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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죄도시 3' 이준혁, 뜨거운 유머 본능과 냉정한 자평 사이 [인터뷰]

    배우 이준혁은 사뭇 진지하면서도 은근한 유머와 화술을 갖춘 이다. 마음껏 뽐내도 좋을 훤칠한 외모와, 이에 걸맞은 수준급 연기력에 올바른 인성까지. 다 갖췄음에도 그는 제게 만족하지 않는다. 이 또한 그의 매력 포인트다.  한국 대표 액션 프랜차이즈로 자리잡은 마동석의 '범죄도시' 시리즈. 3편의 주인공으로 이준혁이 낙점됐단 소식이 들렸을 때 관객은 감탄과 기대를 금치 못했다. '나쁜 놈' 때려잡는 괴물형사 마석도의 근무일지(?)라고 해도 좋은 '범죄도시' 시리즈는 그만큼 '나쁜 놈'이 엄청나게 부각되는 작품이다. 전작의 윤계상, 손석구는 잔인무도하고 이제껏 본 적 없는 빌런의 존재감을 떨치며 화제가 됐다. 평소 반듯하고 완벽한 비주얼을 자랑하는 이준혁은 의외로 여러 작품에서 다양한 악인들을 연기해 왔고, 의외로 기막히게 어울린단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 그가 빌런이 독보적으로 두각을 드러내는 '범죄도시'의 새 빌런으로 발탁됐다니 탁월한 캐스팅이었다.   실제로 모습을 드러낸 '범죄도시 3' 속 빌런 주성철의 모습은 이전까지 그려진 시리즈 속 빌런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백키로에 육박하는 거구의 몸과 거칠고 거뭇한 인상에도 우락부락함을 느끼기보단 감탄을 부르는 묵직하고 잘생긴 이미지에 가까웠고, 원초적인 살인을 저지르던 이전 빌런들과 달리 그는 철저하게 계획적이고 냉철하게 행동했다. 이 '다름'이라는 변주 속에 마주한 주성철은 낯설고 이질적인 또 다른 이준혁의 모습을 각인시켰다.  "처음에 마동석 형한테 제안을 받았을때 너무 놀랐고 꿈같았다. 대본도 안 보고 하겠다고 했다. 내가 왜 빌런 역할에 캐스팅됐지? 냉정하게 생각해 봤을 때 그동안 악역을 많이 했어도 꽤 지적인 캐릭터로 나왔던 것 같다. 완전히 없었던 이미지를 생각하시진 않았던 것 같고 좀 더 거친 느낌을 원하실 것 같아 최대한 거칠고 날것의 느낌을 내려고 했다"는 이준혁이다. 그는 "저도 기존에 작품활동을 많이 했고 소비된 이미지가 있는데 '범죄도시'에선 신선함이 있어야 이 작품에 유리하다고 생각해서 사람들이 못 봤던 새로운 느낌을 주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180도 다른 모습을 보이려면 눈썹을 밀면 가능할 것 같은데"라는 진지한 너스레로 웃긴다.  이준혁이 말하길 '범죄도시'는 히어로 시리즈물이다. 이에 맞는 방향성이 있고, 3편까지 이어진 시리즈에서 시도한 변주를 납득했다. 그 역시도 주성철이 이전 빌런과는 다른 지점이 분명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극 중 주성철의 스토리 흐름을 '주성철의 운수 좋은 날'이란 키워드를 잡아 생각했다. "살면서 실패를 경험해 본 적 없는 사람이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인생의 쓴 맛없이 잘 살아왔다.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더 나아가려 하는데 본인 인생에선 300억을 손에 쥐는 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앞두고 마석도를 만나게 되는 거다. 그럼에도 주성철은 끝까지 마석도를 이길 수 있단 자신감이 있다는 게 구별점이었다"는 해석이다.  살을 찌우고 빼는 극단적인 변화는 오히려 이전에도 많이 경험해봤기에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고. "배우로서 체격을 키울 때 나오는 리액션이 다르니 그게 또 재밌다. 노력한 결과 같아서 좋다"는 그다. 하지만 그렇게 체구를 키웠어도 마동석과 대결하는 신에선 너무 강렬했다고 하소연(?)한다. "액션 신을 안 찍어본 것도 아닌데 형님 같은 피지컬은 처음이라 정말 많이 놀랐다. 주먹이 날라들 때는 장기가 흔들리는 느낌"이었다는 너스레와 함께 "그래도 슈퍼히어로한테 맞는 거라 기분은 좋았다"고 덧붙인다. 