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공자' 김선호, 아찔한 '맑눈광'의 잔향 [인터뷰]
해사한 얼굴과 늘씬한 슈트핏으로 더욱 돋보이는 외모, 종일 싱글거리는 미소까지 '귀공자'란 명칭이 어쩜 이리 맞아떨어진다. 속내를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이 미남자가 웃으며 마구잡이로 살육을 시작할 땐, 그야말로 '맑은 눈의 광인'이 따로 없다. 첫 스크린 주연작에서 확실한 임팩트를 남긴 배우 김선호다.
박훈정 감독의 추격 액션 영화 '귀공자'에서 김선호는 타이틀롤이나 다름없는 귀공자 역을 맡았다. 자칭 프로라 칭하는 남자다. 그는 오프닝 신만으로 범상치 않은 캐릭터를 확실히 각인시킨다. 포마드 헤어스타일과 말끔한 슈트 차림을 고수하고, 싱글거리며 살인을 하고, 그러다 고급 의상에 피가 튀거나 옷차림이 흐트러지자 질색을 하며 기겁을 한다. 이 정체불명의 미남자는, 극 내내 영문을 알 수 없는 추격자의 모습으로 궁금증을 유발한다. 오싹하면서도 유쾌한 광기(?)가 흐르는, 대단히 미묘하고 본 적 없는 인물을 능청맞게 연기한 김선호다.
평소 박훈정 감독의 팬이었단 그는 "감독님께서 불러주셨을 때 '저 팬이에요!!' 했다. '신세계'와 '마녀'의 액션 신들이 정말 신기하고 충격이었다. 감독님께 정말 재밌었다고 하니 '으하하' 웃으시더라"며 "그리고 '귀공자' 얘기를 들었고 대본을 읽었을 때 제게 이런 역할이 들어왔다는 것이 정말 기뻤다. 재밌는 작업일 것 같아 설렜다"는 회상이다. 아무래도 첫 스크린 데뷔라는 긴장감이 작용했지만, 막상 현장에 가니 큰 차이는 없었고 배우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는 각오로 임했다고.
'귀공자'는 필리핀에서 병든 어머니와 사는 코피노 마르코가 수술비 마련을 위해 평생 본 적 없는 아버지를 만나러 한국으로 향하던 중, 각기 다른 목적을 지닌 세력들로부터 광기의 추격을 당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귀공자는 그 중 하나인 정체불명의 남자다. 그는 홀연히 마르코 앞에 나타나 자신을 친구라 소개하고, 이후 마르코 주위를 맴돌며 주변을 초토화시킨다. 적인지, 친구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인물이다.
김선호는 귀공자 배역에 이입하기 위해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했다. 귀공자는 늘 신나고 즐거워보인다. 평소에도, 살인을 할 때도 시종일관 웃고 있다. 대본에 '웃으며'란 지문이 특히 많았다. 처음엔 그게 의아하고 이상했단다. "살인을 하면서도 웃고 있고 친구라 부르고, 휘파람도 가끔 불고 이 아이는 돌아이인가 했다"며 웃긴 김선호다. 이어 "콜라를 먹는 신도 대본에 이렇게 쓰여있다. '맛있게도, 어린애처럼 먹는다'. 그걸 보며 진짜 나쁜 걸 모르고 즐기고 있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장치구나 생각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감독이 언급한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를 참고했다. 악행을 벌이면서도 마치 놀이를 하듯 분간 못하는 어린아이처럼 귀공자를 잡아나갔다. 깔끔하고 귀공자적인 외형을 하고 있지만, 원초적으로 접근했을 때 귀공자는 왜 이렇게 깔끔할까? 성격일까? 고민했다. 보육원 출신이고 어렸을 때부터 집단에 속해 킬러 훈련을 받았고 병이 결렸다. 그렇다면 귀공자의 깔끔함은 어떤 결핍에서 나온 게 아닐까? 그럼 좀 더 병적이어도 되겠다 싶어 창고 신에서 더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고.
