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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웅' 안중근의 무게를 견딘 정성화 [인터뷰]

      대한민국이 존경하는 위인 안중근. 그를 오랜 세월 담아낸 이가 있다. 이토록 한 인물에 깊이 감화될 수 있을까 놀라울 만큼, 매번 거짓 없는 참된 마음으로 진심을 쏟아내는 배우 정성화다. 그가 기어코 대단한 일을 해냈다. 대한민국 최초 오리지널 뮤지컬 영화의 주연을 꿰찬 것이다. 이는 값진 결실이자 응당한 대우였다.   뮤지컬 영화 '영웅'(감독 윤제균)은 2009년에 초연돼 뮤지컬계를 휩쓴 동명의 창작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뮤지컬 오리지널 캐스트로 지난 14년간 안중근을 연기한 정성화는 영화에서도 대한제국 독립군 대장 안중근 역을 맡아 그 삶의 궤적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꿈을 이룬 것 같다. 구름 위를 떠다니는 느낌"이라고 말문을 연 그는 오리지널 뮤지컬이 영화화된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고 영광스럽다"면서도 "한편으론 두렵고 떨린다"고 했다.  정성화는 뮤지컬을 본 윤제균 감독이 이 작품을 영화화한단 얘기를 했을 때, 설마 제가 안중근이 되리라곤 생각도 못해봤단다. 혼자 오만 생각을 했다. '다른 역할로 제의 받으려나, 다른 이가 맡게 되면 속은 쓰리겠지만 많이 응원해야겠다'면서. 하지만 윤제균 감독은 처음부터 정성화를 생각했다. 이는 지난 14년간 안중근의 삶의 궤적을 좇은 그의 진심, 그리고 오리지널 뮤지컬 팬들에 대한 존중의 의미가 함께 담긴 선택이었다. 뮤지컬 영화라는 불모지에 뛰어들며 티켓파워나 상업적 이익을 따르지 않고 오직 '진심'으로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정성화 역시 이를 알고 있었다. 그는 "이 영화를 선택할 때 망설이는 두가지 이유가 있을 거다. 첫 번째는 조연이었던 정성화가 어떻게 주연을 맡아 활약하는가, 두 번째는 뮤지컬 영화가 생소한데 이물감 없이 들어갈 수 있는가다"라며 냉철한 객관화를 보였다. 그렇기에 막상 캐스팅 제의를 받았을 때 엄청난 무게감이 실렸다. "작품 의미를 보면 오리지널 뮤지컬 영화의 첫 발자국이다. 관객 분들이 실망하면 다신 안 볼 거란 생각에 목숨 걸고 해야겠단 생각뿐"이었다고. 그래서 지독하게 배역에 몰입했다. 온갖 역경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간 독립군 대장 안중근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14kg의 체중을 감량했다. 표정과 눈빛, 수염, 헤어스타일 하나하나에도 디테일을 기울여 생전 모습을 재현하는데 주력한 것이다.  극심한 다이어트로 인해 뮤지컬 무대에서 갑자기 기절해 쓰러진 적도 있었다. 사형대 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겨우 살았다. 관객은 암전 돼 이 상황을 모르고 스태프들은 난리가 난 사건이다. "그래서 그 부분만 되면 가슴이 떨리고 블랙아웃이 된다. 트라우마가 됐다"며 이제야 너스레지만, 얼마나 독하고 절실하게 배역을 준비했을지 눈에 선하다. "안중근 의사는 대한민국 국민에겐 자긍심 그 자체다. 우리나라에 그렇게 훌륭한 분이 계셨기에 그 정신이 이어져 지금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다. 대한민국 최초 오리지널 뮤지컬 영화 '영웅'도 제겐 자긍심이다. 윤제균 감독이 제게 항상 입버릇처럼 '세계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자'고 했다." 그에게 영화 '영웅'의 완성은 일종의 사명이었다.  뮤지컬과 영화의 차이는 낯설지만 신선했다. "뮤지컬에선 막연히 먼 발자취에서 보던 것들을 영화에선 가까이서 볼 수 있고 역사적 사건별로 디테일하게 나열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공연적인 환상이 영화적 미장센과 몽타주로 표현 방식이 바뀌는게 재밌고 새로웠다"고. 