게다가 "저먼 스플렉스 기술을 당할 때 쾌감이 상당했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던 기술이기도 하고 멋있다고 생각했다. 테이블이 부서졌으면 금상첨화였을텐데 아쉽다"는 재치 있는 소회다.    시리즈 최초로 극 중 단독 빌런이 아닌 지점도 색다른 변주다. 다만 빌런에 대한 시선이 분산되는 만큼 당사자 입장에선 아쉬울 법도 하다. 이준혁은 오히려 이를 반겼다. "제가 '범죄도시' 1편을 볼땐 이런 미래를 상상할 수 없었기에 관객의 입장에서 정말 재밌게 봤다. 막상 빌런 역을 맡게 된 후 2편을 볼 땐 설렘과 걱정 등 복합적인 감정이 동시에 들었다. 배우가 개인적으로 임팩트 많은 신이 많다면 좋겠지만 일차원적으론 관객이 재미를 느끼는 것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근본"이라는 소신이다.  그 역시도 어릴때부터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했기에 재밌는 영화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관객을 설득하면 그 후의 캐릭터들이 어디로 어떻게 살아날지 모르는 일이라고. "저는 기본적으로 워낙 영화를 좋아하고 모든 장르를 좋아한다. 그렇기에 변신에 대한 편견도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이런 새로운 기회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는 그다. 이어 "제가 어릴 때부터 영화 잡지와 DVD, 비디오테이프 등을 모으며 영화에 쓴 돈이 여태까지 영화에 출연해 번 출연료보다 더 많다"고 너스레다. 은근히 적재적소 터뜨리는 유머 타율이 퍽 훌륭하다.  다만 아직까진 배우로서 성취점을 이루지 못했다는 자아성찰은 의외였다. 완벽한 외모와 걸맞는 연기력도 모자라 특유의 매력도 갖췄다. 대표적으로 출연작 '비밀의 숲'에서 그토록 얄미운 짓을 하는 인물임에도 '우리 동재'란 수식어를 얻으며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캐릭터란 것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그는 "대중적으로나 연기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나에게 베스트가 있었나 생각하면 잘 모르겠다. 아직 그러지 않았다. 완벽하게 가진 게 없는 것 같다"는 냉정한 자평과 "사실 제 작품을 볼 때 관대하지 않다. 극한까지 올라간다. 언젠가 나까지 속일만한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소망한다.  연기에 대한 고민과 갈망은 늘 피어난다. 하지만 그는 모든 직업군, 모든 사람들이 마찬가지일거라고 말한다. "다들 열심히 해도 노력만큼 안 나올 때가 있고, 이게 맞나 괜찮은 건가 하며 내일을 걱정하기도 하지 않나. 그런 고민의 시점은 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 이렇게 새로운 변주를 할 수 있는 캐릭터들을 만나게 되는 기쁨이 있다. 그런 것들이 새로운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한 가지 자부할 수 있는 건, 지난 16년간의 세월이다. 이를 "나 스스로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노동시간"이라고 재치 있게 표현하며 "필모그래피를 시간으로 환산하면 어마어마한 노동의 시간이다. 이런 기회를 받은 것도 감사하고, 이 시간을 인고하며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왔구나 그건 보이는 것 같다"고 덤덤히 말하는 이준혁이다.      사진=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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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죄도시 3' 이상용 감독, 함께 걸은 시리즈 발자취 [인터뷰]

