심이 드러나는 순간도 있고, 인간이니까 할 수 있는 희생정신도 발현될 수 있다. 그런 여러 가지 선택 속에서,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이 무엇일까. 이를 관객에도 내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영화"라서 좋았다는 것이다.  극 중 재혁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실제 자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내렸을지 계속 고민이 되더란다. "인간성을 조금씩 잃어가는 시대에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와 이야기거리를 던지는 작품이라 더 끌렸던 것 같다"는 그다. 늘 작품을 처음 결정할 때는 온전히 '감성이 끌리는가'가 중요하다는 그는 "아무리 읽어도 겉도는 이야기인지, 내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인지가 중요하다. 그게 작품을 선택하는 가장 첫 번째 조건이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이 이야기가 좋은 이야기인지를 생각한다"고 했다.  어떤 배우이고 싶은지에 대한 그의 염원은 확고했다.  "좀 흔한 말이지만 타성에 젖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래됐다고 해서 일상이 되거나 '어떻게 했는지 알겠어'라고 습관처럼 나오는 걸 반복하고 싶지 않다. 늘 약간 엉뚱하다면 엉뚱하고, 창의적이라면 창의적일 수 있는, 내 안에서 '반짝'하고 나오는 걸 표현하고 싶다." 이병헌은 최근 '우리들의 블루스'를 찍으며 대선배 김혜자, 고두심을 보며 자기 반성을 했단다. 그 연륜과 관록의 선배들 또한 카메라 도는 순간 직전까지 수없이 연습하고 노력하며 최선을 다한다. "그 모습 보고 '나는 저렇게까진 하지 않았는데'하고 정말 반성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거다. 여전히 연기를 고민하고 갈망하는 이병헌, 대한민국 대표 배우로서 그의 영향력과 존재 가치는 분명하다.  사진=BH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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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상선언' 송강호, 대배우의 가치 [인터뷰]

    대배우 송강호는 저를 향한 찬사에 여전히 몸 둘 바를 모른다. 그저 진심으로 연기하고, 소중한 가치를 전하고 싶은 바람이다.     베테랑 형사 팀장 인호는 수사 업무가 밀려 올해도 아내와 함께 휴가를 떠나지 못한다. 친구들과 하와이로 휴가를 떠난 아내가 끓여둔 곰국만 봐도 보름치임을 알 수 있다. 경찰서로 출근하니 웬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로 비행기 테러를 예고하는 동영상을 접한다. 다들 장난 동영상이라고 넘길 때 소화도 시킬 겸 직접 수사해본다고 나선다. 그리고 용의자의 집에서 비닐에 싸인 사체를 발견하고 놀라 청심환을 먹는다. 본격 수사가 시작됐고, 이미 비행기에 범인이 탑승한 사실을 알게 됐다. 제발 하와이행만 아니어라 했지만,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됐다. 아내가 탄 비행기에 범인이 있다. 재난을 막기 위해, 그리고 아내가 무사히 살아 돌아올 수 있도록, 그는 지상에서 고군분투한다. 한재림 감독의 항공 재난 영화 '비상선언'이다.  송강호는 이 영화가 '재난을 통해 뭘 얘기하고 싶은가'를 봤다. 그가 말하길 재난을 당해선 안 되지만 사람이고 살아가다보면 재난 상황을 마주할 수 있다. 그때 어떻게 대처하고 어떤 방법으로 우리가 그 상황을 이겨내는지가 중요한데, 그 과정 속에서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해야 될 가치가 무엇인지를 '비상선언'이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것이 깊이감 있게 와닿았다고.  형사 캐릭터는 이번이 세 번째다. 인호는 상공의 아내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과 형사로서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의무감을 가진 인물이다. 송강호는 캐릭터에 인간적인 면모와 개성을 더해 평범한 가장의 간절함부터 베테랑 형사의 노련미까지 담아냈다. 그는 "직업의식이 강하게 존재하고 제보가 들어와서 수사에 나서는데, 인간적으로 비행기 안에 사랑하는 아내가 타고 있으니 인간적인 절박함과 뒤섞이는 거다. 솔직히 사람이니 절박함이 먼저 앞설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론 책무와 의무감도 나와야 하고 그런 지점이 뒤섞인 인물이고 그래서 더 용기가 있지 않았나 싶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상에 있는 인물의 딜레마, 무엇이든 하고 싶지만 할 수 있는 딜레마와 어찌할 수 없는 심적인 고통을 잘 표현하려 했다"고 덧붙였다.  캐릭터의 사실적인 묘사도 유독 섬세하다. 이를테면 아내가 끓여둔 곰국을 보고 "이거 15일치네"라고 말하거나, 업무를 볼때 끼는 돋보기안경, 아무리 베테랑 형사라도 갑작스럽게 사체를 본 뒤 놀란 마음을 쓸어내리며 청심환을 먹는 신 등이다. 