다만, "공연 때는 모든 홀을 다 채우도록 연기해야 하는데 영화에선 작고 섬세한 연기를 해야 한다는 차이가 있다. 특히 이 작품은 현장 라이브를 했는데 MR을 인이어로 낀 채 들으니 마치 노래방에서 에코 없이 노래하듯 생 소리가 나왔다. 노래를 잘 못하는 것처럼 여겨져 답답하고 굉장히 애를 먹었다. 하다 보니 노하우가 생겼고 감정의 디테일과 밸런스를 맞추는 게 가장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뮤지컬 넘버를 어떻게 하면 대사처럼 들리게 하고 감정을 이어갈 수 있을지가 최대의 난제이기도 했다. "기존의 뮤지컬 영화는 갑자기 정제된 음악이 시작되며 뒤에 있는 앙상블이 춤을 추거나 이런 쇼적인 위주의 영화가 대부분이었다. 갑자기 노래가 시작되면 관객이 감정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노래가 어떻게 해야 대사처럼 들리고 감정이 이어질지가 가장 큰 숙제였다. 우리가 가장 많이 나눈 대화가 '송 모멘트'였다. 극 속에 녹아든 음악, 대사처럼 들리는 노래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무엇보다 안중근 의사의 얼굴과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영화의 큰 장점이었다. 구국투쟁을 맹세한 단지동맹을 할 때의 결연하고 강직한 모습부터, 회령 전투에서 잘못된 선택으로 동지들을 잃는 뼈아픈 경험으로 자책하는 인간적인 모습, 사랑하는 가족과 어머니를 향한 애틋함, 두려움과 고뇌 등 수많은 감정이 응집된 인간 안중근의 모습을 입체감 있게 그려낸 정성화는 그야말로 짙은 감탄과 여운을 안긴다. 정성화는 "공연에선 안중근 의사가 강하게 보이는 부분이 있다. 캐릭터가 가진 에너지를 세게 전달해야 하기에 강렬하게 보여야 했다면, 영화에선 비범한 사람의 평범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가장 신경 쓴 건 인물의 평소 모습 생활 연기가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절제되면서도 담담한 연기가 뮤지컬과는 또 다른 면"이라고 설명했다.  그에게 안중근은 이미 삶의 일부분이다. 무려 14년의 세월 동안 한 인물의 정신과 숨결을 연면히 체화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제 인생에 가장 큰 롤모델이자 스승님 같은 분이다. 우리는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사람으로 알고 있지만, 그 이면을 살펴보면 그분이 가진 철학가적인 면모, 신앙인으로서의 모습, 사상가로서의 생각까지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그분의 유묵이 제 삶에 적용되는 게 많다." 특히 배우로서 정성화는 안중근 의사의 유묵 중 고막고어자시를 늘 되새긴다. '스스로 잘난 체하는 것보다 더 외로운 것은 없다'는 뜻이다. "이 말은 안중근 의사가 제게 하는 말 같단 생각이 든다. 제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사람들이 알아줄 거다. 정말 성실하게 작품 활동만 하며 앞만 바라보고 살았다. 어떻게 보면 제가 작품에 임하는 자세는 그분의 가르침"이라고.  그에게 '영웅'은 깊은 사명과 애정과 존경이 담긴 유일무이한 작품이다. '아 놔, 이제 정성화가 안중근으로 보여'란 어린 친구의 리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단 그는 학생들이 장기자랑으로 '영웅' 속 넘버 '누가 죄인인가' 무대를 하는 영상들도 봤다며 "이렇게 어린 친구들이 간접적으로 역사적 자긍심을 갖고 경험해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에너지도 있고, 시간이 나면 찾아가 깜짝 등장하고 싶다"고 대견한 아빠 미소다.    늘 진실되게 연기하고 성실하게 작품에 임했음을 스스로 자부할 수 있는 정성화다. 그동안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대한민국 창작 뮤지컬의 영화화, 그 대단한 업적에 첫 발자취를 남긴 그다. "이 작품을 통해 뮤지컬 영화의 새로운 길이 열렸으면 좋겠다"는 그의 바람이 원대하고 희망적이다.      사진=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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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겨울, 나는' 스물아홉, 배우 권소현 [인터뷰]