    '범죄도시' 1편의 조감독을 거쳐 2, 3편을 연달아 연출한 이상용 감독. 첫 연출작인 '범죄도시 2'로 영광스러운 천만 감독 타이틀을 거머쥐었음에도 그는 모든 것이 '범죄도시' 팀워크 덕분이라며 공을 돌린다. 내딛는 첫 걸음부터 함께 초석을 다져온 그인만큼 시리즈를 향한 애정과 자부심이 가득했다. .  "'범죄도시' 조감독 출신으로 시작해 운 좋게 2편을 맡아 입봉을 하게 됐다. 그때만 해도 1편의 688만 관객을 어떻게 넘을 수 있을까 감히 생각도 못했다. '범죄도시'가 너무 잘 돼 2편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었기에 정말 감사했고 그땐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열심히 만들었다. 그러나 코로나 때문에 정말 많이 힘들었다. 2편이 개봉하기까지 3년이 걸렸다. 당시 장소 헌팅도 안 되고 보조출연자 모으는 것도 쉽지 않았다. 베트남 촬영 준비 때문에 5번이나 왔다 갔다 했는데 결국 철수해야 했다. 예산도 이미 엄청나게 오버된 상태였고 결국 이렇게 끝나는 건가 생각도 들만큼 힘들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시나리오도 계속해서 바뀌었다. 하지만 마동석 배우님을 비롯해 모든 배우들, 스태프, 제작사 대표님 등 '용기를 잃지 말라'고 응원을 많이 해주셔서 끝까지 완성할 수 있었다. 외형적으로 보이는 비주얼보다 인물 관계에 더 집중하도록 시나리오를 계속해서 수정하고, 배우들 에너지를 잘 뽑아내자 했다. 결과적으로 이런 과정에서 이야기가 더 탄탄해진 것 같다." 지난 시간을 복기하며 말문을 연 이상용 감독이다.  그렇게 무사히 세상에 내놓은 입봉작은 코로나로 인해 침체된 극장가에 유일하게 흥행 열풍을 일으키며 천만 관객 돌파라는 기념비적인 기록을 세웠다. "천만이 넘을거란 생각은 일절 하지도 못했다"는 감독은 "2편을 찍는 중간에 마동석 배우님이 3편 연출을 맡겨주셨다. '다음 편 소재를 뭘로 할지 정하자'고. 데뷔작을 맡아 개봉도 하기 전에 다음 편을 같이 하자고 해주시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감사했다. 그래서 2편 개봉했을 땐 솔직히 3편 준비를 하느라 실감이 안 나고 얼떨떨하고 부담이 되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정작 '범죄도시 3'을 완성하고 개봉을 앞두고 나니 이제야 실감이 난단다. "'범죄도시 3'이 개봉되면 진짜 데뷔하는 기분이 날 것 같다. 천만이란 기록도 제 인생에서 어떤 느낌일지 지금이 지나봐야 알 것 같다. 아직도 여전히 얼떨떨한데 좋게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감독은 "무사히 촬영을 마치고 개봉한다는 게 가장 기쁘다"는 소감이다.  '범죄도시 3'은 금천서에서 광수대로 이동한 마석도가 신종 마약 사건을 파헤치는 이야기를 그린다. 마석도의 판도 바뀌었고, 빌런도 시리즈 최초 두 명으로 늘어났다. 시리즈 기조는 이어가되 새로운 변주를 준 것은 감독에게도 모험이었다. "애초에 3편 소재 정할 때부터 모든 걸 새롭게 바꿔보자고 생각했다"는 감독은 "살짝 괜히 바꾼다고 한 건가 싶기도 했다"며 너스레다. 하지만 감독의 생각은 확고했다. "익숙함보단 새로운 도전이 저에게도 득이 될 거라 생각했다. 힘들겠지만 도전해보고 싶었다"는 감독은 시리즈의 확장성을 위해 마석도의 환경을 바꾸는 것이 도움이 될 거라 여겼다. 물론 기존 금천서 형사 식구들의 친근한 '케미'를 응원하는 시리즈 팬들은 아쉬움을 느낄 지점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인물이 나와 또 다른 재미를 주는 것이 앞으로 시리즈가 나아가는데 더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또한 두 명의 빌런이 등장하는 것이 '범죄도시 3'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자신했다. "이전까지 빌런들은 찌르면 바로 나오는 에너지가 있었다. 날것의 이미지에 원초적인 살인을 벌이는 이들이었다면, 이번에는 돈에 대한 욕망이 어떻게 한 인물을 이끄는지를 보여주는 인물로 구축했다"는 것이다.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오히려 일본에서 건너온 야쿠자 리키는 지난 악당들과 비슷하다. 