특히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인호의 말맛이 살아나는 지점들이 있는데, 동네 꼬마들의 제보를 들으며 "영수증 처리도 안 되는 비싼 하겐다즈, 아저씨 돈으로 사줬다"거나, 새로운 제보자가 신변과 녹취 의혹을 두려워하자 버젓이 안드로이드폰을 쓰면서도 "아이폰이라 통화 녹음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송강호는 이런 묘사와 말맛을 통해 인물에 생생한 사실감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감독의 대본 덕분이라고 공을 돌린 그는 "원래 한재림 감독이 코믹한 대사를 쓰고 그러진 않는데, 참 별거 아닌 것 같은데도 절묘하게 일상에서 발견되는 유머가 있다"며 "아무래도 우리 삶 자체가 그렇다. 희극 속에 비극이 있고, 비극 속에서도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는 게 삶의 단면"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웃지 못할 인호의 유머들이 불쑥 불쑥 틈새를 노리고 나오는 것이고, 이것은 영화적으로 계산되지 않은 가장 리얼한 일상의 모습이라고.  또한 이런 모습들은 형사를 떠나 중년의 남자,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나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인물을 보여 준다고 했다. "이런 지점과 디테일을 켜켜이 쌓아 관객에 전달된 것 같다. 이건 다 한재림 감독의 섬세한 디테일"이라며 감독을 극찬한다. 어느덧 세 번째 작품을 함께 한 한재림 감독에 대한 송강호의 애정과 신뢰는 더욱 특별했다. "열정이나 뚝심이 참 놀랍다. 영화를 통해 얘기하고자 하는 지점을 정확히 알고 있고, 이를 이뤄내기 위해 정말 집요하게 파고든다. 매번 작품 의뢰를 받을 때마다 '이 영화 통해 또 어떤 깊이 있는 얘기를 할까'가 늘 궁금하다. 이 사회를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지점도 그렇고, 제가 나이가 많은데도 보고 배우는 점이 많다. 늘 기다리고 반가운 사람"이라고.  특히 이번에는 재난 영화를 통해 가족과 이웃, 사회 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세련되면서도 고급스럽게, 어른스럽게 표현했고 그 내공이 정말 무시무시했다는 표현이다. "이 영화가 비행기 공포심을 심어주려고 만든건 아니"라며 너스레를 떤 그는 "단순하게 재난물로서 카타르시스 주고 끝내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재난에 닥쳤을 때 우리는 어떤 이상적인 판단을 통해 헤쳐나갈 것인가, 여기서 생기는 사람의 감정을 절묘하면서도 섬세하게 표현하는 것이 이 영화의 관건"이라고 했다.    그 역시도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가치와 메시지에 깊이 공감했다. 그는 "삶의 긴 여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사회 공동체로서, 개인으로서, 얼마든지 우리가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충분히 헤쳐나갈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장 중요한 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삶 자체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가다. 결국 우리 삶의 아름다움이 무엇일까.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은 무엇일까. 저는 이 영화에서 분명히 희망을 봤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가치를 발견하고 공유할 수 있다는 지점에서 만족도가 크다"고 했다.  "우린 사람이다보니 굉장히 약하다. 약하지만 무엇보다 강한 게 또 사람인 것 같다. 우리가 재난 외에도 살면서 수많은 어려움이 닥치는데 이걸 이겨내는 방법, 그리고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 그가 생각하는 가치로운 삶의 정의다. 그 진심은 엔딩 속 인호의 표정과 눈빛에도 고스란히 담기며 울컥한 감동을 준다.  말 한마디 없이, 그저 그 모습 자체로 감동이 되는 배우다. 세계적인 대배우로 거듭났어도 여전히 그는 저를 향한 칭찬이 영 쑥스럽다. "과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저는 매번 똑같다. 모든 배우들이 그럴 거다. 작품과 배역에 헌신하고 책임감을 갖는 배우의 모습은 늘 한결같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배우로서 가장 중요한 건 관객들과 얼마나 소통하고 행복감을 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거다. 애초에 순수하게 이 영화 통해 관객에 전달하고 싶었던 즐거움, 영화적 재미와 감동을 훼손되지 않고 전하려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그는 "좋게 봐주시면 그만큼 더 행복한 건 없다"고 했다. 언제 봐도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대배우 송강호의 인품이다.    사진=쇼박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