    어느덧 스물아홉, 이십 대 끝자락에 가 닿은 이는 생각보다 더 깊이 있고 성숙하며 평온했다. 조용하고 차분한 언행이지만, 그 깊숙한 곳에는 연기에 대한 더 깊은 갈망과 열정이 있다. 배우 권소현이다.   스물 아홉 청춘 커플의 어느 겨울 이야기를 그린 '그 겨울, 나는'(감독 오성호)은 퍽 시리다. 너무도 현실적이고 섬세한 이야기와 인물들의 모습이, 아마도 지난 청춘 시절에 겪었을 법한 처연하고 애틋했던, 그러나 그렇게 흘려보낼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의 감정들을 건드리는 탓일 테다. 영화에는 오랜 취업 준비로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지만, 동거 중인 남자 친구 경학과의 소소한 일상이 행복하고 든든한 스물아홉 살의 혜진이 있다. 하지만 어느 날 경학이 엄마의 대출 빚을 떠안고 경찰 시험도 미룬 채 대책 없이 배달일에 몰입하기 시작하며 둘 사이에 불안한 틈이 생긴다. 엄마의 잔소리, 사회적인 압박, 녹록지 않은 사회생활, 남자 친구의 피해의식과 열등감 등등 혜진의 세계는 정처 없이 혼란스러워진다.  권소현은 그 미세한 균열과 갈등, 불안을 너무도 리얼하게 그려낸다. 무려 첫 주연작에서 이토록 사실감 넘치는 모습으로 저만의 존재감과 숙성된 연기력을 발휘하는 그가 놀랍고 꽤 대견했다. "하루하루 반응을 찾아보고 있는데 영화를 좋게 봐주신 분들이 많아서 기쁘다"며 수줍게 웃으며 말문을 연다. 알고보니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작품을 평소에도 좋아했던 그다. "팀 활동이 끝나고 연기활동하며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고민했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본 뒤 멍하니 1분, 5분 앉아 생각에 잠기는 영화를 선호한다. 단순히 재미있다, 없다란 감상평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복합적인 감정과 생각이 계속 맴도는 영화를 좋아한다. KAFA 작품은 제 평소 취향이 반영된 작품들이 많고 그러다 보니 더 욕심이 났다"는 설명이다.   '그 겨울, 나는' 또한 그토록 갈망하는 KAFA의 작품이며 현실적인 시나리오까지, 어떤 감정인지 공감했고 연기하고 싶었다. 무려 3차까지 이어진 치열한 오디션을 거쳐 발탁됐다. 권소현은 감독의 전작을 찾아보며 스타일을 파악했고, 최대한 꾸밈없는 현실적인 연기를 하려 노력했다. 막상 캐스팅된 후에도 계속 치열했다. 모두가 치열하고 열정적인 순간이었다고. 그 속에서 권소현은 기뻤고 즐거움을 찾았다. "감독님께서 굉장히 섬세하시다. 각 개인의 경험과 말투도 다 듣고 수정본에 넣어주신다. 그래서 배우들끼리도 더 많이 얘기했고 어떻게 하면 더 사실스럽고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고민하며 개인적인 경험을 녹여내기도 했다"고.    권소현은 단순히 같은 나이 때문이 아닌, 스물아홉 혜진의 마음과 상황을 지난 경험을 통해 더 깊이 공감하고 연민할 수 있었다. "남들보단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했다. 제 나이 기준으로 스물셋, 넷이 혜진의 스물아홉이라 생각했다. 포미닛이란 십대 시절의 좋은 추억을 1막으로 봤을 때 이를 끝내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는 상황에서 느낀 혼란스러움, 그때 느낀 현실의 벽, 그때 맞닥뜨린 무게감 등이 있었다. 새로운 길을 가야 하는데, 과거에 있었던 무언가 들이 계속 맺혀있는 것이 답답했다. 