주성철은 변수를 쓰도록 구조적으로 세팅한 주요 빌런이다. 주성철은 응축된 에너지를 갖고 있고, 두뇌 싸움을 하며 권력과 능력 등을 모두 갖춰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믿는 인물이다. 그렇게 마석도에게 새로운 위협을 가하는 인물로 구축했다는 것이다. "이전까지와 결이 다른 빌런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된다. 개개인으로 보면 분량이 작아지지만 이 둘을 묶어서 구조적으로 생각하면 더 매력적이고 위협적인 빌런"이란 자평이다.  특히 감독은 빌런을 맡은 배우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빌런들 DAN는 장첸파가 심어줬다고 생각한다. 배우로서 도전한단 것만으로도 압박감이 클 거다. 본인도 모르는 자신의 모습을 이끌어내는 것 자체가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한다"고.   이상용 감독은 '범죄도시' 시리즈의 특징을 "마석도와 빌런"이라고 자부했다. "말했듯 이 시리즈의 빌런은 장첸의 DNA덕분에 새로운 도전을 하는 배우들의 신선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기준이 있었기에 계속 도전하는 배우가 생겨나고 자연스레 시리즈에 녹아들어서 극대화되지 않았나 싶다. 또 다른 하나는 당연히 마석도다. 마석도 캐릭터는 정말 신의 한 수가 아닐까 싶다"는 감독은 뒤이어 마석도에 대한 깊은 애정과 감탄을 빠짐없이 드러냈다. "이 사회에 정말 많은 범죄들이 일어나지 않나. 잔인하고 나쁜 사건이 너무 많다. 그때 마석도란 형사가 통쾌하게 해결해 준다는 게 정말 좋은 거다. 아무리 무섭고 나쁜 빌런이 나온다고 해도 마석도가 질 거라고 절대 생각 안 하잖나. 마석도는 우리 편이다. 그 등 뒤에서 정말 편하게 영화를 보며 대리만족할 수 있는 느낌이 이 시리즈의 묘미 아닐까 싶다." 덧붙여 "마석도는 나쁜 놈들한텐 인정사정 안 봐주고 가차 없이 때려 부수면서도 시민들한텐 죄송하다 인사하고 차 좀 빼달라고 정중히 얘기하고 그러지 않나. 관객도 그런 모습을 정말 좋아해 주시는 것"일 거라고 흐뭇한 미소다.  마석도가 극 중 최초로 등장하는 오프닝 신은 매번 비슷한 장면과 방식들이지만 이는 오히려 익숙함 속 넘치는 반가움을 준다. 감독은 "뻔하다고 안 좋아하시는 분들이 있을지 몰라도 두렵진 않다. 제가 생각하는 '범죄도시'의 시그니처다. 4편부터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제가 이때까지 했던 3편에서는 '범죄도시'의 정통성이라고 생각했다. 기존 관객이 다시 봐도 재밌고 유쾌함을 느끼시길 바란다"고 했다.  관객들이 영화관에 와서 즐거워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 이는 이상용 감독의 오랜 바람이었다. 확고한 연출관도 있다. "솔직히 관객이 배우를 보러 오시는거다. 그렇기에 배우들 감정과 집중력을 더 이끌어낼 수 있도록 중심을 두고 촬영하는 편이다. 배우들을 최상의 컨디션으로 연기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연출의 첫째 목적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범죄도시'를 만난 것이 넘치는 행운이었다는 소회다. "연출자로서는 영광이다. 이렇게까지 성공한 기획 영화를 어떻게 해보겠나. 제게 '범죄도시'란 너무 감사하고 분에 넘치는 영광과 기회와 제 인생을 열어준 영화"라는 감독이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하더라도 '범죄도시'는 제 기준점이 될 것 같다"는 그에게서 넘치는 애정과 자부심이 여실히 느껴졌다.    사진=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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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입니다' 이창재 감독의 끌림과 깨달음 [인터뷰]