터널 추격 신 장면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외적으로 깔끔하고 정돈된 사람은 뛰는 모습도 다를 것이다. '힘들지만 마르코가 돌아볼 때마다 힘들지 않은 척 한다'는 지문에 더해 마치 터미네이터처럼 기계적으로 뛰면서 더 크게 웃었다는 설명이다. 유독 엄살을 떨며 아파하는 모습도 그에겐 의문이었다. 박훈정 감독은 "아프기 싫어서 먼저 쏘는 애다. 그러니 먼저 한 발 쏴야 한다"고 했다. 더 겁내고 아파하고, 그래서 먼저 행동하고 그렇기에 더 잔인해 보일 수도 있구나 싶었다. "처음엔 캐릭터가 예측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저런 말을 할까? 싶었다. '안녕 친구 반가워'라 말하고 '아 역시 벤츠야'라며 감탄하고 이런 예측 불가능한 아이였는데 저도 감독님 세계관에 빠져들다 보니, 얘는 정말 반갑고 놀듯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아이구나 싶었고 연기하면서 오히려 예측이 안 되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매력이 있었다"고.
이처럼 배우 김선호는 스스로도 캐릭터에 몰입하기 위한 타당성을 찾아갔고 왜라는 의문 속에 답을 내려갔다. 그렇게 켜켜이 쌓아 나간 탓에 외양부터 사소한 습관과 말투, 행동 등의 디테일함까지 빈틈없고 생동감 넘치는 매력적인 인물이 완성됐다. 그동안 본 적 없는 매력적인 킬러 '귀공자'의 탄생이다. 김선호는 이렇듯 꾸준하고 오랜 탐구파 유형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배우로서 제가 좀 느리다. 질문도 많은 편이고 잘 알아듣질 못해서 자꾸 물어본다"며 너스레 섞인 자책이다. "연기라는게 모호하고 사람 인생이 묻어나는 거라 생각한다. 배우로서 욕심이 있어서 왜냐고 자꾸 물어보고, 말하는 사람은 지치고 그렇다. 그래도 한 번 알아듣기 시작하면 정말 확실히 알겠다. 차근차근 캐릭터를 구축해 나간다고 생각한다. 조금 느리지만 그래도 유연하려고 노력하고 꾸준히 빌드업해가고 있다."
기대하던 액션 연기를 원없이 해본 것도 그에겐 설레는 일이었다. "드라마에서 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길게 해 보긴 처음이다. 확실히 좋은 액션을 찍으려면 다양한 것을 완벽히 준비해야 하더라. 액션의 합, 변수 등을 미리 생각해야 했다. 하지만 감독님이 워낙 원하는 액션이 명확히 있으셨고, 과하거나 선이 넘지 않는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다"는 설명이다. 그는 초인처럼 보이는 귀공자의 액션 실력에도 "감독님이 '얜 프로야, 프로'라고 하셨다. 저도 인물에 설득력을 갖기 위해 오랜 시간 질문을 하다가 감독님과 '존 윅'을 보러 갔다. 존 윅이 빌딩 끝에서 떨어질 때 살아난다. 그다음은 의심 없이 살아날 거라 생각한다. 연극할 때도 생각났다. 물이 없는데 물을 마시는 장면, 마주 보지 않고 정면을 보고 대화하는 것들. 처음엔 어색한데 보다 보면 몰입이 된다. 감독님의 세계관 속에서 '귀공자'의 액션이 프로 같고, 위트 있고, 깔끔하고 정돈된 움직임이었다. 그 모습을 계속 유지하면 관객도 설득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귀공자가 굉장히 비현실적인 인물임에도 이처럼 현실성과 생동감을 띠게 된 이유다. 김선호는 "저처럼 매체에 많이 노출된 배우가 갑작스럽게 잔인한 역을 맡으면 초반 거부감이 들 수도 있을텐데, 감독님이 위트 있게 써놓은 지점들, 엉뚱한 코믹 요소들이 좋았고 저로서는 새로운 걸 표현할 수 있어 정말 기쁜 작품"이었다고 말한다.
늘 연기는 "절실하다"는 김선호다. 첫 영화인만큼 신기한 경험들을 했고, 그것만으로도 기뻤다고. "이번 작품으로 '김선호가 이런 역할도 할 수 있구나, 가능성이 있네'라고 생각해주신다면 좋을 것 같다"고.
"저처럼 느린 사람이 배우를 할 수 있었던 건 그동안 수많은 선배님들이 쌓아놓은 레퍼런스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외국에선 히스 레저의 '조커'가 있었기에 그런 유형의 인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그런 도움을 받게 된다. 처음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장 어렵다. 그걸 만들고 구현하는 건 배우로서 힘든 작업이다. 저 역시도 언젠가 남들이 하지 않았던 무언가의 레퍼런스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배우가 된다면 정말 좋은 배우 인생이지 않을까 싶다." 느리지만 천천히, 진심으로 연기를 생각하는 배우 김선호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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