하지만 이걸 이겨내고 가보자 했을 때 그 기저에서 끌어 나오는 살기 위한 힘이 있더라." 청춘의 끝자락에 놓인 혜진의 심정도 가장 아프고 혼란스러운 시기였을 거라는 그는 "그때 큰 일을 한 번 겪고 회복되면 오히려 치솟는 힘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며 확실한 위로를 건넸다.  그가 고민하며 녹여낸 혜진의 일상적인 모습, 대사, 표정들은 그토록 사실적일 수가 없다. 사회생활을 먼저 시작하게 된 혜진이 남자친구에게 "사회생활 안 해봐서 그래"라고 상처를 주는 핀잔도 애초엔 다른 대사였다. 하지만 둘 사이에 균열이 생기며 점차 서로를 상처주기 시작할 때 내뱉는 말들이다. 더 잔인해 보일 것 같아 바꾼 대사였다. 마지막 순간에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대사 또한 많은 의미가 담겼다. "이미 혜진은 정리가 됐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더 슬프다고 생각했다. 힘들지만 냉정해지려는 마음이었을 거고, 경학이는 가장 오래 연애한 친구라고 생각했다. 청춘, 추억, 내 많은 모든 것들이 이 친구와 접점이 있고 좋은 기억도 많을 텐데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단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이처럼 깊이 공감하고 인물에 체화될만큼 많은 고민과 노력의 순간이 있었을 테다. 심지어 극 중 흡연 신도 난생처음 담배를 입에 대본 것이었다. 그는 "감독님께 꼭 담배로 해야 하느냐고 여쭸다. 깊은 한숨을 내쉬는 느낌이 이것 말고 또 있다면 바꿔보자 하셨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만큼 복합적인 감정을 전달하는 설정이 없더라"고. "현실적인 커플의 모습으로 봐주실지도 제겐 큰 도전이었다. 오랫동안 팀의 막내 이미지가 따라다녔다. 그래서 난 튀고 싶지 않아, 튀면 안 돼 라는 감정이 항상 깔려 있었다. 불안해서 그랬던 것 같다. 그저 스며들고 싶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찍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나를 드러내고 싶었다. 제 스스로 걸었던 '리밋'에 닿으니까 이를 벗어나 보고 싶어 졌다"는 그의 속내에 말로 다 표현 못할 무수히 많은 감정이 담겼다.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이 자신이 보여야 할 모습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던 시절, 남들이 원하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자아가 희미해지던 순간, 모든 것을 그저 제 몫으로 감내했을 그가 새삼 더 어른스럽다. 밤마다 기도할만큼 간절히 바라며 배역 오디션 결과를 기다리던 순간,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순간들을 모두 거쳤고 이는 모두 배우 권소현을 지탱하는 단단한 밑거름이 됐다. 그는 여전히 성장한다. 좋은 작품을 만나 성장할 수 있는 건, 그 역시도 좋은 배우란 뜻일 테다.  권소현은 유독 이 작품에 애정이 많다. 그럴만도 하다. "처음으로 같이 만들어가는 작품이었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게 뭘까를 생각하며 맞춰갔는데 내가 얘길 해도 되는구나,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구나, 말할 수 있는 생각의 힘이 분명해졌다. 이 영화를 하며 내 직업을 배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연기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더 욕심이 생기게 됐다"고 말한다. 또 어서 빨리 30대가 되고 싶다며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겠지만,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할 수 있는 모든 고생과 경험을 해서 다행"이란 '웃픈' 너스레도 떨 줄 안다.  