    '노무현입니다'를 만든 이창재 감독이 6년 만에 세상에 내놓은 작품은 '문재인입니다'로 특별한 연속성을 갖는다. 변호사 출신 당시부터 오랜 벗이자 극적으로 대한민국 대통령이 됐고, 이례적인 팬덤이 형성될 만큼 많은 국민이 애틋하게 애정하는 두 사람. 이들을 연작 다큐멘터리로 담아낸 감독이다. 전작은 문화계 탄압이 자행되던 서슬 퍼런 시대, 금지 콘텐츠라 여겨졌던 '노무현'을 다루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이번 작품은 제작되기까지 오랜 기간이 걸려 이가 빠질 만큼 진을 뺐던 감독이다. 그럼에도 '왜' 이토록 '이들'을 다루고자 했을까. 이에 "본질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말문을 연 감독이다. 그 역시도 특별한 두 대통령 시리즈를 연달아 만든 것에 대한 우려나 편견 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실로 '노무현입니다' '문재인입니다'는 퍽 희한하다. 세계를 통틀어 전직 대통령에 이토록 우호적 관점을 갖는 다큐는 드물테다. 게다가 이 연작 시리즈의 저변에는 애정과 연민과 존경이 엿보인다. 그럼에도 그런 감독의 의도가 낯설거나 거북스럽지 않다. 정치적 미화나 관점을 두지 않고 한 사람의 다양한 단면을 바라본다. 그 시선 끝에는 그저 '사람'이 보인 탓이다. "제가 정치적 사안을 들여다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능력이 안 된다. 저는 아주 얕은 사람이고 개인적으론 관심이 없는 편이다. 다만 제 영화의 시작은 항상 같았다. 어떤 주제나 인물에 대해 떨림 같은 걸 느낄 때, 다큐라는 통로를 통해 이 대상을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오고 이건 제게 선물 같은 것"이라는 감독은 "어떤 사안에 대해 당신이 왜 그런 태도를 취했는가. 이를 들여다보면 그 사람의 내면이 형성될거라고 여겼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길 '노무현입니다'는 시대적 울분에서 시작된 영화였다. 억눌리고 쌓인 감정의 분출이었다. 10년 넘게 '헬조선'으로 공분화되던 시기였다. 그때 지지율 2%밖에 안 되는 약소 후보가 시민들 힘에 의해서 대선 후보가 되어가는 과정을 되짚어 희망을 말하고 싶었다. 전작을 편집하던 2017년 5월, 마침 인터뷰이로 참여한 문재인 장면을 작업하고 있는데 문재인 대통령 당선 확정이란 뉴스 화면이 떴다. 그때 "어떤 떨림"을 느꼈단 감독이다. 당시 문재인의 청와대 재임 시절을 다뤄 여러 고통을 극복하며 정점에 오른 한국 민주주의의 한 측면을 담고자 했다. 하지만 기약없는 기다림을 견뎌야 했다. "보상 받은 적도 없고, 보상 없는 행위인데 왜 이렇게 하고 있을까 한다면 제가 이 오랜 시간 혼신을 다해 들어가 봤을 때 이렇게 오래 깊이 들여다볼만한 대상인가를 생각한다. 금방 민낯이 드러나는 대상은 기피한다. 버티질 못하고 그저 의무감이 된다. 하지만 매달릴수록 더 많고 더 깊은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될때 완전하게 나의 모든 걸 쏟아부어도 후회하지 않을 대상이라면 버티는 힘이 생긴다." 결론적이고 근원적인 탐험에 대한 욕망, 조금만 더 버티면 내면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단 아집도 한 몫 한 것 같다고. 그 역시도 궁금했다. 당신의 정치적 결과물에 대한 시시비비를 적시하기보다 의문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단다. 평생의 친구이자 비서실장으로 곁을 지켰던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정치가 싫어 고향에 칩거했던 인권 변호사 문재인은 왜 대통령이 되려 했을까? 2017년 당시 국정농단을 벌인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고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촛불혁명 시민들은 왜 대통령 문재인을 원했을까? 5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문재인은 성공한 대통령인가, 실패한 대통령인가? 평산마을 사저를 찾아오는 시위대와 지지자들. 왜 누군가는 그의 열렬한 팬이 되고, 왜 또 다른 누군가는 그를 저주할까를. 한 사람을 둘러싼 무수한 질문과 논란은 결코 한 단어로 정리될 수 없다. 하지만 그 오랜 인고의 여정을 거친 끝에 감독이 정의한 문재인은 확실한 신념을 지닌 자였다. 감독은 그를 두고 "이름 모를 야생화를 사랑하는 상남자"라고 비유했다. "그 분은 당신이 주인공이 되기보다 주변이나 배경이 되려는 태도를 지닌 사람이다. 저는 변호사, 정치인을 거쳐온 자연인 문재인을 봤다. 저도 30년 된 다큐멘터리 감독이라 인터뷰할 때 심문 기법이 뛰어나다. 같은 질문을 다르게도 해보고, 우호적이거나 적대적으로 묻는다. 독특했던 게 이분 대답은 변하지 않는다. 딱 본질에 닿아있고, 관명한 답을 갖고 사신다. 사람은 환경에 따라 다른 답변을 하는데 당신은 항상 간결하고 견고하게 자기 생각을 갖고 있다. 대통령으로서 어떤 걸 결단하고 밀어붙일 때는 강골이란 말이 떠오를 만큼 무사 같다.. 하지만 이 양반이 진짜 사랑하고 편안하게 느끼는 건 꽃이다. 넘실대는 야생화가 때론 반려견 토리가 되고, 선민이란 사람으로 대체되기도 했다. 제가 오래 지켜본 바로는 누구도 돌봐주지 않고 관심 주지 않는 낮은 것들에 대한 타고난 연민감이 있었다."   한 사람을 탐구하는데 무려 6년을 버티게 한 힘은, 이처럼 미지의 인물을 들여다볼수록 더 깊은 것이 보이고 이해할 수 있는 모습이 보일 거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정치적 진영과 관점을 떠나 한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은 뜻깊은 의미를 갖는다. 감독은 최근 관객이 보내온 감상 중 "문재인 대통령 재임 시절엔 유권자가 아니라 잘 몰랐다. 이런 사람이 있었구나 하고 놀랍기도 하고, 왜 우는지 모르는데 울었다"는 말에 고마움을 느꼈다. 누군가를 이해시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알기 때문이다. "제가 가진 좋은 영화에 대한 관점은 당시에만 소비되고 잊히는 것이 아니라, 5년 10년 후에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신념이다. 전작이 뜨겁고 순수했던 사람 노무현의 열정과 불꽃을 담았다면, 이번 영화는 고요하고 우직한 사람 문재인을 담는다. 두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사람'과 '휴머니즘'이다. 여러모로 다른 듯 닮은 벗이다. 영화의 결도 마찬가지다. 감독은 "'노무현입니다' 때는 당신 삶 자체가 워낙 드라마라 그 정도로 울컥하는 장면이 많았다. 감정이 고조되고 폭발하는 음악을 쓰기도 했는데 '문재인입니다'는 '봄날은 간다'를 작곡한 조성우 음악 감독님이 합류하셨다. 더 표현되지 않고 절제해서 응축해 있는데 집에 갈 때쯤 마음이 울컥해지고 억제된 감정이 노출될 수 있는 영화였으면 했다. 최대한 절제해서 주인공을 닮은 영화여야 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톤앤매너로서 가장 중요했다"는 설명이다. 그토록 오래, 그리고 깊게 들여다 본 두 사람이지만 감독은 이들을 규정하긴 어렵다고 했다. 다만 다른 이의 말을 빌려 "둘 다 뜨거운 마그마가 끓고 있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활화산 같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휴화산 같다"는 표현이다. "같은 마그마에서 뻗어 나온 활화산과 휴화산, 그 비슷한 두 분의 대단한 혼이 그분들을 버티게 하는 힘이지 않았을까." 이창재 감독은 편견과 잣대, 오해와 부정을 걷어내고 사람 대 사람, 마음 대 마음으로 대상을 존중하고 마주할 수 있는 용기와 진심을 갖길 희망하는 이다. 그가 지난 두 번의 여정을 겪어오며 여실히 느낄 수 있었던 건 "사람에 대한 연민과 온기"다. "그것이 제게 큰 영향을 줬다. 저도 그런 온기가 제 인생에서 필요하단 생각을 했고 이상적인 변화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사진=엠프로젝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