권소현은 연기가 이토록 재밌다. 최근 겪은 경험이다. 보통 힘을 빼며 하는 리허설 현장에서, 자신도 모르게 진짜 감정이 걸렸다. 그때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선이 느껴진다. 그 때의 짜릿함을 잊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저의 어떤 모습이나 진짜의 순간을 카메라가 담아줄 수 있다는 게 정말 부담은 크지만, 진짜 좋다. 예상치 않게 나오는 '진짜'의 감정이 담길 때"라는 그는 이제 제법 연기를 즐기게 된 듯했다. "할 수만 있다면 매년 독립영화를 하고 싶다. 그 과정이 정말 좋다. 치열하고 답답할 때도 있고 쫓기면서 하지만, 이를 기계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다 같이 무언가를 만들어보겠다고 모인 사람들의 모습과 그 기운이 정말 좋았다"며 황홀경에 빠진 그 표정을 보고 있으니, 그의 다음 작품이 몹시 기다려진다.      사진=매니지먼트 오름 제공, 영화 '그 겨울, 나는'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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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꾸정' 오나라의 즐거움, 행복, 진정성 [인터뷰]

    배우 오나라는 존재 자체로 사람을 끄는 매력의 소유자다. 비단 밝고 긍정적인 성격과 솔직하고 꾸밈없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상대를 배려하고 감정을 헤아리는 깊은 이해력과 특유의 살가움은 그를 마주한 이라면 절대적으로 빠져들게 만들 만큼 따뜻하고 좋은 기운을 풍긴다.  뷰티 성형 비즈니스의 이면과 여기에 얽힌 다채로운 캐릭터들의 '말빨'과 '캐릭터빨'이 살아있는 영화 '압꾸정'에서 단연 돋보이는 인물이 있다. 우아하고 엘레강스한 옷차림과 아름다운 외모에 걸맞지 않은, 화끈한 언행과 성격을 지닌 여인 오미정이다. 오나라는 남다른 정보력과 못 말리는 친화력, 타고난 말솜씨와 풍부한 리액션을 지닌 이 여인을 그야말로 '찰떡같이' 소화해낸다.  가볍게 보이는 인물이지만, 오나라는 많은 분석과 탐구를 통해 오미정을 완성했다. "오미정은 커플 매니저와 와인바를 하고 있지만 딱히 뭘 하는지 모르는 불분명한 인물"이라고 소개한 오나라는 "속을 감추고 있는 사람은 언변도 뛰어나고 제스처도 크고 옷차림도 화려하게 입는다. 그 부분을 부각하며 자신을 감추려는 미스터리한 인물로 그렸다"는 설명이다.  오나라는 "저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은 생각이 있지만, 저는 그 안에 진정성이 있다면 오미정은 사람들을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는 '목적'이 있다"는 분석이다.  그가 생각한 인물의 서사도 흥미롭다. "이 아이는 경기도에서 살았던 것 같고 서울에 대한 동경이 있었을 것 같다. 약간 부유하지 않은 집안에서 자라서 공부 잘하고 잘 나가는 사람들을 동경하며 살던 결핍이 있다. 성공에 목말라 있는 친구인데 타고난 언변이 좋고 사람들을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특기가 있다. 이걸 기본축으로 중심을 잡고 연기했다. 계속 연기하며 '나는 이런 아이야'라고 되뇌였다"고.  이처럼 풍부한 설정으로 인물을 탄탄하게 구축한 탓에, 그의 자유로운 연기는 더욱 개성있고 생생한 캐릭터를 구현해낸다. 오나라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진정성'이다. 그는 "가짜 연기를 싫어한다. 진심을 갖고 진짜라고 생각하며 연기할 때 진정성과 인간미가 발현된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것이 '스카이캐슬'이었다. 한없이 미울 수도 있는 인물이지만 애정을 쏟고 진정성을 다했다. 그랬더니 나중에 시청자분들도 '오히려 가장 인간적인 인물이었다'고 해주셨다. 그걸 알아봐 주셨구나, 하고 감사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평소에도 사람들의 독특한 제스처나 버릇, 습관들을 관찰한다. 이를 녹여내기도 하고, 만약 없다면 상상력을 동원하기도 한다. 오나라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이처럼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의 결과다.    극 중 미정이 보건복지부 과장과의 술자리에서 "보건소에 계세요?"라는 애드립은 마동석도 감탄한 대사다. 그 한마디에 배움의 깊이가 느껴지는 것은 물론 뻔뻔하고 능청스러운 미정의 캐릭터를 돋보이게 하는 애드립이기도 했다. 오나라는 "동석 오빠가 볼 때마다 웃기다고 하셔서 뿌듯했다"고 기뻐했다. 이밖에도 뒤끝 있는 미정의 성격을 보여주는 대사들도 애드립이다. 오나라는 이처럼 자유롭게 연기하는 현장이 즐거웠다. "정말 많은 대사와 애드립, 상황극이 난무했다. 그 와중에 쳐내고 쳐내서 재밌는 것들만 남았다. 매 순간 웃음을 머금게 하는 영화였다. 그래서 애정이 없을 수가 없다. 오히려 벌써 개봉하는 게 아쉬울 정도다. 숨겨둔 보물 같았는데 사라져 버릴까 벌써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라고.  현장에서 감독님은 물론 마동석, 정경호 모두 자신을 믿어줬고 마음껏 놀 수 있게 멍석을 깔아줬다는 설명이다. "사실 그 배우를 믿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기뻤다. 믿고 맡겨주신만큼 부응하고 싶어 분석도 열심히 했고, 그 안에서 정말 많은 것들을 해봤다"고. "받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못한다. 센스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니까 현장이 재밌어 죽겠더라. 이상하게 '압꾸정' 촬영장은 계속 가고 싶었다. 제 촬영이 먼저 끝났는데 나 빼고도 재밌을까 봐 질투 나서 계속 연락하고 뭐 찍었냐고 물어보고 그랬다"는 귀여운 여인이다.    오나라의 코미디 철칙도 있다. 이 또한 내내 추구하는 '진정성'에서 비롯된다. "웃겨야 한단 강박관념은 없다. 짜여져 있는 분위기를 안 좋아한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다. 다만 뚝심은 있어야 한다. 나만 재밌거나 상황과 맞지 않는데 웃기려고만 하지 않았나 돌아본다"고.  그렇게 자신조차 즐거운 연기를 하고, 이를 본 사람들이 또다시 즐거워하는 모습이 그를 행복하게 한다. "더 동기부여가 되고 다음에 더 잘해야지 하는 마음이 든다"는 그는 "배우 오나라를 사랑해주시는 분들에게 최선을 다해 만족을 주고 싶다"고 진심을 밝혔다.  오나라는 늘 최선을 다하고 에너지가 넘친다. 주변에까지 특유의 밝은 기운을 미치는 이다. 하지만 그는 "길러진 사회성"이라는 너스레로 웃긴다. "전 사실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다만 제가 나서야 하는 순간 최선을 다한다. 장소와 사람들을 가려 눈치껏 한다. 사실 제가 체력이 좋은 스타일이 아니라 집에선 하루 종일 뜨개질만 하거나 조용히 충전을 한다"며 "사람들은 제가 365일 하이텐션에 에너지가 넘치는 줄 알지만 전혀 아니"라고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마음을 다해 힘쓰는 그다. 그 진심은 언제나 통하기 마련이다.  오나라는 '압꾸정'을 통해 느낀 행복감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다. "우리 영화가 칸에 갈 것도 아니고 시상식에 갈 것도 아니지 않나. 그저 연말을 행복하게 힐링할 수 있는 영화가 되는게 목표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썸 타는 연인들이 와서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갈 땐 함께 손을 잡고 나갔으면 한다"고. 이처럼 솔직하고, 그래서 더 매력적인 오나라다.    사진=쇼박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